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금과 쇠 [10] >
“이쪽, 이쪽이야!”
그렇게 서두르는 라이네스를 따르니, 골목 뒤쪽의 민가로 향했다.
제집처럼 문을 발칵 열고 들이치니 한편에 재갈이 물린 일가족이 곧장 눈에 들어왔다.
고새 집을 사진 않았을 테고, 그렇다고 다급한 때에 여관을 잡지도 못했을 테다.
집을 빼앗긴 일가가 시엔을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며 읍읍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안방에 들어서니 피 특유의 비린내가 훅 끼쳤다.
안절부절 돌아다니던 마법사들의 시선이 모였다. 본 얼굴도 있고 못 본 얼굴도 있었다.
개중 낯선 얼굴이 트리예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시엔이 기운으로 즉시 흑마법사임을 알아챘다.
“어…… 트리예……?”
“지금이 안부나 물을 때야? 라이네스는?”
뤼니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흑마법사가 어깨를 바짝 움츠리며 말했다.
“살아있어…… 아직은…….”
“그딴 불길한 소리! 젠장, 이쪽이야!”
뤼니헤가 파티션으로 반쯤 막힌 너머로 향했다.
그리고 그 침대 위. 참혹한 꼴의 환자가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침상이 이미 온통 붉었다.
“쯧. 사람보다 시체에 가까운 꼴인데.”
시엔이 혀를 찼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용하다고 할 상태였으니까.
왼편 어깨 아래가 허전하니 본래 달려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사선으로 맞은 칼이 어깨 아래로부터 팔을 절단하고 몸통에 들어 바로 폐 부근까지 파고들었다.
복부의 다수 자상은 크기로 보아 뒤에서 찔려 앞까지 관통된 것이다.
얼어붙은 환부에 재 섞인 흙으로 보아 바닥에 배를 깔고 쓰러진 상태에서 등 뒤, 위에서 아래로 찌른 흔적들이었다.
거기에 골반 아래 바깥쪽으로부터 베인 자상까지.
한쪽 다리가 대퇴근 일부로만 붙어있으니 그야말로 겨우 붙어 달랑거리는 수준이었다.
혈색은 창백하니 출혈도 상당하리라.
그나마 상처를 얼린 냉기가 쨍쨍하게 흘러나왔다.
물길잡이의 응급 처치가 분명했다.
상처가 얼어 일단 지혈은 되었으나, 부근의 살과 내장의 동상이 진행되었을 터다.
그러나 신성으로 잘 듣는 것이 동상과 화상이라, 훌륭한 처치였다.
함께 상처를 살피던 세올과 트리예가 인상을 찌푸렸다. 흑마법사란 기본적으로 외과의를 겸했다.
“선배님. 이걸 어떻게, 어디부터. 와, 모르겠다.”
“팔다리는 어떻게든 해도, 내장이 문제에요. 속이 아주 헤집어졌을 텐데, 기울 동안 숨이 끊어지고 말 거예요.”
신성은 만능이 아니었다.
온전하게 갖춰진 상처에나 신성을 불어넣어 살을 잇고 재생시킬 뿐이었다.
열상처럼 부위가 지저분하거나 손망이 있다면 신성 치료란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
“내장만 어찌 처리할 수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시엔이 머리를 굴렸다.
문제는 내부였다. 몸통으로 든 검에 찢어진 내장들을 먼저 기워야 할 텐데, 환자의 상태로는 시술을 버틸 수 없을 터다.
상태를 보아하니 이어 붙이기보다는 차라리 떼어내고 새것을 붙이는 편이 나을 정도다.
물론 남의 장기를 붙여봐야 얼마 버티지 못하니 그 역시 사망에 이르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새것. 새 거라…….
시엔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트리예를 바라보았다.
“생체 강신체는? 이식해도 거부반응이 있을까?”
육신은 정신 세계를 담는 그릇이었다.
정신 세계가 허수 차원이라 특정한 부위에 머무르지 않으니, 온 신체가 그 매개로 통한다.
타인의 신체를 이으면 붙일 수는 있으나, 두 정신세계가 충돌하기에 서로 맞지 않아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거부 반응이었다.
시일이 지나면 열이 오르고 부패가 시작되어 곧 앓아눕고 종래에는 사망에 이르는 현상이었다.
“아! 괜찮을 거예요. 마력으로 제어하는 인형에 가까우니까요.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겠지마는.”
“해보는 수밖에는 없지.”
시엔이 세올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세올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선배님? 거의 완성된 주문이지, 아직 온전한 주문은 아니지 말입니다. 완전 강력한 매개가 필요한데…….”
세올이 트리예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정확히는 등에 동여맨 길쭉한 물건이었다.
너무 눈에 띄다 보니 천으로 감싸 감춰놓은 산호 지팡이였다. 이러한 때에도 지팡이를 탐내는 것이 참으로 세올다웠다.
사실, 세올에게 인간 하나야 죽건 말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을 테니까. 세올이 개인적으로 만화원에 원한을 갖고 있기도 했고.
트리예가 그 시선을 알아채고 급히 지팡이를 풀어내려는 순간이었다.
