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5장. 좋은 파트너(2). (944/1,284)

955장. 좋은 파트너(2).

“임준형을 만났다고?”

“장태산 주선으로 만난 것 같습니다.”

“빠르군.”

“장립은 행동력이 남다른 자입니다.”

“맞아. 종잡을 수가 없지.”

홍콩 저택의 집무실에서 리장창이 보고를 받았다.

장립이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확인해 봐야 할 일들이 많았다.

장립이 진짜 중국에 이로운 쪽인지는 물론 사업 역량이 충분한지 모두 궁금했다.

베이다이허에서 보였던 정치력은 확인이 됐다.

미국에서의 사업 역량은 증명했지만 한국에서의 사업은 또 방향이 달랐다.

괴물이나 진배없는 장태산을 주목해야 했다.

놈이 설립한 장주시 연구소는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중국 쪽과 접촉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대리권을 쥐고 있는 엘자와의 관계에서도 일이 자꾸 틀어졌다.

중국이 원하는 건 완벽한 기술 이전이다.

대기 정화 기술과 결합된 쓰레기 화력발전소는 누가 봐도 혁명이 아닐 수 없었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각종 유해 기체를 자체로 걸러내는 신기술이었다.

거기에 더해 마법처럼 정화된 산소로 변환된다는 신공법.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지만 실증 사례가 동영상을 통해 일부 공개됐다.

장주시 연구소 명의로 발표된 각종 수치들.

동영상을 통해 확인한 순간 몸 안의 모든 세포가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

대기 공기 오염으로 수 많은 인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 고통의 크기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고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으로 이어졌다.

중국 정부도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낙후된 산업 시설을 모두 정비하기에는 자본이 턱없이 부족했다.

또 싼 화석 연료인 석탄을 일시에 버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인민들의 생활에 절실한 난방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사용되고 있는 값싼 중국 석탄.

황 성분이 많아 유해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화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국내 채굴이라 비용이 저렴했다.

아직 대체 연료를 생각할 만큼 국가 사정이 좋지 않았다.

반도체를 비롯해 고부가가치 산업에 도전 중이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대만이나 일본, 한국 연구인원들을 스카우트해 필요한 도면이나 필요한 노하우를 빼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모든 면에서 한참 부족했다.

그런 이유로 지적재산권 탈취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개발도상국에서 더 성장하지 못하고 중진국 함정에 주저앉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

그전에 기필코 이뤄야 할 중국몽.

생각지 못하게 이 시점에 장립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장립이 여자를 무척 좋아합니다.”

“소문이 사실이었어?”

“트럼프 파티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낯선 여인과 쉽게 밤을 보냈습니다.”

“젊은 녀석이라 다르군.”

리장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피가 뜨거운 젊은 청춘에 장립은 싱글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베이다이허에서도 염문을 뿌렸던 그였다.

대놓고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능성을 그때 확인했다.

그와 한 번이라도 어울렸던 여자들 모두 장립에게 호감을 표했다.

타고난 바람둥이나 마찬가지였다.

“장태산과도 꽤 친분을 쌓은 듯 가깝게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장태산 사무실에서 장시간 시간을 보냈습니다.”

“좋은 현상이야.”

장립은 한국에 가기 전 분명히 말했다.

장태산을 반드시 포섭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경호를 비롯해 일체 편의를 받고 있습니다.”

“장태산은 바보가 아니야. 우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어느 정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래도 장립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건…… 다분히 계산적 행동이지.”

리장창은 자신의 추측을 의심하지 않았다.

장태산도 중국을 배제하고 사업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휴전을 맺은 상태지만 여전히 서로를 믿지 않았다.

그때 하늘이 주신 기회처럼 나타난 장립이 그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알고도 서로 못 본 척하는 수준.

한 다리 건너 이어지는 사업 추진이었다.

“지금은 엘자그룹 회장을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일이 생각보다 빨리 추진되고 있는 것 같아.”

“발표된 자료대로라면 엄청난 기회입니다.”

“맞아. 기술만 빼낼 수 있다면 압도적인 물량과 자본으로 싹 쓸어버릴 것이야. 흐흐흐.”

리장창은 신기술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자신 있었다.

미국은 사기업이 독보적인 강세를 보이지만 중국은 필요할 때 국가가 지원을 전폭적 아끼지 않았다.

아직도 중국을 하류 국가로 여기고 있는 어리석은 미국 정부.

