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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장. 천륜의 도(道). (1,100/1,284)

1123장. 천륜의 도(道).

‘류미? 걔가 왜 거기서 나와?’

“……자세히는 모르지만 샤오롱바오를 먹고 싶다고 새벽에 왔다고 합니다.”

“미친!”

양소려의 입에서 거침없이 욕설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모습을 보인 장립 때문에 홍콩의 정치 세력들은 말 그대로 장대로 건드려놓은 벌집이 됐다.

그것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달랑 하룻밤 사이에 홍콩과 북경 정치계가 발칵 뒤집혔다.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토네이도.

멀쩡하게 북경에서 근무하고 있던 상해방 왕정에게 폭격이 가해졌다.

이제는 웬만큼 알려진 태자당의 수뇌부 리장창과 장문량을 장립이 만난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뿐만 아니다.

한술 더 떠 장립이 왕정의 첩 홍린과 하룻밤을 보냈다.

그 여파가 작지 않다.

고위 공산당의 첩을 건드리는 일은 전쟁을 의미했다.

과거부터 중국의 패자들은 전리품으로 왕과 장수들의 여인들을 취했다.

상대의 자존심에 그보다 더 큰 타격은 없었다.

‘장립 너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양소려는 지끈지끈 골치가 아팠다.

상해방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양광과 양소려.

장립과의 인연이 무시 못 할 수준인데 그가 상해방과 척을 지려는 듯했다.

아버지 양광의 예측과 상황이 다르게 흘렀다.

처음 만날 때부터 마치 곧 터질 듯한 폭탄처럼 여겨졌던 장립.

아니나 다를까 홍콩에 오자마자 대형 사고를 쳤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상해방과 태자당에 이어 공청단의 핵심인 원자바오의 외손녀 류미와도 식사를 함께한 장립.

그의 계획적인 행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게다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만남이 공교로웠다.

마치 잘 짜여진 운명의 각본 같았다.

양소려의 반듯하고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홍린을 만난 것까지는 어찌 이해할 수 있었다.

으득.

양소려가 아래턱에 힘을 주며 이를 갈았다.

말 그대로 류미는 평생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사건건 그녀와 엮이고 부딪쳤다.

상해방과 공청단의 파벌로 시작해 사사로이는 사문까지 결이 달랐다.

베이다이허에서 장립을 사이에 놓고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하필 류미야!’

먼저 자신을 만나지 않고 류미와 식사한 장립이 미웠다.

우연히 만났다고는 하지만 앞서 자신에게 전화를 했어야 옳았다.

“후우…….”

양소려가 깊은 숨을 내쉬며 격앙된 감정을 추슬렀다.

냉정하게 말해 장립은 양소려의 남자가 아니었다.

더욱이 한국 여인과 결혼해 그사이에 쌍둥이까지 두고 있다.

류미도 이제 와서 그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았다.

마음이 없는 남자를 붙들어 두기에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항구가 너무 작았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정보를 수집하세요.”

“명!”

양소려의 지시를 받고 사내가 물러났다.

다시 홀로 남은 양소려.

창밖을 바라봤다.

밝은 햇살이 가득 찬 홍콩의 거리.

“장립. 기대할게. 당신의 선물 보따리는……. 언제나 넉넉했으니까.”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양소려.

그녀는 2년 전보다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기대하는 바도 있다.

장립은 생각보다 정(情)이 많은 남자라는 걸 양소려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

- 혀, 형님 이 아리따우신 여선(女仙)께서는 뉘신지…….

귀신이 분위기를 살피며 꼬리를 말았다.

그러면서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할머니 얼굴을 하고 나타난 그분을 일러 아리따운 말을 잘도 곁들였다.

인간의 탈을 빌려 쓰고 노구의 몸으로 앞에 있었지만 역시 대장금 누님은 명불허전 미모를 자랑했다.

귀신이 그 신의 진상을 본 것이다.

언제 봐도 단아한 장금 누님.

거기에 특별한 그녀만의 넉넉하고 부드러운 매력까지.

정체를 알 리 없는 귀신이 반할 만했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진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홍콩에서 만날 만한 신선은 아니었다.

나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놀랐지만 그녀 또한 적잖이 놀란 반응이었다.

부업(副業).

해석하자면 요즘 말로 본업 이외의 일자리인 알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왕들의 연회장에만 몇 번 출장 가도 두둑한 보너스를 챙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녀.

신들 세상에서도 그녀의 명성은 이미 자자했다.

대한민국도 아니고 홍콩까지 와서 알바를 뛰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짐작 가는 한 가지는.

누님. 혹시…… 사채 썼어요?

- 사, 사채라니! 

여선께서 당황하신다.

류미는 전혀 낌새도 알아채지 못하는 신들의 대화법.

썼네. 사채!

최소 중금리 사채가 확실했다.

- 사채요? 여선께서요?

귀신이 의뭉한 눈길로 여선을 본다.

그 말에 입술을 잘근 깨무는 여선.

부끄러운 듯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나에게 비밀을 들켜버렸다는 사실이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듯했다.

- 하아아…….

여선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말 못 할 깊은 수심이 숨에서 느껴졌다.

솔직히 나의 짐작이 사실이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장금인 중급 레벨 신선이 사채를 써야 할 만큼의 일이 무엇일까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멀고 먼 홍콩까지 와서 부업을 뛰어야 할 만큼 생활고가 심한 듯했다.

