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63화 (263/288)

263화

화산검(18)

모용준경이 생각했다.

실로 방자하기 짝이 없는 아이로구나. 어린 나이에 성취를 얻었으니 하늘이 높은 줄을 모르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홀로 초절정 고수 셋을 상대하겠다니.

설마 저 아이, 정말로 자신이 그 단상목이 말했다는 극광오신인가 하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혁리광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모용준경이 일단 생각을 하는 것과 달리 그는 종화가 내미는 검을 따라서 일단 움직였다. 기본적으로 혁리광이 화산에 온 것은 신검이라 소문이 자자한 젊은 고수와 겨뤄보기 위해서였다. 비록 지금 그것이 일대일 승부가 아닌 삼 대 일 승부가 될것 같은 상황이긴 했으나 그게 뭐 어쨌단 말이던가. 애당초 자신이 자처한 일이다. 또한, 무엇보다 바로 얼마 전 삼 대 일은커녕 오 대 일로 붙었는데도 와장창 깨진 경험이 있지 않던가.

그의 시선이 종화의 검을 따라갔다.

이전부터 느끼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검이다. 특히 아름다운 부분은 저 검극이 만들어내는 조화다. 대체 무슨 원리일까? 저 검 앞에서는 모든 것이 해체된다. 심지어 초절정 고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강기조차 그러하다.

혁리광의 몸이 기이한 각도를 그리며 운호의 뒤를 점하기 위해 움직였다.

운호의 눈이 그를 쫓았다.

‘제법······.’

그 움직임에도 도가의 오묘한 이치가 엿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놀라운 것은 당장 눈 앞에 찔러오는 종화의 일검이었다.

태을(太乙)

태을검선이 창안하였으나 그가 이 힘을 다루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 제자인 벽운 역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나 그가 사용하던 태을의 힘은 순양의 힘을 억지로 변환하여 사용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 역시 이와 같지 못했다.

운호가 종화와 자신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것은 아직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방어의 초식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살펴봤던 화산의 서적들로 창안한 검식 가운데 가장 그럴싸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

거대한 충돌음은 없었다.

마치 타락죽에 숟가락이 부드럽게 파고드는 것처럼 종화의 검이 운호의 영역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물론 당황하지 않았다.

가볍게 몸을 틀어 오른발을 뻗었다. 운호의 등 뒤를 파고들던 혁리광이 현묘한 걸음을 밟아 그것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가 피해낸 그 자리에 마치 예상한 것처럼 정확히 운호의 검광이 번뜩였다.

-부웅

다시 한 번 혁리광의 몸이 크게 틀어졌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와는 달랐다. 이전까지의 움직임이 공격을 염두에 둔 적절한 회피였다면 이건 그저 살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이전까지의 그런 현묘함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더 효율적이다.

운호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조금 전의 그 움직임을 머릿속에 명확하게 새겨넣었다. 그리고 그사이 종화가 두 걸음을 더 전진했다.

전력을 다한 종남의 강검이 날아든다.

그녀는 운호를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수 싸움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다. 적어도 수 싸움에 있어서만큼은 어쩌면 운호는 강호 제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힘만이 답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운호가 파검을 휘둘렀다.

-쾅!!!

종화의 몸이 크게 튕겨 나갔다.

태을의 힘으로 중화되지 않는 막대한 경력이었다. 마치 대구경 화포를 근거리에서 정통으로 가격당한 것, 아니 그 이상의 압도적인 위력.

그래, 그것은 조왕 주고수가 휘두르는 무형검강의 위력에 필적했다.

‘대체 어떻게?’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운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운호는 과거의 백운호였다.

과거 강진은 운호의 체질을 이야기 하며 그것을 개선할 방법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니 반로환동(反老換童)이니 하는 것과 함께 과거 전진의 조사인 왕중양이 도달했다는 양신(陽神)을 거론했었다.

허면 양신이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몸 밖의 몸을 의미한다. 태초에 타고 태어난 몸을 버리고 오로지 기운만으로 구성한 몸. 그리고 현재 운호의 몸은 그 양신에 매우 근접했다고 볼 수 있었다.

운호의 본래 육체는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영과 이차원에 존재하는 혼의 공명으로 분해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신한 것이 강진이 연단한 선단의 힘이다. 그리고 그 선단을 구성했던 것은 지상에서 가장 가볍고 순수한 영기였다. 덕분에 현재 운호의 몸은 오랜 시간 그를 제약하던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출신입화경의 고수라는 칭호에 걸맞은 힘을 사역할 수 있었으니 그 일검에 담긴 힘이 주고수의 불완전한 무형검강에 필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고작 숨 한 번 쉴 시간 사이에 두 명의 초절정 고수가 튕겨 나갔다.

모용준경은 그제야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했다.

거인의 몸이 청동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홀로 돌진하지는 않았다. 이미 며칠 전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고수를 목격했다. 물론 여전히 운호가 그 노인에 필적할만한 고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 모인 세 명의 초절정 고수. 초절정의 경기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한참 풋내는 이들보다는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운호가 그 자리에 서서 가볍게 손목을 돌리고는 모용준경을 향해 검극을 까딱했다.

콧김이 훅 하고 빠져나갔다. 자신보다 수준 높은 고수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저 젊은 얼굴로 걸어오는 도발은 역시 참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사이 종화와 혁리광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니미럴. 신검, 신검 하더니. 진짜 터무니 없구만. 그 영감은 자기 무공만 완성하면 강호에 나가서 절대 맞고 다니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더니. 벌써 며칠 사이에 몇 번을 쳐맞는 거야.”

