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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장. 사과의 방법(3). (962/1,284)

973장. 사과의 방법(3).

“사과해줬으면 좋겠어.”

“사과? 내가?”

“응.”

“푸하하하하하하하.”

두 여자가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남의 프라이빗 와인바, 그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VIP룸.

위기에서 벗어난 오양식품의 아유라가 맞은편에 앉은 여성을 차갑게 노려보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아유라의 굳은 표정과는 상관없이 맞은편 여성은 와인잔을 기울이다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런 여인을 매서운 눈초리로 응시하는 아유라.

두 눈에는 경멸의 빛이 담겼다.

“왜 그랬어. 우리가 남도 아니고.”

“남 맞아.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잖아.”

“사돈이잖아.”

“무늬만 사돈이지. 이제 곧 언니가 이혼할 텐데 우리 관계가 뭐든 무슨 의미가 있지?”

“조카들은?”

“아씨 집안 새끼들인데 그것까지 따져야 돼?”

“언니 진짜 무서운 여자구나.”

“무서운 게 아니라 현실적이라고 해줘. 서로 먹고 먹히는 정글 같은 사업 관계에서 착한 이웃들이 넘칠 거라고 믿는 건 아니지?”

아유라를 향해 훈계의 말을 뱉어내는 안소연.

웃고는 있지만 막상 안소연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오양식품 작업이 실패로 돌아갔다.

모든 계획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지만 단 하나의 변수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장태산과 무슨 계약을 맺은 거야? 설마ⵈⵈ.’

안소연은 자신보다 외모가 뛰어나고 젊은 아유라를 기분 나쁜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시간과 돈, 그리고 정성을 들여도 젊은 세포는 이길 수 없었다.

30대인 자신과 달리 20대인 아유라는 자신만의 싱그럽고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자신이 남자였어도 아유라에게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

“왜 찔려? 장태산에게 몸을 팔기라도 한 거야?”

“언니!!!”

“맞네.”

안소연이 피식 비웃음을 보였다.

계획했던 것처럼 오양식품을 무너트리지 못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아유라를 모욕해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았다.

안소연의 막말을 듣자 분노로 몸을 가볍게 떠는 아유라.

“언니라는 말은 마지막으로 부를게.”

“마음대로 해. 어차피 우리가 따로 봐도 웃고 지낼 사이는 아니잖아?”

안소연은 아쉬운 게 없었다.

서양유업은 기반이 탄탄한 기업이다.

오양식품보다 재계 순위도 상위 그룹에 속했다.

이것저것 벌인 사업이 가시권에 올라 있기도 하다.

인맥도 자신이 더 넓었다.

‘넌 끝났어.’

안소연은 그 틈에도 아유라를 완전히 보내버릴 만한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장태산과 그렇고 그런 얘기로 엮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문을 퍼뜨리면 끝이다.

누가 봐도 합리적 의심을 살 만한 상황이었다.

몸을 팔아 기업을 살렸다는 스토리 정도면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좋은 혼처에 시집가는 건 물 건너간다.

아는 기자들만 해도 차고 넘쳤다.

이 정도 이슈라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제야 알겠네. 네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눈빛이 빛난다는 걸.”

아유라가 말을 놓았다.

더 이상 친한 언니가 아니라, 낯선 타인을 대하는 듯한 시선과 자세였다.

“심리학도 배웠나 보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애가 왜 홍영기하고는 엮였을까?”

“네가 소개시켜줬잖아. 그리고 널 믿었고.”

아유라가 지난 일을 떠올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턱대고 가족이라고 믿는 게 바보 아닌가?”

“그래 내 탓으로 할게. 널 친한 언니라 믿었던 내가 바보였어.”

아유라는 격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안소연을 상대했다.

‘이것 봐라. 은근히 기분 나쁘네.’

웃고 있지만 안소연은 태연하고 여유 넘치는 아유라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화를 내고 욕을 퍼부어대는 게 더 편했을 자리였다.

