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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1장. 부탁의 방법. (970/1,284)

981장. 부탁의 방법.

“분리수거의 계절이라ⵈⵈ.”

양우석은 장태산 회장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답답했던 머릿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여당의 실정이 거듭되고 있었지만 야당은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뇌물수수 사건과 성추문 사건들이 메인 뉴스가 됐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소란스럽다가 이래저래 묻히기 일쑤였다.

대형 일간지는 본래 야당 쪽 편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야당이 입을 닫고 조용하니 아무래도 언론도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 야당이 힘을 합쳐 다수 여당을 공격하기에도 벅찬 판에 각 계파 간 이해득실을 따지는 데 급급했다.

게다가 오래 묵은 특정 지방 지역구 의원들이 훼방을 놓았다.

한때는 민주주의 열사들이었던 그들도 권력을 맛을 보고 나면 하나같이 변질됐다.

일신의 안녕과 권력에 적당히 타협하며 이권을 챙겼다.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새로 등판하는 대권주자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정적이었다.

자신들의 입맛대로 양껏 요리할 수 있는 자를 추천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전혀 야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 당대표가 됐다.

지방선거를 비롯해 기선을 잡아야 할 밭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이 같은 상황이 거듭될수록 유권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사분오열됐다.

오래 묵었으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해 아예 썩어버린 장 같은 놈들이었다.

정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보다 눈앞에 차려진 잿밥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알게 모르게 많은 의원들의 의사가 갈렸다.

깨어 있는 의원들은 잘못된 길이라며 성토했지만 총회 때마다 몽니를 부렸다.

불과 기름처럼 결코 섞이지 못했다.

여당의 2중대라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로 그들은 드러내놓고 권력자들의 편을 들었다.

국민들 사이에 알려진 쥐꼬리만 한 인지도를 무기 삼아 야당 권력을 주물럭거리는 자들.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상임위에서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을 터트리고 아무리 소리쳐 봤자 겨우 몇 줄 기사가 나가는 게 고작이었다.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정당의 비애.

꿀꺽.

양우석은 소주잔을 비웠다.

장태산 회장은 몇 분 전 자리를 떴다.

짧게 한마디씩 나오는 그의 조언은 양우석에게는 빛과 같았다.

나이는 한참 어린 사람이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의원 선배들도 장태산과 같은 식견을 겸비하지 못했다.

그릇 자체가 달랐다.

미래를 예측하는 힘도 상상을 초월했다.

처음에 그의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믿음이 갔다.

지금까지 장태산 회장이 벌여왔던 놀라운 사건들이 그 증거였다.

어린 나이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권력을 손에 쥐었다.

이제는 상류층 상당수가 그의 실체를 알게 됐지만 누구도 본래의 면목을 알지 못했다.

그룹과 기업 관계자들이 장태산 회장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장태산 회장은 그 어느 그룹도, 사람도 직접 개입해 관여하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점조직처럼 간접 경영했다.

현 정권에서도 그의 눈치를 봤다.

막말로 장태산 뒤에 백악관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정치 독립운동이라ⵈⵈ.”

장태산 회장이 과제를 내줬다.

선배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온전히 나아갈 길을 찾으라는 주문이었다.

팁도 받았다.

초심(初心).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충고였다.

사실 국회에 있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많다.

인간 권모술수의 최종 끝판왕이 국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권자들 앞에서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그럴싸한 얼굴을 내비치지만 뒤돌아서면 그런 유권자들을 향해 신랄하게 욕을 내뱉는 자들이 태반이다.

기자들 앞에서도 사람 좋은 다선 의원처럼 행동하지만 뒤에서는 쌍욕을 퍼부었다.

인권법을 발의하면서도 소속 보좌관들의 월급을 뒷돈으로 받는 자들도 수두룩하다.

대관 업무자들과 여자들을 끼고 수시로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야당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여당 의원들과 호형호제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개새끼들 사이에서도 인간된 도리를 지키며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양우석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국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매일 눈으로 보는 게 고작 악에 찌든 자들의 아귀다툼뿐.

