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장. 수술실에서(2).
“수술실에? 그 병아리 계집을?”
“넵! 치프!”
“미치겠네. 인턴도 아니고 일개 폴리클을 수술실에 태우다니……. 황 교수님 너무하네.”
의국에 돌아온 치프 조원식은 상황을 보고하는 레지던트 2년차 앞에서 한탄을 내뱉었다.
‘젠장. 나에게는 잘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너무하네’ 정도의 말로 끝냈지만 사실 조원식은 속이 다 뒤집어졌다.
심장 수술실 참관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무척 높았다.
Chest Surgery의 약자 CS인 흉부외과 전문의는 외과의 꽃으로 불린다.
돈이 목적인 성형외과와는 사명감부터가 질적으로 달랐다.
진정한 메스의 집행자들이었다.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건 의학도로서 가질 수 있는 명예 훈장과 같았다.
한때 조원식도 흉부외과 전문의를 노렸다.
지도교수인 신상주 교수의 췌, 담도암도 미래가 괜찮았지만 외과의 꽃인 흉부외과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실력이 따라주질 못했다.
몇 번 수술에 참가할 기회를 가진 조원식을 매번 황승재가 타깃으로 삼아 갈궜다.
대놓고 실력도 안 되는 놈이 무슨 외과의냐고 타박을 했다.
이를 갈며 버티고 절치부심 노력했지만 심장 쪽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공부 양도 방대했지만 가장 중요한 술기 실력이 수술의 성과를 좌우했다.
고도의 집중력과 순간의 판단력도 요구됐다.
수술 중 자칫 실수를 해 꼬이면 뒤로 12시간씩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외과의 첫 번째 덕목이 체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왜소한 체격의 조원식은 모든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
꿈은 원대했지만 실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학문적 학습은 가능했지만 술기에서는 뭔가 부족했다.
그때 신상주로 라인을 바꿨다.
몇 년 동안 방울 소리 나게 뛰어다니며 아부를 한 덕이었다.
심장외과 쪽 자격도 갖추고 있는 신상주의 실력도 제법 인정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주력을 췌, 담도 쪽으로 바꿨다.
수술 중 실패를 해도 부담이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췌장암과 담도암은 발병률이 낮았다.
대신 초기 진단이 어려워 걸렸다 하면 생명 보장을 못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돈이 차고 넘치던 애플의 스티븐 매튜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쉽게 증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한 번 발병해 버린 뒤에는 완치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걸 알고 주력과를 옮긴 신상주.
존스홉킨스 병원 유학 경험을 내세워 과장 자리를 꿰찼다.
형의 자본을 이용해 정치력에 사용했다.
중요한 과는 아니었지만 무난하게 외과 과장에 올랐다.
운과 함께 작용한 정치력과 계략 능력이 영향력을 보인 것이다.
그런 과정 하나하나를 치프 조원식은 측근에서 흡수했다.
실력과 능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치프가 됐다.
의국을 장악한 채 후배들을 교육시키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남우가 들어갔겠네?”
“네. 남우 선배가 같이 들어갔습니다.”
‘우남우……. 재수 없는 새끼.’
황승재가 확실히 밀어주고 있는 레지던트 4년차 동기 우남우.
조원식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임에도 사실로 확인되자 다시 이가 갈렸다.
놈만 아니었다면 외과에서 자신의 입지가 더 탄탄해졌을 터였다.
입학 때부터 수석을 달리던 놈이 성형이나 피부과로 가지 않고 외과를 택했다.
실력을 중시하는 황승재와 죽이 아주 잘 맞았다.
정치력과 아부가 체질에 맞지 않은 우남우였지만 신상주가 키워주지 않아도 이상하게 알아서 잘 컸다.
이대로라면 흉부외과 전문의가 될 게 확실했다.
과는 달라지겠지만 배알이 뒤틀리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얼마 없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그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써드는 누구야?”
“승윤이가 들어갔습니다.”
“승윤이가?”
“네.”
‘그 녀석이라면……. 흐흐.’
