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1화 (1/621)

1화. 서장

십 년에 걸친 정마 대전이 마침내 정파의 승리로 끝났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의맹의 비밀 조직인 귀검대의 암중 활약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한데 정의맹은 무슨 이유에선지 마교와 내통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워 귀검대를 사냥했다.

토사구팽이 시작된 것이다.

귀검대의 고수들은 거처에서, 객점에서, 길에서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하지만 모든 사냥개가 가만히 앉아서 주인의 칼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산속 작은 토굴 안에 호롱불 하나가 위태롭게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한 사내가 호롱불 앞에서 홀로 술잔을 홀짝였다. 그가 토굴 밖 어둠 속을 향해 말했다.

“그만 살피고 들어오지?”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토굴로 들어섰다. 면사를 쓰고 검을 허리에 찬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는 마치 제집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와서는 나무를 깎아 만든 엉성한 의자를 빼서 앉았다.

“용케도 찾아왔네.”

“은밀하면서도 양지바른 곳을 잘도 찾으셨네요.”

맑은 목소리의 그녀는 정의맹의 집법당주이자 맹주의 딸인 옥화미검(玉花美劍) 위지약이었다.

“고생 좀 했지. 죽을 자릴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도 있잖아.”

“누울 자리겠죠.”

“그런가? 사흘 전 당신 수하들한테 등짝에 한칼을 맞고부터는 정신이 왔다 갔다 해.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가.”

“광귀(狂鬼) 선배, 아니 대주라고 불러 드릴까요?”

“귀검대가 사라졌으니 이젠 대주도 아니지. 편할 대로 불러. 그건 그렇고 내가 마지막 사냥개인가?”

“아마도요.”

“술 한잔할 시간 정도는 주겠지?”

“따라 드려요?”

“됐어.”

“따라 드릴게요.”

그녀는 술병을, 광귀는 술잔을 들었다. 잠시 맑은 술이 찼다.

그 술을 보며 입맛을 다신 광귀는 단숨에 들이켰다. 독한 화주로 말미암아 목구멍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남자라면 술은 역시 화주야. 다음 날 숙취 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하기야 이제는 숙취 걱정을 할 필요도 없는 건가? 하하.”

“한 잔 더 하실래요?”

“됐어. 집법당주도 바쁠 텐데. 그만 가자고.”

광귀는 자신의 가슴을 탁탁 쳤다. 언제든 칼을 받겠다는 말이었다. 그 바람에 벌어진 상처 사이로 피고름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위지약이 웃으며 말했다.

“갈 때는 가더라도 보물은 내놓고 가셔야지요.”

“무슨 보물?”

“모른 척 마세요. 나 옥화미검이에요.”

“혹시 진천뢰를 말하는 건가?”

진천뢰는 황실에서 정한 사용 금지 품목이었다. 정의맹은 정마 대전 마지막에 진천뢰를 사용했다. 진천뢰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와 관련된 가문, 아니 정파 전체가 반역도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것은 정의맹이 확실한 약점이었다.

“선배를 고문하면서 죽이고 싶진 않아요.”

“살벌하기는!”

말과 함께 광귀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위지약이 긴장한 듯 눈매를 좁히며 허리에 찬 검을 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광귀는 품속에서 꺼낸 물건을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올려놓았다.

손톱 크기의 붉은색 조각이 호롱불 밑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위지약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용린(龍鱗)!”

“찾는 물건이 맞나 보군.”

용린은 무림칠대기보(武林七大奇寶) 중 하나였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전설의 무공인 용린검법의 비밀을 품고 있다고 했다.

강호인이 진짜 용의 비늘로 믿고 있는 건 아니지만, 비급과 보물이라면 눈이 뒤집히는 것이 무인이 아니던가. 광귀가 용린을 얻은 것은 정마 대전 마지막이었다.

그것은 우연. 사실 광귀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용린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오늘의 계획을 위해 광귀는 넌지시 소문을 흘렸다.

아니나 다를까 정의맹의 주력 부대는 덥석 광귀의 미끼를 물었다. 홀린 듯 점점 상체를 기울이며 다가오는 위지약을 향해 광귀가 손바닥을 보이며 막았다.

“그만 와! 집법당주.”

“죽을 때 갖고 가시려고요?”

“혹시, 이걸 주면 날 살려 줄 건가?”

“용린이 진품이라면 평생 먹고살 돈까지 얹어 드리죠.”

말을 마친 위지약은 곱게 적은 쪽지 하나를 펴 보여 줬다. 그것을 확인한 광귀는 속으로 실소를 지었다. 쪽지는 만금 전장에서 발행한 은전 십만 냥짜리 전표였다.

