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가시가 날카로워도 상처는 깊을 수 없는 법 [4] >
연금술은 한때 번성한 학문이었다.
실제로 연금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금화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금과 열 개로 밝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연금술의 오랜 몰락이 이어졌다.
그래도 연금술은 돈이 된다.
네 종류의 마탑에서 저마다 연금술 학파를 가진 이유였다.
“못 보던 얼굴이네요?”
“아. 이달에 새로 들어왔습니다.”
“도제?”
“그렇습니다.”
“흐음.”
트리예가 도제를 위아래로 훑었다.
연금술에 매진하는 마법사란 대개 그 마법적 성취가 떨어지는 이들이었다.
연금술사의 도제로 새로 들어왔다면, 대개는 가진 재능이 미천하다는 뜻이었다. 멀리 가진 못할 터이니 차라리 돈벌이나 하는 게 어떻겠냐 하는 식으로.
트리예가 한마디 툭 던졌다.
“뭐. 돈이라도 벌면 좋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서 입밖으로 내진 않는 법이 아닌가. 노골적인 무시였다. 도제의 얼굴이 슬며시 붉은 빛을 띠었다.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이를 이해할 수 없는 법이었다. 제겐 쉽게 할 수 있는 연산이나 수식 발상이니, 타인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자 세올이 면박을 주었다.
“또, 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흥. 뭐예요, 또?”
“흥? 흐응? 흐으응?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늘같은 선배님 앞에서. 어머머, 감히 지금 코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냈다 이거지?”
“그럼 하늘 아래서 콧방귀도 못 뀌나?”
“야! 너! 감히.”
세올이 씩씩거렸다.
트리예가 잠시 그 꼴을 바라보다, 이내 배실배실 미소 지으며 슬그머니 세올의 팔을 붙들고 팔짱을 꼈다.
“그냥 코가 좀 답답해서 그랬어요. 선배. 돌아가는 길에 뭐라도 좀 먹을까요?”
“너 또 대충 넘어가려고.”
“타미아에 신상품이 나왔다던데. 뭐였지? 크푸……?”
“크플란드거든?”
“그래요. 그거.”
세올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다시 분기가 서렸다.
하극상도 하루이틀이지, 트리예가 꼭 속을 긁어놓곤 대충 이런 식으로 무마하려 들었다.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번엔 어림없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야. 너랑 내가 지금 겸상을 할 차이야? 새파란 게 어디서 감히.”
“아이, 선배애.”
“너, 네 형편 좋을 때만 이렇게 앵기고.”
“제가 선배 아니면 누구랑 먹겠어요? 네?”
트리예가 매달리며 콧소리를 냈다.
“흠, 흠.”
세올의 노기가 가라앉았다.
진짜 다루기 쉽다니까. 트리예가 속으로 생각했다.
방자한 후배의 속도 모르고, 세올이 결국 표정을 풀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의 교육은 둘째치고, 그 과실은 선배인 자신이 대신 값을 치러야 하리라.
세올이 도제를 향해 상냥하게 말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마. 원래 천재란 것들이 좀 재수가 없으니까.”
세올도 가진 자질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걸 리치의 오랜 시간, 그리고 집요함으로 메꿔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
“재능이 없다고 이런 연금술 따위 잡술에 힘쓰지 말고, 한 이백 년 안 먹고 안 자고 본학에 매진하다 보면 언젠가 뛰어넘게 마련이니까.”
세올 역시 입버릇으로 ‘감히’를 달고 사는 인물. 원래 제 실력에 미치지 못하면 낮잡아보아 아랫것으로 여기는 성격이 아니던가.
안하무인은 선배나 후배나 같은 꼴이었다.
사실상 대선배이자 대스승, 살아 있는 전설로 존경하는 상대인 시엔 앞에서나 설설 기며 저자세일 뿐. 상전으로 시엔을 두었으니 다른 이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확인 사살을 당한 도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쯧쯧. 싸가지 둘이 왔구먼.”
