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7장. 와이파이(2). (888/1,284)

897장. 와이파이(2).

“이 동양인이 그자인가? 립?”

“맞습니다. 각하.”

워싱턴 대통령 집무실.

미합중국 대통령 오바마는 노안으로 침침한 눈을 찌푸리며 사진을 자세히 살폈다.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때의 열정 넘치던 중년 신사의 모습은 몇 년 사이 희끗해진 머리카락만큼 달라져 있었다.

오바마는 그렇게 한참 동안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FBI를 비롯해 여러 비밀 기관에서 찍어 보낸 사진들.

한때 경계 대상으로 제거하려 했던 다니엘 장과 낯선 한 남자가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LA에 위치한 팰튼 호텔.

호텔의 회장은 그대로지만 사실상 대주주가 바뀌었다.

은밀하게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다니엘과 로버트 라이언이 이 호텔의 실제 주인이었다.

팰튼 호텔 스카이 바에서 다니엘과 장립이 만나고 있었다.

서로 아주 가까운 사이인 듯 모든 사진에서 친밀한 기운이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키가 크고 꽤 잘생겼다.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높은 신뢰도가 느껴졌다.

남자들임에도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장립은 다니엘보다 오바마의 시선을 더 끌었다.

요즘 들어 자주 들려오는 이름, 장립.

‘중국 정치권 실세들과 대단한 인맥을 자랑하는 자치고는 너무 젊어.’

다니엘과 만나는 자들도 모두 하나같이 거물들이었다.

특히 이번에 새로이 다니엘의 주변 인물로 파악된 장립이라는 자는 신분이 묘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해외 화교 출신 중국인.

수집한 정보에는 갱들에 의하여 피살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달리 그는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었다.

생존 유무야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장립이 중국 고위층과 각별한 사이가 되어 다시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

대륙의 경제 성장을 크게 키워 한 차례 크게 양털을 깎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고위 권력층의 구조가 상대하기에 만만치 않았다.

땅도 워낙 컸고 비례해 인구도 많았다.

게다가 야금야금 미국 정가 인물들을 포섭하는 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뒤를 치려했지만 한발 늦어버렸다.

중국에서 싼값에 수출하는 상품들이 미국 내 서민들의 삶을 암암리에 풍요롭게 만들었다.

막대한 달러 보유도 양털 깎기에 대한 결정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오바마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됐다.

2번째 임기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바마 케어로 인한 문제가 부각되면서 정치 여력이 없었다.

대중들의 지지도도 서서히 떨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이 의회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속속 드러났다.

각종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대통령의 권한도 의회의 동의가 있을 때나 힘을 발휘했다.

톡톡.

오바마는 인중을 손가락으로 몇 차례 쳤다.

골치 아플 때 나타나는 습관이었다.

“사라 요한슨이 다니엘과 함께 있습니다.”

“봤네.”

“그리고…… 급하게 요원을 투입했습니다.”

“요원?”

“네. 지금 장립과 함께 있는 여성은 비밀 요원 중 한 명입니다.”

“그래?”

오바마의 얼굴에 반색이 엿보였다.

뭐니 뭐니 해도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장립 역시 다니엘만큼이나 신경에 거슬렸다.

“샌프란시스코 대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입니다. 저희와 비밀리에 계약되어 있는 특수 신분입니다.”

보좌관의 말에 오바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확실한 정보 부탁하네.”

“미국을 위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요원입니다.”

보좌관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힐러리 쪽도 붙었나?”

“그런 것 같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아. 그러다 한 방에 갈 수 있는데.”

오바마는 외부적으로 힐러리를 정치적 파트너로 삼고 있었지만 깊이 신뢰하지는 않았다.

전직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 같았던 여인이었다.

발톱을 감추고 노련한 정치인으로서 오바마와 국정을 운영했지만 시시때때로 부딪치며 길을 막았다.

어떨 때 보면 아직도 자신이 대통령 영부인인 줄 착각했다.

도가 정도를 넘어서는 것을 보고 조용히 사임을 권했다.

순순히 힐러리도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녀도 오바마와의 동행이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적 욕망까지 비워낸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미국 행정 권력의 핵심인 국무부 상당수가 힐러리 쪽 사람들이었다.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오바마는 짜증이 일었다.

“일본 쪽에서 자금을 대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일본은 약삭빠른 자들이니 당연하겠지.”

오바마도 일본 측의 도움을 받았다.

로비스트들의 저력과 활동 범위 등의 영향력이 장난 아니었다.

지금은 중국 쪽에 살짝 밀렸지만 한창 때는 유대인들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였던 일본 로비스트들이었다.

당시 그들은 국회 운영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

“감시 단계를 더 상향할까요?”

“아니야. 됐네. 리처드 상원 쪽을 건들 필요는 없지. 그리고 미국 내에 있다면 결국 우리 손바닥 안 아니겠나?”

“맞습니다. 각하.”

“계속 감시하게. 다니엘뿐만 아니라 장립도 함께.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모두 파악해 주게.”

“알겠습니다.”

