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3일째(1)
-제 105XXX 실험 보고서.
-제목 : 가드-079는 해냈다고요? 그래서 뭐 어쩌란 겁니까?!
-내용 : 상층부에서 지시한 대로 가드-079가 오후 11시 20분 경 잠든 것을 확인하고 B39에서 대기중이던 팀을 즉시 B44로 투입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빌어먹을 실험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ES 6-30은 관객 역할을 맡은 목격자 다섯 명과 품 속에 무기를 감춰둔 기동타격대 대원 셋, 그리고 실험을 기록하기 위해 동행한 4급 연구원 한 명을 무자비하게! 무차별적으로 살해해버렸습니다! 첨부된 동영상 파일은 목격자 운반용 안드로이드가 촬영한 영상입니다. 그 영상을 보고나면 가드-079가 했던 일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우리가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할 여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게 될 겁니다.
-첨부 파일 : 1건
-첨부 파일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하지."
제임스 마커가 양 손을 깍지 낀 채 인공지능 비서에게 대답했다.
매끄러운 업무용 책상 위에서 홀로그램화하여 모습을 드러낸 정장 차림의 여성 비서가 보고서의 첨부 파일을 자신 앞으로 끌어왔다.
-재생시간은 5분이 채 안 됩니다. 또한 상당히 높은 데시벨의 음량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건대 청각 손실을 유발할 우려가 있습니다. 임의로 음량을 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줘."
형태는 있지만 실체는 없는 여성이 파일을 조금 건드리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곧이어 그녀가 양 팔을 크게 벌려 딱 스마트 패드 크기의 가상 스크린을 만들어냈다.
음량이 조정된 영상이 재생되었고, 제임스 마커는 눈살을 찡그릴 수 밖에 없었다.
-아아아악! 다리, 내 다리가?! 저 염병할 짐승이 내 다리를!!
-제압해! 우리와 같은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겁 먹을 필요 없......!
핏물이 튀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거대화한 토끼가 한 목격자의 다리를 당근처럼 오물오물 씹고 있는 광경이 흘러나왔다.
분명 데이터 상에 따르면 소형견 크기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게 전부인 토끼였을 텐데, 실험용 팀이 6-30의 방에 진입하기가 무섭게 코끼리와 맞먹는 크기로 변했다.
크기가 커지면서 털가죽까지 질기고 두꺼워져, 경량 펄스라이플을 미친듯이 갈겨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확인했던 따끈따끈한 생중계(?) 방송에선 분명 가드-079가 트릭없는 마술사 팀을 상대로 살아남았었다.
그런데 같은 조건으로 입장시킨 인간들은 고작 몇 초만에 공격을 받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실험체인 목격자들에겐 모두 집으로 되돌려보내준다는 조건을 내걸어, 가드-079처럼 자연스럽게 마술쇼 관람을 즐기라고 명령해두었다.
마찬가지로 마술쇼가 끝나면 트릭없는 마술사 팀에게 건네줄 팁으로 현금까지 쥐여주었고, 행여나 마술사가 관객 일부를 마술에 직접 참여시킨다고 해도 당황하지 말라는 엄포까지 해두었다.
순수하게 쇼를 즐긴다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목격자들에겐 간식거리까지 준비해서 자연스러운 관람객 역할을 하게 했건만, 결과는 보는대로 끔찍했다.
목격자 다섯은 거대화한 토끼에 의해 각기 다른 부위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빼앗겼으며, 나머지 한 명은 머리만 쏙 뽑혔다.
실험이 실패했음을 눈치챈 기동타격대 대원들은 즉시 6-30을 제압하기 위해 숨겨둔 펄스 라이플을 꺼내 반격했지만, 바니걸이 무대 위에서 준비해두었던 구시대적 대포가 터지면서 모두 일격에 사망했다.
자기 혼자만이라도 탈출하기 위해 수송용 안드로이드에 올라탄 과학자는 재빨리 체크 포인트를 향했으나, 체크 포인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6-30 주체인 마술사가 정중한 자세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이후 약 3분 간 4급 과학자를 상대로 벌어진 마술사의 끔찍하고도 놀라운 고문은 비위가 강한 축에 속하는 마커 조차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녹화된 영상의 데시벨이 유독 높은 이유는 모두 인간들이 내지른 비명 때문이었다.
