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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황제 아레스
확답을 내리지 않자 루시퍼가 먼저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제나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마왕님의 결정으로 정해질 것이니 기다려라.”
“···죄송합니다.”
제나는 아마 내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루시퍼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만큼 내 무력한 모습에도 제나는 굳건히 날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난 그녀의 믿음에 못 미치는 사람.
5년은 너무 길다는 생각과 그래도 안전을 택하자는 생각에서 난 계속 갈팡질팡했다.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후무한 히키코모리 인생으로 10년을 살아왔기에.
선택이란 단어는 내겐 중압감을 주었다.
“···아직 고민 중이시면 오늘 하루 생각해 보시고 내일 답변하셔도 됩니다.”
데빌런이 쉽게 대답 못 하는 날 보고 말했다.
그렇게 회의는 흐지부지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지옥에 햇빛은 없기에 낮과 밤 구별이 힘들지만, 시계와 내 몸 상태를 보면 밤인 것은 확실했다.
기나긴 회의로 온몸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침실에 털썩 누웠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들어오라는 허락도 하기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파우스트였다.
“이봐, 오늘도 태평하게 침대에 누울 생각이야?”
“······.”
그는 또다시 심한 욕설을 내 앞에서 주야장천 뿜어 댔다.
그러나 난 그저 그의 욕을 듣고만 있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선장을 만나면 배가 침몰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랬다.
“얘기 끝났습니까?”
파우스트가 지쳤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배신한 건 정말 잘못했으니깐 제발 이 세계에서 나가게 해 줘.”
파우스트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오열했다.
누구든 이길 자신이 있으니깐 제발 이곳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며.
그러나 여전히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건 나약한 내 잘못이기 때문이니.
“5년만 참으면 집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같이 버텨 봅시다.”
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5년?! 이곳에 온 지도 25년이 넘었어. 그런데 5년을 더 버티라고? 나보고 미치라는 얘기야?”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이곳에서의 10년은 현생에선 하루입니다. 5년이면 반나절이라는 얘기죠.”
“그걸 어떻게 믿어!”
“그거라도 믿어야 버틸 수 있습니다.”
난 안전을 택했다.
크라운과 아델라가 너무나 걱정됐지만, 두려웠기 때문이다. 동료를 잃는 것이 말이다.
바다에서 바보 같은 내기를 하다가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안일한 내 태도로 나를 믿고 따라와 준 동료 두 명을 잃었다.
더 동료를 잃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단잉의 반지 덕분에 겨우 버티고는 있지만,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병X 같은 새끼! 네 말을 믿은 내 잘못이지!”
또다시 파우스트가 욕설을 내뱉었다.
기나긴 회의 때문에 심신이 지쳤던 것일까?
그의 욕설에 나 또한 울컥했다.
“마음 같아선 당신 죽이고 그냥 현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러니 제발 닥쳐!”
난 그에게 소리쳤다.
그때 수하들이 침실로 들어와 파우스트를 내쫓았다.
“뭘 봐.”
분이 덜 풀린 나는 그저 날 지켜보고 있던 제나에게 퉁명히 말했다.
먼치킨 인물이라기엔 정말 한심한 모습이다.
“마왕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러나 제나는 한결같이 나에게 충성을 다했다.
따지고 보면 제나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나라도 지옥으로 데려와 구해 줬으니.
그러나 크라운과 아델라를 잃은 슬픔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우울함 때문에 침실에서 나오지 않아도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현생에서 공황장애로 힘들어했을 때 가족들도 나의 심한 감정 기복에 지쳤었다.
공황이 오면 난리를 쳤었고, 증세가 사라지면 우울감에 삶의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주변에 있던 가족이나 친구들은 내 감정 기복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었다.
그러나 제나는 꿋꿋이 내 곁을 지켰다.
“너도 날 병X이라 생각하고 있지?”
“아닙니다.”
“두려움에 아무것도 못 하는 패배자로 생각하고 있잖아.”
“마왕님은 저희가 꿈꾸는 세상을 열어 줄 우리들의 리더입니다.”
“웃기고 있네······. 그냥 너도 떠나 줘. 혼자 있고 싶어.”
“···모든 명령은 듣겠지만, 그 명령은 들어줄 수 없습니다. 저는 마왕님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존재. 마왕님 뜻이 뭐든 따를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왕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십시오. 마왕님은 그래도 될 인물이십니다.”
제나의 대답에 난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내가 실수해도 내 편이 되어 줄 존재.
난 그런 존재가 필요했었고, 외로운 공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고마워······.”
그래서 그녀 말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 볼까 한다.
이 행동이 나중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날 꿋꿋하게 따라와 주는 동료들이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동료들을 버릴 수 없었다.
다시는 동료들을 잃기 싫다는 생각은 그저 핑계였다.
크라운과 아델라 또한 내겐 소중한 동료.
“크라운과 아델라를 되찾고 싶어.”
그래서 난 제나에게 말했다.
그들을 구하고 싶다고.
“마왕님 뜻이 그러하면 그렇게 하십시오.”
* * *
세계 정부 총사령관실.
“저를 황제로 임명한다는 말씀입니까?”
크라운이 어이없다는 어투로 헛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황제의 자리에 앉겠습니까. 크라운 님. 아니, 아레스 님.”
그러나 세계 정부 총사령관 바우트는 진지하게 그를 지목했다.
