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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왕을적시다 (81)화 (82/93)

제 81 화 인어 포획 포상금

가족들을 배웅하고 홀로 별당으로 돌아온 도아는 적적함을 견디지 못하고, 촛불을 끈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이번 생에서는 가질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모두 비껴 나가고, 놓아주어야 했다. 

그러다 곁에 두었던 동심결 노리개가 눈에 들어왔다. 도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것을 집어 술을 쓰다듬었다.

“네가 있구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쉬이 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도아에게는 선명하게 들렸다. 이 소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도아는 노리개를 내려놓고, 소리 없이 바로 곁에 두었던 활과 화살이 들어 있는 통을 집어 들었다.

곧장 화살통에 들어 있던 화살을 빼 들고 활에 끼웠다. 문 앞에 가까이 서자 꽤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스산한 밤바람이 들이닥치자 그 소리를 무기 삼아 도아가 밖으로 나갔다. 숨죽이고 접근하던 사냥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움찔거렸다.

그들의 손에는 그물망이며 칼, 활, 창 등 사냥에 쓰이는 무기들이 각각 들려 있었다. 도아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나를 죽이러 왔느냐.”

매서운 눈빛으로 다섯 명의 사냥꾼을 모두 훑었다.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도아를 살피던 활을 든 사냥꾼이 잽싸게 손을 내둘렀다.

그보다 한 수 민첩했던 도아의 화살은 이미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정확하게 그자의 심장을 맞히며 장정을 쓰러뜨렸다. 

“윽……!”

“나를 죽이러 왔다면 내 손에 죽을 각오도 했겠지.”

사저 앞을 지키던 군사들은 누군가의 노림에 의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니 별당에 잠입한 사냥꾼을 상대할 사람도 도아뿐이었다. 

“솜씨가 제법이군.”

“내 손에 스치기라도 하면 네놈들 이름조차 기억 못 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숨통을 끊어 놓으면 되겠지.”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다.”

물론 기억을 지우겠다는 협박은 흔하게 사냥꾼들이 인어를 두려워했던 허상을 들먹인 것이었다. 

마루에 올라서서 저들을 살피고 있던 도아는 저들의 무기를 보다가 바다에서 봤던 황금 인어의 처참했던 몰골이 떠올랐다.

성한 곳 없이 찢기고, 찔려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던 모습.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미래를 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 후 별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달려드는 사냥꾼들을 피해 제법 날렵하게 몸을 숨기며 화살을 겨누던 도아에게 커다란 그물망이 날아들었다.

그물망을 뒤집어쓴 도아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바닥 위로 처참히 쓰러진 세 명의 사냥꾼이 보였다.

“잡았다!”

그물망을 던지고, 창을 든 사냥꾼 두 명이 잽싸게 달려왔다. 그들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타오르는 열망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얼굴이 제법 반반하여 이대로 죽이기에는 아깝군.”

“왜, 첩이라도 삼을 텐가?”

“화살 쏘는 것 못 봤는가? 자다가 죽고 싶진 않으니 그것 됐네.”

“포상금은 나눠 주겠다고 약조했으니 잊지 말게.”

“알겠으니 누가 오기 전에 어서 움직이세.”

포상금이라는 말에 도아는 누군가 자신을 잡아 죽이는 것에 돈을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어찌할 것이냐.”

“꼬리를 잘라서 인어 기름을 짜야겠지.”

“…….”

“아! 먼저 꼬리 비늘을 싹 벗겨야겠지.”

“천벌이 두렵지도 않으냐?”

“천벌? 난 그딴 것보다 가난이 더 두려워. 아주 치가 떨리게 싫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사냥꾼이 창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도아가 잔뜩 겁을 주었으니 산 채로 이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물망에 엉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맹렬한 기세로 창이 날아들었다. 그때, 날카로운 굉음이 들리며 창이 튕겨 나갔다. 

고개를 돌리자 담을 넘어서 날아든 시현이 검을 든 채 도아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폐서인이라 하나 전하를 모셨던 분이다. 어느 놈이 감히 위협을 가하느냐!”

