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4장. 긴급 회수(2).
‘이번에도 설마?’
오난향은 자신의 명부책을 살폈다.
빨간빛이 번뜩였다.
긴급 회수 명령은 자신의 운명이 다하지 않았는데 죽어버린 이들의 영혼을 회수하는 걸 의미했다.
긴급 회수 명령이 떨어지면 주변에 있던 차사들이 바빠졌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차사에게 1차 콜이 간다.
보너스가 많은 업무이다 보니 다들 경쟁적으로 긴급 회수 명령이 떨어진 영혼을 붙잡으려고 했다.
특히 자살을 한 영혼들은 악신 쪽에서도 노렸다.
그들에게 끌려가면 긴 시간 동안을 아둔한 노예로 살아야 했다.
저승사자 입장에서는 인간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참으로 안타까운 선택으로 보였다.
죽음 뒤의 일을 모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자살.
육도를 윤회하는 생명들 중에서 인간의 몸을 받기가 가장 어려웠다.
신들도 카르마 포인트를 엄청나게 소비해야 얻을까 말까 한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인간의 몸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물질체가 안착한 모태의 자궁에 영혼이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길었다.
자궁에 당도하기 직전까지 지난 생의 업풍에 의해 중도에 다른 유혹의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베풀기를 즐겨하지 않고 식탐을 부리며 살았던 이들은 대개 돼지의 태 안으로 빠져들기 쉽다.
살아생전 놀기 좋아하고 게으름을 피웠던 것이 습이 된 자들은 개의 태에 흘러든다.
주변에 빚진 게 많은 자들은 젖소로 태어난다.
타인을 괴롭히던 사나운 자들은 맹수들이 많은 곳으로 떨어진다.
본인이 살아생전 쌓은 복도 많아야 하지만 선대 조상들의 공덕도 있어야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마저도 요즘 세상에는 힘이 들었다.
시대가 변할수록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세태가 됐다.
환생의 기회를 어찌 잡아서 줄을 섰다가도 기다림에 지치거나 혹은 의지가 박약한 자들은 차라리 부잣집 개로 환생하기를 바랐다.
오온의 감각을 온전히 맛보고 또 그것으로 하여금 깨달음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는 인간의 삶.
그러다 보니 온전히 정신줄을 붙들지 못하고 넋을 놓고 살면 기회를 노리던 떠도는 귀신들이 서로 그 육신을 채가기에 바빴다.
죽어서야 알게 되는 육신의 귀중함.
그래서 살아생전 온전하게 정신을 붙들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힘들고 수고스럽지만, 생사고락을 온전히 견뎌낸 자들에게만 다음 생을 받을 기회가 찾아온다.
지금처럼 자살을 하는 경우에는 어렵게 얻은 인간의 삶을 저버린 것에 대한 처벌을 위해 지옥형벌이 기다렸다.
모든 영혼이 갖고 싶어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저렇게 스스로 박탈한 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물론 자살을 한 자들 중에서도 정상참작이 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신이 봐도 사는 게 참으로 딱한 이들이나 주변인들을 위해 살신성인의 길을 택한 이들에게만 허락됐다.
타다다닥.
뛰어내리려던 어리석은 자를 향해 진선이 내달렸다.
- 형님! 잡아요!!!
잡귀가 외친다.
‘긴급 회수 명령까지 거부할 수 있을까?’
오난향 차사는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차사의 시야는 인간과 달랐다.
극도의 미세한 시간들까지 모두 다 저장할 수 있었다.
진선이 왜 인간계에 머무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자신 같았다면 진작 신선계로 올라가고도 남았을 터였다.
레벨 또한 낮지 않았다.
차사인 자신도 두려워할 정도의 강력한 카르마의 힘이 느껴졌다.
저승에서도 고위 신들 수준에 들 정도다.
“으아아아아!”
어리석은 인간의 행동이 더 빠르고 민첩했다.
어느새 난간 위를 박차고 활공하는 인간.
저대로라면 죽음은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긴급 회수 명령에 성공하면 보너스를 받게 된다.
차사 직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되면 얻게 될 인간의 몸.