“이제 어리광은 그만 피우시고 제67대 아기루 황제 자리를 맡아 주세요. 아레스 님.”
사실 크라운은 황족이었다.
그것도 세계 정부의 상징인 아기루 황제의 자손.
66대 아기루 황제와는 어머니가 다르지만, 아비가 같은 이복형제였다.
“제정신입니까? 당신들이 나의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단지 존재 자체만으로도 황족에게 피해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근데 인제 와서 저보고 황제의 자리에 앉아 달라고요?”
크라운이 책상을 치고 일어섰다.
그는 분노로 가득했다.
“당신이 가면 황제의 자리는 제국 라노키아의 대군주 아서왕이 앉게 됩니다. 당신에겐 삼촌인 사람이죠.”
그러나 바우트는 끝까지 크라운을 잡았다.
“삼촌이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면 저나 당신이나 껄끄럽긴 마찬가지일 텐데요. 어미를 죽인 장본인이 당신의 삼촌 아서왕인 거 잊었습니까?”
“닥치세요!”
“저희도 제국 라노키아와 혈맹을 맺은 동지지만 아기루 황제 자리를 그들의 대군주 아서왕이 차지한다면 껄끄러운 상황이 됩니다. 그러니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닥치라고!”
크라운이 분노했지만, 바우트는 입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그를 설득했다.
황제가 되어 달라고.
“당신들 허수아비나 하려고 이렇게 살아온 거 아닙니다.”
그러나 바우트의 끝없는 설득에도 크라운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총사령관은 비겁하지만,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같이 잡혀 온 여인과는 무슨 관계입니까?”
* * *
화이트우드 지하 감옥.
아델라가 수감된 수감실에 교도관이 찾아왔다.
“공주님, 황제님이 찾습니다.”
크라운이 찾아왔다는 소식.
교도관은 굳게 닫힌 철창을 열고 크라운과 아델라가 따로 얘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줬다.
“크라운······.”
앞서 아델라는 총사령관에게 크라운의 정체를 들은 상황.
그래서 자신을 찾아온 크라운과 마주하자니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괜스레 어색함이 감돌았다.
“지하 감옥에선 나가게 될 거야.”
그때 크라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하 감옥이 아닌 왕족이 사는 왕실에 방 하나를 마련했다고 덧붙이며 말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크라운이 어색한 기류를 뚫고 말을 건네자 아델라 또한 궁금했던 것들을 쏟아부었다.
“황족은 뭐고, 아레스는 뭡니까?”
“들었다시피 난 황족이고 아레스는 내 본명이야.”
“진짜 아기루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겁니까?”
“···응.”
크라운은 아델라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아델라가 머뭇거릴 정도로 말이다.
“그럼 진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것이겠군요.”
그녀는 눈치를 살피며 크라운에게 물었다.
이곳에 잡혀 오기 전. 마왕 브라고에게 그만둔다고 말한 상황.
지금까지도 홧김에 뱉은 말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물어보니 크라운의 생각은 변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델라는 시무룩해졌다.
물론 황제의 자리가 크라운에게 더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함께 달려왔던 동료였기에 그의 이탈은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 한들 브라고가 받아 주겠어?”
“받아 준다면요? 브라고 님도 크라운 님을 잡고 싶어 하면요?”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크라운은 섭섭한 기색을 보이는 아델라가 이상했다.
동료라고 하지만, 뜻이 맞지 않아 죽어라 싸웠던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자신의 이탈이 저렇게 섭섭할까 싶었다.
“그나저나 몸은 괜찮습니까?”
아델라가 크라운의 몸을 살피며 물었다.
많이 나았지만, 아직 상처 자국이 깊게 새겨진 모습.
그 모습에 아델라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크라운을 바라봤다.
“상처투성이지 않습니까? 그러게 왜 저를 구한 겁니까?”
“···동료니깐.”
크라운이 건조하게 대답하자 아델라가 한숨을 푹 쉬며 상처 자국을 치유 능력으로 없애 줬다.
한편. 지옥에선.
“악마 군단까지 나서는 건 너무 눈에 띄니 제나 그리고 파우스트. 너희만 따라와.”
난 크라운과 아델라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악마 지휘관인 데빌런도 이번엔 따라간다 말했지만, 그들은 지옥에서 몸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 좋아 보였기에 난 그를 말렸다.
“전쟁하러 가는 게 아니라 동료만 구하러 가는 거야.” 소수만 이동해야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아직 온전하지 않은 악마 군단을 데리고 갔다가 그들을 모두 잃으면 막심한 손해를 보는 것이기에 그들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 놓았다.
“파우스트. 말썽 부리면 죽는다.”
한편 제나가 파우스트 손에 묶여 있던 KF 사슬을 풀어 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다행히 파우스트는 지금 놓인 상황을 이해한 듯 하루빨리 세계 멸망을 시키길 원했다.
“그럼 준비 다 됐으면 가자.”
계획은 이러했다.
히든 장소에서 히든 장소로 바로 이동할 수는 없다.
그러나 히든 장소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히든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가능했기에.
블랙우드로 나가자마자 아틀란티스 명예 장로 스킬로 히든 장소인 아틀란티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는 것이었다.
난 제나와 파우스트의 손을 나란히 잡았다.
그런 뒤 제나가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굉음과 함께 블랙우드로 돌아간 우린.
그곳에 진을 치고 있던 대장들도 헛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아틀란티스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