거의 강진에게 필적하는, 그 촌스러운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잘난 얼굴로 천박한 욕설을 내뱉는 혁리광의 모습이 참으로 신선하다.

“며칠 전 그분과의 비무와 똑같게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종화가 두 사내에게 경고했다.

가장 먼저 앞장 선 것은 모용준경. 그 할아버지를 닮은 청동의 거인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신 모용경에 대한 모욕일 만큼 크게 부족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은 단순히 화석신공의 성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신에게 화석신공은 천하의 보검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보검이 얼마나 예리한지가 아니라 그 보검을 얼마나 잘 휘두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그에 비하자면 모용준경은 단순히 보검의 예리함만을 믿고 날뛰는 머저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운호는 실망하지 않았다.

모르면 가르치면 그만이다. 물론 그 가르침을 친절한 언어의 나열로 해주는 것은 그의 사제인 장호만으로 족하다. 스스로의 몸을 보검으로 여기는 이라면 그 보검을 단단하게 담금질 해주는 것으로 깨달음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운호가 모용준경과 자신 사이에 선을 그었다.

종화의 태을검은 그 선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부드럽게 파고 들었었다. 하지만 모용준경은 그럴 수 없었다.

경지에 이르른 화석신공의 파괴력이 운호가 그어둔 선에 부딪혔다.

금강불괴.

그 효능은 단순히 그 거죽과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연약하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자신의 근력이나 가벼운 움직임조차 이겨내지 못한 채 찢어지고 부러진다. 그리고 금강불괴를 연성해낸 무인은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육체가 운호가 그어둔 선을 찢어발기며 억지로 밀고 들어왔다.

그 모습에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제법 쓸만하다. 그저 가볍게 그어둔 일 검이 초절정 고수의 공격조차 한차례 막아낼 수 있으니 제대로 더 다듬고 보완한다면 팔대 검술에 한 자리를 차지할만하지 않을까?

종화와 혁리광이 함께 밀고 들어왔다.

세 초절정 고수의 공격 앞에서 운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검식들을 차례차례 시험했다. 딱 적절했다. 위기의식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후보로 올려뒀던 검식들이 아예 못쓸 녀석들인지, 아니면 그래도 더 가다듬어볼 가치가 있는 녀석들인지를 시험해보기에는 충분했다.

세 명의 초절정 고수에게는 실로 굴욕적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진 최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아쉬운 것은 상대방의 전력을 전혀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약 삼백 초.

이 정도면 그래도 일차적으로 추려낼 만한 것들은 얼추 다 추려냈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응?

그 순간, 새하얀 빛의 덩어리가 저 높은 곳에서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운호의 검이 그 의지를 따라 움직였다.

운호가 밟고 있던 지반에 금이 생겼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꽂히던 백열하는 강기 덩어리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저게 대체 누구인가.

모용준경과 혁리광은 갑작스러운 고수의 등장에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종화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이었다.

“전하!!”

“전하?”

조왕 주고수였다.

그는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튕겨 나간 기세 그대로 다시 운호를 향해 돌진해왔다.

악 다문 이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얼마 전 굴불신마 영무결에서 굴욕적으로 패배한 이후 문밖으로 털끝 하나 내비치지 않던 그였다. 초대장을 보냈음에도 나타나지 않기에 포기하고 있었거늘 아주 적절한 순간에 싸움에 합류해주었다.

혁리광이 종화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요?”

“네, 조왕 주고수 전하입니다.”

“맙소사. 조왕이라면 황제의 숙부?”

모용준경이 깜짝 놀랐다.

혁리광은 그게 뭐 대수냐는 얼굴로 운호와 주고수의 싸움에 시선을 집중했다. 조왕 주고수가 펼쳐내는 무공의 위력은 지금 함께 싸웠던 세 고수와는 또 그 수준이 달랐다. 얼마 전 싸운 적이 있었던 남천관일 단상목,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해 보인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무려 다섯이서 한 사람에게 덤벼 박살이 났다. 신검은 스스로 자신을 극광오신의 일좌라고 칭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정도 합공은 받아냄이 마땅할 터. 혁리광이 아무 말 없이 그 싸움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것은 종화와 모용준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 대 일.

이제는 더 이상 운호도 자신의 진신 실력을 감춘 채 생각해둔 무공만을 시험해보는 수준으로 상대하기 버거웠다. 확실히 조왕 주고수의 실력은 초절정 고수들 가운데서도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어쩌면 저 세명의 초절정 고수 가운데 둘 정도는 홀로 상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려 네 명의 초절정 고수다.

이미 그 상대가 불합리하거늘 합리의 극한을 달리는 납매검이 어찌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매농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싸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변수들을 무한에 가깝게 파악해야 하는 검술이다. 그 상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려워진다. 하물며 지금 운호가 상대하는 고수들은 모조리 초월에 발끝을 들이민 고수들이다.

운호의 기세가 일변했다.

그의 검술을 망라한 하나의 검식.

이름 붙이기를 화산검이라 칭한 그것.

활불을 참했으며 나아가 마교의 대제사장을 패퇴시킨 그 일 검이 펼쳐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숨어있던 다섯 번째 초절정 고수가 천하에서 가장 진한 살기를 내뿜으며 그 싸움에 합류했다. 운호가 초대한 마지막 고수 종자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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