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1장. 신 길동전(2).
“기도하러 가십니까?”
“그래야죠……. 바트께서 명하신 일 아닙니까.”
비밀 회의장에서 빠져나온 장로들.
모두 각자의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바쁜 걸음으로 흩어졌다.
내심 불만이 많았지만 야훼 바트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바트의 입으로 기도를 거부하는 자를 악신에 물든 자라 여기겠다고 선언했다.
“걱정입니다.”
“뭐가 말입니까?”
평소 친분이 있던 호세아 장로가 마가 장로의 말에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의문을 표했다.
“이것 보십시오. 정체 모를 자금들이 튀어나와 환율과 선물 시장을 휘젓고 있습니다.”
태블릿을 통해 실시간 환율 변동 상황을 보여주는 마가 장로.
갑작스럽게 엄청난 자금이 몰려들었다.
소문이라도 난 듯 환율이 요동치고 유가를 비롯해 선물 시장이 곤두박질쳤다.
“음…….”
데이터를 확인한 호세아 장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자금 상당수가 움직이는 곳이 선물 파트였다.
보이지 않는 조종자 역할을 맡고 있는 호세아 장로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널뛰는 선물 시장.
“아사신이 계획적으로 시장을 노리고 판을 키운 것 같습니다.”
“아사신이요?”
“모르셨습니까. 그들은 과거의 아사신이 아닙니다. IT로 무장하고 금융 시장에도 이미 뛰어들었습니다.”
마가 장로가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큰 대규모 자금이 존재할까요?”
“그놈들이 뭘 믿고 날뛰겠습니까? 정보가 돈인 세상입니다. 자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확충 못 하겠습니까. 이단에 현혹돼 미쳐 있는 자들이 내놓는 헌금과 그들의 의식도 조종할 수도 있는데.”
“그렇군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야곱 장로에게 조금 전 장로님이 말했듯이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납니다. 선물 시장에서 호가 단위 하나가 변하면 얼마나 큰 손해가 발생합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판에…….”
마가 장로가 말끝을 흐렸다.
과거 금융 시장과 달랐다.
개미 군단 같은 개인들과 소규모 투자자들의 금융 지식 수준이 높아졌다.
작은 흐름으로 조종이 가능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개미들이 뭉치면 정작 세력들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아직은 그 조종이 가능했다.
하지만 점점 더 지능화되어 가는 금융 세상의 개미들.
여기에 다른 세력들까지 합류하면 보이지 않는 손도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호세아 장로가 은밀한 시선으로 마가 장로를 바라봤다.
“기도하는 중에도 우리의 맡은 바 소임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바트께서 명하신 일인데…….”
“결과가 좋다면 뭐라 하시지 않을 겁니다. 우리 모두 야훼를 수호하는 전사들이 아닙니까. 기도하면서도 할 일은 해야죠.”
“마가 장로도 그러하실 생각입니까?”
“물론입니다. 몇몇 장로와도 얘기가 끝났습니다.”
마가 장로가 좀 더 조용히 속삭였다.
그 모습에 호세아 장로도 혹했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 일을 놓고 기도만 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럼 저도 대세를 따라야지요.”
호세아 장로 역시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자신이 굴리는 자금의 실체를 야곱 장로도 몰랐다.
손해를 보면 배가 아플 게 뻔했다.
“그리고…….”
번득, 마가 장로가 사악한 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하실 말씀이?”
“아사신들의 뿌리가 깊습니다. 이번 기회에 놈들의 자금을 박살 내도록 하죠.”
“어떻게 말입니까?”
“정보를 주고받아 힘을 합쳤으면 합니다. 정체 모를 세력을 박살 내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 이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호세아 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야훼 바트만이 자금의 합병과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지시대로 움직였던 장로들.
그런데 야훼 바트의 잠깐 동안의 부재를 틈타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야훼께서도 지금은…….”
말을 삼가는 마가 장로.
꿀꺽.
호세아 장로가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하면 신성모독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흐흐흐. 이미 넌 걸려들었어.’
마가 장로는 알 수 없는 시선으로 호세아 장로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인간의 저열한 욕망에 기초한 그물.
장로들 중 가장 탐심이 큰 호세아 장로는 예상대로 미끼를 물었다.
“조용히 처리하도록 하죠.”
“당연하죠.”
“연락드리겠습니다.”
호세아 장로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후훗.”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웃음을 내리까는 마가 장로.
처벅처벅.
마가 장로는 바쁠 것 없이 여유 넘치는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두들 신처럼 여기는 야훼 바트의 생사에는 큰 관심도 없는 듯 천천히.
***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앙!
SUV가 빠르게 도로를 치고 나갔다.
‘미치겠네.’
사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니엘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시작된 짧은 휴가가 액션 영화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상이 망해도 가장 안전할 거라 믿었던 로리아나가 공격을 받았다.
가장 튼튼한 팔로 안아주던 야훼가 힘을 상실했다.
그에 반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다니엘의 감춰져 있던 실력.
믿을 수 없지만, 세상에! 마법사였다.
투명 마법을 펼쳐 공항을 통과할 때 자칫 비명을 지를 뻔했다.
