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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89화 (89/288)

89화

무한 혈사(8)

기(氣)는 본래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힘의 집적이 일정 수준을 넘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계점을 넘어선 양이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이다.

운호의 검극이 아지렁이와 같은 기운으로 일렁였다. 물론 무형과 유형의 경계에 섰다고 해도 초절정 고수의 상징인 검강(劍罡)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강은 단순한 진기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한계를 넘어선 고수의 심상 그 자체다.

그렇기에 마인은 저 애송이가 너무나도 우스웠다.

비록 공조대사의 파상적인 공세를 막아내기 급급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두 초절정 고수의 공방은 저런 애송이가 끼어들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괜히 다른 고수들이 쉽게 끼어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 둘, 셋.

자신만한 경지에 오르면 단순히 달려오는 동작만으로도 그 경지를 알아챌 수 있다.

녀석의 무공 수준은 일류와 절정의 경계 즈음. 얼굴로 봤을 때 아직 약관도 채 되지 않은 나이임을 감안 한다면, 그리고 중원 무공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매우 놀라운 성취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경지를 넘은 고수의 눈에는 그저 벌레다. 벌레 가운데서는 조금 젊고 재능 넘치는 벌레.

마인이 자신의 오른발을 뒤로 쭉 뻗어냈다.

운호를 처리하기에 가장 적절한 초식은 아니었다. 그저 공조대사의 공세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벌레를 밟기 좋은 그런 동작에 불과했다.

운호가 노린 그대로였다.

상대는 경지를 넘어선 고수다. 아무리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중이라고 해도 주변 모든 것을 감각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렇기에 위장했다. 비록 한 번의 깨달음으로 절정의 경지를 넘어섰지만, 그의 내공량은 일류 가운데서도 중간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그럼에도 절정이 절정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상대는 충분히 그 차이를 간파해낼만한 고수다. 그렇기에 운호는 거기서 한 층 더 나아갔다.

절정의 경계를 엿보는 일류 고수.

어렵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남궁철이라는 정확히 그와 같은 고수가 하나 있었으니까.

마인의 오른발이 튕기듯 날아왔다.

아마 남궁철이었다면 의식과 동시에 가슴이 함몰되어 즉사했을 공격이었다.

절정과 일류를 가르는 경계는 대체 무엇일까?

이제 막 그 경계를 넘어선 것에 불과한 운호로서는 그것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것은 그 경계를 넘어선 것만으로도 운호는 이전과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운호의 의식이 가속했다. 이전의 그가 인지할 수 있는 속도 너머에 있던 마인의 오른발이 똑똑히 보였다.

정확히 그가 예측한 모양 그대로였다.

달려 나가던 기세 그대로 반걸음 몸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마인의 시선이 운호에게 꽂혔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실력을 숨기는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절정의 무위가 아낌없이 펼쳐졌다.

마인에게 그것은 무해한 줄 알았던 벌레가 사실은 날카로운 독침을 품고 있는 벌이었다는 정도의 위협이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아무렇지 않게 내지르던 발의 각도를 슬쩍 트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쿠과과과광!!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숨을 태우며 연격을 이어가는 늙은 노승을 앞에 둔 상황이었다. 한 번의 발길질과 한차례 시선을 돌린 것만으로도 반의 반의 반 호흡 정도 손해를 봤다.

마인의 발이 깔끔하게 회수됐다. 그리고 그 발길질의 흐름을 따라 운호의 검이 마인의 좌측 엉덩이를 파고들었다.

-쾅!!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특별히 운호의 공격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공조대사의 공격을 가장 피해없이 막아내는 경로 가운데 운호의 공격을 피하는 경로가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초절정과 절정.

아예 하늘에 발을 디딘자와 이제 막 산 정상에 오른 자.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는 누구나 예외 없이 커다란 자신감을 갖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이 넓은 중원에서 알려진 초절정 고수라고 해봐야 고작 천무십칠성과 사상십이신, 그리고 이야기로만 들리는 마교의 팔대제사장이 전부다. 보통의 무인이 오를 수 있는 정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절정조차도 초절정의 무인에 비하면 하찮다. 그렇기에 초절정이다.

운호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권신의 무공을 견식했고, 검선과 검을 맞대봤으며 파검의 검을 지켜봤다.

통하지 않을 것이다.

운호의 몸이 크게 움직였다. 마인의 움직임을 보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바라본 것은 자신의 생명을 태우고 있는 피투성이의 외팔 노승의 공격. 그리고 거기서 공격을 피하기 위한 최적의 위치를 예상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검왕과 파검이 보여줬던 그 천외천의 공방을 기억하고 있었다.

백운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적조차 깨트리는 파격.

파격이 무엇인가? 예측할 수 없기에 파격이다.

그러나 운호의 오성이, 절정에 올라 한층 높아진 그의 감각이, 경지를 넘어선 고수들을 관찰했던 그의 식견이 이 순간 하나로 합쳐졌다.

반 호흡.

운호의 검극을 피하기 위해 마인이 감수해야 했던 손해였다.

마인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노승은 여전히 무아지경에 가깝기 마인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부러진 손과 박살난 팔뚝, 팔꿈치와 무릎 어깨와 머리까지. 그것은 그야말로 맨손박투의 극의였다.

운호의 검이 적절하게 마인을 찔러들어갔다.

마인 역시 이제는 운호의 공격을 감히 경시하지 않았다. 노승의 신색이 한층 평안해졌다.

한번의 숨을 들이키는 사이 무려 사십칠 합.

그 어마어마한 공방 속에 운호의 검은 총 세 차례 마인을 위협했다.

절정에 오른 운호의 예리한 감각이 노승의 모든 투로를 인지했다.

조금 부족하다.