이 소란에, 연금술사의 집 마스터가 혀를 차며 나타났다.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하지만 스승님.”
“마법의 지평은 사방으로 펼쳐진 원과 같은 것이야. 연금술의 방향이 저들과 다르니 저 싸가지 둘에 견주어 마법이 미치지 못한다 서러울 것은 없다.”
트리예가 한마디 더 했다.
“마법만 못 미치나요? 연금술도 안 되잖아요.”
“거참. 자넨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제일이야. 어째 입만 열면 그리 싸가지가 뚝뚝 떨어지나?”
“흥. 내가 뭐 없는 소리 했나요.”
마스터가 도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저 싸가지 두 명에 대해 미리 경고를 해줄 것 그랬다.
“마스터, 이거 지금 좀 확인해 주세요.”
“흠. 베제밀사일, 카타프린, 에제트에미르펜? 순 흉악한 것들이구먼. 뭐 시체라도 녹일 생각인가?”
“제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세요?”
“쯧쯧. 하여간. 얘가 이것 좀 준비해다오.”
마스터가 도제를 부렸다.
도제가 목록의 시약을 준비하는 사이, 마스터가 약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것 좀 보게. 바살프루펜이야.”
트리예가 약병을 받아들었다.
위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높이 들어 마법 등 아래 비추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압출은요?”
“팔진배. 이번에 새로 기계를 들였는데 어떤가? 화전 압출기인데, 마감이 좋지 않다 소문이 돌아서.”
트리예가 눈을 가늘게 뜨며 시약을 살폈다. 뚜껑을 열어 손짓으로 코에 바람을 보내 냄새까지 맡아보곤, 마침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순도가 안 맞는답니다. 일도보다 더, 이도보단 많이 떨어져요. 기계는 돌려보내거나 교환하시는 게 좋겠어요.”
최고로 숙련된 연금술사라도 시약의 색과 향만으로도 알아맞히기는 어렵다.
뛰어난 오감과 더불어 그만큼의 연금 지능이 필요한 일이니 이 싹수없는 단골이 젊은 나이에 해내는 것은 봐도 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마스터야 이제 눈이 어둡고 코가 막막해 한창때야 하던 것이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이 탓도 있지만, 원래 약품을 다루는 연금술사의 오감이 빠르게 소진되는 탓이 컸다.
“허허. 역시 기계라 어쩔 수 없나.”
“손기술 두고 굳이 기계를 쓰시나요?”
“편하거든.”
“편하면 나태해질 뿐이랍니다. 아시잖아요?”
“자네가 연금술을 전문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먼.”
“필요한 만큼은 이미 알고 있답니다. 마스터나 많이 하도록 하셔요.”
마스터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나저나. 페트라 시열 해독 말일세. 에이불드라를 썼는데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구먼.”
“에이불드라요?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던가요? 차라리 주사위를 굴리는 편이 낫답니다.”
“다른 매제로 적당한 것이 없겠나?”
“자약에 안티 베르시테논제를 37.24대 62.75로 섞어보셔요. 나머지는 바름도마뱀 혈액으로 채우시구요.”
“자약에 안티 베르시테논. 허. 그러면 포막 붕괴가. 아니지. 그래서 바름도마뱀인가. 하지만 그럴 바에야 밤별가재는 어떤가?”
“밤별가재요? 흠. 확실히 페트라 따위에 쓸 거면 그쪽이 나으려나. 어차피 동물 작용제로는 못 쓰겠네요.”
“케일제로 중화하는 건?”
“그래서야 배합을 바꿔야 한답니다. 자약 용량을 7.4퍼센트 늘리면, 그럼 안정제가, 무기 용매를 쓴다 치면 알름하이드 포석. 갈리움. 가만있자. 잘못하면 분활제가 아니라……”
마스터가 감탄했다.
