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밀림 속으로 [2] >
애초에 뷔아가 메이를 찾아 상의한 일이 그리 현명한 일은 못 되었다.
애초에 메이야 라이뱅의 열렬한 구애를 받은 입장이지 않았던가.
애초에 한눈에 반했다며 매달리는 귀하신 자제분을 어찌 믿겠는가.
내게 그리했으면 다른 여인에게도 그러할 수 있겠고, 덥석 받았다가 어느 날 또 그렇게 떠나가 버린다면.
메이의 생각에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었으니.
그런 이유로 뷔아가 받은 조언 역시 딱히 특별한 것이라고도 없었다.
‘흔히 여우라고들 하지? 맞아. 여우처럼 굴렴.’
‘어, 여우요, 언니?’
‘그래, 여우. 무슨 말인지 딱 알겠지? 요오망한!’
뷔아는 전국을 떠돌며 성녀행을 지내 왔다.
그 범위에는 도시와 촌락과 숲을 가리지 않았다.
여우가 상당히 흔한 짐승이었으니 개중 여러 번 만나보기도 했다.
그리고 여우가 또 워낙에 살가운 짐승이어야지.
요망? 여우가?
뷔아가 생각했다.
경험으로 이루어, 여우는 그냥 개다.
동작이 더 날래고, 대신 누린내가 아주 심한 개.
캥캥거리며, 심지어 짖는 소리도 비슷한데, 사람 손을 조금만 타면 사람을 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쪼그려 손을 내밀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머리를 비비고 배를 까뒤집으며 온갖 애교를 부리는 그런 짐승이었으니까.
개와 다른 점이라면, 제 재미만 다 봤다 싶으면 곧장 몸을 돌려 미련 없이 떠나간다는 점일까.
여우처럼 굴라고? 뭘 어떻게?
매달리며 애교를 피우다가 갑자기 냉랭하게 돌아서면 되는 건가?
그게 무슨, 그럼 그냥 정신이 좀 아픈 사람 아냐?
메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표정을 보니 알겠다. 전혀 모르겠지?’
‘……네.’
‘일단 매양 두르고 있는 그 거적때기부터 좀 갖다버리지 않으련?’
제발 화장 좀 하고. 모르면 배우렴.
향수도 치고. 흔한 건 말고. 한 번 정했으면 바꾸지도 말고. 다만 아주 은은하게.
그리고 중요한 건, 끼를 부려야지.
살짝, 사~알짝 톡톡 두들기며 접촉이 있어야 해.
그리고 우리 뷔는 볼륨이 워낙에 좋으니까, 슬쩍 껴안거나 기대거나, 무게감을 좀 주란 말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러니, 따로 조언이랄 것도 없었다.
사람이 연정을 느낌에 하는 행동이란 결국 거기서 거기 비슷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사내가 여인 앞에서 힘들고 어려운 태를 내지 않고 굴강한 척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안 하던 몸 씻기를 하고 좋은 옷을 찾듯이.
메이의 조언도 결국, 여인이 내는 호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니 사실 어떤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굳이 배운답시고 의식하고 나면, 오히려 부자연스레 태가 나기 마련이었다.
“아니, 사람이 오면 온다고 말을 하고 와야죠.”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아닙니다. 제 잘못이네요.”
시엔이 변명 대신 순순히 사과했다.
그래도 라이뱅 경을 팔기는 좀 미안하잖아.
“그나저나, 시성을 앞두고 있다더니, 성복도 따로 지급된 겁니까? 잘 어울리는군요.”
“그, 그래요?”
뷔아의 후광이 빠르게 점멸했다.
시엔의 말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솔직히 전에 입던 것이야, 과장 조금 보태 의복이라 하기 조금 애매한 누더기에 가까웠으니.”
“누더기라니! 옷은 입고, 가리고, 따뜻하면 되지.”
“뭐, 그것도 나름 뷔아답긴 했습니다만은.”
여기저기 기웠으나 멀끔하게 관리된 낡은 성복은 뷔아의 성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거 무슨 뜻이에요?”
“좋은 뜻이니 마음에 두진 마시고. 화장도 할 줄 아셨습니까? 얼굴선에 음영처럼 어두운 톤을 두니 갸름해 보이는 효과가 있군요. 아까는 터질 것 같더니만은, 훌륭합니다.”
딱히 쓸데는 없는 잡기이나 또 하나 배웠다.
배움은 마법사의 즐거움이니 시엔이 내밷는 말이 그러한 점에서 하는 감사였다.