그러나 이미 승자라도 되는 양 아유라는 한껏 여유로웠다.

“오늘 이별주는 내가 살게.”

쪼로록.

아유라가 잔에 와인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회사 어렵다는 데 괜찮아? 혹시 비자금 같은 거 꿍친 거 아니지?”

“소문 못 들었어? 채무비율이 20%대로 쭉 내려갔어. 그리고 너네 집안처럼 비자금 좋아하지 않아, 우린.”

“장태산에게 빌린 건 돈 아닌가?”

“응. 돈 아니야.”

“세컨 유지비용치고는 많네.”

“생각하는 수준하고는ⵈⵈ.”

아유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혀를 찼다.

아유라가 주도하는 분위기에 점점 말려드는 안소연의 표정이 굳어갔다.

“여기 나가는 순간부터 너와 난 모르는 사이다. 그 점 명심해.”

“내가 할 소리야.”

“남자 잘 만나 인생 폈네. 아유라.”

“태산이가 날 받아줬으면 여한이 없겠는데 그게 아니라서 어떡하지?”

“됐어. 누가 그 말을 믿어.”

“그래 말해도 못 믿겠지. 어차피 넌 한쪽으로 쏠리 광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고 있으니.”

“뭐라고?”

안소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계속 아유라에게 밀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못 보던 사이 아유라가 많이 변했다.

얼마 전 자신에게까지 찾아와 돈을 융통해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대던 아유라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몸에서 풍겨 나오는 가진 자의 여유.

가짜가 아니었다.

꿀꺽.

아유라는 단숨에 스스로 채운 잔을 비웠다.

“한때는 피를 나눈 자매처럼 생각했던 나를 비웠다. 안소연ⵈⵈ. 너 이제 긴장 좀 타야 할 거야. 내가 독하게 각성했거든.”

“몸 팔아서 살아난 주제에.”

“넌 팔릴 것 같아? 얼굴에 주름 봐. 화장으로 커버가 된다고 생각해? 아직 보톡스 맞을 나이도 아닌데 안타깝네.”

봐주지 않고 팩트 폭격을 실시하는 아유라.

“야! 아유라!!!”

“왜! 안소연!!!”

파바바밧!

두 여자의 기가 테이블을 중앙에 놓고 눈앞에서 부딪쳤다.

한때는 말할 것도 없이 친하게 지냈던 인연이 순식간에 악연으로 둔갑했다.

“언제까지 장태산이 널 보호해줄 것 같아? 그 자식 주변에 너 같은 여자들 엄청 많은 거 모르지?”

“알아.”

“얼굴과 한국대 학벌이 아깝다.”

“너와 네 집안 걱정이나 해.”

“걱정 마.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나와 우리 집은 잘 먹고 잘살 테니까.”

“과연 그럴까?”

아유라가 입가에 조롱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서양유업이 오양식품 같은 줄 알면 착각이야.”

“그건 지켜보면 알겠지.”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ⵈⵈ.’

왠지 모를 찝찝함에 안소연의 인상이 살짝 굳어졌다.

스윽.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유라.

“이런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많이 즐겨.”

“아유라. 우리 언니 이혼하면 오양식품 타격 좀 입을걸?”

“그 반대는 생각 안 해?”

“뭐?”

“새언니 전적이 화려하더라. 거의 사기 결혼 수준이던데? 남자 몇몇과 동거 사실도 있고. 결혼 후에도 주기적으로 호빠 선수들 만난 거 알지?”

“ⵈⵈ.”

아유라의 말에 안소연이 입을 다물었다.

나름 철저하게 덮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유라도 모두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는 것 맞네. 우리 담당 변호사가 그러던데. 이 정도면 위자료를 듬뿍 받아도 될 거라고 말이야. 그리고 결혼 전에 상속받은 주식은 분할 대상이 아닌 거 알지? 결혼 후에 받았던 주식도 모두 팔아 빚 갚아서 없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사고를 많이 쳤잖아.”

“!!!”