날카로운 이빨이 다 채워지기 전까지는 최대한 모든 걸 감추는 게 좋았다.

로비스트들에 투자되는 돈도 아끼지 않았다.

오바마도 중국에 호의적인 입장.

그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어설픈 성자 흉내를 내고 있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안녕과 부에 있다는 걸 오바마는 여전히 몰랐다.

국력은 세계 최강인지 모르지만 개별 시민들의 삶은 유럽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미국.

중국 정부는 반면교사를 삼아 미국을 연구했다.

그리고 중국 실정에 맞게 투영시켰다.

지금까지는 의도한 대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장태산이라는 되지도 않는 변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분명히 그랬다.

“경호 인력은 더 증원할까요?”

“놔둬. 한국은 안전한 곳이야. 괜히 장태산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어.”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자네도 철저히 준비해. 장립이 홍콩에 돌아오면……. 반드시 휘어잡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갈유량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장립이 마다한 자신의 조카.

누가 봐도 매력이 넘치는 아이임에도 장립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 일만 떠올려도 자존심이 상했다.

‘장립……. 네가 원하면 그 어떤 꽃이라 해도 꺾어다 주마!’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감정적 회오리에 휩쓸린 제갈유량.

리장창과 제갈유량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허수아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투두두둑.

사무실 창밖으로 빗방울이 내리쳤다.

타다다닥.

서류 작업 중이던 분주하게 움직이던 서유나의 손길이 멈췄다.

비가 오자 거짓말처럼 그 남자가 떠올랐다.

태어난 가정의 환경이 전혀 자신이 바라던 삶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공사장 잡부에 엄마는 파출부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집안이었다.

어린 동생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 흔한 과외 한 번 받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서유나.

환경을 탓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독하게 학업에만 매진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보이며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외모만큼은 빠지지 않았지만 그 흔한 미팅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학교 재학 당시는 물론 길을 걷다가도 헌팅을 당해봤지만 모두 다 외면했다.

일단 스펙을 쌓고 학점 관리하기도 바빴다.

고연대 경영학부는 사립대였다.

장학금을 놓치는 순간 온갖 알바을 뛰어 그 돈을 채워야 했다.

매일처럼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터놓고 사귄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서유나의 독함에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앞만 보고 달리는 자신에 대한 뒷담화를 시간이 지난 뒤 듣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공부 잘하고 미모가 받쳐 주는 서유나는 여학생들의 타깃이 되기에 좋았다.

어느 날부터는 대놓고 시비를 거는 동기도 있었다.

애써 웃으며 그 시간들을 보냈지만 뒤에서는 참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난한 환경에서 그나마 자신만이 유일한 재산이었다.

조기 졸업과 동시에 엘자그룹에 합격했다.

동기들 중 가장 빠른 사회 진출이었다.

회사에 입사해 첫 월급을 받고 서유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회사 생활에 최선을 다해 충실했다.

주변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즈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대리급으로 회사 여자 동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남자였다.

그는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다.

한국대 출신으로 인물도 훤하고 성격도 좋았다.

그런 남자가 서유나에게 먼저 고백을 해왔다.

막무가내로 사귀어 달라고 했다는 말이 더 맞았다.

서유나가 처음 남자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꿈만 같았다.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남자가 변했다.

서유나의 집을 방문하고 온 날부터였다.

눈에 띄게 말이 적어진 남자.

서유나의 모든 걸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였기에 그의 달라진 태도에 놀랐다.

서유나의 집은 아직도 허름한 빌라의 반지하.

그래도 그곳에서 가족들은 화목했다.

‘개새끼.’

남자를 떠올리다 서유나는 정신을 차린 듯 치를 떨었다.

이미 그즈음부터 남자와 연락되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덩달아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서유나의 다른 입사 동기와 남자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동료들에게 목격되었던 시점이었다.

동기는 무려 임원 딸이었다.

그럼에도 서유나는 첫사랑이었던 남자를 애써 믿었다.

자신에게 보였던 헌신과 사랑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배신은 파국을 치달았다.

데이트를 하다 서유나의 눈에 딱 걸린 두 사람.

그를 믿고 있던 서유나는 충격을 받았다.

사과는커녕 남자는 차라리 잘됐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나왔다.

동기가 보는 앞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당당히 내뱉던 남자.

그때 받았던 치욕과 모멸감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자다가도 그 순간이 떠오르면 화가나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나가 지칠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날도 그랬다.

우산을 들고 빗속을 걷다가 우연히 장립을 봤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생각이 깊은 듯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이던 남자.

