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가시가 날카로워도 상처는 깊을 수 없는 법 [5] >
푸른 장미 여섯. 제2 공작대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참혹한 꼴이었다.
머리가 반쯤 녹은 시체가 하나. 여기저기 꿰뚫려 바람구멍이 뚫린 시체가 여럿. 난도질당하고 물어뜯긴 시체가 다수에 이례적으로 멀끔한 시체가 하나.
“쳇, 들켜버렸네요.”
그 사이에서, 트리예가 수신기를 귀에서 빼내며 말했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네요. 역설계는 힘들어 보이는데. 저쪽에 뭔가 난리가 난 것 같긴 한데. 일단 시엔 님께 보고드려야겠어요. 가요, 선배.”
멀쩡한 시체, 공작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성자의 하녀가 마녀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공작대장은 사실 가사 상태였다.
어금니에 끼운 독단을 씹으면, 겉으로 보기엔 맥이 뛰지 않고 사지가 굳어가니 죽은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여인 둘을 제 주인이 부른다며 가짜 부름으로 꾀어 데려온 데까지는 좋았다. 갑자기 여인 하나가 물약을 뿌려 부하 하나의 머리통을 녹여버리고, 동시에 바닥에서 뼈가 솟아 부하 여럿이 죽었다.
그리고 죽은 부하들이 일어나 산 부하와 싸우니 베고 물어뜯었다. 그러다 부하가 죽으면 그 시체가 일어나 적으로 변했다.
제2 공작대장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독단을 깨물어 죽은 척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송수신기를 빼앗겼다.
원래라면 차라리 죽더라도 넘겨줘서는 안 될 물건이나, 이미 독단을 삼킨 이후라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윽. 빵은 못 먹겠지?”
공작대장이 공포를 느꼈다.
사람을 이리 참살하고 하는 소리가 겨우 빵이라니.
“아니, 선배. 지금 그게 중요해요?”
“나도 그냥 해 본 말이거든? 너, 감히, 지금 누구 앞에서 눈을 그렇게 뜨고.”
“제 눈은 원래 이렇거든요?”
“어머머, 얘 하는 소리 좀 봐. 어쩜. 아니, 어떻게 이렇게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알고.”
“흥. 선배도 선배 나름 아닌가요?”
“흥? 흐응? 너 또, 또또!”
두 여인이 티격태격 언성을 높이며 현장에서 사라졌다.
공작대장이 그제야 한숨 돌렸다.
‘본부에 보고해야 해.’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독단의 효과는 해독제 없이는 꼬박 이틀이나 계속되는 것이었다. 송수신기는 써 보지도 못한 채로 빼앗기고 말았으니.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이대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본부에서도 곧 이상함을 눈치채리라.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 * *
트리예가 송수신기의 정체를 눈치챈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락부락한 사내가 어울리지 않게 귀걸이를 차고 있으니, 보기에 거슬려 떼어버렸다.
마침 그때 마력 파장이 밀어닥치니, 고막에 직접 연결되어 그제야 소리로 바뀌어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가.
트리예는 젊으나 벌써 광전사와 키메라의 두 개 연구를 완성했다. 금지된 연구라 어떤 참고자료도 없는 분야였다. 그 기초부터 스스로의 이론으로 완성했다.
이런 성취를 젊은 나이에, 고작 십여 년의 짧디짧은 시간 만에 이뤄냈다.
세간에선 이런 이를 천재라 불렀다.
트리예의 성격 역시 당연한 것이었다.
오만은 천재의 미덕이었다.
천재의 겸양은 오히려 비수가 되어 평범한 이의 속을 후볐다. 차라리 오만함이 그런 부류에겐 더욱 어울리는 것이었으니.
트리예가 흘러들어온 마력이 소리로 분석되는 과정을 직관으로 이해했다. 음차원 에너지로 대체하여 마도구에 거짓 신호를 보내니, 곧 아케인 에너지가 흐르며 목소리의 전달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엔이 송수신기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쓸 만하겠는데. 다만, 제작하려면 천문관이 필요하겠어. 보통 기술이 아닌걸.”
“보통 기술이 아니라 하심이면, 어떠한 말씀이시어요?”
“적층 기법으로 네 단을 쌓아 입체적 수식 설계가 된 거야. 처음 보는 공식투성이인데, 흠. 아케인 에너지의 저장량은 미약하지만, 대신 우회하여 사용자의 생명력을 이용하게 되어 있네. 마법사가 아니라도 쓸 수 있게. 아케인 에너지를 쓴 수식이라 이 부분은 아주 엉망이야. 음차원 에너지 대비 생명력 소진이 73배 정도인가.”
시엔이 스스로 말하고 조금 당황했다.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았지?
