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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장. 현실이 된 신화(4) (1,196/1,284)

1221장. 현실이 된 신화(4)

쫘아아악.

“아아아악!”

매서운 손길이 뺨을 후려치자 비비가 비명을 내질렀다.

콰다다당!

거칠게 돌바닥으로 쓰러지며 넘어졌다.

기사단장의 몸을 차지한 마법사의 완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근래 들어 나름 몸을 단련했음에도 비비는 마법사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앙큼한 년. 잘도 숨기고 있었구나. 흐흐흐.”

멀린은 쓰러져 있는 비비안을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힘없는 여인을 쓰러뜨리고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마법사 시절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는 족히 수천을 넘었다.

마탑의 마법사로 전쟁에 참여할 때마다 피바람을 일으켰다.

목걸이를 낚아챈 멀린.

‘마법으로 제조한 물건이다!’

멀린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

자신이 속했던 마탑의 기술이 녹아 있는 마법 물품이다.

장거리 추적은 물론 방어 마법까지 펼칠 수 있는 물건이다.

돈 많은 귀족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그런 물건을 지구인 따위에 지나지 않는 단장의 딸이 목에 걸고 있었다.

“다니엘이라는 놈이 준 거겠지?”

“!!!”

비비안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멀린을 바라봤다.

마법사가 누가 선물했는지 단숨에 짚어냈다.

“흐흐흐. 맞구나. 그놈이었어!”

멀린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니엘이라는 자가 자신이 속했던 세상과 연관이 있다는 걸 말이다.

‘과거 물건이 아니야. 최근에 만들어진 게 확실해. 강력한 마력석을 교묘하게 갈아 넣었어. 나조차 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마나 차단 능력도 뛰어나.’

어설픈 수준의 마법 물품이었다면 진작 들통났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마법 목걸이는 외견상 보통 여인들의 장식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감춰진 비밀을 쉽게 눈치챌 수 없었다.

멀린은 단숨에 마법 회로를 파악했다.

기본은 마탑 방식이지만 개량된 형태였다.

“사악한 마법사! 당신을 다니엘이 용서치 않을 거야!”

비비안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멀린을 쏘아봤다.

아버지의 육신을 탐한 마법사는 사랑하는 이의 선물까지 빼앗았다.

그간 그나마 목걸이 덕에 다니엘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있었다.

“다니엘? 조금만 기다려라. 네가 사랑하는 다니엘이라는 자가 물고기 밥이 되는 걸 똑똑히 보여주마.”

“닥쳐! 넌 다니엘을 몰라!”

“물론 모르지. 그런 너는 아느냐? 또 다른 비비안의 무서움을?”

멀린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비비안은 영문도 모른 채 여전히 멀린을 노려보았다.

“비비안이라는 아주 독한 마녀가 이 호수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니엘은 그 마녀에 의해…… 흐흐흐흐흐.”

말을 잇다 말고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을 흘리는 멀린.

“마……녀!”

순간 마녀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비비의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의 예지에 등장했던 마녀.

“다니엘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패배할 것이다. 마녀는…… 네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존재다. 나조차도 두려운.”

멀린은 은연중 진심을 내뱉었다.

결혼 서약 때 맺었던 맹약이 아니었다면 몇 번씩이나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전수한 마법을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개량하기까지 한 무서운 여자 마법사.

결코 진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멀린도 상대하기 벅찼다.

그 마녀의 이름 역시 비비안이란 사실을 비비는 알지 못했다.

“아니야! 다니엘은 결코 마녀 따위에 죽지 않아!”

비비안이 소리쳤다.

“결과를 보면 알겠지. 그리고 난 상관없다. 어차피 너희 둘, 아니 셋이면 인질로 충분하다. 흐흐흐.”

멀린은 두려움으로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클라라를 돌아봤다.

아이를 보호하려는 듯 배를 감싸고 있는 그녀.

멀린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놈은 마음이 약해. 정에 약한 놈들치고 오래 사는 놈들이 없어.’

인간 심리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는 멀린은 다니엘의 약점을 간파했다.

그러나 멀린은 미처 의심도 하지 못했다.

다니엘이라는 지구 마법사의 능력이 그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말이다.

***

콰다다당!

“크으으윽…….”

가브리엘은 새처럼 날다가 몽둥이에 얻어맞은 개처럼 바닥에 뒹굴었다.

마나를 이용해 몸을 가볍게 만들고 갑옷으로 몸을 감쌌지만 가해진 충격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걸치고 있던 로브도 진흙이 묻어 엉망이 됐다.

백색 기사가 아니라 진흙 기사로 불려도 될 것 같다.

‘도대체 다니엘은…….’

공격을 받자마자 찰나의 순간에 임기응변으로 자신을 내던져버린 다니엘.

가브리엘은 무척 부끄러웠다.

수준 차이가 현격했다.

다니엘과 멀린을 만난 이후 콧대 높던 자부심이 박살이 났다.

하늘 위의 하늘이다.

자신은 지상을 뛰어다니는 토끼라면 다니엘과 마법사는 하늘을 나는 매와 같았다.

거기에 새로 등장한 존재.

“으음…….”

신비로운 푸른 갑옷을 입고 있다.

자체 발광하는 갑옷은 인간이 제작한 물건이 아닌 게 분명했다.

온통 은은한 빛에 휩싸였다.

성령이 충만할 때 나타나는 만질 수 없는 보호막 같았다.

“대단해……!”

부지불식간에 인정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100미터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아주 잘 보였다.

성직자인 가브리엘이 봐도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다.

푸른 갑옷을 착용한 늘씬한 몸매와 같은 푸른색의 긴 머리칼은 신비의 세계에서 막 튀어나온 주인공 같다.