운호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초절정 고수가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것을 보면서 부족함을 느끼다니. 그 순간 운호의 머릿속에 증무진인의 의지가 울렸다.

-젠장, 이 고집불통 같으니. 하지만 굳이 싸우고 싶다면!! 그래!! 지금 네 생각이 옳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였다.

-쾅!!

공조대사의 무릎을 양손에 짧게 쥔 채찍으로 막아낸 마인이 운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안광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래!!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네 놈이었구나!!”

마인의 몸이 운호 쪽으로 삼십도 가량 돌아갔다.

그것은 공조대사가 아닌 운호를 노리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현이었다.

-번잡한 말을 할 시간이 없다. 네 생각이 옳다. 그러니 네 생각대로 해라.

운호가 판단했다.

자신이 이 싸움에 참여한 이후 공조대사가 얻은 이득은 반 호흡 하고 다시 반. 그리고 방금 저 동작으로 대사는 한 호흡 정도의 여유를 얻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공조 대사가 펼치는 무공의 위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양팔. 망가진 오른손은 그래도 다시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잡지 않겠다는 각오로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텅 빈 왼팔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마인의 공격이 운호를 압박했다.

이단공에 오른 포원공의 진기가 빠르게 순환했다. 마인의 주특기는 채찍. 하지만 워낙에 근거리인 탓에 채찍은 거의 봉인된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계를 넘어선 고수다. 무엇보다 저 날카로운 각법은 스치기라도 하면 뼈와 살이 분리될 막강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부웅

코끝을 스친 발차기의 압력이 피부를 벗겨냈다.

핏물이 송글송글 맺힌다. 공조 대사의 오른손이 마인의 옆구리를 노렸다.

-쾅!!

단단하게 조인 마인의 팔꿈치가 그 공격을 막아낸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다. 순식간에 마인의 팔이 시퍼렇게 부어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호는 칼을 내뻗을 수 없었다. 마인의 무릎이 어느새 운호의 허벅지를 노려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검이 움직였다.

이단공에 올라 한층 깊숙해진 진기와 절정에 올라 한층 성숙해진 무공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쿠과과과광!!

사람의 무릎에서 나온 위력이라고 믿기 힘든 막대한 경력이 운호의 몸을 휩쓸었다. 경력을 해소하기 위해 뒤로 크게 몸을 띄우는 것은 하책이다. 운호의 입에서 -울컥 핏덩이가 쏟아졌다.

하지만 버텨냈다.

그리고 공조 대사가!!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다.

공조대사의 오른발이 마인의 머리를 때렸다.

-꽝!!

마인이 왼팔로 공격을 받아냈음에도 그 충격량은 상당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인의 시선은 운호에게 못박힌 채다.

대체 왜?

마인이 어째서 공조대사를 놔두고 운호에게 집착하는지를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운호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것은 운호가 그리던 최상의 그림이었다.

광음검(光陰劍)

운호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를 절정으로 뛰어오르게 해준 절세의 검법.

빠름과 느림의 구분은 거시적인 세월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광음이다.

마인도 이번의 공격은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절정의 고수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산의 정상에 올라 그 팔은 저 높은 하늘에 닿아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지금 운호의 공격은 분명 하늘에 닿아 있었다. 기껏해야 이제 약관이나 됐을까 싶은 저 애송이가!!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저 녀석은 무려 무량수불의 아바타다.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어찌 부처의 화신이라 할 수 있을까.

한쪽 팔을 잃은 노승이 부러진 오른손을 옆구리에 가져다 댔다.

알고 있다. 위험한 공격이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 눈앞의 애송이가 더 중요하다.

초절정의 마인이 방어를 도외시했다.

운호의 굉음검과 한계를 넘어선 마인의 오른발이 교차했다.

상상을 초월한 위력.

회음현의 이름 모를 장인이 만든 강철검이 -뿌드득 뒤틀렸다. 하지만 아직이다. 아직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악다문 운호의 입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뒤틀린 검에 거미줄 같은 금이 생겨났다.

그리고 외팔의 노승이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일권으로 풀어냈다.

자신 대신 어린 후배를 위협하는 저 악적을 향하여.

백보신권(百步神拳)

소림을 대표하는 절세의 무학이 마인을 휩쓸었다.

-콰과과과광!!

경력이 해소됨과 동시에 운호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핏물이 뿜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운호가 늙은 신승을 향해 소리쳤다.

“신승!! 대체 어째서!!”

마지막 순간.

힘이 부족했던 것일까?

신승은 힘을 집중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마인은 저렇게 튕겨 나가는 대신 상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즉사했을 것이다. 물론 마인의 공격을 받아내던 운호 역시 어마어마한 상처를 입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초절정의 마인을 해치우는데 그만한 상처라면 싸다. 무엇보다 저 채찍을 휘두르는 마인은 남궁혜의 직접적인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승!!!”

답은 없었다.

남은 것은 그저 미소뿐.

힘이 부족했다고 하기에 마지막 일 권을 내지른 신승의 피로 물든 얼굴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

++

한차례 마인을 위협하고 물러나 호흡을 고르던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강의 시선이 장내를 훑었다.

여러모로 아쉽다.

절정 고수들이 풀려났지만 이미 초절정 고수들의 싸움은 너무 기울어있었다.

그나마 걸왕은 호흡을 고르는 대로 싸움에 합류할 수 있겠지만 벽산 진인과 공조 대사의 죽음은 뼈아프다.

걸왕을 바로 저곳으로 보내야 할까?

그의 시선이 가면인을 향했다.

저 싸움에 절정 고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답은 지금 여기 묶여 있는 초절정의 고수를 조금이라도 빨리 저쪽으로 보내는 것뿐이다.

검왕 남궁벽이 또 한 번 소리쳤다.

“나를!! 당장 나를 도와라!!”

남궁강이 아비의 말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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