“그래도 장 회장 덕분에 조력자들을 많이 모았어.”

세상이 아무리 깊은 어둠에 잠겨도 내일의 태양은 뜨는 법.

양우석은 흔들릴 때마다 장태산 회장을 떠올렸다.

만약 실수하게 되면 장태산 회장이 가장 매서운 채찍을 휘두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동료들을 모았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서로 믿고 의지할 동료들이 여럿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봉사자ⵈⵈ. 그것밖에 없어.”

언제까지 국회에 몸담고 있을지 모르지만 양우석은 자신의 처음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로 남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저기ⵈⵈ.”

그때 누군가 곁으로 다가왔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

“저 말씀입니까?”

“혹시 양우석 의원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만ⵈⵈ.”

“와아! 진짜 의원님이시네요! 저 팬이에요! 의원님이 발의하신 저소득 가정 장학금 지원 법률안 덕분에 지난 학기에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청년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해 왔다.

“아닙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ⵈⵈ.”

“의원님 덕분에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학기 장학금도 받았고요!”

청년은 무척 해맑은 모습으로 웃었다.

“잘하셨습니다.”

양우석도 그의 얼굴을 보며 따라 웃었다.

기분 좋은 미소는 자연스럽게 전염이 됐다.

“여기 옷에 사인해 주십시오. 집안의 가보로 삼겠습니다!”

“저는 연예인도 아니라ⵈⵈ 사인이 없습니다.”

“격려 문구와 이름이라도 적어주십시오! 정말 의원님 덕분에 살맛 납니다!”

막무가내로 자신의 티셔츠에 사인을 해달라고 청하는 청년.

“이거 참ⵈⵈ.”

“제 이름은 오영석입니다.”

양우석은 난감해하면서도 청년의 옷에 이름과 짧은 글을 남겼다.

‘힘내라 청춘! 오영석!’

“의원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신다는 의원님 홈페이지 문구를 믿습니다. 의원님이라면 반드시 그런 세상 만드실 겁니다.”

오영석이 뜨거운 시선으로 양우석을 바라봤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의원이 된 이유!’

자신이 발의한 법안 하나로 한 청춘이 삶의 희망을 품었다.

그거면 됐다.

하나둘씩 촛불을 밝히다 보면 언젠가 짙은 어둠이 모두 물러갈 터.

작은 밀알을 또 심기 위해 양우석은 속으로 힘을 냈다.

‘장태산 회장님! 모든 게 당신 덕분입니다.’

어느 날 넌지시 법안에 대해 입을 열었던 장태산.

여당 의원들 몇몇이 함께 동의해줬다.

장태산이 뒤에서 힘을 썼기에 가능한 법률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가고 바꿔가고 있는 장태산 회장.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한 초석 같은 인물이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요즘 카르마가 통장에 쌓여갔다.

세상에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지자 매일 알림음이 그 성과를 알려왔다.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간다는 말은 다 뻥이다.

진짜 천국은 부자들에게 더 활짝 열려 있었다.

대차게 벌어 세상에 기부를 많이 한 부자는 천국에서도 대환영이다.

마음만 베푸는 가난한 이와 입장이 달랐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만이 진짜다.

우주의 이치가 그러했다.

부족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내 것을 쪼개 타인을 위해 베푸는 마음 부자들의 카르마 배당률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다음이 진짜 부자들의 선행.

나는 그중에서 돈으로 카르마 포인트를 벌었다.

계약을 맺은 이들이 많다 보니 나가는 것도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뒤로 차곡차곡 쌓였다.

- 흐흐. 형님. 쌍둥이들 얼마나 예쁜 줄 아십니까? 그사이 쭉쭉 컸습니다.

미친 귀신아! 하루도 안 지났다!

- 애들 크는 거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 눈에는 다 보여요. 제대로 신이 점지해 주셔서 미래에 큰 동냥이 될 겁니다. 중화민족을 위해ⵈⵈ.

그건 아니지!

한민족을 위한 위대한 일꾼이 될 것이다.

비록 장립 네 이름을 빌렸지만 그들은 엄연히 임성철 회장님 씨앗이다.