절대 인간은 아니다.

물 위에 유령처럼 떠 있다.

언뜻 보아서는 호수와 한몸이 된 것 같은 모양새다.

“꿀꺽.”

갑자기 밀려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가브리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퇴마 의식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구마사제이긴 하지만 가브리엘은 아직 초짜다.

게다가 퇴마 의식보다 무술 수련이 주였다.

그런 가브리엘이 보기에도 여인은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녀…….”

의심 가득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비밀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중세 마녀들의 강력한 술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때.

“호수의 여왕 비비안이라…….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데?”

‘호수의 여왕 비비안!!!’

자세히 듣지 못한 여인의 말을 재확인하는 다니엘의 모습에 가브리엘은 깜짝 놀랐다.

전설에 멀린의 아내로 기록되어 있는 비비안.

그녀는 멀린도 두려워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였다.

‘아직도 죽지 않았단 말인가!’

실제로 눈앞에 등장한 고대 신화의 주인공.

가브리엘은 큰 혼란에 빠졌다.

아직 반신반의하던 멀린의 등장을 이제는 분명하게 믿어야만 했다.

“내가 누구인지…… 아나?”

여인이 다니엘의 말에 살짝 당황한 눈치다.

“정령.”

다니엘의 짧은 답변.

‘정령?’

마나를 이용해 청력을 키워놓고 있던 가브리엘은 똑똑히 들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비한 존재 ‘정령’.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켈트족은 물론 유럽 여러 종족 설화에 등장하는 신비한 생명체였다.

성경에는 정령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악한 영적 존재라 치부하며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유령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존재인 정령이 등장한 것이다.

“…….”

가브리엘은 무척 난감했다.

정령으로 밝혀진 여성체는 유령과 확실히 달랐다.

형체는 거의 인간과 흡사했고 또렷한 의식도 분명했다.

거기에 마법까지 사용할 줄 알았다.

“넌 누구냐!”

고대 마녀이자 정령 비비안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멀린이 말하지 않았나? 난…… 대마법사 다니엘이다!”

***

쿵! 쿵!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호수에서 느껴졌던 정령의 실체를 마주했다.

이계에서 소환했던 정령과 같은 냄새가 났다.

놀라웠다.

지구에는 이계에서처럼 완벽한 정령체가 없었다.

신적인 개념으로 해석되는 존재들이 다수였다.

정령 비비안처럼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 진짜 정령과 마주하고 있다.

그것도 멀린의 조력자인 여성체다.

“대마법사라고? 네가?”

정령이 흠칫 놀라워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얼굴에 금칠한 격이지만 부끄럽지 않다.

이래 봬도 나 이계에서 7서클급 마법사다.

“문제 있나?”

정령과 맞닥뜨렸다고 쫄 일도 없다.

이계에서 나를 기다리는 정령들이 줄을 섰다.

그에 비하면 지금 정령은…….

예쁘다.

이게 말이 돼?

자연계에서 탄생한 정령이 아니다.

멀린의 아내이자 인간이었던 마법사 비비안.

발루아 가문의 비비안과 이름은 같았지만 미모는 탈 인간급이다.

괜히 마법사 멀린이 아내로 택한 게 아니었다.

아서 왕도 한눈에 반했다고 전해질 만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칼.

자체 발광 피부도 눈이 부실 정도다.

거기에 더해 물의 요정답게 수면 위에서는 버프를 받았다.

수정같이 맑은 물방울들이 그녀 주변으로 흩날렸다.

푸른 정령 갑옷을 착용한 정령 비비안은 자태가 도도하고 고귀해 보였다.

은은하게 뜬 초승달 아래, 신화를 간직한 호수의 정령 비비안.

나를 곤혹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자와 어떤 관계지?”

“누구? 멀린?”

“……그렇다.”

“보면 모르겠나. 놈은 죽여야 할 원수다.”

싹수가 개차반인 흑마법사 멀린.

임산부를 인질로 삼고 우는 어린아이에게 살기까지 뿌렸다.

인간의 몸을 탈취하는 건 기본이고 납치도 서슴지 않았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신화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서 왕 아버지와 편을 먹고 나쁜 짓도 무수히 저질렀다.

이런 식이었다면 아서 왕이 망한 것도 다 멀린 탓일 가능성이 컸다.

여기 눈앞의 비비안도 한 팔을 거들었다.

“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당신도 그자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걸 어떻게!!!”

바보야?

지구 동네 사람들은 다 안다.

멀린은 눈앞의 호수 여왕을 상당히 두려워했다.

부부 사이의 문제이니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멀린도 신화에서 몇 번 죽을 뻔한 순간을 맞닥뜨렸다고 스스로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날 공격하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멀린은 긴 세월 동안 엑스칼리버에 갇혀 있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멀린을 사랑해서 기다렸을 열녀는 아닌 것 같고…….

“……너에게 말해 줄 이유가 없다.”

자존심이 상한 듯 비비안이 말을 내뱉다 말고 입술을 굳게 닫았다.

파아아앗!

동시에 그녀의 주변을 휘돌아 오르는 묵직한 마나의 파동.

최상위급 물의 정령이 보이는 힘이다.

더욱이 이곳은 깊고 넓은 호수.

물의 정령에게는 최고의 전쟁터인 셈이다.

“나도 그래. 좋은 마법 놔두고…… 말로 할 필요는 없지.”

화르르르르르르.

마나를 대폭 끓어 올렸다.

멀린과 모종의 계약을 맺은 듯 보이는 여자 정령 비비안.

지금 필요한 건 단 하나!

수우욱.

아공간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힘껏 마나를 불어넣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

검이 붉은 화염에 뜨겁게 휩싸였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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