“죽여 달라 애원하시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나리.”

“국법이 지엄하다. 목숨을 구하고 싶거든 썩 물러가라!”

“다 잡은 것을 놓아주라고? 어림없지!”

사냥꾼들과 시현의 피를 튀기는 혈전이 이어졌다. 도아는 그 틈에 그물망을 벗고, 바닥에 떨어뜨린 화살을 집어 들었다.

심장을 옭아매는 고통이 온몸에 번졌다. 엄습한 고통은 이대로 소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저놈들을 모두 추포해라!”

이미 사냥꾼에게 팔을 베여 피를 흘리고 있던 시현이 고비를 맞고 있을 때 도화군이 군사들을 이끌고 별당을 덮쳤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시체를 끌어가고 생포한 사냥꾼들이 줄에 묶여 끌려 나갔다. 

“괜찮으십니까?”

“예,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별말씀을요. 때를 맞춰서 왔기에 망정이지 큰일을 당하실 뻔했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겨우 고통에서 벗어난 도아가 힘겹게 말하며 식은땀을 닦았다. 도화군의 시선이 피를 흘리고 있던 시현에게 향했다.

“송구하옵니다. 이 댁 장자와 친우인데 오늘 떠난다 하여 배웅을 하러 왔다가 한발 늦었습니다. 사저에 변고가 일어난 듯하여 실례임을 알면서도 친우의 누이를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송구합니다, 도화군마마.”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더 큰 화가 났을 것이니 책망하진 않겠소. 밤이 깊었으니 말이 새어 나가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군.”

“예, 그리하겠습니다.”

행여나 도아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한 시현이 궁색한 변명을 마치고 돌아섰다. 그의 팔에서 떨어진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살펴 가세요.”

도아는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품에 손수건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그저 짧은 한마디, 그것으로 끝이었다. 시현은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옆으로 돌린 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갔다.

‘당신과 내게는 작은 호의도 사치일 뿐입니다.’

시현이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어떤 것도 건네고 싶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멀어져 가는 그를 채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 * *

날이 밝자 즉위식 날이 정해졌다. 강은 어느 때보다 기뻐하며 다시 한번 준비에 만반을 기하라 명했다. 

“뭐라고?”

그런데 도화군의 명으로 입궐한 이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도아의 별당으로 사냥꾼들이 급습했다는 소식에 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윽고 반듯하게 상소가 올려져 있던 서안이 날아갔다. 우당탕탕! 상소와 서안이 종잇장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폐서인의 사저를 지키던 군사는 어디에 자빠져 있었느냐.”

“저녁 당직을 서는 이와 주막에서 저녁을 먹는답시고 술에 취해 뻗어 있었사옵니다.”

“…….”

“그들을 어찌하올까요?”

“곤장 서른 대를 쳐서 옥에 가둬라.”

당장 목을 치라 명하고 싶은 것을 즉위식을 앞두고 피를 보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만둔 것이었다. 

“하옵고 그들의 입에서 현상금 얘기가 나왔다고 하옵니다.”

“현상금?”

“예, 인어를 잡은 이에게 현상금 오백 냥을 내린다는 말이 나온 것 같사옵니다.”

뒤집어 생각하지 않아도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즉위식이 끝난 후 처형에 처하라.”

“예, 전하.”

“상선 있으면 들라!”

강은 명을 전하고 버럭 호통을 치며 밖에 있던 상선을 불러들였다.

“즉위식은 이틀 후에 치른다.”

“예?”

“그리고 비암사에 전령을 보낼 것이니 들라 해라.”

“예, 전하.”

* * *

한편 조잡한 계획을 세웠던 대비 조 씨는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받고 좌절을 했다. 

“그놈이 사사건건 내 앞길을 막는구나.”

더는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다. 대제학과 도총관이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이젠 힘이 될 수가 없었다. 