“이거, 이걸 써!”
“잠깐, 뤼니, 그걸 외부인한테…….”
“지금 그게 중요해?”
동료 마법사를 제지하며, 뤼니헤가 상자 하나를 다급히 내밀었다.
마법과 그리고 또 다른 기운, 아마도 주술적 요소가 가미된 색다른 방식의 봉인이었다.
자체로도 꽤 흥미를 끄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시엔이 더 살펴볼 기회도 없이, 뤼니헤가 가차 없이 봉인을 잡아 뜯었다.
그 순간, 시엔이 곧장 내용물을 알아차렸다.
상자 안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기운. 한때는 제 일부였던 흔적이었으니.
아니, 저게 또 있다고?
시엔이 인상을 찌푸리며 상자에서 나오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보는 모빌 장식, 혹은 주술사의 드림캐처 비슷한 형상이었다.
금실로 줄줄이 묶어 엮어놓은 새까만 잔뼈들.
굵직굵직한 뼈들은 이미 시엔이 회수한 이후라, 남은 잡뼈들을 꿰어 만든 모양이었다.
“오, 성유해네?”
세올이 만면에 화색을 띠며 성유해를 받아들었다.
뒤이어 사악한 주문이 울러퍼진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돌연 흰 것들이 뭉쳐서 뼈대를 이루기 시작했다.
뼈대가 서자 그 위로 부풀기 시작하는 것이 내장이고, 그 위로 힘줄과 근육이 솟아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의 모양 위로 흰 피부가 뒤덮인다.
어쩐지 뷔아를 닮은 미인이 눈을 뜨자, 세올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마냥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악, 내 몸! 멍들면 안 되는데!”
강신체로 갈아탄 세올이 울상을 지으며 제 다른 몸뚱이를 조심히 살폈다.
그 모습에 트리예가 안색을 굳히며 재촉했다.
“선배, 시간이 없어요.”
“아. 맞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돼?”
“뭘 하긴 뭘 해.”
시엔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필요한 게 안에 들었는데. 배 갈라야지. 이제.”
* * *
산 채로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절개되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은 대체 어떠할까.
사실, 딱히 궁금하지는 않은 내용이었다.
세올의 반응으로 대충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고.
“으으……, 속이 빈 것 같은데……”
세올이 제 배를 움켜쥐고 신음했다.
속이 비었다는 말이, 배가 고프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텅 빈 상실감, 내장이 끄집어내진 본인이 느끼는 환상통이었다.
다시 헤인트의 신체, 그러니까 제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계속 저 모양이었다.
흔한 빙의의 부작용이었다.
세올이 이미 온갖 부작용을 겪었으니 인제 와서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별문제가 있겠냐마는.
배를 가르는데 아파 죽겠다고 또 얼마나 비명을 지르던지. 결국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제압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장기를 떼어냈다.
그렇게 떼어낸 장기를 라이네스의 몸에 붙였다.
시엔과 트리예에, 만화원의 또 다른 흑마법사인 이에인까지 합류한 대수술이었다.
일시에 주요한 장기를 전부 제거하고 또 새로 봉합해야 하다 보니 손 여섯으로도 모자랄 지경이었으니까.
거기에 누렁이와 그 패거리가 신성을 쏟아부었다.
일단 급한 몸통부터 처리하고 나니 나머지는 수월한 편이었다.
다리를 꿰고 팔을 이어붙이고 나니 라이네스의 호흡과 맥박도 금세 안정되었다.
수술 전과 후로 비교하면,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할 대수술이었다.
사실상 시체나 다름없는 꼴이었으며 거기에 대륙 초유의 대체 장기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야말로 인류 의술 역사의 한순간이었다.
생체 강신체 연구가 끝나 흑마법사의 공용 과정에 추가할 수 있다면, 대륙의 의학 수준을 두세 단계나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그뿐이랴.
심연탑의 이사가 끝나고 정식으로 개탑하는 때에 발표할 성과였다.
흑마법사의 첫인상을 결정할 수 있는 소중한 성과이기도 했고.
그 일등 공로자, 세올이 말했다.
“선배님, 너무합니다. 어째 제 취급이 조금…….”
“덕분에 저건 살렸잖아.”
“하지만, 산 채로 개복해 내장을, 최소한 마취라도 좀 해주셨으면……”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체 강신체의 빙의는 조종술에 가까운 거 아니었나? 불의근까지 직접 컨트롤한다며?”
“덕분에 무슨 일을 해도 동시에 일을 하는 꼴이라 영 정신이 사납기는 하지만요. 이 세올이 아니라면 세상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입니다.”
“그럼, 신경계 역시 의지하에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더 어려운 거랍니다. 생체 강신체 주문은 아예 그 계통에서부터 의지를 담아야…….”
과거 헤인트는 마법의 백파이어로 정신 세계가 불타 사라졌다. 그 덕분에 세올이 깃들 수 있었다.
정신 세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세올이 그 부분을 장악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생체 강신체에는 정신 세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그저 인형처럼 모든 부분을 스스로의 의지로 섬세하게 조율할 수 있어야 했다.