-확인 결과 실험체로 투입된 목격자 다섯은 과다출혈 및 쇼크로 인해 사망하였으며 기동타격대 대원 셋은 폭발로 인한 즉사, 연구기록 담당으로 나선 4급 연구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의 자상, 열상, 타박상, 화상을 동반한 488회의 고문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이후 4급 연구원의 '부족한' 사체는 복도의 중심부에 피로 그려진 비둘기 문양 위에 놓여졌습니다.
"그만."
FCD라는 직책의 특성상 정보를 걸러들었다간 나중에 큰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억지로 분석 보고를 들었으나, 역시 마커에게 그 이상 세부내용을 듣는 건 괴로웠다.
이미 영상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철저하게 고통받으면서 사망할 수 있는지 똑똑히 확인한 참이다. 진실로 뇌를 후벼파는 건 그정도가 적당했다.
"후우, 이유를 모르겠어. 대체 뭐지? 가드-079와 우리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그는 살아남고, 다른 이들은 죽는거지?"
-현재 2급 이상의 연구원들에게서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확인된 가설은 약 187건에 해당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시설에서 가드-079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 눈썰미가 좋은 과학자들이라면 뭔가 알아냈을지도 모르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가설을 3개만 추려줘."
-첫째 가설은 가드-079의 침식현상(ES)설입니다.
"그가 실제로는 인간이 아니라 ES가 아니냐는 얘기는 FCD 내에서도 화두로 올랐었지. 하지만 그건 이미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지 않았나?"
-첫째 가설에 의하면 가드-079는 완벽하게 인간과 같은 신체적 구조를 지닌 ES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대부분의 ES들이 그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가설입니다. ES들 중 만나기만 하면 싸우거나, 혹은 서로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개체들이 일부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ES들은 서로에 대해 기본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즉 가드-079가 같은 ES이기 때문에 놈들에게 적대당하지 않는 것이다? 일리는 있지만 너무 허무맹랑하군. 가장 의심스럽지만, 동시에 무엇 하나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이야. 다음.
-다음 가설은 가드-079가 ES는 아니지만, 극히 드물게도 인간들 사이에 일부 존재하는 이능력자일 가능성입니다. 최고 기밀 정보에 따르면 실제로 극소수의 염동능력자나 예지능력자가 존재합니다. 일부 1급 과학자들 사이에선 그가 ES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특별한 이능력을 지녔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첫째 가설보단 좀 더 그럴듯 하군. 이능력 같은 건 ES와 다르게 정밀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손을 대지 않고 컵을 옮기거나, 미래를 예지하는 사람들을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한다고 한들 일반인과의 차이점은 발견할 수 없다.
실제로 TF에서 과거에 확보했던 극소수의 능력자들은 모두 능력을 직접 선보이기까지 일반인과 구분할 수 없었다.
가드-079가 그런 존재라면 연이어 발생한 괴현상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양한 ES들과 적극적,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같은 게 정말로 존재할까? 그렇게나 편의주의적인 능력이 ES와 함께 공존할 수 있을 만큼 이 세계는 합리적이었던가?'
이 세계는 합리적이지 않다.
기원도, 원인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인류 사회를 좀먹고 있지만, 인류는 밑도 끝도 없는 놈들에게 삶의 터전을 내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수많은 희생을 치뤄서 제압한 놈들도 대부분 죽이는 건 실패해서 지하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는 게 고작 아닌가.
모든 동, 식물의 위에 인간을 세워둔 것 처럼, 인간 위에 ES를 세워둔 이 세계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편향적이고 잔인하다.
"두 번째 가설이 그나마 그럴듯 하군. 필요하다면 가드-079에게 능력의 원천을 캐묻는 것도 고민해봐야겠어."
-물리적으로 가드-079를 제압한다면 그때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인간들과 달리 일을 너무나도 좋아해. 아주 좋아 죽지. 워커홀릭이 아니라 워크러버 수준이야. 그러니 적당히 업무 핑계를 대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본다면 지난 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그래서 마지막 가설은?"
-마지막 가설은 가드-079의 심리와 태도에 따른 언행입니다.
