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2장. 기분이 어때?
- 그것 참 비명이 찰집니다. 흐흐.
귀신 장립이 대리만족 제대로 만끽한다.
손에서 느껴지는 신연주의 맥박이 거칠게 느껴졌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돌입했다.
사악한 검은 오라로 전신을 뒤집어썼다.
오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살기도 드러냈다.
일개 사회 초년의 실습생이 내뿜는 살기치고는 색이 너무 진했다.
그동안 주희를 향해 꾸준히 뿜어졌을 독기.
마음이 아파오는 동시에 분노가 일었다.
한 주먹도 안 되는 것들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사람들을 농락하고 세상을 지배하려 했다.
쥐꼬리만 한 힘으로 선량한 주변인들을 괴롭히는 쓰레기들이 너무 많았다.
내 손에 잡힌 종류가 다른 악마도 그랬다.
좀 더 성장하면 나중에 볼 만한 진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아랫사람들을 발꿈치 때만도 못한 존재로 여길 인간형이었다.
그 전에 싹을 아주 팍 잘라야 한다.
“장주희! 이거 안 놔! 너 미쳤어!”
신연주가 날 똑바로 쳐다보며 악을 썼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자신이 나에게 했던 행동은 기억에도 없는 듯했다.
전형적인 감정 사이코다.
봐줄 필요가 전혀 없다.
손에 좀 더 힘을 강하게 주며 살살 비틀었다.
“아악!”
신연주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반쯤 따라서 비틀었다.
보기 싫은 면상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 이거 아침부터 막장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뭡니까?
때마침 오 차사도 등장했다.
웬일인지 그간 나에게 보였던 적개심이 사라졌다.
웃는 얼굴로 인사까지 건넸다.
- 어서 와. 이런 상황 목격은 처음이지?
- 무슨 소리야. 병원 응급실에서는 이런 상황은 일도 아냐.
- 그래?
- 그래도 재밌네. 저 교수 완전 밥맛이거든.
- 지옥행 확정?
- 아마도 그럴걸?
오 차사와 장립은 평소처럼 사이좋게 대화를 나눴다.
누가 봐도 신상주는 천국에 가기는 글러먹은 캐릭터였다.
“너 그 손 안 놔!”
조카 신연주가 당하자 신상주가 나섰다.
“싫은데요?”
“야! 장주희!”
신상주 교수의 눈이 홱 돌아갔다.
지금 당장 혈압으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자신이 마음껏 영유하던 영지에서 반란 사건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신연주를 제압하자 레지던트들과 동기들도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사건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그들도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 형님. 확 분질러 버리세요!
잠재돼 있던 장립의 성격이 과격한 형태로 드러났다.
전직 갱단다웠다.
- 함부로 사람 몸 상하게 만들면 포인트 깎여. 저럴 때는 법대로 해야지.
- 법? 지금 이 상황에 법 찾게 생겼어?
- 글쎄……. 난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오 차사가 나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강 차사를 만난 뒤 기존의 생각을 바꾼 것 같았다.
적대감 대신 전에 없던 호감이 감지됐다.
그건 그렇고 지금쯤이면…….
고개를 살짝 돌려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 쪽을 살폈다.
이곳에 오기 전 깔아놓은 판이 있었다.
원래 범죄자는 일망타진하는 맛으로 잡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법이다.
길게 끌 것도 없었다.
오양식품에 대한 지원도 아침에 이미 다 끝냈다.
은행 문이 열리기도 전에 미리 행장들에게 연락해 처리했다.
사채 쪽도 허대부 어르신이 맡아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병원 내의 쓰레기들 처리.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가오는 두 남자.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살아 있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 왔네! 미래의 후배님들이.
오 차사가 내 계획을 알아챘다.
이제는 적당히 끝내야 할 때.
손목에 힘을 살짝 더 주었다.
***
“!!!”
모두가 다시 한 번 놀랐다.
연약해 보이는 장주희가 과감하게 신연주의 손목을 쥐고 비틀었다.
호신술이라도 배운 듯 기술이 제대로 들어갔다.
“아파! 이 손 놓으라고!”
신연주가 악을 썼다.
팔목이 비틀려 몸이 반쯤 꺾인 채 고개를 처박고 비명을 토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누구 마음대로 내 몸에 손을 대?”
장주희가 웃는 얼굴을 하고 호통치듯 말했다.
신연주는 물론 지켜보고 있는 신상주 교수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죽여 버릴 거야! 장주희 너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앙칼진 목소리가 외과 병동 복도를 흔들었다.
고개를 아래로 처박은 신연주의 눈동자가 뒤집어졌다.
그동안 쌓였던 장주희에 대한 악감정이 모두 터져 나왔다.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전형적인 악녀 캐릭터였다.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정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네가?”
장주희가 비웃듯 되물었다.
수려한 외모와 잘 어울리는 시크함.
신연주와 확연히 비교됐다.
