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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화 (2/621)

2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1)

광귀는 고개를 갸웃했다.

‘용안? 용린검법의 구결? 초기화?’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해답을 찾기도 전에 다른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흐릿했던 감각이 점점 또렷해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천 근의 진천뢰가 터지며 몸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런데 반대로 온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의문이 쌓여 갈 때 광귀는 갑자기 뒤통수가 띵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분명 현실에서나 느낄 수 있는 오감이었다.

광귀는 재빨리 눈을 떴다.

눈앞에는 푸른색 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구천 지옥이라면 붉게 이글거리는 불바다가 보여야 할 터.

그런데 푸른색이라니?

마치 청강석 연무장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 선명했다. 의문을 떠올리기도 전에 푸른 바닥이 눈앞으로 점점 다가왔다.

빡.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속도는 더 빨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과의 거리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광귀는 다급히 내력을 일으켰다.

‘헉!’

내공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떨어지는 곳이 지옥이든 천상이든 이대로 처박힐 수는 없었다.

이제 바닥은 한 치 앞.

광귀는 재빨리 몸을 틀었다.

팡!

떨어진 반동에 의해 몸이 살짝 튕기더니 그대로 날아갔다.

‘뭐지?’

동시에 몸이 어딘가로 처박혔다.

첨벙.

온몸에 느껴지는 시원한 감각.

이건 분명 물이었다.

광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이는 것은 무릎까지 오는 얕은 연못이었다.

고개를 숙여 보니 낯익은 얼굴이 연못 위에 비쳤다.

“이 얼굴은 대체?”

광귀는 한동안 멍하니 물에 비친 얼굴을 관찰했다.

하얀 피부에 시체처럼 푸르스름한 입술.

바싹 마른 데다가 눈은 퀭하다.

누가 보면 귀신이라 해도 믿을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분명 낯이 익었다.

광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비춰 봤다.

“이건 또 뭐냐?”

몸 어디에도 상처가 없었다.

다만 뒤통수가 얼얼할 뿐이었다.

광귀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돌아왔다!”

분명 이십 년 전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하북팽가.

꼭두각시처럼 맹주의 손에서 놀아나던 사냥개 광귀는 이제 없었다.

이십 년 전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였던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 이 상황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마 이십 년 전 하북팽가를 가출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이때는 비무를 빌미로 합법적인 구타를 당해 연무장 옆 연못까지 굴러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자신이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피에 대한 두려움!

피만 보면 기절했기에 하북의 최약체라는 별명이 어디를 가나 따라다녔다.

물론 가출 후 몇 년이 지나고 한빈은 그 공포를 극복했다.

한빈이 희열에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뒤쪽에서 누군가 한빈의 어깨를 잡았다.

차가운 물과 상반되는 따뜻한 느낌.

한빈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 하나가 애처로운 눈으로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던 한빈의 눈이 커졌다.

분명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 온 하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철노.

허풍이 심하긴 하지만, 하인을 넘어서 그는 한빈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

한빈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철노?”

“네, 접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그가 한빈의 얼굴에 묻은 물을 소매로 닦아 냈다.

한빈이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다. 철노.”

“그런데 왜 말투가······.”

철노가 말끝을 흐렸다.

한빈이 기억을 떠올리며 말투를 바꿨다.

“괜찮아. 철노.”

“네, 공자님.”

한빈의 말투가 돌아오자 철노는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순간 한빈이 배를 잡았다.

철노가 물었다.

“배가 아프십니까? 공자님.”

“아니, 배가 고파서.”

한빈이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리만큼 허기가 밀려 들어왔다.

곧 쓰러질 것만 같은 극한의 허기였다.

그때였다.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한빈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걸어오는 짙은 눈썹의 다부진 체격의 사내.

한빈은 기억 속에서 그를 떠올렸다.

그가 바로 배다른 형제 삼 공자 팽무빈이었다.

한빈의 멍한 표정을 본 팽무빈이 외쳤다.

“비무 도중 대체 뭔 짓을 하느냐? 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비무가 끝나지 않았단 말이군요.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과거로 돌아와서 쥐어 터지고 있다니······.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터뜨리려던 한빈은 주먹에 힘을 주어 봤다.

한 점 내공도 느껴지지 않는 몸.

쥐어 터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한빈이 슬쩍 뒤를 보며 말했다.

“철노는 뒤로 물러나 있어.”

한빈이 한 발 앞으로 걸어가며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도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철노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는 어딘가 도움을 청하러 가는 듯 사라졌다.

한빈은 그 또한 잘됐다 싶어 미소를 지었다.

한빈이 웃는 모습을 본 삼 공자 팽무빈이 비릿하게 웃었다.

“하하. 네가 지금 미친 척하는 것이냐? 그러면 덜 맞을 줄 알고?”

팽무빈이 천천히 다가와 한빈 앞에 섰다.

한 뼘 정도 큰 그가 한빈을 쏘아보다니 틈도 안 주고 손을 올려 쳤다.

탁.

팽무빈이 올려 친 귀싸대기를 한빈이 왼팔로 막았다.

“이게 감히!”

팽무빈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봤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한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비겁함에 야비함을 살짝 얹은 팽무빈의 수법은 놀랍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무심한 표정으로 팽무빈을 바라보던 한빈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놀란 것은 겁에 질려서가 아니었다.

한빈은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팽무빈의 턱에 일렁이는 황색 점이 너무 선명했다.