R1로 불리는 레지던트 1년차 고승윤.
심장이식 같은 중요한 수술이 아니니 레지던트 1년차가 세 번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집도의와 손발을 맞추는 우남우와 달리 보조자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고승윤.
뭔가 느낌이 왔다.
외과 레지던트가 되긴 했지만 피를 무서워하는 고승윤.
대대로 외과 의사를 배출한 집안의 강압으로 의대에 들어와 과정을 밟고 있지만 아직도 적응을 못 한 상태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가 조만간 그만 둘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 고승윤이 수술에 참여했다.
어떻게든 경험을 쌓아야 하는 분야이기에 깐깐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황승재도 허락했을 것이다.
“신 교수님 수술 준비해야 하니까 나가봐.”
“넵!”
소식을 물어온 레지던트가 나갔다.
“오늘 잘하면 사건 터지겠는데?”
치프는 그냥 앉는 자리도, 그렇다고 아무나 앉는 자리도 아니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수술실 장면들.
치프 조원식은 간절히 소망했다.
눈엣가시 같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오늘 수술실에 저주가 임하기를.
***
“어떤 수술인데요?”
수지가 관심을 보였다.
“CABG.”
“네? CABG요?”
“주희 네가 한 건 했더라. 아침 회진 때 신 교수님 앞에서 입 자랑하던 환자 지금 수술실에 들어갔다. 황 교수님이 지시해서 검사했는데 심근경색 오기 전 단계였대. 그래서 바로 긴급 수술 들어가는 거야.”
“오! 장주희 오늘 한 건 한 거야? 명의의 미래가 보이는데?”
“…….”
이거 기분이 싸했다.
나를 향한 기대는 곧 나중에 동생을 향한 기대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제가 왜요?”
“몰라서 물어?”
“네?”
“네가 싼 똥이니까 똥맛을 봐야지.”
씨익 웃는 레지던트.
악의가 엿보였다.
“장주희 똑똑히 봐둬라. 네 덕분에 오늘부터 긴급 모드 발동이다.”
“선배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수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병아리들이 뭘 알겠냐. 너희들 잘 들어. 나가서 개업할 거 아니면 담당 교수님 이하 선배들 밑에서 죽어라 숨죽이고 살아. 여기도 조직이 존재하는 곳이야. 위계질서와 정치가 없다면 살아남지 못해. 그리고 오늘 장주희는 가장 큰 권력에 반항의 깃발을 들었다. 그럼 그 후폭풍이 어디로 가겠어?”
따로 할 말이 더 있는 듯 말을 잇는 레지던트.
나를 보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아…….”
수지가 신음을 흘렸다.
- 흐흐. 누님 찍혔네요.
형이라고 불러 잡귀야!
고운 이마에 주름살이 잡혔다.
내가 나서면서 엉켜 버린 주희의 미래.
“뭐 해? 안 들어가? 수술실에 그렇게 들어갈 건 아니지?”
레지던트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말씀 감사합니다.”
표정의 변화는 크게 없었다.
놀라지도 않았다.
여기 있는 의사들에게나 중요한 정치 얘기였다.
여차하면 농담이 아니라 주희 앞으로 병원 하나 차려주면 된다.
병원 하나 차리는 데 생각보다 그렇게 큰 자금 안 든다.
“안 떨리나 보네?”
“떨어야 하나요?”
“뭐?”
나의 반문에 레지던트가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긴장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떨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에게는 병원 생활이 전부지만 주희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가능성이 많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주희의 일상.
생각보다 빡세게 살고 있었다.
“선배님. 주희가 요즘 예민해요. 이해해 주세요.”
수지가 무뚝뚝한 나를 대신해 애교를 떨었다.
“참나…….”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는 레지던트.
그를 빤히 바라봤다.
충고를 가장한 희열이 그의 눈동자에서 반짝이는 게 보였다.
고개를 떨구고 망연자실하며 떨기를 바라는 눈치다.
자신이 평가하는 위치인 레지던트라는 걸 제차 확인 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였다.