다른 저승 직종에서 차사직만큼 빠르게 업장이 소멸되고 포인트가 쌓이는 직업은 없었다.
외부 영업직이라 수당도 많았다.
돌발 사태도 많았고 영혼을 잘못 데려오면 경위서를 비롯해 각종 지옥들을 탐방해야 했다.
기간은 짧았지만 지옥 경험은 언제나 싫었다.
비명과 아비귀환의 현장, 오래도록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혼들에게만큼은 그 고통은 실재했다.
‘다시 태어나면…….’
오난향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한때는 이 땅에서 자신을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인물.
조선 3대 기생 오난향.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슬픈 인생을 살았다.
화려했지만 언제나 외로움과 동무 삼아 지냈다.
꽃을 꺾고자 오는 이들은 많았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건네는 이는 드물었다.
간간이 애절한 마음을 담았던 인연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찾아오는 손님은 줄어들었다.
일제 강점기가 되며 기생을 찾는 이들도 차차 사라졌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이치를 깨달았을 즈음.
자신을 좋아하던 어느 부잣집 남자의 첩으로 들어앉았다.
그 후로 조용히 뒷방에서 남은 여생을 살며 삶을 마무리 했다.
별난 것 없는 삶이었지만 한이 많이 남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팔려 다녀야만 했던 자신의 기구한 인생.
똑똑했지만 여자가 뜻을 펼치기에는 당시 세상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업도 많이 쌓았다.
순진무구한 이들을 홀려 가산을 탕진시켰다.
선과 악이 제대로 뒤섞여 업장이 쌓였던 지난 생.
오난향은 죽을 때 다시 한 번 사람의 삶을 살고 싶다며 빌었다.
다음 생에는 웃음을 파는 꽃이 아니라 진정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리라 다짐했다.
차사가 되어 정신없이 일을 하는 중에도 틈틈이 살폈던 대한민국의 세상.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다시 태어나도 되겠구나 싶었지만 아직 갚을 빚이 많았다.
업장이 두터워 다 갚자면 오래 걸릴 터였다.
후손들 일에 딱 한 번 개입했다 배로 기간이 늘었다.
저승차사가 되면 과거 인연을 무시해야만 했다.
가장 강력한 업무 수칙.
점점 전생의 인연들에 대한 인간다운 마음이 사라져 갔다.
그저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됐다.
그때 마주한 진선과 잡귀.
- 형님!!!!
잡귀의 비명이 들렸다.
난간에서 떨어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인간.
그 순간.
“날아올라라!”
진선의 입에서 가볍게 외쳐진 한 마디.
파아앗.
차사의 눈에 강력한 기운의 힘이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추락해 시야에서 사라졌던 인간이 바동거리며 다시 옥상 위 가장자리로 돌아왔다.
‘마법!’
차사도 알고 있는 마법.
놀랍게도 진선은 도술이 아닌 마법을 사용했다.
팟!
명부 책에 어른거리던 빨간 빛이 사라졌다.
긴급 회수 명령이 거두어진 것이다.
오난향은 불끈하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차가운 심장을 자극하는 걸 느꼈다.
- 진선님! 이것 또 반칙이잖아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터진 말과 달리 한쪽 가슴은 훈훈해져 왔다.
잊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애민의 마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퍽 하고 막혔던 것들이 터져나가는 걸 오난향은 분명하게 느꼈다.
***
반칙?
이 또한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 눈앞에서 안면 있는 놈이 자살을 하려고 뛰어내렸다.
여자 영혼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구했을 것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대가리부터 시작해 온몸의 뼈가 산산이 부서졌을 게 확실했다.
경찰에 불려가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귀찮았다.
차라리 살리는 게 나았다.
“으아아아! 사, 살려줘!”
미친놈이다.
떨어지는 걸 살려놨더니 허공 위에서 바동거리며 살려 달란다.
그 소원 접수했다.
쿵!
놈의 몸뚱이가 시멘트 바닥 위로 떨어졌다.
“으윽.”
1미터 허공에서 떨어졌으니 느껴지는 고통이 제법일 듯하다.