트리예야 인성이 문제지, 연금술에도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생물에 작용하는 용제에 대해서는 이미 마스터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마스터가 툴툴거리면서 받아주는 이유가 이런 것이었다.
어쨌거나 생물학 계열의 연금술사는 귀했고, 이만하면 최고 권위자 수준이었다.
생물학 계열은 돈이 되지 않았다. 마탑에도 규칙이 있어서, 새로 무언가 만들어도 열에 아홉은 금지 약품이 되는 판이었다.
마법사는 결국 실력으로 말하는 법. 연금술에 대가이기도 한 실력자를 존중하는 뜻이었다.
“방금 말한 것들 좀 준비해 주시겠어요?”
“차라리 여기서 배합을 해 보겠나? 구경값으로 재료는 안 받겠다만.”
“그럼 4급 강화구로 준비해 주시겠어요? 꽤 거친 조합이 될 것 같답니다.”
“지하 강화실이면 충분하겠지.”
배합 실험은 길지 않았다.
트리예가 반발성이 있는 시약들을 거침없이 섞어댄 까닭이었다. 다루는 시약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스터가 연신 감탄을 터뜨리고, 세올이 관심 없는 척 유심히 지켜보았다. 마침내 만들어진 분홍빛 액체를 보며, 트리예가 미소를 지었다.
“쓸만한 게 나왔네요.”
“그게 말인가? 배합만 봐서는 모르겠다만.”
“보고도 모르시겠나요? 장미목 해석제로 쓰면 기존보다 일 할 이상 정확도가 오를 거랍니다. 반응 시간도 짧겠지요.”
“……어찌 그게 되나?”
“조합식은 써 드릴 테니 알아서 연구해 보시던가요. 이 재료들 3호 20병 분량으로 바로 준비해 주시겠어요?”
“그럼 잠시 재고 좀 확인하겠네.”
마스터가 자리를 비우자, 트리예가 다시 약병을 집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이리저리 배합을 추가하여 더하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세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뭐야?”
“일단 시엔 님께 보여드리는 게 우선이랍니다. 허락부터 받아야 하니까요.”
허락이라. 시엔의 허락이 필요한 물건이라면 분명 제대로 된 것이 아니리라.
세올이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마스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터가 시약용 가방 두 개를 내밀었다.
“오른쪽이 원래 주문한 물건이고 왼쪽이 새 배합재라네. 아. 그나저나 후작저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대공자님께서 급히 찾으신다더군.”
세올과 트리예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눈빛들이 오가는 사이, 마스터가 말을 이었다.
“어쩐지 재료값을 깎는 일이 없더니만, 둘 다 후작가 소속이었나? 하긴 공방을 차린 것도 아니고, 용병도 아닌 것 같으니 대충 그러할까 생각은 했지.”
* * *
“이봐, 늙은이.”
늙은이를 늙은이라 부르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세상에 예의라는 것이 있으니 함부로 입에 담을 소리는 아니지.
누군지는 몰라도 참 버르장머리 없이.
누렁이가 그렇게 생각했다.
“거기 늙은이. 내 말 안 들려? 이봐.”
젊은이의 으르렁거림이 따라붙었다.
누렁이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예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 알아채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무슨 일인가, 젊은이.”
“참 곱게도 늙으셨구만. 돈깨나 있어 보이는데.”
누렁이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백발을 정갈히 빗어 넘기고, 눈빛에는 정광이 서려 힘이 있었다. 단정히 차려입은 복장은 꼿꼿한 자세와 덕분인지 중후한 멋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흉악한 인상의 사내가 잠시 멈칫했다.
대개 노인이란 겁이 많으니 사내가 건들거리며 건들면 움츠러들곤 했다. 그러나 이 노인은 그저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엔 어떤 위엄 같은 것마저 섞였다.
그러나 임무는 임무였다.
사내가 누렁이의 목을 둘러 어깨동무를 하며 으르렁거렸다.