“놓으라고! 이 나쁜 년아!!!”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자 신연주가 연신 악을 썼다.
턱.
신연주가 잡은 팔을 가볍게 밀쳐내는 장주희.
“너…….”
신연주가 분노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희들 뭐야! 지금 방관하겠다는 거야!”
신상주가 조카 옆에 서서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교수님. 체통 지키세요. 환자분들이 보고 계시잖아요.”
이번에도 장주희가 차갑게 경고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흐르는 얼음장 같은 시선에 순간 신상주는 움찔했다.
‘나이도 어린 게 어떻게 저런 눈빛을…….’
무시하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싹 사라졌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신상주는 섬뜩함을 느꼈다.
맹수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작은아빠. 그냥 놔두실 거예요? 저것들이 우리를 무시하잖아요!”
신연주는 이미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삼촌과 조카 사이였어?”
“어머…… 앙칼진 게 똑같네.”
“여자애가 버릇이 없어 보이네.”
싸움 구경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뒤섞여 뒤에서 수군거렸다.
외과 병동에서는 극히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신상주 교수가 복도에 나타나면 그 밑에 있는 의사들은 모조리 긴장을 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합심한 듯 신상주 교수를 몰아붙이는 듯한 형국이었다.
“너희들…… 다 기억해 두겠어!”
신상주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둘러보며 이를 갈았다.
눈에다 몇 사람을 제대로 찍어 담았다.
“교수님께 그럴 만한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네요.”
역시 장주희가 피식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장주희……. 네 오빠를 믿고 까부는 것이냐?”
“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오빠가 잘나가거든요.”
“네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다!”
신상주는 대놓고 장주희를 손보겠다고 선포했다.
악독한 말들을 줄줄 쏟아내는 삼촌과 조카.
모두들 직접 확인하게 된 그들의 진면목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럴 기회가 없을 거라니까요.”
장주희가 다시 한 번 생긋 웃으며 한마디 더 했다.
분명 학부생 신분임에도 교수를 협박하는 데 있어 여유로움이 엿보였다.
“닥쳐! 네 오빠도 함께 보내 버릴 테니까!”
신상주 교수는 꼭지가 아주 완벽하게 돌아있는 상태였다.
부아가 치밀어 올라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혈압이 치솟아 터져 버릴 판.
“제 말을 못 믿으시네…….”
장주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그때.
“신상주 교수님이 누구십니까?”
두 명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가 등장했다.
아주 조폭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생긴 두 남자.
등장하자마자 대뜸 신상주 교수를 찾았다.
“나요.”
신상주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남자 둘이 신상주 교수에게 다가섰다.
사냥감을 발견한 노련한 사냥꾼 같은 눈빛이 인상 깊었다.
“당신들 뭐야! 가까이 다가오지 마!”
신상주가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낀 듯 소리쳤다.
두 남자에게서 풍기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이상함을 느꼈다.
스윽.
신상주 앞으로 다가온 남자 중 한 명이 신분증과 종이 서류를 펼쳐 보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지원팀 유태성 경위입니다. 신상주 교수님을 뇌물수뢰죄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뭐, 뭐라고!”
“체포영장 보이시죠?”
신상주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한국대는 국립병원이었다.
리베이트를 받게 되면 뇌물죄로 판단했다.
그 사실을 알고 항상 조심한다고 했는데 사건이 터졌다.
마약류 또한 마찬가지.
아는 지인들이나 암에 걸린 상류층들이 따로 부탁하면 마약성 진통제를 몰래 전해주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빼돌렸는데 그것까지 들통이 난 것 같았다.
“교수님은 변호사를 선임하실 수 있고 불리한 증언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미란다 원칙을 읊어주는 유태성 경위.
목소리에서 굵은 쇳소리가 났다.
교수라고 특별히 봐주지는 않았다.
“이 경사. 연행해.”
“넵!”
대기하던 형사가 신상주 교수에게 다가섰다.
“연행! 누구 마음대로! 나 한국대 병원 외과 과장 신상주야! 너희들 죄 없는 사람 잡아가면 벌 받아! 내가 가만 놔둘 것 같아?”
신상주가 최후의 발악을 하며 발버둥쳤다.
그리고 죄질 나쁜 지성인의 탈을 쓴 자들이 그러하듯 뻔한 대사를 남발했다.
“수갑 차시고 가시겠습니까?”
이런 일에 이골이 난 형사들답게 가볍게 인상을 한 번 썼다.
“…….”
수갑이라는 말에 신상주가 몸을 떨었다.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거라 여겼던 일이 터지자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신상주는 앞이 캄캄했다.
“잠시 교수님과 대화를 나눠도 될까요?”
장주희가 형사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형사들을 바라보는 눈빛에 애절한 감정을 실었다.
“잠시만입니다.”
“네.”
장주희가 신상주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멍하니 서 있는 신상주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는 장주희.
“내가 준비한 큰 선물…… 기분이 어때?”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