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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2장. 경매. (1,109/1,284)

1132장. 경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박장대소가 터지는 실내.

중국 권력의 한 축을 쥐고 있음에도 요근래 내내 심기가 불편한 채 지내왔던 남자가 마음껏 소리 내 웃었다.

“가, 같이 밥을 먹다니……. 크흐흐흐흐흐. 방창걸 그 녀석 표정이 아주 가관이겠어.”

한 시절 냉혹한 통치자로 불렸던 장택민이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어느 시점까지 분명 애송이에 불과했던 방창걸.

한때 자신이 마음먹고 키워준 상무위원이었다.

지금은 뼛속까지 슈건핑과 태자당의 개로 변모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첩 려영이 반달눈을 지으며 장택민에게 물었다.

그의 나이가 적지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기운이 넘쳐 보였다.

작은 키로 10억이 넘는 중국 인민들의 생사여탈을 쥐고 흔들었던 사내.

권좌 뒤로 밀려난 뒤 크게 웃을 일이 없던 그가 오늘은 오랜만에 광소를 터트렸다.

“속이 뻥 뚫리는구나.”

진심이 담긴 소리였다.

웃음을 거둔 장택민은 다시 평소의 그로 돌아왔다.

태자당에 당했던, 아니 지금도 당하고 있는 치욕.

자신의 사후까지 권력이 유지될 정도의 축을 설계했지만 계획이 어긋났다.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다 자부했지만 인간의 욕망이 갖는 무게를 잘못 계산한 결과였다.

장택민이 체득하고 계산한 것보다 더 인간의 욕망은 치열하고 강력했다.

그리고 치욕의 중심에 방창걸이 있었다.

슈건핑이 방통이자 공명이라 말할 정도의 칭함을 받는 자였다.

장택민과 상해방의 감시를 피해 자신을 완벽하고 감춘 상태로 권력을 휘어잡았다.

그 노력과 열정에 탄복하기도 했다.

지금은 장택민조차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슈건핑도 귀를 열고 그의 말을 경청한다고 할 정도다.

그런 그가 지금 당황스러운 상황에 내몰려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장립한테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 와중에 충성심이 남다른 조평 상장이 사고를 쳤다.

자신의 허락 없이 장립을 마중 나갔다.

가만히 두고 지켜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외손녀를 내세워 장립을 데려가려던 원자바오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사용했다.

그런 자리에 방창걸이라는 거물이 나설 줄은 몰랐다.

“장립이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가요?”

방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음에도 습관처럼 려영은 부채로 장택민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그녀의 행동은 진심이었다.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온 장택민은 려영의 지고지순함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본처와 첩들 모두를 통틀어 그녀를 가장 총애했다.

담담하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비밀 책사다운 계책을 내놨다.

“…….”

장택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려영이 무심코 질문한 말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장택민.

“……잘 모르겠구나.”

“네?”

려영은 크게 놀랐다.

장택민이 고심 끝에 내뱉은 한마디 대답이 그의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슈건핑과 태자당이 권력을 쥐고 있지만 장택민은 그들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운이 다한 탓과 측근의 배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여겼다.

그러니 장립에 대한 지금 그의 평가는 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모르겠다’는 말에는 장택민조차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어리다고만 생각하기에는 나도 그 심계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노회한 꾼이라고 하기에는 오늘처럼 파격적인 행동을 보이니.”

“강상직조(姜尙直釣)를 꿈꾸는 태공으로 보시는지요.”

“강상직조라…….”

려영의 말을 장택민은 조곤조곤 읊조렸다.

위수강에서 낚시질을 하다 문왕을 만나 정치에 입문한 강태공.

그 아들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강태공과 장립을 비교한 말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질문에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니다.”

하지만 곧 부정의 대답이 나왔다.

“그럼…….”

“큰 뜻을 품은 것은 맞으나 장립은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어떤 큰 뜻 말입니까?”

려영이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직접 대면해 본 적은 없지만 그에 관한 얘기들은 접할 때마다 모두 다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장립.

남자가 이렇게 평가하기를 주저하는 사내는 장립이 처음이다.

“알 수 없지.”

“여자입니까?”

“그렇다면 쉽게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입니까?”

“그것도 아니다.”

“권력도 여자도 돈도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남자라면 거부할 수 없고 당연히 불태우기를 원하는 최고의 욕망들.

책사인 려영이 장택민과 함께 장립에 대한 추리에 빠져들었다.

“그게 나도 궁금해. 장립이 원하는 게 명확하지 않아. 세 가닥 줄 위에서 고개 타는 것을 즐기고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장택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90년의 세월을 살아온 늙은 너구리도 파악하기 힘든 장립의 속내.

“역모입니까?”

무심코 려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역모?”

장택민의 눈썹이 강하게 한 차례 꿈틀거렸다.

중국 권력과 전혀 관계없는 장립이다.

당연히 아닐 것이라 생각하지만 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귀가 솔깃했다.

좋지 않은 기운을 내포한 단어지만 장립과 잘 어울렸다.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자일 수 있습니다.”

려영이 마저 뒷말을 이었다.

천안문 광장 사건 이후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자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철저하게 배척당하고 탄압당했다.

해외에서 화교로 자란 장립이니 그쪽으로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아니야. 역모는 아니야……. 분명히 다른 꿍꿍이가 있어.”

장택민은 의심의 방향을 틀며 말했다.

역모까지는 아닐지라도 역모와 비슷한 수준의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는 게 분명한 장립.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장택민은 고민에 빠졌다.

살랑 살랑.

그 옆에서 시들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려영은 조용히 부채를 부쳤다.