“터질 것 같다니, 나 원래 얼굴 작거든요?”
“얼굴이 크다는 말이 아니라, 아까 보니…….”
“아, 씨이. 먹고 자서 그랬다! 시엔은 먹고 자면 얼굴 안 부어요? 아주 못하는 소리가 없어.”
“속 버립니다. 자기 전엔 되도록 안 먹도록 하시고, 먹으면 두어 시간은 억지로라도 깨어 있는 것이 좋습니다만.”
“야간 순찰을 돌고 나면 피곤하고 배고프고 피곤하니까, 아니, 내가 먹고 자든 자면서 먹건 시엔이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걱정이 되니 하는 말이지요. 그러다 버릇이 들면 아예 식사만 하면 졸릴 겁니다. 신성이 있어 별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건강을 챙기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세올과 트리예가 피신을 가 있으니 듣지 못했다.
들었다면 아무리 존경하는 대선배님의 말씀이라 해도 어이가 없었으리라. 점심 이후에 곧장 낮잠을 자는 것이 시엔의 취미가 아니던가.
“흠, 흠, 뭐. 나도 항상 이런 건 아니니까.”
뷔아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도 걱정이라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그렇다.
제 후광이 반짝거리는 중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시엔이 문득 킁킁 냄새를 맡는 척을 했다.
시엔의 신체가 보통이 아니니, 후각 역시 보통이 아니었으니.
“흠? 향수도 치셨습니까?”
“네? 아니, 아니요.”
“아닌 게 아니라.”
“아니거든요? 원래 나한테 나는 향기거든요?”
“예?”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진짜, 못 해 먹겠네.”
“하기사, 이제 시성을 앞뒀으니, 그런 몸가짐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간의 검약한 모습도 사제의 귀감이었습니다만, 권위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닌데…….”
뷔아가 맥없이 부정했다.
욱하고 치밀던 속이 또 슬그머니 누그러졌기에.
“상당히 마음에 드는 향입니다만, 기술자를 소개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런 게 맞기는 했다.
성국 최고의 조향사가 인생의 역작이라 만든 작품이었으니까.
교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녀이자, 곧 성인으로 시성 받을 뷔아가 쓸 물건이라고.
조향사가 비로소 삶의 목적을 찾은 사람처럼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불세출의 명작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야간 순찰이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래도 날 믿고 따라 준 형제분들이시니. 혼자 편하게 있기도 뭐하잖아요.”
“성전군 총사령이셨지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괴물이 넘친다면야 막을 수 있겠지만은. 대주기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고도 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지요. 들은 바가 있으니 후에 조사를 나가 볼 생각입니다만, 특이사항을 발견하면 곧장 교단에 전달하겠습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요?”
“늑대 수인들을 대동할 계획입니다. 본래 대수림에 사는 이들이라 지리와 생태에 훤하니 별 위험은 없을 겁니다만.”
“그럼 다행이지만요. 그나저나, 외국에 여행을 다녀왔다면서요? 누구 때문에 지금 누구는 이 고생을 다 하는데?”
“여행이 아니라 업무 때문이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으레 친구와 하는 환담이었다.
근황 따위의 잡설을 풀어놓는 도중, 시엔이 뭔가 이상을 감지했다.
뭐지? 이 부자연스러운 터치는.
맞장구를 치거나 농담에 맞춰 손길이 날아든다.
힘 조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손길은 사륵 옷깃만 스쳐 지나가고, 또 다른 때엔 제법 묵직한 일격이라 할 것이 팔뚝을 타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손동작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부자연스레 손을 들어 두어 번 멈칫하고 놀린다.
이게 대체 무슨 신호일까.
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 그런 것 치곤 뭐, 여기도 둘이 아닌가?
혹여 듣게 되더라도 라이뱅 경이나 수히 추기경.
외인이라 할 이도 아닌데.
아니면 심술인가? 괜히 대주기가 온다 알려서 이 사단을 벌였다고 골탕을 먹이려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마다 뷔아의 헤일로가 격렬히 반짝거리는 것도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추측이 되기도 하고.
시엔이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민의 끝은 의외로 간단히 찾아왔다.
다시 신당의 번을 서던 라이뱅 경이 굳은 표정으로 들어와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성녀님, 시엔 형제님. 2-6번 초소와 7-4번 초소에서 동시에 보고입니다. 대주기가 발생했답니다.”
경계부대의 숙영지를 소초라 했다.