오죽이나 아픈지 제대로 일그러진 곱상한 얼굴.
그런데 라면 건더기는 왜 머리에……?
- 잘하셨습니다. 형님.
잡귀가 칭찬을 날렸다.
이유는 모른다.
뭘 잘해?
- 오 차사. 보너스 날아갔습니다. 완전 쌤통입니다. 흐흐흐.
- 야! 너 남의 밥통 왜 걷어차는 거야!
오 차사가 잡귀에게 시비를 걸었다.
쏘아붙이는 말은 잡귀에게 쏟아지는데 눈길은 나에게 향했다.
역시 가볍게 무시.
내 시선은 레지던트 고승윤에게 향했다.
또각또각.
굽이 낮은 구두를 신은 채 다가갔다.
내가 봐도 주희의 각선미 하나는 꽤 괜찮았다.
“선배 괜찮아요?”
놀라움으로 가득 찬 고운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우! 이 닭살 돋는 목소리 어쩔겨!
“아니 내가 어떻게…….”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는 자신의 상태를 이해 못 하는 고승윤.
마음 같아서는 모자란 머리통을 걷어차 버리고 싶었지만 낮은 구두굽이라도 머리통에 박힐까 참았다.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달려가다 난간에 부딪쳤잖아요.”
상황을 각색해 전달했다.
자살하려는 놈의 정신이 제정신이었을 리 없다.
- 고씨 집안에서 포인트가 지급 됐습니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포인트는 착실하게 정산됐다.
고승윤 옆에 있던 여자 영혼이 안쓰러운 눈길로 누워 있는 놈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 날 두고 떠난 우리 엄마도 저런 마음이었겠지?
- 아니. 넌 딱 봐도 버림받았어.
- 야! 넌 순진한 귀신에게 그런 모진 말을 뱉어야겠냐! 분위기 좀 보고 얘기해!
- 그게 진실이야. 바보 잡귀야!
- 지옥으로 꺼져!
- 갈 때 넌 반드시 데려간다.
- 난 왜!!!
- 재미있을 것 같아.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주둥이를 놀릴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잡귀와 저승사자의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웃지 않았다.
고승윤의 눈동자가 반쯤 풀려 있다.
주변에서 너울거리는 검은 기운도 감지됐다.
- 냄새 맡고 왔네. 요즘 잡귀들은 차사를 껌으로 본다니까.
- 오! 이게 그 잡귀들이야?
- 병원에서 죽은 자살한 놈들 영혼이야. 실체가 거의 없지? 그래도 독해. 한 번 달라붙으면 떼기가 힘들어.
자살 행위로 병원에 실려와 소생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은 형체가 거의 없었다.
새카만 기운만 너울거리며 흐느적거렸다.
섬뜩했다.
영혼의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저승의 하이에나와 같았다.
“선배님. 괜찮아요?”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친절한 주희로 돌아왔다.
주희가 앞으로 자주 봐야 할 놈이었다.
“난 죽어야 해. 살아도 쓸모가 없어! 크으으!”
비틀거리며 시멘트 바닥에서 일어나는 고승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빠직.
고운 이마에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옆에 있던 여자 영혼도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자신의 카르마를 땡겨 쓰고 외출증을 받아 나온 고승윤의 엄마 영혼.
아직 이승의 인연을 다 끊어내지 못한 것이다.
내가 모르는 가족사가 있는 게 분명했다.
- 어라? 긴급 회수 명령도 안 떴는데 저 자식 뭐 하는 짓이지?
- 쇼 하나?
난간을 붙잡는 고승윤.
보아하니 다시 뛰어내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아무래도…… 넌 좀 맞고 시작해야겠다.”
터억.
고승윤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잡아채 돌려세웠다.
“???”
놀란 눈으로 날 빤히 보는 고승윤의 떨리는 눈동자.
쇄애애앳.
공간을 가르는 매서운 손길.
쫘아아아아악!
찰진 소리가 병원 옥상에 울렸다.
아리따운 폴리클이 레지던트 싸다구를 날리는 아름다운 장면.
- 한 대요!
형방처럼 잡귀가 신이 나서 숫자를 외쳤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