- 아니. 이렇게 고귀하시고 도도하신 여선께서 사채라니……. 도대체 얼마를 빌려서 쓰셨기에…….

귀신은 가끔 너무 솔직해서 문제다.

처음 보는 장금이 누님에게 사채빚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초면인 여자의 몸무게와 나이를 묻는 것만큼이나 굉장한 실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자식 왜 이렇게 나서는 거야?

자기가 갚아 줄 것도 아니면서.

- 부끄럽네.

장금이 누님이 피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부끄러울 것까지는 없는 일이다.

나도 써봤다 중금리.

신선도 살다보면 급하게 포인트가 필요할 때가 있긴 하다.

가령 사업체 보수를 한다든가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 신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게 사채다.

그런데…… 진짜 사채 쓰셨어요?

실제 신계에서 신들한테 요리와 술을 팔 때보다 인간 세상에서 맛있는 라면 한 그릇 제공할 때 더 많은 카르마가 벌렸다.

신선들 입장에서는 하루만큼 짧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 세상살이지만, 그런 생에서 일어나는 무궁무진한 카르마는 순수하고 또 치열한 데다 진했다.

원석의 다이아몬드 같은 인간들의 카르마인 것이다.

매일 평온하게 삶을 이어가는 신선들이 그야말로 가장 부러워하는 인간의 생동성(生動性)이다.

카르마의 보고인 셈이다.

신선들이 그토록 인간 세상에 관여하고자 애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회귀한 내가 빠른 시간 안에 신선 레벨 업이 가능했던 이유기도 거기 있다.

그래서 한사코 만나는 신선들마다 나를 그렇게 좋아한다.

움직이는 카르마 포인트 생성기이니 말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팔지 못해 안달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처음 만났던 천룡신군의 불법 과외도 그런 종류의 일환이다.

다만 레벨이 일정 이상 되면 이런 알바도 못 한다.

특히 누님 정도 레벨이라면 한국에서는 동료 신선들 때문에 체면이 안 설 판이다.

- 혹시……. 남친 신선이 돈 빌려갔어요?

귀신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귀신 너 웃긴다.

네가 탐정이야 뭐야?

왜 남의 포인트사를 궁금해하는 건데!

그런데 진짜세요?

의심이 가는 대목이긴 하다.

대장금이 홍콩에서 인간의 몸을 빌려 포인트를 버는 이유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이 대장금은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진짜 신선이지 않은가.

맛있는 요리로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진선(眞仙).

-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구나.

장금이 누님의 한탄 어린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남자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 도박은 아니죠? 도박 중독은 인간이나 신선이나 약도 없다고 하던데…….

장금이 누님의 도도한 여선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귀신이 묻는다.

저 자식은 진짜 꿈도 야무지다.

귀신 주제에 인간과 신선을 가리지 않는다.

- 아니다.

누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런 장금이 누님에게서 느껴지는 연약하지만 질긴 업의 가닥.

- 남자도 도박도 아닌데……. 뭡니까?

귀신이 심문하듯 묻는다.

그사이 시간은 죽은 듯 멈췄다.

샤오롱바오를 향해 군침을 흘리던 류미는 멈춘 시간 속에 그대로 잠겨 있다.

인간과 다른 신선들의 시간이 적용돼 흘렀다.

- 하아아아…….

장금이 누님의 진한 한숨.

그때 내 입술이 거짓말처럼 천천히 열렸다.

“자식 문제는 신선도 어쩔 수 없죠.”

- 자, 자식요?

정말 화들짝 놀라는 귀신.

뭘 그렇게 놀라!

저 누님 정도 되는 미모에 전생 자식 하나 없을까?

- 전 없잖아요! 그 자식!

니가 그러니까 인생을 모르는 거다.

사람으로 태어나 자식 낳고 그 자식 한 번 키워보지 못하면 인생과 윤회의 참맛을 죽어도 모른다.

스스로 썩어 거름이 되어 새로운 나무를 키워내 보지 못한 인생사.

생로병사를 뛰어넘는 참도(道)는 그야말로 천륜의 도다.

홀로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 독각(獨覺)의 경지를 이룬다 해도 그 또한 허도인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그 이치는 범부라 해도 죽는 순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천륜의 도는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참도를 얻게 만드는 씨앗이 된다.

내가 죽어 살릴 수만 있다면 기쁨인 도.

자라나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른 행복의 도.

자식이 또 다른 내가 되어 세상을 늠름하게 헤쳐나갈 때 느낄 수 있는 만족의 도.

우주 어머니 같은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 천륜의 도.

그런 도 앞에서 장금이 누님이 사채를 땡겨 쓴 것이다.

구체적인 깊은 사연은 모른다.

그러나 신선이 되어서도 이생의 후손들을 위해 기꺼이 신체(神體)를 희생하는 신선들은 주변에 누님 말고도 많았다.

- 알고 있었나?

느낌이 왔습니다.

- 장 신선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

아닙니다.

진정 아름다우십니다.

부끄럽다고 말하지만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후손을 위해 카르마를 벌고자 홍콩까지 와서 신선 식당을 차린 대장금 누님.

그녀에게서 어미의 참사랑이 찬란히 빛났다.

- 장 신선.

장금이 누님이 나를 불렀다.

결연한 표정이다.

“!!!”

그때 번쩍 스치는 생각 하나가 뒤통수를 때렸다.

누님……. 설마!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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