페벨룬은 대수림의 경계지를 분할하여 여섯 개의 소초를 두고, 각각 열 개의 초소를 감시해 대주기의 징조를 감시하도록 했다.
다만, 소초의 숫자는 모두 여덟이었는데, 일 번 소초와 팔 번 소초는 대수림이 아니라 국경을 따라 안쪽으로 이어진 방벽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남의 왕국에 방벽을 깔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혹여 괴물들이 방벽을 우회해 드는 것을 막는 조치였다.
2-6번과 7-4번 초소는 대수림과 두 왕국이 접촉하는 가장 끝부분이었다.
“일단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거나 미노타우르스, 와이번 등의 대형 개체는 거의 관측되지 않았고, 웜이나 베히모스 같은 초대형 개체도 발견되진 않았습니다. 명예 성자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주력은 늑대인간들이고, 현재로선 인접 양국에 수천 규모 이상으로 추정됩니다만.”
괴물의 힘은 대체로 그 몸집에 비례했다.
성인 남성도 일대일로 붙어 이길 수 있는 고블린.
성인 남성을 찢어버릴 수 있는 오크의 차이였다.
거기서 더 큰 괴물들, 오거 같은 대형 개체들의 경우에는 중소형 개체 수십, 혹은 수백보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목책 같은 방어 시설을 부술 수 있는 괴물들이었으니까.
방어 시설의 중요성이야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으니.
그리고 초대형 개체, 웜이나 베히모스, 히드라 등 대주기 무리에 대여섯쯤 나오는 재앙들이 있었다.
사실상 대주기를 악몽으로 만드는 주범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대형이 적고 초대형이 없다면?
늑대인간이라 해도 잘 훈련된 군대라면 둘이 하나를 충분히 상대하고, 기사라면 혼자서도 두셋은 잡아낼 수 있었다.
상대하는 법과 효과적인 도구만 있다면, 전쟁이 아니라 사냥이 될 상대가 아닌가.
그저 감염증, 사람을 늑대인간 하수인으로 만드는 그 피의 감염증이 성가신 상대일 뿐.
물론, 그 감염증의 위험 하나가 다른 괴물들보다 늑대인간을 더욱 강력한 취급으로 만들어주지만은.
“하아, 미리 경고했음에도 이렇게 되네요. 그래도 상위 개체나 최상위 개체가 없다면 막아내기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요.”
“그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요?”
“믿을 수 없는 소식입니다만.”
라이뱅이 확신 없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 늑대인간들이, 맹랑한 말임을 알겠습니다만, 오러를 쓴다고 하더군요.”
* * *
오러는 지성체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일부 괴물에게도 지성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성보다 본능이 앞섰다.
인류와 괴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마법사의 견해로, 오러는 전승되어 내려온 무인의 힘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오러에 대한 주제로 마법사와 기사가 토론을 하면 기사들의 견해는 한결같았다.
신소리 집어치우고 오러야말로 수련의 산물이지.
느그 마법사들이 소드 마스터를 알아? 오러 블레이드를 알아? 아, 이거 참 좋은데 너희는 몰라서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럴 때면 마법사들은 설명할 방법이 아니라 설명할 머리가 없는 게 아니냐 말하고 싶은 욕구를 꾹 참느라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토론에 있어 인신공격은 자신의 격 역시 시궁창에 처박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일부 마법사는 그렇게 했다.
사실 그로 인해 싸우기도 많이들 싸웠더란다.
어찌 되었건, 이러한 이유들로 괴물은 오러를 쓸 수 없었다.
괴물에게 오러의 이미지로 전승되는 것이 없다.
또한 지성보다 본능이 앞서니 힘을 발현할 집중도 없을뿐더러, 사실 그게 없어도 강력한 놈들이었다.
게다가 오러의 성질은 기본적으로 밝음이었다.
괴물이 기피하고 꺼리는 성질이니 간절히 원해도 모자랄 판에 오러를 깨울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주술이라 하여 일부 괴물 개체들이 쓰는 잡술이 있기는 했다.
자연신 숭배, 피와 심장의 생명 기원 이론, 동족 포식 및 공양 등에 기원을 두어 만들어진 것으로, 마력이 아닌 실재하는 다른 대가를 지불하여 이적을 일으키는 잡술이었다.
그러니 오러나 신성, 마력은 인류만의 것이었다.
적어도 개중 하나가 도둑맞기 전까지는.
< 42. 밀림 속으로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