‘저게 뭘까?’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글귀가 나타났다.

[용안(龍眼)이 활성화됩니다.]

한빈이 고개를 갸웃할 때 허공에서 웬 비급의 표지가 나타났다.

[용린검법(龍鱗劍法)]

전생의 마지막에 봤던 그 비급이 틀림없었다.

허공에 떠 있는 비급의 제목 밑에 문구가 떴다.

[지금부터 강호에 흩어진 용린검법의 구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본편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리십시오.]

용린검법의 책장이 저절로 넘어갔다.

[기본편(基本篇)]

[기본편을 다 익히면 응용편으로 넘어갑니다.]

이상한 것은 설명 아래 나머지 부분은 텅 비어 있다는 점이었다.

한빈이 아무 말 없이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자 팽무빈이 자지러지도록 웃었다.

“하하. 딴청 부리지 말아라.”

한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용린검법의 구결과 삼 공자 팽무빈의 안면에 일렁이는 황색 점의 정체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궁금하면 직접 확인하면 될 터였다.

한빈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침 사이에 피가 한 움큼 섞여 나왔다.

한빈의 모습에 팽무빈이 천천히 걸어왔다.

“이 새끼가 돌았나?”

팽무빈의 외침에 한빈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한빈이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싸움을 눈빛으로 하냐? 드루와!”

형에 대한 예의는 발로 걷어찼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격장지계(激將之計)였다.

한빈의 예상대로 팽무빈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화풀이 대상밖에 안 되는 넷째 팽한빈이 갑자기 덤비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쌓인 화를 한빈에게 풀고 끝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하북 최고의 겁쟁이라 불리는 한빈이 도발해 오자 이성의 끈이 풀렸다.

팽무빈이 얼굴이 벌게져 외쳤다.

“너 오늘 뭘 잘못 먹었냐?”

그 말을 듣던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난 싸움을 입으로 하는 새끼가 제일 싫더라.”

한빈의 말에 팽무빈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졌다.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얕잡아 보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흥분한 팽무빈이 뛰어들었다.

한빈은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틀며 팔을 올렸다.

동시에 팽무빈의 주먹이 날아왔다.

퍽! 퍽!

팽무빈의 주먹이 한빈의 팔 위에 적중했다.

한빈은 겨우 중심을 잡으며 팔을 견고히 올렸다.

그사이에도 팽무빈의 주먹은 무지막지하게 날아왔다.

퍽! 퍽!

마치 전설 속의 여래신장이 현신한 듯 주먹이 여러 개로 보였다.

하지만, 한빈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직 눈이 적응하지 못했을 뿐 그의 주먹이 위력적이지는 않았다.

즉 속도에 눈이 적응할 시간만 기다리면 되었다.

퍽! 퍽!

두들겨 맞다 보니 어느새 감각에 익숙해졌다.

역시 몸에 적응하는 데는 실전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 개의 칼날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한빈이었다.

내공이 실리지 않은 이깟 주먹이 무서울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팔이 저릿해져 왔다.

들어 보니 상대의 호흡이 살짝 거칠어졌다.

언제까지 맞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이제는 승부를 걸어야 할 때.

한빈은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적절한 시기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동시에 한빈은 고개를 힘차게 들었다.

빡!

경쾌한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머리로 팽무빈의 턱을 들이박은 것이다.

어찌 보면 변초라 할 수 있었고 비겁하다 욕먹을 수도 있었다.

물론 문제는 없었다.

팽가의 비무에서는 이기면 장땡이니까!

공자 간의 비무에 박치기라?

강호 경험이 없는 팽무빈은 감당하기 어려운 비겁한 수였다.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팽무빈이 충격에서 회복했는지 주춤거리며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한빈 쪽으로 걸어오며 주먹을 쥐었다.

한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미리 승리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승부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한빈의 웃음을 본 팽무빈이 외쳤다.

“이런 비겁한 새끼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빈이 재빨리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마치 화살처럼 몸을 튕겨 팽무빈에게 달려들었다.

한빈은 상대의 복부를 과녁처럼 생각하며 주먹이 아닌 팔꿈치를 세워 팽무빈의 복부에 꽂았다.

팍!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렸다.

찰진 타격음은 한빈의 기억 중 일부를 깨웠다.

그것은 전생의 기억을 통해서 떠올린 비무의 의미였다.

팽가 내에서의 위치는 나이가 아닌 힘으로 정해진다.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도 규율만 지킨다면 가주, 즉 아버지는 침묵한다.

밟을 때 철저히 밟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는 없었다.

생생한 타격감에 한빈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털썩.

팽무빈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지자 한빈은 그 위로 올라탔다.

이번에는 반대로 팽무빈이 팔로 얼굴을 감싸려 했다.

하지만, 한빈의 주먹이 먼저였다.

퍽! 퍽!

팽무빈의 팔이 스르르 내려왔다.

기절한 것이다.

그래도 한빈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기절했지만, 이렇게 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부터 깜빡이는 점과 용린검법의 관계를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때리다가 보니 점 하나가 빨려 들어왔다.

빨려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글자의 획 같았다.

‘진짜였어!’

놀람도 잠시, 한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헛것을 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글자를 흡수하며 온몸에 전해져 오는 느낌이 묘했다.

마치 모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주체하지 못했던 허기까지 채워졌다.

정체불명의 허기는 흩어진 용린검법의 구결을 찾으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그때 문구가 떴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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