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6장. 나, 큰 사고 친 것 같네!
- 오늘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업인수합병 사기 및 금융 사건의 피고 신태주 대표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그동안 모든 일들은 본인이 주도해 벌인 일이라고 자백했던 신태주 대표는 돌연 검찰의 조서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서양유업 안동근 회장이 배후에서 지시했음을 폭로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서양유업ⵈⵈ.
먼저 인터넷에 속보가 떴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오양식품 불법 기업인수합병 사건에 대해 다시 불이 붙었다.
- 사돈이라면서? 그런데 뒤통수를 쳐?
- 피도 눈물도 없는 서양유업.
- 뒤통수의 격이 다르네요. 역시 기업가들입니다!
- 대리점 갑질 문제로 계속 시끄럽더니 개버릇 남 못 주는군요.
- 인성 쓰레기 인정.
- 서양유업 오늘부터 불매합니다!
- 저도 동참!
- 동참 2.
- 동참 3!!!
네티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며 분노했다.
아무리 상도덕이 무너져 가는 세상이라지만 사돈 기업을 삼키기 위해 어둠과 손을 잡은 서양유업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대리점을 상대로 할당 물량을 강매해 갑질 사건으로 이름을 떨치던 서양유업이 또다시 실시간 검색어로 등극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공개된 증거자료.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에 모든 내부 자료가 유포되었다.
신태주 대표와 인수합병에 대해 논의하던 안동근 회장의 목소리가 녹음된 음성파일도 풀렸다.
사돈 기업이라는 사실에 더해 도덕성까지 문제 삼았다.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지만 서양유업은 침묵했다.
그사이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반품 사태로 이어졌다.
지역 맘 카페 중심으로 소문이 번지면서 가장 먼저 영유아 엄마들이 분유를 바꿨다.
비도덕적 기업의 분유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이 미친 새끼! 날 왜 끌어들여!!!”
와장창!
회장실에 놓은 커다란 TV가 명패에 맞아 박살이 났다.
“하필 많고 많은 놈 중에 왜 나냐고!!!”
당사자인 안동근 회장은 한껏 여유를 부리다 불벼락을 얻어맞았다.
느긋하게 아침 회의를 마치고 나왔는데 느닷없이 회사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악몽 같은 하루.
인터넷과 언론에 안동근 회장의 이름이 몇 초 간격으로 오르내렸다.
언론에 돈을 풀어도 응하는 곳이 없었다.
이미 여론 폭우에 한계치를 넘어 터져버린 둑과 같았다.
찌라시 수준의 기사를 푸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공영 방송에서도 취재가 시작됐다.
서양유업에 대한 과거 갑질 사건까지 소환됐다.
안동근 회장은 하루아침에 개 쓰레기가 돼 버렸다.
곳곳에서 불매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게 순식간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서양유업 제품들이 수거되고 있다.
대리점에서 아우성이 났다.
주식은 폭락했다.
설상가상으로 큰딸의 부도덕한 결혼 생활까지 폭로됐다.
처녀시절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 중에도 호빠 출입을 했던 증거 사진이 유포됐다.
서양유업이 이어온 가문 전체가 손가락질을 당했다.
사돈 기업을 노린 패륜적 사업가 집안으로 전락했다.
삐이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 회장님. 재무이사님이십니다.
“들어오라고 해.”
- 넵!
비서들이 잔뜩 긴장했다.
스르릇.
회장실 문이 열렸다.
축 늘어진 어깨로 들어선 재무이사.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ⵈⵈ 큰일 났습니다!”
“큰일 뭐?”
오른팔인 재무이사 말에 안동근이 긴장했다.
“갑자기 은행으로부터 대출 연장 불가통보를 받았습니다.”
“뭐라고 연장 불가? 그럼 여유 자금으로 처리해!”
안동근이 큰소리를 쳤다.
“지난달 신사업에 거의 다 투자하고 200억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뭐라고? 겨우 그것밖에 안 돼? 그럼 일단 급하게 명동에 전화해 봐. 평소 거래하던 최 사장에게 연락하면 돼.”
“ⵈⵈ그쪽에서도 어음을 안 받겠다고 합니다. 담보를 요구했습니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재무도 탄탄한 회사 어음을 안 받으면 뭘 어쩌겠다는 거야!”
“주식 시장도 연속 하한가입니다.”
“끄응ⵈⵈ.”
안동근이 이마를 짚으며 인상을 썼다.
“얼마나 필요한데ⵈⵈ.”
“다음 달까지 버티려면 최소 500억 정도가 필요합니다.”
“500억! 미치겠네.”
안동근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비자금을 탈탈 털어야 딱 그 정도였다.
‘어떤 새끼야! 누가 개수작질이야!’
안동근의 속에서 천불이 솟았다.
“설마!!!”
그때 갑자기 스치듯 떠오른 이름. 그 공포스러운 이름 때문에 안동근 회장의 인상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입에 담기도 꺼림칙한 대한민국 기업들의 저승사자.
‘장태산ⵈⵈ 설마 너냐!’
***
- 형님ⵈⵈ. 덕분에 진짜 제대로 세상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병법으로 손 하나 안 대고 코를 풀다니! 존경합니데이!
귀신이 이제 사투리까지 썼다.
존경까지는 모르겠고 일단은 성공했다.
신태주를 이용해 서양유업을 제대로 한 방 먹였다.
아유라가 특별히 부탁한 일이었다.