“잠깐 이야기나 좀 하자고.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한테 베풀어야 하지 않겠어?”
“재산의 유무를 뜻한다면, 이 늙은이 역시 가진 것이 없소이다. 그저 가진 것이라곤 믿음뿐인 늙은이라오.”
“거야 두고 보면 알지. 순순히 따라오라고. 늙은이야 돈이 없을지 몰라도, 몸값을 내줄 사람은 돈이 많지 않겠어?”
“몸값을 내줄 사람이라.”
누렁이의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어깨동무를 한 사내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순순히 따라오라고. 늙은이가 말년에 험한 꼴 보고 싶진 않을 거 아냐? 손주 재롱이라도 보려면 지금이라도 몸 간수 잘해야지.”
누렁이가 순순히 사내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광장을 넘어 대로로, 대로에서 작은 길로 빠지다, 이내 으슥한 골목에 들어가 작은 주택 앞에 이르렀다.
앞뒤와 좌우로 빽빽해 볕이 들지 않는 싸구려 주택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내의 일행들이 누렁이를 반겼다. 저마다 단검 따위를 들어 내미니 참으로 특이한 손님맞이였다.
누렁이가 태연히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몸값을 받는다 해서 물어보는데, 혹시 내가 섬기는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 늙은이. 우리가 돌려받을 것이 있어서 그러니, 잠자코 협조하면 온전히 있다가 돌아가게 될 테니까.”
“알고 있다는 말인데, 후환이 두렵지 않나?”
“우린 그런…… 읍.”
사내의 말이 뚝 끊겼다.
입안에 손가락 네 개가 틀어박혔으니까.
누렁이가 희게 웃으며 말했다.
“감히 위대한 분께 위해를 가하려 하느냐. 너희 따위 그분께서 나설 가치가 없음에도.”
몸값을 받는다 하였으니 저를 노린 것이 아니라 위대한 분을 대적하려는 이들이라. 그분의 적이 나의 적이니 자비는 곧 죄악이다.
누렁이의 손아귀가 사내의 턱을 잡아뜯었다.
쩌적. 사내의 턱뼈가 통째로 뜯겨나갔다.
사람의 턱을 산채로 잡아 뽑다니. 말도 안 되는 악력이거니와, 끔찍한 독심이었다.
“그아아악!”
“젠장, 평범한 늙은이가 아니잖아! 쳐! 죽이지만 마!”
장미 하나와 교환할 인질을 잡을 셈이었는데, 순식간에 동료 하나가 당하고 말았다.
끔찍한 비명 속에서, 푸른 장미의 공작조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저마다 단검을 앞세워 뛰쳐나가니, 위와 아래, 좌우가 동시로 훌륭한 합격을 이루어 짓쳐들었다.
누렁이는 피하지 않았다.
잘 벼려진 단검들이 누렁이의 살속으로 파고들었다. 누렁이가 팔을 뻗었다.
누렁이가 적의 눈구멍을 찔렀다. 물컹한 것이 톡 터져나가며 손가락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안와에 손가락을 걸고, 비명을 지르느라 활짝 열린 아가리에 엄지를 걸어 단단히 붙들었다.
누렁이가 그대로 틀어쥔 머리를 꺾었다.
우득. 적의 뒤통수가 제 등에 닿았다. 그제야 비명이 멎었다.
적들이 깜짝 놀라 거리를 벌렸다.
발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2층에 대기하던 조원들이 소란에 우르르 뛰쳐나왔다.
“내 볼품없는 육신이 죽어 숨이 끊어져도 영혼은 그분께 속하여 섬김을 계속하리라. 그러하니 내게 고작 죽음이 두려우랴.”
누렁이가 어깨에 박힌 단검을 뽑았다. 피가 흐르는 것도 잠시, 이내 환부 위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가 가시고 나자, 찢어지고 피에 젖은 소매 사이로 희멀건 살이 드러났다.
상처는 없었다.