***

“맛있습니다. 그렇지 류미?”

“응? 어…….”

젓가락을 깨작거리는 류미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상장님 한 잔 더 드시죠.”

“아직 근무 시간이라…….”

같이 끌려온 조평 상장도 입맛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 근무 시간요? 그런 분이 공항에는 왜 나옵니까? 크크.

옆에 앉아 천하 진미를 맛보던 귀신이 비웃듯 말을 꼬았다.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군.”

평정심을 회복한 방창걸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무안했던 순간의 당혹감은 한 번 흘러가 버린 강물처럼 여겼다.

- 저 상무위원 아저씨 인내심이 끝장입니다.

쩝쩝.

내 귀에만 들려오는 귀신의 쩝쩝거리는 소리.

자리한 사람들은 모두 입맛이 없는 데 반해 귀신의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북경 명물 이화원 주변에 위치한 화려하고 거대한 고급 식당.

넓은 식탁 위에는 북경요리를 대표하는 궁중요리들이 차려졌다.

상해와 사천, 광둥요리와 함께 중국 4대 요리라 불리는 북경요리.

그중에 가장 고급진 요리 스타일은 단연코 궁중요리다.

원나라와 명, 청 제국을 통해 확립된 요리 스타일.

추운 지역이었기에 지방질이 많은 튀김요리와 볶음요리가 주를 이뤘다.

샥스핀과 전복, 사슴고기, 오리 같은 고급 재료들이 튀겨지고 볶아져 나왔다.

넓은 상에 이십여 가지가 넘는 요리가 빼곡히 차려졌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고맙네.”

점심을 주관하는 방창걸이 미소를 띠며 잔을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술을 따랐다.

또로록.

오늘도 물론 마오타이주.

- 형님 제 잔도 부탁합니다.

염치도 없는 귀신.

반절 이상에 달하는 요리의 기를 벌써 다 빨아 먹었다.

“주임님. 귀한 점심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멀리서 손님이 왔으니 당연히 대접해야지.”

사람 좋은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방창걸.

상무위원이라는 말 대신 주임이라 불러주기를 주문했다.

“립. 나도 부탁해.”

류미가 잔을 내밀었다.

빙긋 웃으며 그녀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그새 몇 잔을 비워낸 그녀.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 얼굴이 벌써 홍시처럼 붉다.

- 미녀의 술에 취한 모습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이래서 옛 선인들이 호수에 배를 띄우고 가인들과 술을 마셨나 봅니다.

분위기와 상관없는 귀신이 그리는 환상 세계.

지금 분위기는 강호에 배 띄우고 술판을 벌이고 노는 상황이 아니다.

세 사람이 보내는 팽팽한 기 싸움이 장난 아니다.

“둘은 친한 사인가?”

방창걸이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2년 전 베이다이허에서 제가 약혼자로 찜했는데 립이 도망갔어요.”

류미가 쿨하게 사실을 말했다.

“하하. 립. 자네 큰 실수했네 그려.”

“실수가 아니라 복이 아닐까요?”

“리이이이입!!!”

류미의 목소리가 식당에 크게 울렸다.

조평 상장과 방창걸 상무위원 앞에서도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배짱이 감탄스럽다.

그 정도로 류미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힘이 세다는 의미였다.

“둘이 친구 사이랍니다.”

조평이 말을 보탰다.

“친구……. 좋은 말이지.”

방창걸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류미와 나를 쳐다봤다.

- 이상한 상상하는 거 같습니다.

너도 느꼈어?

- 제 전공 아닙니까. 흐흐흐.

그래 잘났다.

의식적으로 몹시 타락한 귀신과 동급인 방창걸.

류미는 전혀 신경도 안 썼다.

어차피 그런다고 류미의 혼삿길이 막힐 것도 아니었다.

외모와 집안 스펙이 다이아몬드 수저급인 류미.

“그런데 방 아저씨는 무슨 일이세요? 진짜 립에게 점심을 대접하려고 그랬어요?”

알코올의 힘을 빌려 강단 있게 나오는 류미.

살짝 버르장머리 없다고 느끼는 듯 방창걸의 눈이 가재 눈이 됐다.

슈건핑의 오른팔이자 보이지 않는 실세권자.

나이 어린 류미에게 들을 만한 질문은 아니다.

“류미. 방 주임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호의야. 비록 선약은 없지만 따라드려야지.”

류미를 가볍게 훈계하는 척하며 선약을 강조했다.

방창걸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 눈빛 보십시오. 조만간 큰일 나겠습니다.

충분히 나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당장 방 주임이 어떻게 하고 싶어도 나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다.

- 비장의 한 수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귀신이 궁금한지 물었다.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중국에 오기 전 계획한 일들의 일부를 꺼내놓을 때가 됐다.

“세 분께서 멀리서 찾아온 저를 위해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잔을 잡고 세 사람과 돌아가며 시선을 마주했다.

현재 각 공산당 파벌을 대표하는 이들.

모두가 집중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약소하나마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

선물이라는 말에 세 사람 모두 눈빛으로 의문을 표했다.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선물.

- 형님 표정이 사악해 보이는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맞다. 귀신아.

지금 엄청나게 큰 미끼를 던질 참이다.

“립, 그 선물이 뭐야?”

류미가 호기심을 보이며 먼저 물어왔다.

씨익.

입가에 슬슬 번지는 진짜 사악한 미소 한 자락.

“오늘 밤…….”

한 번 더 호흡을 끊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제가 소장한 귀한 물건들을 경매에 내놓겠습니다.”

“!!!”

“겨, 경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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