시엔의 스승은 파괴술와 독약술에 능했다.
시엔이 그 아래서 배워 익혔다.
망령술과 소환술은 타고난 어둠의 축복으로 자연히 깨친 것이었다. 독약술이 연금술과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그 방면이야 능할 수밖에 없었고.
그 외에는 제국과의 전쟁에 필요한 일이 없으니 마도구 제작에 관해서는 그저 평범한 소양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얻은 힘, 신격이 있었다.
자세히 살피고자 진심이 들자, 신격이 일어나 그 근원을 관조했다. 보고 즉시 아는 것, 신격이 가진 권능이었다.
트리예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도구가 간단한 것이라도, 그 역설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복잡한 것은 어떻겠는가.
트리예가 보기에, 그 구조를 파악하려면 최소 열 개 이상의 송수신기를 구동부별로 분해하여 연구해야 할 것이었다.
그걸 한번 살펴보고 알아챘다.
당연히 존경이 펑펑 솟았다.
역시 시엔 님이시다. 그 마법적 소양이 대양과 같으니 내가 이룬 성취는 겨우 찻잔 하나에 지나지 않는구나. 세올 선배는 잘 쳐줘야 물컵 정도인데도.
트리예의 오해와 존경심이 깊어졌다.
“어쨌거나, 습격이라.”
“인질. 교환. 적들의 대화 중 유의미한 부분이라 생각한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푸른 장미. 암살자의 패거리인 모양인데.”
“푸른 장미 말씀이시어요? 무조건적인 성공을 자랑한다는 그 암살자를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푸른 장미가 어째서 나타났을까요?”
“어제 가둬놓은 그 시녀가 푸른 장미거든.”
트리예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니 곧 누더기를 걸친 누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찢긴 의복이 온통 피칠갑이었다.
“다쳤나? 당장 신관을 부를. 음. 필요는 없겠지.”
“맞습니다, 주인님. 이러한 몰골로 찾아뵈어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만, 먼저 보고를 드려야 할 듯하여 무례를 무릅쓰나이다.”
“그래서, 그 꼴은 뭐야?”
“습격이 있었습니다. 그 무도한 놈들이 감히 주인님께 해를 입히려 합니다. 저를 인질로 삼아 교환하겠다는 수작이었습니다만.”
“영감님도요?”
트리예와 누렁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엔이 생각했다.
통신 수단. 생각지 못한 발상이었다. 대충 떠올리기에도 그 활용이 여간 강력한 것이 아니다.
당장 세올과 트리예, 누렁이에게 수작을 건 것만 봐도 그랬다. 실패로 돌아갔다면 다음은 어떻게 나올까. 좀 더 신중히 처리할까, 아니면 좀 더 과감한 행동을 보일까.
그렇다면 빠르게 결판을 내야 할 것인가.
결정은 빠를수록 좋았다.
“일단 내일까지 가솔들의 외부 활동을 금지하고, 불가피할 경우 기사를 붙이도록 해야겠어.”
교환이라 하니, 지하에 가둬 둔 암살자가 그 목적이리라. 암살자 역시 이러한 마도구를 갖추고 있을 테니 그를 통해 푸른 장미와 연락을 할 수 있을 테고.
악령이 붙었으니, 내일은 훨씬 더 협조적으로 나오리라. 그러니 아무리 급하다 해도 지금은 하루를 인내하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게 작용할 테니까.
* * *
해피 드리머는 이제 무턱대고 상처를 후비지 않았다. 격의 상승이 불러온 변화였다.
정말로 강인한 영혼은 상처를 후비는 것으로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아무리 맹수라도 지쳐 쓰러지고 나면 초보 사냥꾼에게도 가죽이 벗겨지고 마는 법이었다.
해피 드리머의 방식이 바뀌었다.
마음으로 침투하여 가장 아픈 상처를 알고 바로 악몽과 환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서히 환경을 조성하며 밑밥을 깔고 공포심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알았다.
“으, 으으.”
에블리가 신음을 내뱉었다.
눈을 뜨면 사방이 막힌 벽이었다.
썩은 물냄새가 진동하는 축축한 밀실. 저 위에서 내리쬐는 희미한 달빛으로 겨우 눈에 보이는 것이 이끼 낀 벽돌들이었다.
우물의 안쪽이었다. 우물에 빠져 본 사람만 아는 그러한 광경이었다.
“아냐.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에블리가 눈을 감았다. 그러나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선명히 보이는 광경은 여전히 그 끔찍한 우물의 안쪽이었다.
“힉.”
에블리가 눈을 떴다.
그제야 사위는 어둡다. 칠흑 같은 암실 속에 그녀 혼자 놓여 있을 뿐이었다.
“후우. 후우.”