어디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갑자기 용기가 났다.

술을 마시고 싶어도 주변 시선이 꺼려져 밖에서 혼술을 못했던 서유나.

처음 만난 남자와 합석을 했다.

자신의 상처뿐인 연애사를 고백하며 그 남자와 술을 달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던 남자.

이상하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

처음 나누는 대화였지만 매 순간이 유쾌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가끔 나이 많은 상사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잘 생긴 얼굴과 유식함에 금세 개의치 않게 됐다.

그러다 깊은 새벽에…… 키스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코스 코스 코스.

‘내가 미쳤지.’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날 밤의 일들에 서유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모든 게 완벽했다.

전 남친도 채워주지 못했던 모든 헛헛함을 그 남자는 완벽하게 채워줬다.

‘장립…….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헤어질 때 서로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알고 있는 건 그 남자의 이름과 체취뿐.

누가 보면 완벽한 원나잇이었지만 서유나는 그 하룻밤으로 그간의 상처를 치유 받았다.

전 남자친구는 어린 애로 치부될 정도였다.

장립과 모든 면에서 확연히 비교됐다.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전 남친의 모습은 유치원생 수준처럼 보였다.

그런 남자에게 평생을 의지하려했던 과거의 자신이 우스웠다.

서유나의 행동은 그전보다 당당해졌다.

예전에는 전 남친을 회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위축되고 자존심 상했지만 이제 그렇지 않았다.

당당히 그를 보고 미소 지으며 스쳐 지나갔다.

‘너 까짓거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당당한 태도로 보여주었다.

우습게도 그날 저녁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나고 싶다고, 할 말이 있다고.

헤어지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서유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세상은 넓고 괜찮은 남자는 많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확인했다.

‘자기가 내 직속 상사야? 왜 오라 가라야.’

서유나는 전 남친을 생각하며 인상을 썼다.

계속 보내오는 문자와 전화도 신물이 났다.

스토커 기질이 다분했다.

짜증이 났다.

이런 모자란 녀석을 열렬히 좋아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똑똑.

그때 서유나 파티션을 누군가 가볍게 노크했다.

일시에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는 서유나.

며칠 전 발령받아 온 비서팀 업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찾아온 전 남친.

업무 특성상 기획조종실이 바로 옆에 있다 보니 벌어진 상황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쌀쌀하게 묻는 서유나.

“잠깐 업무적으로 얘기 좀 할까요.”

“업무요?”

공적인 일을 핑계로 말을 섞으려 했다.

기획조종실 업무 상당수가 비서팀과 조율을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최근 신설된 업무 비서팀.

일반 비서들과 업무가 달랐다.

기획조정실에서 넘어온 자료들에 대해 매끄럽게 수정하거나 검토해 고위급 임원들에게 제공했다.

더욱이 오늘은 중요한 손님도 방문 중이라 다들 긴장 상태였다.

“왜 싫어요?”

능글거리며 웃고 있는 전 남친.

웃고 있지만 눈빛은 이글거리는 분노를 품고 있었다.

“아닙니다.”

서유나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같은 팀 직원들이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바로바로 지금 상황이 각자 단톡방에 올라갈 게 확실했다.

또각또각.

서유나가 회의실로 앞장섰다.

“서유나. 너 그사이에 남자 생겼냐?”

“뭐라고요?”

“왜 그렇게 놀라? 너에게서 낯선 남자의 체취가 맡아지는데……. 찔리는 거 있어?”

능글거리며 비웃는 전 남친.

“홍 대리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이곳은 회사입니다.”

“농담? 넌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걸로 보여?”

와락.

회의실로 향하는 보이지 않는 복도 코너에서 와락 서유나를 잡아채는 전 남친.

“뭐, 뭐죠?”

“그 새끼 누구야?”

“누, 누구요?”

“소문 쫙 났어. 며칠 전 비 오는 날 같이 술 마셨던 그 새끼 누구야! 나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남자를 만나? 나한테 더럽다고 말하더니 너도 양다리였어? 그리고 고고한 척 지랄을 떨어? 이 가증스런 년이!”

눈에 핏발이 선 전 남친.

“고소할 거예요!”

서유나도 지지 않고 맞섰다.

“이년이!”

홍 대리의 손이 올라갔다.

눈을 질끈 감는 서유나.

턱!

그때 누군가 홍 대리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네가 그 양다리 걸쳤다던 개새끼냐?”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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