오양식품을 살리려다 알게 된 서양유업의 만행.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건 아니지만 용서가 되지 않았다.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 조치했다.
평소 상대하던 그룹들보다 사이즈가 작았다.
탄탄하다고 평가받고 있었지만 그건 하위 레벨들 사이에서나 듣는 소리였다.
알고 있는 은행장을 통해 넌지시 정보를 흘렸다.
서양유업에 대한 신태주의 폭로가 1차로 뜨겁게 여론을 달궜다.
권력자들이 서둘러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
신태주에게 몰아 버렸던 것처럼 그 대상이 자신들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었다.
한순간 서양유업의 신용이 바닥을 쳤다.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사채 이용설도 양념으로 뿌렸다.
허 대부가 측면에서 도움을 줬다.
젖소를 허 대부, 아니 허보영이 노렸다.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 그녀 역시 똑똑했다.
변호사가 되어 이론까지 겸비했다.
단숨에 서양유업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젖소 젖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사기를 치면 안 될 일이었다.
무려 아이들이 먹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젖소 젖이다.
그런 걸 취급하는 기업은 정직해야만 한다.
- 젖소를 키운다는 말에 그런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하사 부탁드립니다.
귀신이 아부드립을 쳤다.
안 믿는다.
미녀들과 아는 체만 하면 또 문어발이라며 침을 튀길 게 뻔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당분간 귀신을 멀리 보낼 생각이다.
온전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장립과의 이별이 필요했다.
- 회장님. 장립 대표님이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십시오.”
- 네!
요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임성철 회장을 특별히 불렀다.
얼굴 보기 힘들었다.
일이 끝나면 여자친구와 매일 데이트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좋을 때다.
- 형님 너무 풀어 놓으신 거 아닙니까? 요즘 뭔지 모르지만 임 회장님 수상해요. 느낌이 쎄합니다.
귀신이 자신도 신이라고 지레짐작을 한다.
제 몸으로 잘 살고 있으니 억울하고 질투가 날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임성철 회장님에 대해 질투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귀신이 아니라 성자다.
귀신, 너나 잘하세요.
- 저만큼 잘하는 비서 귀신 봤습니까? 불철주야 형님 옆에서 조언도 하고 농담도 해주는 AI비서 아닙니까.
장립 귀신은 매번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내가 자는 사이 TV로 공부를 제법 많이 했다.
직접 만질 수는 없지만 세상에 뿌려진 정보를 가공해 스스로의 소양을 업그레이드했다.
자신의 말처럼 AI급 비서가 되려고 했다.
물론 아직까지 큰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르릇.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활짝 웃으며 임성철 회장을 맞이했다.
“장 회장ⵈⵈ.”
“무슨 일 있습니까?”
임성철 회장은 안 본 사이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다.
- 밤마다 기력을 탕진하면서 놀고 있으니 저렇게 되지요. 연세도 생각하시지ⵈⵈ 쯧쯧.
귀신이 임성철 회장의 몰골을 보고 혀를 찼다.
기력 문제가 아니다.
내가 몸을 개조하며 이것저것 좋은 걸 많이 사용했다.
평범한 일반 남자로서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의 체력 조건을 갖고 있었다.
마법과 성수의 힘이 그래서 대단하다는 것이다.
“휴우ⵈⵈ.”
자리에 앉으며 임성철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심상치 않다.
“ⵈⵈ.”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 집안일인 거 같은데ⵈⵈ 다 큰 자식들이 사고 친 거 같습니다.
오정은 아직 특별한 일 없이 조용했다.
임준형 부회장은 대범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본격적으로 오정 주인으로서 그룹을 이끌었다.
뛰어난 인재들이 많으니 똘기만 부리지 않으면 오정은 알아서 굴러갈 것이다.
임윤아를 비롯해 자매들도 다른 타 기업들보다 조용했다.
본래 조용한 임아진 전무는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욕심꾸러기 임아현도 한 방 터진 뒤부터는 잠잠했다.
임윤아도 경영수업으로 하루하루가 바빴다.
내가 보기에는 임성철 회장이 걱정할 만큼 큰 문제가 없었다.
“피곤하신 거 같습니다. 러시아에 가셔서 좀 쉬시겠습니까? 아직 여름이라 사냥하기 딱 좋습니다.”
- 형님! 러, 러시아라니요! 지금 회장님과 함께 저를 묶어서 멀고 먼 오지로 귀향 보내려 하십니까!
귀신의 눈치가 더 빨라졌다.
바로 내 의중을 알아챘다.
“그건 불가능하네.”
“네?”
임성철 회장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평소 내 말을 따르던 모습과 달랐다.
귀신 말처럼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뭔지 모르지만 쎄한 기분이 뒷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 회장ⵈⵈ.”
임성철 회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네ⵈⵈ.”
분위기가 이럴 때마다 뭔가 하나씩 부탁을 해온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조용히 고민하고 있는 임성철 회장을 바라봤다.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이 몇 번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오정 문제라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누가 봐도 나는 오정과 끈끈하게 얽혀 있는 몸이다.
임윤아 때문에라도 최대한 잘해줘야 한다.
“그게 아니라ⵈⵈ.”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 참 답답하시네! 회장님! 속 시원하게 말씀하세요!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을 못 합니까!
참다못해 귀신이 나섰다.
그 순간.
“장 회장ⵈⵈ. 어떡하나! 나, 큰 사고 친 것 같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