어디서 씨 도둑질을 하려고!

- 네네! 전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준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입니다!

“장 회장 고맙네. 자네가 해준 미역국 먹고 입덧이 멈췄어,”

냄비를 들고 나타나 계면쩍게 웃는 임성철 회장.

바로 뒷동으로 곧장 이사를 왔다.

기본 살림은 다 비치되어 있었기에 옷과 몸만 들어오면 끝인 입주였다.

일찍 일어나 요리를 해줬다.

임산부를 위한 남해 청정 무인도 산모용 돌미역.

고기 한 점 넣지 않았지만 씨 간장과 들기름을 넣어 정성으로 기가 막히게 끓여냈다.

그걸 다 비워낸 임산부.

“잘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갑자기 입덧이 심해져서 당황했다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ⵈⵈ.”

“과거에 자녀분들은 어떻게 키우셨습니까?”

“어머니가 엄했네. 집에 일하는 아주머니들 음식 솜씨도 좋았고.”

하긴 큰일 하는 남자라고 부엌에는 얼씬도 못 했을 임성철 회장이다.

하지만 오늘의 임성철 회장은 아침에 손수 밥을 해서 임산부에게 바쳤다고 했다.

- 쌍둥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중국요리 레시피 많이 알고 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중화요리는 자장면과 탕수육이면 됐다.

쌍둥이들은 김치에 된장국 맛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음식은 민족문화의 기본이다.

버터에 빵만 먹는 한국인은 진짜 한국인이 아니다.

“장 회장 고맙네.”

임성철 회장이 절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사고를 쳐도 다 수습해 주는 내가 안 고마우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별말씀을요.”

“내가 잊지 않고 사례하겠네.”

“대한민국을 위해 쌍둥이들 잘 키우시면 됩니다.”

- 형님! 저도 꼭 사례하겠습니다!

귀신아, 넌 저승이나 빨리 가는 게 나 도와주는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 일이 있네.”

“네?”

“애 엄마 말이 엘자그룹이 이상하다고 하네.”

“그게 무슨ⵈⵈ.”

“파벌이 너무 심하게 나눠져 있다고 해. 신사업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고 하네. 그리고 은밀히 중국 쪽과 연결된 것도 같다고 하고 말이야.”

엘자의 중국 투자는 상당 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그걸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고 다들 투자에 여념이 없었다.

중국 정부는 세계를 모두 다 주무르려는 황제국을 꿈꿨다.

도덕도 상식도 없는 중국 민족과 그들의 정부.

안타깝지만 몇 번 뜨겁게 데여봐야 그 맛을 알 것이다.

문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고선택 전무를 조심하게. 고자룡 회장 자리를 넘보는 자야. 야심도 만만치 않아.”

임성철 회장이 경고할 정도면 심각하다는 소리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자네가 해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럼 수고하게.”

“어디 가십니까?”

“ⵈⵈ백화점에 쌍둥이 신발을 사러가네.”

“네? 벌써요?”

“난 잘 모르지만 애 엄마가 원하네. 베냇저고리 하고 이것저것 살 게 많은가 봐.”

“네ⵈⵈ.”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오정의 회장이 여자친구와 함께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 옷이나 보러 다닌다는 걸 말이다.

낯설지만 따뜻한 모습이다.

다른 어느 때부터 기뻐하는 임성철 회장의 모습.

살아 있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묘미 중 하나였다.

- 형님! 가불 좀 해주십시오! 저도 아가들 위해 뭐라도 좀 사야겠습니다!

귀신이 가불을 요구한다.

월급도 없는 귀신의 말도 안 되는 요구.

귀신아, 넌 조용히 입 닥치고 주변 경계나 잘 서!

그게 도와주는 거다.

- 그런가요? 형님 말씀대로 주변을 철저하게 경계토록 하겠습니다!

도처에 변수가 널렸다.

최대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띠리리리리.

아침부터 스마트폰이 일찍도 울렸다.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다.

띠릭.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 장태산. 나야.

어라? 이 아줌마가 아침부터 무슨 일로?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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