세올은 그 부분에서 대륙 제일의 권위자였다.
다만 스스로의 발상이 거기 미치지 못할 뿐.
“마취는 무슨. 그냥 통각을 차단하면 될 것을.”
“아.”
세올이 멍청한 탄성을 내뱉었다.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니 몸이 고생이지.”
“아…….”
세올이 망연한 표정으로 제 배를 움켜쥐었다.
이러니 실력에 비해 전혀 신뢰는 안 간다.
시엔이 쯧쯧 혀를 찼다. 제가 사서 고생한 꼴이라 딱히 위로하거나 미안할 이유도 없다.
“저…… 그 강신체 주문……”
“넌 또 뭐야?”
“이에인인데요……. 대단하시다 싶어서…….”
“이 세올의 위대함은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다. 그딴 사탕발림이 통할 것 같아?”
“그게…… 죄송…….”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세올의 어느 부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예?”
세올의 콧대가 단숨에 하늘로 치솟았다.
잘들 논다.
시엔이 피식 웃으며 신경을 돌렸다.
어쨌거나 라이네스는 곧 정신을 차릴 테고.
시엔이 침대 앞에 앉은 뤼니헤에게 다가갔다.
“어쩌다 이 꼴이 났어? 아침에 있었던 폭발과 연관이 있나?”
“그 비겁한 새끼가 기습을 했다고! 개새끼들.”
뤼니헤가 분통을 터뜨렸다.
“매복이라고?”
“그래. 매복. 창고를 터뜨리고 나니, 사방에서 웬 놈들이 개떼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타플강드의 창고를 터뜨리기는 했나 보네?”
“감히 우리에게 수작을 부렸으니까.”
뤼니에가 제 이야기를 풀었다.
만화원의 마법사들이 창고를 날려버렸다.
그러자 타플강드의 경비들이 기다렸다는 듯 반격을 해 왔다고.
경비들이 창고가 아닌 인근 주택에서 쏟아졌으니 애초에 공격이 있을 것이라 예상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만화원의 마법사들이 보통 인물들이랴.
마도에의 조예와 전투 경험은 또 다른 것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마도사라도 그저 연구에 매진하며 외유하지 않았다면, 하찮은 용병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마법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전투에 능숙한 마법사라면 그 전투력이 월등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화원의 마법사들이 경비대를 해치우는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개중에 몸을 숨긴 소드 마스터만 아니었다면.
“소드 마스터라고?”
“그래. 빌어먹을 새끼. 무슨 마스터씩이나 되는 새끼가 비겁하게 아닌 척 숨어서는.”
타플강드의 경비 중 소드 마스터가 하나 섞였다.
일반 경비원의 복장을 하고 사이에 숨어있다가, 은밀하게 기습을 가해다. 그 대상이야 당연하게도 가장 화려하게 날뛰는 방화광일 수밖에는.
그때 라이네스가 몸을 던져 뤼니헤를 밀쳤다.
마법사는 여럿이고 소드 마스터는 하나였다.
번갯불이 튀고 불길이 날아드니 곧장 처리할 수는 있었지만, 그 잠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라이네스는 걸레짝이 되고 말았다고.
뤼니헤가 이를 으득 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엔이 다른 생각을 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스터를 만들었길래 가는 곳마다 튀어나오는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리고 분명 더 많은 숫자가 있으리라.
메어리 상단주의 호위로 한 명이 있었으니, 타플강드의 입김이 닿은 곳마다 파견했다고 쳐도 그 숫자가 벌써 몇 명이겠는가.
“젠장. 그 새끼. 너무 편하게 죽, 야, 듣고 있어?”
“뭐. 대충.”
“그런데, 넌 뭐야? 라이네스랑은 무슨 관계인데?”
뤼니헤가 한참 늦은 질문을 던졌다.
“별 관계는 아닌데.”
“너 애초에 그냥 가려고 했잖아. 라이네스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서 마음을 바꾼 거고. 그런데도 별 관계가 아니라고?”
“아르트레스 성에서 조금 대화한 게 전부야. 그냥 얼굴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냥 지나치기도 뭐한 일이지.”
“내 얼굴도 알잖아. 그냥 가려고 했으면서.”
“그러니 평소 행실에 주의했어야지.”
“그거야 뭐.”
뤼니헤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 병신처럼 굴더니 그래도 덕분에 목숨 한 번 건진 모양이지. 어차피 난 태어나길 이래 생겨 먹은 년이라. 저렇게는 못 살아.”
“세상에 선량한 방화광은 없는 법이지.”
“그래. 잘 아네. 방화광이 되면 성격을 망치거나, 아니면 원래 본성이 못되먹은 것들이나 방화광이 되는지. 뭐. 이런 걸 어쩌겠어.”
뤼니헤가 순순히 제 성질을 인정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나저나, 그 성질에 이대로는 못 넘어갈 테고.”
“그야 당연하지. 개 같은 새끼들.”
원하던 반응이었다. 시엔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타플강드의 비밀 창고 위치를 몇 개 알고 있는데 말이야…….”
< 45. 금과 쇠 [1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