에블리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다시 썩은내가 스며들었다.
바닥으로부터 물이 차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에블리가 물 위를 부유했다. 그 때에 양 팔뚝에 달라붙는 질척한 무언가의 감촉이 있었다.
썩어가는 시체의 피부다. 이미 겪어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때. 마적에게 습격받던 그날. 이미 화살을 맞아 다친 부모의 품에 안긴 채 우물에 떨어졌던 아이.
희미하게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둥근 벽이 드러났다. 우물 안. 내 곁에 붙어있는 건 누구야?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차마 확인할 용기가 없어 그저 저 높이 뚫린 구멍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면 어느새인가 다시 울퉁불퉁 불편한 바닥이 온몸에 배겨 통증이 밀려왔다.
“누구야! 왜 이래! 왜 이러냐고! 이러지 마! 젠장, 이러지 말란 말야!”
에블리가 흐느꼈다.
그러자 속삭임이 들려왔다.
-누구냐고? 어쩜 이리 뻔뻔할까. 날 보아라. 네가 죽인 삶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화려한 저택의 내부. 숨이 끊어진 노인의 주변으로 그 식솔이 한데 모여 울음소리를 높였다.
이 늙은이를 안다. 꽤 존경받는 소영주였던가. 원래 약한 이라, 수은을 조금씩 타 먹이니 한 달이 못 되어 죽고 말았지.
그러자 죽은 늙은이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이제 네 차례다.
에블리가 죽인 삶들이 계속해서 스쳐 지나갔다. 어떤 이는 무수한 추모를 받고, 어떤 이는 잘 죽었다 침을 맞으나, 결국 종래에 에블리를 보며 네 차례임을 알릴 뿐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니? 네가 죽인 자들이 복수하는 시간이란다.
-아주 고통스러울 거야. 네가 그 때에 느낀 허기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
-하지만 그 때와는 달라. 네 허기를 채워줄 썩은 고기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자, 잘못,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젠 늦었지.
-너무 늦었어.
-남은 것은 고통 뿐.
-영원한 고통.
에블리가 공포에 질렸다. 영원한 고통이라니. 여기서 얼마나 더 고통스러워야. 차라리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
에블리가 혀를 깨물었다.
깨물려고 했다. 어느 순간 입안에 무언가 가득 들어차니 썩은 내가 훅 끼쳤다.
“꺄아아악!”
에블리가 몸을 일으켰다.
사방은 암흑. 희미한 빛조차 없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꿈, 꿈이야, 꿈.”
-히히.
천진난만한, 그러나 악의로 가득 찬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에블리의 고개가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부자연스러운 모양새로 돌아갔다.
거기에 벽이 있었다. 이끼 낀 우물의 벽.
썩은 물의 냄새가 피어오른다……
* * *
이튿날. 시엔이 지하 감옥을 찾았다.
두꺼운 철문이 틈새를 드러내자마자,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잔뜩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잘못했어요내가잘못했어요내가잘못했어요내가잘못했어요네가잘못했어요내가……”
-꺄하하하하아핫!
악령이 한껏 비웃다, 제 주인의 낌새에 반가와 달려들어 사지에 얽혀왔다.
시엔이 에블리는 바라보았다.
빛이 들고 사람의 인기척이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초점 없이 연신 중얼거리기만 한 뿐이었다.
“쯧. 완전히 맛이 갔는데.”
생각보다 해피 드리머의 괴롭힘이 더 강했던 모양. 어제 멀쩡하기에 하루쯤 더 버틸까 했던 것이 과대평가였던 모양이었다.
이러면 계획이 흐트러지는데.
마도구의 사용은 가능하나, 받는 대상을 알아야 보낼 수 있는 구조였다. 트리예가 목소리를 받았듯이 특정이 되어 답신을 보내는 상황이면 모를까.
하지만 누렁이가 심장을 뽑는 바람에, 그는 더는 전언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에블리를 통해 푸른 장미와 접촉하고, 챙길 것은 챙겨 돌려보낼 예정이었건만.
그러나 시엔에게 계획이란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여 짜는 것이었다.
뭐. 그래도 어쨌거나 살아 있으니 되었다.
푸른 장미가 원하는 것이니 던져주고 쫒아내면 되는 일이 아니던가.
돌려받고 싶으면 대표자가 찾아오라 도시에 방문을 붙이면 될 일이고.
“이런. 완전히 망가져 버렸군요.”
“아무래도 생각보다 그리 강인한 녀석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시엔의 못마땅한 표정에 누렁이가 대답했다.
“주인님, 이 아이가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늙은이가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뭔가 방법이라도 있을까?”
“당신께 비롯한 능력이 있으니 시도하여 보겠습니다.”