‘너희들이 무얼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한 어림없다! 난…… 죽어서도 미합중국을 수호하는 유령이 될 테니까.’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미국을 사랑하는 오바마.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이미 유령이 된 자들이 장태산의 주변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

- 독이 들어 있는 사과는 매혹적으로 보인다.

“???”

갑자기 던져진 수수께끼 같은 알림음의 소리.

평소 확실하고 구체적인 의사표현을 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굴었다.

- 왜 그러십니까?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저에게 분명 말씀하셨지 말입니다.

군대도 안 다녀온 장립의 말투가 웃겼다.

여여와 뜨거운 밤을 보내던 그날 밤 한숨 쉬던 녀석에게 내가 했던 말이었다.

- 에바가 의아하게 바라봅니다. 이럴 때 방해하는 건 서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립 너 진짜 웃기다.

언제부터 네가 예의를 차렸지?

언제는 너와 내가 한몸이라며?

- 오늘부터 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와이파이 확 끄고 싶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촉이 전하고 있는 위험성.

아무리 장립이 겉보기에 멋있어 보여도 금발 미녀 에바가 이렇게 쉽게 넘어 오기에는 뭔가 무리가 있었다.

지금 임성철 회장 수중에는 내가 준 장립의 법인 카드 한 장이 전부였다.

연예 초짜인 장립과 연식이 다 된 임성철 회장에게 넘어갈 여인은 드물었다.

진짜 오정의 주인이었다면 모를까.

- 저 못 믿습니까? 박사 과정 학생증까지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바보야. 박사 과정이라고 해서 다 학생이라고 믿는 건 아니지?

- 저도 공부해 봤습니다.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하는 자를 그렇게 모함하면 안 됩니다!

장립이 의외로 강하게 반발했다.

임성철 회장과 도모해 처음 성공한 헌팅에 목숨을 거는 듯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하지만.

- 독이 들어있는 사과는 향기가 치명적이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에바를 바라보자 두 번째 같은 알림음이 또 들려왔다.

그렇다면 확실했다.

에바는…… 에바다.

- 이건 월권입니다! 전 절대 포기…….

하고 싶은 거 해! 누가 포기하래?

속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 네?

순순히 대답하는 나의 승낙에 장립이 놀라 되묻는다.

와이파이가 공유된 듯 임성철 회장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세계적 기업을 경영했던 자였다.

잠재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품 자체가 위험하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장 회장이 거부하면 난 포기하겠네.”

임성철 회장은 나름의 결단을 내린 듯했다.

역시 오정의 진짜 주인답다.

“어차피 오늘만 날이 아니지 않나.”

“맞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어느 정도의 방종은 허락할 생각이었다.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된 뒤이니 당연히 시도해 보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 사람다운 인생 사업일지도 몰랐다.

나의 사업에 지장만 주지 않는다면 최대한 자유도를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도 안 됩니다.”

세상 알 만큼 아는 성인들이 하룻밤 여인과 보내는 건 큰 사건도 아니다.

더욱이 총각이 아닌가.

그럼에도 사랑에 빠지는 건 안 된다.

장립이 살아 있는 자로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존재할 수는 없었다.

상대 이성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알고 있네.”

임성철 회장도 쿨하게 나왔다.

- 하아…….

대신 뒤에서 큰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없던 귀신이 이제 와서 욕심도 많다.

그러나 뭐든 확실히 짚어 둘 필요가 있었다.

립! 너의 이생에서의 운명은 다했어.

지금 임성철 회장의 육신을 빌려 쓰고 있는 것뿐이다.

자칫 더 크게 욕심을 내면…….

나의 손에 의해 소멸당할 수도 있었다.

지금도 최대한 서로의 입장을 봐주고 있는 상황이다.

- 알겠습니다. 무조건 당신 말에 따르겠습니다.

역시 립은 어리석지 않았다.

잠깐 이승의 삶에 현혹돼 흔들렸지만 바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했다.

“그럼 에바는 돌려보내겠네.”

임성철 회장은 결심과 함께 바로 실행에 옮기려 했다.

의지력과 추진력이 무서웠다.

보통의 사내였다면 절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왜?”

- 왜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에바를 다시 살폈다.

뭔가 초조해하는 눈빛이 여실했다.

- 마녀가 독이 든 사과를 팔고 싶어 마음이 급합니다.

“후훗.”

웃음이 절로 나왔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니다 보니 알림음의 천기누설 부분도 신중해진 것 같다.

“왜 그러나?”

“……이거 하나 드십시오.”

아공간을 열었다.

누구도 눈치 챌 수 없도록 심장 쪽에서 공간을 열고 단약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가?”

“남자는 힘 아니겠습니까!”

“???”

“확실하게 여인의 마음을 휘어잡으십시오. 그리고 독사과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밝혀내십시오.”

“그게 무슨…….”

두 사람 다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

임성철 회장은 나의 말을 듣고 바로 눈치를 챘다.

- 그럼…….

초조해하는 건 립도 마찬가지.

“뜨거운 밤 보내십시오.”

“고, 고맙네.”

임성철 회장은 살짝 당황하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모습이다.

다만 걱정인 건…….

허공을 한번 응시했다.

그리고.

립!

- 네!

너! 와이파이 끄면…… 죽는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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