전표는 진짜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돈을 줄 리는 없었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자신을 반드시 죽여 없애겠다는 뜻이었다.

“이거 가짜 아냐?”

“속고만 살았어요?”

“적어도 정의맹과 너는 나를 여러 번 속였지.”

“그럼 뭘 어떻게 해 드려요?”

“일단 호롱불을 하나 더 켜야겠어.”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호롱불을 하나 더 켰다. 순간 토굴 속이 더욱 밝아졌다. 광귀는 불을 붙인 나뭇가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위지약의 뒤쪽으로 휙 던져 버렸다.

“나는 전표를 확인할 테니까, 당주는 용린을 확인하라고. 더는 가까이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그녀가 바로 용린에 집중하는 동안 광귀는 곁눈질로 위지약의 뒤쪽 바닥에서 미세한 불꽃을 확인했다.

광귀가 표정을 지우고 말했다.

“동시에 던지지. 하나, 둘, 셋!”

휙.

휙.

내공이 실린 용린과 전표가 서로의 앞에 떨어졌다.

광귀가 말했다.

“전표는 진짜군.”

“거칠거칠한 용린의 표면과 이 색감······. 용린도 진짜군요.”

“그럼 거래가 성립된 건가?”

“물론이죠.”

스릉!

위지약이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광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속인 거야?”

“전술이죠. 우리의 싸움이 항상 그래 왔듯.”

“전술 좋은 말이군. 그런데 당주가 하나 간과한 게 있어. 내 별명이 광귀라는 거. 이제야 말이지만 난 이 별호가 참 마음에 들어.”

“당신이 미친 인간이라는 건 모두가 알지요.”

“그걸 알면서도 혼자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고?”

“혼자서도 문젠 없지만, 밖에 이미 백 명의 무사가 이곳을 포위하고 있어요. 지금 시점에서 호랑이는 선배가 아니라 저인 것 같군요.”

“확실히 멍청하단 말이야. 말귀를 못 알아들어. 큭큭.”

“무슨 뜻이죠?”

“묘하지 않아? 아무리 부상당했다지만, 은신술이라면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내가 왜 집법당의 무사들 따위에게 은신처를 들키게 됐는지?”

“……!”

당황한 위지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위지약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광귀가 달려들어 용린을 낚아챘다.

다시 뒤로 물러선 광귀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건 저승 가는 길 노잣돈으로 삼을게.”

말을 마친 광귀는 한 손으로는 전표를 챙기고 한 손으로는 용린을 잡았다. 위지약도 재빨리 검을 다시 잡아 갔다.

광귀는 주저 없이 용린을 집어삼켰다. 위지약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림칠대기보 중 하나를 삼키리라고는 예상 못 한 듯했다.

말과 함께 광귀는 마치 껴안을 것처럼 위지약을 덮쳐 갔다. 광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께름칙한 마음이 든 위지약이 자신도 모르게 서너 걸음을 후다닥 물러났다.

“어딜 도망가. 이리 와.”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랑 길동무나 하자니까.”

“이런 미친 새끼가! 모두 들어와!”

위지약의 외침에 토굴 밖에 있던 무사들이 불 만난 메뚜기 떼처럼 뛰어들었다. 그 순간, 천지가 뒤집힐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꾸아아앙!

토굴 전체가 태양보다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막강한 폭압을 견디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형체가 한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게 광귀가 본 이승에서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단언하건대 자신과 위지약을 비롯해 토굴 안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맹주가 직접 왔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광귀는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위지약은 맹주가 가장 아끼는 딸이었으니까.

생의 마지막 순간 떠오른 것은 어딘가에서 쓸쓸히 죽어 갔을 자신의 수하들이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제 구천 지옥이나 구경해 볼까? 광귀는 마음속으로 호기롭게 외치며 눈을 감았다.

그때 이상한 서책이 앞에 나타났다.

눈을 감았는데도 글귀가 보였다. 서책이 빙글빙글 돌며 책 안에 담겨 있던 글귀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마지막에는 책의 표지만이 남았다.

[용린검법(龍鱗劍法)]

모든 무림인이 탐낸다는 용린검법이었다. 아무래도 피를 바쳐야 용린의 비밀을 풀 수 있다는 전설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 피가 타인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었다. 알았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을 바쳐 비밀을 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용린검법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구천 지옥을 눈앞에 둔 광귀는 속으로 웃었다. 또 그때였다. 시야에 이상한 문구가 나타났다.

[용린검법의 지식 중 일부를 얻었습니다.]

[용안(龍眼)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용린검법의 구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신체 변화에 따라 무공이 초기화됩니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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