“내 죽음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분께서 상심하신다면 그 또한 막대한 죄라. 그러니 내 육신이 쉬이 상하지 않으리라.”
“젠장, 어떻게든 제압해!”
전투가 이어졌다.
푸른 장미의 공작조는 녹록지 않은 실력자들이다. 그러나 누렁이는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방어도 회피도 없다. 그저 공격하면 몸으로 받고 손을 뻗어 적의 숨통을 끓었다.
아무리 강인한 전사라도 제게 달려드는 칼날을 두려워해 피하거나 막아내는 법이었다.
그러니 적의 공격을 무력화하고 내 공격을 성공시키는 것이 존재하는 모든 무술의 법도였다.
동작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어 어떤 무술의 흔적도 없었다. 그러나 한 번 잡히면 오거 같은 힘으로 뜯고 부수고 으스러뜨렸다.
공작조가 하나하나 계속해서 죽어나갔다.
누렁이의 옷에 바람구멍이 늘었다.
공작대장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젠장, 그물, 그물을 쏴! 여기는 장미 다섯. 지원 요청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지원을 요청한다.”
그때였다.
동료의 죽음에 눈이 뒤집힌 공작조원 하나가 달려들었다.
“으아아! 죽엇!”
“죽이면 안 돼!”
공작대장이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누렁이가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가슴 정중앙에 단검이 단단히 틀어박혔다. 대신 양손으로 적의 머리를 쥐고 힘을 주니, 파삭, 피와 뇌수와 뼛조각이 튈 뿐이었다.
“전부 물러나! 빌어먹을! 죽이면 안 되는데……!”
공작조원들이 일시에 거리를 벌렸다.
누렁이가 공작조를 사방에 둔 채로, 제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았다. 이미 심장에 칼날이 파고든 것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누렁이가 단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잡아 뽑는 손길에 망설임이 없었다.
내 죽어서도 계속 그분을 섬길 것이니.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지성이 남았다. 지성이 있으면 믿음이 존재했다. 그리고 강력한 믿음이 그 신성의 근원이었다.
피가 빠르게 번졌다. 그러나 튀지는 않았다. 칼날이 나오자마자 심장이 붙고 상처가 아문 탓이었다.
“그분께서 아직 내 죽음을 허락하지 않으시는구나.”
누렁이가 미소 지었다.
* * *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질간질한 것이 순간 몸 속 어딘가에서 솟아 전신을 휘감았다. 비할 데 없이 상쾌한 어떤 미증유의 힘이었다.
시엔은 이 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신격.
시엔을 신앙하는 이가 있어 그 숭배의 대상이 얻는 힘이었다.
신격이 자라다니. 누렁이의 믿음이 한층 더 견고해졌다는 뜻이었다.
시엔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니, 대체 왜, 또?”
* * *
“괴, 괴물.”
“심장이 뚫렸는데……”
“어떻게.”
공작대의 시체가 늘었다. 공작대의 사기가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로 늙은 사제가 계속해서 날뛰었다.
공작대장이 애원하듯 소리쳤다.
“장미 여섯, 장미 여섯, 여기는 장미 다섯, 제발 지원 요청한다. 반복한다, 제발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자 송수신기로 응답이 넘어왔다.
[어디로 지원을 가면 될까요?]
“5번 가옥이다, 최대한 빠른 지원을 요청한다. 우리로서는 감당 불가능하다. 특수 제압조 장비를 지참하여 증원하라.”
[5번 가옥의 위치가 어디인가요?]
공작대장이 멈칫했다.
장미 다섯과 여섯은 공작조로 임시 편성된 부호였다. 다섯은 늙은이를, 여섯이 하녀 둘을 확보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런데 장미 여섯에 여성 조원이 있었던가?
애초에 통신 부호는 왜 생략하고?
“너, 누구, 누구냐?”
< 28. 가시가 날카로워도 상처는 깊을 수 없는 법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