시엔이 고개를 끄덕이자, 누렁이가 에블리에게 다가갔다. 반응이 없는 암살자를 일으켜 품 안에 꼭 안으니, 온전치 못한 손녀를 돌보는 늙은이 같은 품새였다.
누렁이의 몸에서 검은 신성이 뿜어졌다.
“괜찮아. 괜찮단다. 괜찮을 게야.”
“……”
일단 중얼거리던 소리는 멈췄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에블리의 눈에 초점이 잡혔다.
“아. 여긴.”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나. 그럼 되었다.”
“잠깐, 잠깐만요! 잠깐만……!”
누렁이가 꿈틀거리는 암살자를 뿌리치며 일어났다. 이내 에블리가 주변을 둘러보다 시엔과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꺼내주세요, 제발, 무엇이든 다 들을 테니까, 말 잘 들을게요. 꺼내만 주시면 시키는 대로 전부 다 할게요. 제발.”
“이제 말이 좀 통하겠네. 이거 좀 들어. 포박은 풀어도 되겠네. 응접실로 데리고 가서. 음.”
시엔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좀 씻겨.”
* * *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은 자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미 하나와 교환을 위한 인질 확보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확보는커녕, 두 개 조가 박살이 나서 생존자가 한 명뿐이라고.
이대로면 무패의 암살자가 첫 패배를 맞이할 판이었다. 즉, 푸른 장미의 악명이 깨어질 위기였다.
수뇌부에서는 총력전으로 나서겠다는 전언을 끝으로 더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총력전. 결국 에블리를 포기하고 암살 계획을 계속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에블리와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히 속이 까맣게 불탔다. 가만히 있어도 재가 피어올라 전신을 떠도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아빠?]
“에블리, 에블리니? 세상에, 다친 데는 없고? 괜찮니? 아픈 데는 없고? 세상에, 천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암살자의 아비가 천신을 찾을 자격이 있나? 그간 죽어간 이들이 모두 누군가의 아들딸이자 누군가의 아비어미인데 말야.]
이어진 차가운 목소리에 자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 누구냐!”
[나? 나는 시엔 티란디스라고 하는데. 너희의 암살 대상이기도 하고.]
“에블리는, 내 딸은 어떻지? 무사한가? 만약 털끝이라도 건드렸다면 내 절대로.”
[뭐. 밧줄에 쓸린 부분이 많이 까지긴 했는데, 신성으로 치료했으니 이젠 멀쩡하긴 해.]
자운이 한숨 돌렸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다시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절대로 뭐? 네가 뭘 할 수 있지? 궁금해서라도 건드려 보고 싶어지는데. 네 처지를 알아야지. 건방진 소리 하다간. 알지?]
“안 돼! 내 실수, 내 실수입니다. 말이 잘못 나왔으니 제발.”
[흠. 이제 좀 대화가 될 것 같네. 그런데, 내 사람을 건드렸던데? 물론 좀 잘못 건드려서 된통 깨지고 만 모양이긴 해도.]
“그건.”
자울의 말문이 탁 막혔다.
그래도 억지로 끌어올린 말이 가까스로 소리가 되어 나왔다.
“죄송합니다.”
[좋아. 사과를 받아들이지. 내 사람이 상하진 않았으니 괘씸하지만 이쯤에서 봉합하자고.]
“그러면 에블리는 풀어주시는 겁니까?”
[그건 또 별개지. 내 사람을 노린 건 결과적으로 무사하니 용서한다 쳐도, 날 노린 것까지 용서할 수 없지.]
“자비, 자비를.”
자울이 구걸했다.
자존심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푸른 장미 내에서도 괴물 취급 받는 에블리였지만, 자울에게는 소중한 가족이었으니.
[자비라. 그간 죽어간 암살 대상에게 한 번이라도 자비를 베푼 적이 있나?]
“그건.”
[뭐. 뻔한 이야기는 됐어. 내 조건이야. 금화 오만 개의 배상금. 같은 가치의 현물로도 받겠어. 그리고 의뢰 실패와 동시에 이후 다시는 나와 내 사람을 노리지 않겠다 공개적으로 선언할 것. 그럼 너희의 가장 강력한 수단을 돌려주지.]
금화 오만 개. 대장성이나 내외성을 포함한 성채를 세울 만한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푸른 장미가 충분히 지불 할 수 있는 금액이기도 했다.
자울이 급히 대답했다.
“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에블리를.”
[네 대답은 필요 없어. 네게 결정 권한이 없잖아? 제대로 된 푸른 장미의 대답은 내일 정오까지 들려 줘.]
냉소적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니면 밤에 화형식을 지켜보게 될 테니까.]
< 28. 가시가 날카로워도 상처는 깊을 수 없는 법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