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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장. 위험에 빠진 후계자. (926/1,284)

936장. 위험에 빠진 후계자.

“엄마…….”

고승윤은 어린애처럼 엄마를 찾으며 서러움을 터트렸다.

장주희에게 맞은 기억 같은 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차라리 멍하던 정신이 어느 순간 총총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장주희의 말대로 자신의 선택이 부끄러웠다.

목숨을 끊더라도 이곳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응급실은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자신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순간 동료였던 전 의료진이 달려들 것이다.

즉사하지 않는 이상 수혈 팩이 줄줄이 달릴 것이다.

선후배들 모두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할 게 뻔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자신에게 있어 그 시간과 인력은 낭비였다.

어느 정도 온전히 돌아온 정신.

귀신 보는 여자 장주희는 사라졌다.

처음 볼 때부터 특이한 후배라는 생각은 했다.

본과 시절 예과를 다니던 장주희는 남자 선후배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많았다.

고승윤도 아름다운 장주희에게 눈이 갔었다.

남자들이라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 어떤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별하게 예뻤던 만큼 일찍 경쟁에서 물러났다.

집안 재력도 대단하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마음도 철벽을 쳐 놓아 틈이 없었다.

섣불리 고백했다 차인 용자들 숫자가 수십 명 단위를 넘었다.

먼 세상 사람 같았던 장주희가 같은 수술실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과 함께 수술복을 입은 장주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 참담했다.

게다가 옥상에서 자살하려던 것까지 들켰는가 하면 그녀에게 얻어터지기까지 했다.

부끄럽게도 장주희의 힘이 자신보다 셌다.

수백 대를 쉼 없이 맞는 순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맷집도 없던 몸뚱이가 신기하게 버텼다.

분명 얻어터질 때마다 피가 터졌지만 그 피 역시 멈췄다.

의구심이 들어도 의문을 길게 품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졌다.

정신이 들자 고통이 밀려왔다.

더는 맞을 수 없어서 아프다고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정말 개 쪽팔렸다.

상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장주희가 자신을 당골네 집안이라고 밝혔다.

또 오래 전에 죽은 엄마가 옆에 있다고 했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지만 엄마 얼굴에 있는 점 얘기를 듣고는 소름이 돋았다.

집안에서는 일찍 죽은 엄마의 사진을 거의 남겨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재혼을 했다.

엄마 사진은 고승윤의 오피스텔에 있는 게 전부다.

장주희는 절대 알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특이점을 장주희가 정확히 맞췄다.

“엄마……. 정말 내 옆에 있어요?”

고승윤은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믿기지 않았지만 어쩐지 따스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과거에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자신이 힘들 때마다 누군가 안아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기운을 느낄 때마다 어쩐지 힘이 났다.

스르르르릉.

대답 대신 바람이 불어와 고승윤을 부드럽게 스쳤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인데 어디서 생겨난 바람인지 모를 일이었다.

“!!!”

마치 그때의 그 손길 같았다.

죽어가던 그 순간 온힘을 다해 손을 뻗어 마지막으로 고승윤을 만지려했던 엄마의 손.

- 승윤아…….

바람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피를 흘리면서도 엄마는 입술을 움직여 어떤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고승윤도 사고 충격으로 멍해져 있었던 상황이었다.

눈에 보이던 빨간 피와 코끝을 자극하던 진한 피비린내가 당시의 기억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그때의 엄마와의 이별 장면이 떠올랐다.

“네……. 엄마.”

고승윤이 과거를 회상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피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마지막 숨과 애절한 눈빛.

가슴이 울컥 아리고 아파왔다.

아직 자식을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전달 됐다.

“진짜 옆에 계시는 거죠? 그날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흐으으윽.”

고승윤은 마치 그때의 어린아이가 된 듯 울음을 터트렸다.

또로록 맑은 눈물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 사랑해……. 그리고 행복하렴.

거짓말처럼 들려오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엄마의 아련한 목소리.

“엄마…….”

고승윤은 분명히 엄마의 음성을 듣고 느꼈다.

바람결을 타고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과 사랑이 담긴 그 목소리.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

두근두근.

심장이 쿵쿵쿵 뛰었다.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장주희가 무심히 한마디 내뱉고 간 말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좋은 시간 보내라고 했던 말.

또로로록.

고승윤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마음에 병으로 남아 있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지워지고 있었다.

피를 흘리던 모습 대신 환하게 웃으며 하늘로 날아가는 천사 같은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 저도 사랑해요.”

고승윤도 마음에 묻어둔 엄마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다.

입가에 번지는 해맑은 미소가 어린 고승윤의 모습과 똑같았다.

파아아앗.

고승윤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순간 그의 주변으로 밝은 빛이 터졌다.

그리고.

휘리리링.

고승윤 주변에만 바람이 머물다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엄마의 사랑을 흠뻑 느낀 고승윤이 깨달음을 얻은 고승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앉아 있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지급 받았습니다.