밖에서는 주희 앞에서 아는 체도 못 할 위인들이 병원 내에서 선배라는 탈을 쓰고 갑질을 해 온 티를 여실히 보였다.
“선배님.”
“왜.”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 이상의 관심과 충고는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이게 얼굴 예쁘다고 봐줬더니 보이는 게 없나! 야! 장주희, 여기가 학교인 줄 알아!”
한마디에 본심을 드러내는 레지던트.
지켜보던 수지 얼굴이 핼쑥해졌다.
“전 아직 학생 신분인데…… 아닌가요?”
“…….”
레지던트가 입을 떡 벌리고 닫지를 못했다.
“그만해 주희야.”
수지가 걱정스럽게 팔을 잡아 당겼다.
나의, 아니 진심으로 주희의 앞날을 걱정하는 눈빛이다.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군. 장주희, 너 이 바닥 좁은 거 몰라? 인턴 안 할 거야?”
레지던트가 끝까지 이죽거리며 독기를 뿜어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이제는 더 감출 것도 없었다.
“인턴 받아 주는 곳이 이곳밖에 없는 게 아니라는 건 아시죠? 그리고 저희 엄마 중용대학교 이사장이세요. 중용대학교에도 아주 괜찮은 종합병원이 있답니다.”
당당히 깠다.
갑질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
파르르 눈동자를 떠는 레지던트.
의외의 정보를 접한 표정이다.
그동안 주희가 집안 사정을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맞아요. 주희 엄마 중용대학교 이사장님이세요. 그리고 오빠가 변호사에 아주 잘나가는 투자회사 대표세요. 주희 의사고시 합격하면 선물로 병원 선물해 주신다고 했거든요. 그것도 종합병원급으로다가.”
타이밍 맞춰 수지도 거들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해 버린 레지던트.
“그럼.”
고개를 까딱 숙여 보이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벗어났다.
멍하니 서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 볼 만했다.
“아오! 속이 다 시원하네.”
수지가 옆에 찰싹 붙으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넌 왜 그랬어? 찍히면 피곤하잖아.”
“몰라. 여차하면 자격증만 따지. 그럼 우리 엄마가 병원 하나 차려주시겠지. 아빠 빌딩에 사무실 하나 빼면 되고.”
수지도 금수저급은 되는 모양이다.
“그래. 마음에 안 들면 중용으로 가자.”
“역시 잘난 친구밖에 없어!”
수지가 팔짱을 더 꽉 조이며 껴안아왔다.
느낌이 참 좋다.
“고……마워.”
불쑥 튀어 나온 진심이 담긴 인사.
“뭐가?”
- 아우! 죽입니다. 죽여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친구 수지.
앞으로 종종 만나 같이 밥이라도 먹어야겠다.
***
촤아아아아앗.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거치는 에어샤워실의 바람이 낯설었다.
혹시 모를 불순물과 몸에 붙은 미세먼지까지 제거되었다.
스르륵.
문이 열렸다.
손 소독하는 스크랩 스테이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박박 손을 씻었다.
대기하던 간호사가 옷을 입혀줬다.
진짜 수술실에 들어왔다.
수술실은 철저하게 무균시설로 꾸며져 있었다.
피부라는 방어막이 해제된 채 펼쳐지는 수술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균 하나가 큰 병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
파바밧.
여러 명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아직 황승재 교수는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 보조를 담당하는 레지던트 둘과 수술방 간호사, 마취 전문의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다들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보통 수술팀은 손발이 잘 맞아야 하기에 함께해 본 인물들 중심으로 조를 짰다.
황승재 교수와 손발을 맞춰온 이들에게 갑자기 등장한 난 특이한 실습생이 확실했다.
문제는 그들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
- 혀, 형님……. 저분은 누구세요?
누나라는 호칭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바짝 긴장한 목소리의 장립 귀신이 한 여자를 보며 물었다.
저 여인, 나도 오늘 처음 본다.
- 뭐지? 너희들 내가 눈에 보여?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