안소연은 아유라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한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주식도 빨리 처분하는 게 좋을걸? 태산이 쪽에서 감자하고 신주인수권 작업 들어갔어. 똑똑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 거야.”

‘이것들이!’

장태산은 안소연도 경외시하는 인수합병 및 투자전문회사의 실질적 주인이었다.

자본금이나 인맥에서 월등히 차이가 났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아유라가 활짝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펴들었다.

“사돈어른 잘 보필해. 집에서 편하게 식사하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뭐, 뭐라고?”

안소연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갈게. 약속했듯 앞으로 우리 서로 모르는 사이다.”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아유라.

“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안소연이 다급하게 아유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쳐 물었다.

“그건ⵈⵈ. 직접 당해보면 알 거야. 피가 마르고 살이 타들어 가는 그 고통을.”

문 앞에서 등을 보인 채로 뒤돌아서서 차갑게 말을 내뱉는 아유라.

스르릇.

문이 열리자 의미심장한 여운만 남긴 채 사라졌다.

털썩.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는 안소연.

“재수 없게ⵈⵈ. X년이!”

혼잣말처럼 거칠게 욕을 퍼부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

“장태산.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

- 아! 이 얼마 만에 맡아보는 캠퍼스 잔디밭 냄샌가! 

잡귀 너 냄새는 맡을 수 있어?

오랜만에 학교에 왔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4학년 2학기 졸업 학기.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을 했다.

그사이 말도 못 하게 일이 많았다.

어느 정도 일이 정리된 시점에 졸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학교는 역시 옳았다.

9월의 햇살 아래 캠퍼스는 활기가 넘쳤다.

신입생의 때를 벗었지만 아직도 풋풋한 1학년들은 여전히 표가 났다.

예비역들은 곳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겼다.

인재들이 모여 있는 한국대라지만 이곳도 역시 보통의 대학교였다.

치열한 사회와 달리 아직은 약간의 여유로움이 남아 있었다.

- 형님. 꼭 냄새를 맡아봐야 압니까? 갬성이 중요하지.

갬성? 이 미친!

갈수록 한국 문화에 제대로 물들어가는 귀신 장립.

화교가 아니라 한국 귀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고개를 저으며 법학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끼이익.

다른 차들 틈에서 확 눈에 띄는 빨간색 스포츠카.

법학과 재학생이 거의 사라진 법학관은 이제 얼굴도 모르는 로스쿨 생들에 의해 점령됐다.

딸깍.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누구?”

“로스쿨 학생 맞아?”

“처음 보는데ⵈⵈ.”

오고가는 로스쿨 학생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이제 내 모습도 일반 학생들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사회생활의 흔적은 대학생이나 로스쿨 생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나이는 비슷했지만 경험에서 묻어나는 연륜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청바지에 가벼운 셔츠 차림이지만 기세부터가 눈에 확 띄었다.

- 흐흐. 형님은 언제나 인기인이십니다. 여학생들 눈 돌아가는 소리 들리세요?

왜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회장님도 있잖아!

- 재미없어요. 회장님 매일 같은 여자만 만나잖아요. 정말 웃긴다니까요! 자기가 순정파도 아니고ⵈⵈ.

하긴 요즘 임성철 회장은 무척 바쁘다.

장립 신분으로 여기저기 많이도 뛰어다닌다.

일 처리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그 덕분에 내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문제가 있긴 있었다.

나머지 시간에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매일처럼 꽁냥꽁냥 데이트를 즐겼다.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볼 만큼 경험해 본 어른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 어! 형님 저기요! 저기 보세요! 몸매가 완전 죽입니다!

그때 장립이 뭔가에 홀린 듯 소리쳤다.

녀석이 말하는 곳을 바라봤다.

법학관에서 걸어 나오는 여인의 실루엣이 눈에 띄었다.

- 완전 제 스타일입니다!

치마 두르고 적당히 미모만 받쳐 주면 모두 다 본인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장립.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장 변!”

그때 막 법학관에서 걸어 나오던 여자가 날 확인하고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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