고승윤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향했다.

건물에 마련된 개인 룸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가끔 쉬기도 했던 곳이라 옷장에는 필요한 옷들이 늘 준비돼 있었다.

그때 마침 들려온 알림음.

고승윤의 트라우마가 치료된 것을 알았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자신만의 아픔.

고승윤은 이제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왔으니 앞으로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휘이~ 역시 몸매가…….

눈 감아라. 눈깔 확 뽑아 버리기 전에!

옷이 찢어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벗는 순간 잡귀가 휘파람을 불었다.

나도 눈을 감았다.

내 몸이지만 또 내 몸이 아니기도 했다.

마법을 해제했다.

파아앗.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 형님, 돌아오셨군요!

미친 잡귀.

무심결에 고개를 절로 저었다.

저승사자 오난향은 병원에 남았다.

그곳이 영업 구역이라 타 구역을 침범하면 안 됐다.

다른 곳보다 일이 더 많아 보였다.

한국대 병원이라고 해서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었다.

노환이나 중병으로 사망하는 이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나왔다.

“클리어!”

휘리리링.

마법으로 화장을 지웠다.

피부가 한결 개운했다.

문득 여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종류가 참 많았다.

대충 립스틱이나 하나 바르고 아이라인 그리고 분만 톡톡거려도 시간이 꽤 소요됐다.

“휴우. 이제 살 것 같네.”

화장이 지워진 맑은 피부가 제대로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윽.

가볍게 셔츠에 정장 바지를 받쳐 입었다.

그리고 깔끔한 캐주얼슈즈를 신었다.

고가의 시계나 다른 액세서리가 없어도 금방 스타일이 살았다.

- 진짜 몸 좋으십니다. 흐흐흐.

잡귀야, 그 음흉한 웃음은 뭐냐?

나를 보는 장립 귀신의 기운이 이상했다.

- 남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떠올라서요.

다소 변태기가 보이는 귀신과는 길게 말을 섞으면 피곤해졌다.

스르릉.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에 있는 나의 사무실로 향했다.

- 흥분됩니다.

시도 때도 없이 흥분하는 잡귀 녀석.

뭐가 흥분 돼!

- 형님이 직접 세계를 경영하시는 집무실 아닙니까. 뭔가 으리으리하고…….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갔다.

“회장님 오셨어요.”

아직 퇴근하지 않고 있던 유세라 상무가 활짝 웃으며 반겼다.

주변이 환해졌다.

“퇴근 시간 지났지 않습니까?”

“회장님 오신다기에 기다렸어요.”

“왜요?”

“당연히 보고 싶어서죠.”

- 으아아아! 형님! 이 절세가인은 누구십니까? 직원입니까? 제 이상형입니다!

됐다! 잡귀야!

미모의 여인들은 물론 예쁜 저승사자만 봐도 다 이상형이란다.

취향이 아주 롤러코스터 급이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유세라 상무 얼굴을 웃으며 바라봤다.

문득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아직도 남아 있는 캥거루 엑기스의 추억.

지난 시간의 무상함이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갈수록 예뻐지는 거 같습니다.”

“정말요? 친구들도 다 그렇게 말해요. 세월을 비껴간 방부제 미모라나 뭐라나. 이게 다 회장님 덕분이에요.”

- 형님 덕분이라고요? 왜요?

“잘 바르고 있죠?”

“네!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가지만…….”

“내일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네.”

“회장님은 정말 최고!”

“그렇게 좋습니까?”

“당연하죠. 회장님 곁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잖아요.”

-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도대체 뭘 드리는 겁니까! 저에게도 알려 주세요!

낚싯바늘 문 귀신 당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와이파이를 차단하는 새로운 기능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언니 그렇게 좋아?”

어느새 나타난 도도희.

“도 대표님도 퇴근 안 했습니까?”

“회장님께 보고 드려야 할 것도 있고 보고 싶기도 해서요.”

도도희 대표도 강해졌다.

과거에도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지만 거기에 여유까지 더해졌다.

피부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어느새 30대의 성숙한 여인이 됐다.

풍기는 분위기가 차가우면서도 도발적이다.

- 형님……. 이 도도한 미녀는 도대체 누굽니까! 으아아! 형님 혹시 진시황입니까? 주변에 얼마나 많은 미녀들이 있는 겁니까!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장립의 목소리.

“오랜만에 회식할까요?”

“정말요?”

“그 말을 기다렸어요. 회장님은 역시 센스 있으셔.”

두 여성이 진심으로 좋은지 활짝 웃었다.

오늘 나도 스트레스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날은 맛집에서 가볍게 술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띠리리리리리리.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익숙한 이름이다.

“장태산입니다.”

- 장 회장. 나야.

“네, 이사님.”

- 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

“상의요?”

- 임준형 부회장이 위험에 빠진 것 같아.

“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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