천재 투자자에 미술과 음악에 대한 재능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만날 때마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
차분한 다니엘이 평소 그답지 않게 거칠게 차를 몰았다.
사이드미러로 뒤따라오는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2인 1조의 정체불명 오토바이 추적자들은 기관단총으로 무장했다.
영화에서나 연출 가능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다니엘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긴박한 와중에도 입가에 짓고 있던 차가운 미소는 액션 영화 주인공보다 더 멋있게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거야? 나만 이상한 거야?’
로리아나는 이 와중에도 눈을 감고 기도에 집중했다.
이스라엘과 세상을 다스리는 여왕이 분명하지만 그녀 역시 총을 맞으면 죽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주변 상황에 전혀 흔들림 없는 강심장을 보였다.
바아아아아아아앙!
오토바이들이 속도를 올리며 따라붙었다.
덩치가 큰 차와 달리 주행하는 데 있어 제약이 없었다.
금세 바짝 따라 잡혔다.
“후후훗.”
다니엘의 입에서 조소가 흘러나왔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살벌한 총을 확인했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영화 속 히어로 같은 다니엘.
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오토바이들이 차량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 순간.
타다다다다당!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는 습격자들.
“악!”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비명을 터트렸다.
LA에서 마주쳤던 저격수의 총구에 이은 두 번째 위기.
튼튼하긴 하지만 방탄 차량이 아닌 일반 SUV가 총알을 막아낼 리 없었다.
티디디디디디딩.
“???”
총알에 차량이 뚫리는 소리 대신 들려오는 방탄음.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창밖을 확인한 사라.
스으윽.
게다가 다니엘이 창문을 열었다.
파라라라라랏.
거칠게 들이쳐 오는 바람.
“지옥으로!”
다니엘이 왼손을 내밀며 ‘지옥으로’라는 말을 외쳤다.
그 순간 왼쪽 차창 밖 허공에 나타난 축구공만 한 불덩이.
나타났다 싶은 순간 또 사라졌다.
그리고.
퍼어엉! 퍼버버벙!
뒤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거친 폭발음.
사라는 재빨리 소리가 나는 뒤쪽을 바라봤다.
비명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한 끔찍한 상황이 연출됐다.
따라오던 오토바이 두 대가 모두 불타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콰앙! 콰과광!
불길에 휩싸인 오토바이를 뒤에서 그대로 들이받아 버리는 주행 중이던 몇 대의 차량.
그게 끝이었다.
“신이시여…….”
사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간단하게 오토바이 습격자들을 처리해 버린 다니엘.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냉혹한 킬러 같은 싸늘함이 그의 전신에서 풍겼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앙.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질주하는 SUV.
사라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오랜만에 가슴으로 올리는 진실한 기도.
사라도 지금의 로리아나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 흐흐. 오늘부터 길동이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요?
팝콘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은 귀신이 날 길동이 형님이라 불렀다.
몇 번 이런 습격을 받았다.
더구나 총기 소지가 가능한 이스라엘이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국민들은 웬만큼 총기를 다룰 수 있었다.
사방에 킬러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자들이 널렸다.
로리아나를 미끼로 사용했다.
SUV를 도심에 버렸다.
CCTV에 찍힐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투명화 마법과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텔아비브를 휘저었다.
길동이 형님이 즐겨 사용하던 동서남북 병법.
아무리 아사신이 철저하게 이번 일을 계획했다 해도 이스라엘을 모두 자기 수중에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정신계 마법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숙주가 된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발각될 게 틀림없다.
이스라엘 정보부 능력의 실력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뜻이다.
지금쯤이면 사태를 파악하고 조취를 취하느라 바쁠 것이다.
“오랜만에 와보는군요.”
사라가 옆에서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린 시절 로리아나와 이곳에서 뛰어놀았어요.”
예루살렘으로 넘어왔다.
길동이 형님처럼 묘술을 부리며 도착한 예루살렘의 핵심.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동시에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 보였다.
과거 아브라함이 이삭을 신께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장소이자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던 곳이며 이슬람에서는 메카와 메디나와 함께 3대 성지로 삼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배부른 제사장들을 꾸짖은 곳이며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이기도 했다.
중요한 장소임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이곳에 오기 직전 로리아나가 총리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
속죄를 위해 성전산에 있는 모든 인원을 철수시키고 전기를 차단하라고 주문했다.
총리는 두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온 야훼의 제1성전.
솔로몬 대왕이 건립했던 성전은 사라지고 모스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오마르 황금사원이 반짝였다.
이 한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중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던가.
별 볼 일 없는 돌무더기들과 오래된 성벽,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훼의 힘은 감지되지 않았다.
다만.
“오염됐어요……. 곳곳에서 아이들의 비명이 들려요.”
로리아나가 몸을 떨었다.
나에게도 느껴지는 귀기.
- 으으! 갑자기 오싹한데요.
장립 귀신도 이제야 악신의 기운을 알아챘다.
신성 저주로 오염된 야훼의 집.
휘이이이잉.
달빛이 쏟아지는데 연신 스산한 바람이 스쳤다.
눈에 들어오는 한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만 나오시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