"철저하게 검증된 계산식과 통계자료만 믿는 과학자들이 '마음'을 논하는 날이 올 줄이야. 샴페인이라도 터뜨려야 하나?"
그렇게 말은 했지만 마커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때 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인공지능 비서가 이어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가드-079는 지체장애인은 아니지만, 일반인의 평균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의 낮은 지능(IQ)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특이체질로 인해 가상현실에 접속할 수 없어, 어린 시절부터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가드-079의 신상정보는 이미 퍼질대로 퍼진 참이야."
-거기서 한 연구팀이 심리학을 전공한 연구원과 함께 가드-079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 그는 매우 순수(Pure)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순수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대부분의 ES는 순수함이라면 새하얀 눈에도 뒤지지 않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학살한다고."
실제로 5세 이하의 미취학아동들만 골라서 납치, 살해하는 정신나간 ES도 있었다. 그것말고도 임산부들을 습격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를 꺼내 먹는 끔찍한 ES의 이야기는 TF내에서도 유명했다.
인간에게 매우 적대적인 ES에게 인간을 구분하는 행위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놈들에게 인간이란 얼마나 잘 찢여죽여야 소문이 잘 날지 고민하게되는 식재료에 불과했으니까.
실제로 어떤 정신나간 연구원이 한 ES에게서 인간성을 밝혀내겠다며 고통없이 처리하기로 정해진 미성년 목격자(어린아이)를 연구 실험에 사용한 적이 있었다.
실험 결과, 실험체로 투입된 어린아이 세 명은 전신의 피부가 타들어가는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며, 2급 ES의 '몸 속'에서 실시간으로 융해되었다.
ES는 미친듯이 웃으며 아이들을 천천히 녹였으며,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연구원과 시설 가드는 모두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덧붙여서 실험을 주도한 정신병자는 기동타격대가 체포해서 마리아나 해구에 위치한 'X 시설'에 처박았다.
그는 지구상에서 마리아나 해구가 사라지기 전 까지, 심해 기지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죽음의 술래잡기를 계속 하는 신세가 되었다.
"바보같군. 인간의 순수함이나 선의 같은 건 ES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 실제로 가드-079 역시 일부 ES에게 거친 행동을 보이지 않았나? 그건 순수함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좀 더 다른...우리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라고."
-인간이 진심을 담아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ES가 인간성에 반응해줄지도 모른다, 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마지막 가설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만약 그런 가설이 사실이라면 왜 지구상에 존재하는 80억 인구중 ES와 부랄친구가 된 인간이 한 명도 없지? 가드-079가 80억분의 1 확률로 그걸 해냈다고 말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 그래."
마커가 딱 잘라 말하자 비서도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미 그는 두번째 가설에 힘을 싣고 있다는 걸 학습을 통해 알아챈 것이다.
FCD 내에서 최연소에 해당하는 비교적 젊은 피인 제임스 마커 역시 사고가 완전히 유연한 것은 아니었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정보들이 있기 때문에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FCD는 실질적으로 인류를 대표하는 신분인 만큼, 아는 것은 많아져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나날이 적어지고 있었다.
대체불가능한 자리를 맡는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다.
다른 인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점 만큼은 가드-079의 직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작 남들의 입에서 열심히 오르내리고 있는 장본인은 현재 한라산 초입에서 세 마리 치킨을 배달받고 있었다.
"으드드득! 고객님...다음브트는 꼭! 시내에스 주문해즈세요!"
"근무지 이탈하면 큰일나서요."
"여긴 차량 진입 제한때문에 바이크도 못 타고 온다고요...후!!"
제 6 처리시설의 입구를 중심으로 반경 1km는 민간 차량이 진입할 수 없게끔 진입 방지턱이 존재했다.
치킨이 들어있는 보온박스를 짐꾼처럼 짊어지고 1km 가량 걸어온 배달원은 얼굴이 시뻘개졌다. 호국이 한 마디만 더 하면 손님이고 나발이고 주먹부터 날리겠다는 의지가 다분해보였다.
하지만 그건 호국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 혹시 포인트 적립 되나요?"
크레딧 카드를 꺼낸 호국은 풀페이스 헬멧이 인간의 주먹보다 튼튼하다는 걸 오늘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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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