“열어라.”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대비는 강이 왔음을 알았다. 그런데 무엇도 고하지 않고 다짜고짜 문을 열라 명했다.

열린 문 틈새로 싸늘하게 식은 채 서릿발 같은 기운을 뿜으며 강이 들어왔다. 그는 잠시 동안 자리에 서서 대비를 내려다봤다. 

“앉지 않고 어찌 서 계십니까?”

“즉위식은 이틀 후입니다. 그리고 대비마마는 즉위식 전인 내일 비암사로 떠나실 겁니다.”

“즉위식도 보지 않고 쫓겨나듯 나가라 이 말입니까?”

“애초에 이럴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즉위식을 치르고, 도화군이 정식으로 임금이 되어 대비마마를 배웅하는 절차까지 그려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생각을 바꾼 겁니까?”

“그마저도 사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강은 어금니를 빠득 힘주어 물었다. 단단한 이가 부서질 만큼 온 힘을 다해 화를 억누르며 자신을 절제시키고 있었다. 

“간밤에 폐서인의 사저로 사냥꾼들이 들이닥쳐 습격을 당했습니다.”

“저런.”

“그들은 인어에게 걸린 포상금을 받기 위해 그랬다더군요.”

“…….”

“그놈들의 주리를 틀고, 생살을 지져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리를 잡으라 하면 그땐 인정을 하시겠습니까?”

강은 더는 대비를 어마마마라 칭하지 않았다. 모두가 부르듯 대비마마라 칭하며 천륜을 저버렸음을 보여 주었다. 

“상선을 보내 전하려 했으나 대비마마를 보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직접 온 것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대비마마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그게…… 무슨…….”

비장한 얼굴은 오늘이 마지막임을 보여 주었다. 대비 조 씨는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려 꽉 움켜쥐었다. 

“내일 비암사로 떠나실 때도 왕실 누구도 대비마마를 배웅하지 않을 겁니다.”

“…….”

“부디 그곳에서는 모두 내려놓고 편해지시길 빌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련 없이 떠나려는데 대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다.

“온 백성이 주상을 불효자라 손가락질하고 욕할 겁니다! 계집에게 눈이 멀어 낳아 준 어미를 버렸으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

“주상을 낳을 때 모진 산통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때 얻은 병으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어도 어미는 주상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얻은 자식에게, 이젠 내가 버림을 받아야 합니까?”

대비 조 씨가 강을 낳을 때 모진 산통으로 자궁이 망가져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일을 두고, 대비의 모든 행동을 용서하기에는 선을 넘어선 것이다.

대비의 말이 멈추자 강이 뒤를 돌았다.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낳기만 했습니다.”

“…….”

“내가 평생 그리워한 어머니의 온정을, 그 사람이 주었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고 품어 줬습니다.”

“주상…….”

그가 흘린 눈물이 처음으로 대비의 마음에 닿았다. 허나 이미 자식은 마음을 닫고, 돌아섰으니 깨달음도 늦은 뒤였다.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대비를 쳐다보던 강은 이내 말없이 돌아서서 처소를 나갔다. 

“하…….”

평생 한 번도 제대로 품어 주지도 못한 자식을 제 손으로 놓고 말았다. 

* * *

별당 안 화원은 도아가 아주 어릴 적에 치열이 손수 만들어 준 것이었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어느 한 곳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도아는 오늘 하루를 화원에서 나가지 않고, 곳곳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맑은 호수에 들어가자 매끈한 다리는 꼬리가 되었다.

그런데 푸르고 영롱한 빛을 내며 자태를 뽐내야 할 꼬리가 무언가 이상했다. 물을 유유히 가로지르던 도아가 뒤를 돌아봤다.

꼬리를 펄럭이며 물 위로 올려 보았다. 화원을 환하게 비추던 빛이 사라져 버렸다. 

“…….”

햇빛을 잘 받은 바다 위로 보석이 반짝거리듯 빛나던 비늘에서도 작은 빛 한 점 볼 수 없었다. 

볼품없이 색을 잃고, 푸석하게 잿빛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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