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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장. 여우굴에 가다(4). (845/1,284)

849장. 여우굴에 가다(4).

“…….”

순식간에 분위기는 혹한기처럼 서늘해졌다.

모두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망언이 터졌다.

특히 원자바오의 외손녀인 류미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붙은 경호팀의 안색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중국 내에서는 누구도 원자바오 총리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중국 권력층을 구성하는 공청단의 양대 축 중 한쪽을 전담하고 있는 핵심.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을 날려 버린 막후 실력자가 바로 원자바오였다.

후진타오가 장택민을 두려워해 멈칫하는 사이 권력층들을 회합해 결단을 본 것이다.

그만큼 적이 많았다.

상왕이었던 등소평의 도움이 없었다면 천안문 사태 당시 자오쯔양과 함께 사라졌을 원자바오.

2012년 수조원대 부정 자산 축적 스캔들이 터지고 난 뒤 보수파와 원로들의 원성이 높아졌었다.

그 일로 원자바오를 공격했지만 다 같이 까자는 식으로 맞불을 놓아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타고난 이미지 메이킹의 달인.

시진핑조차 그를 극도로 존중할 정도다.

원자바오는 총리직을 물러나며 그 자리를 자신이 아끼는 공청단 후배에게 물려줬다.

7인 상무위원에 단 한 명밖에 들어가 있지 않은 상해방과 달리 공청단은 두 자리나 차지했다.

그런 인물의 외손녀에게 겁도 없이 망언을 내뱉은 남자.

양소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장 주석의 관심을 받아 이 자리에 초대돼 왔지만 이 정도 사건을 만든 이상 장립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양소려 입장에서도 무조건 양보해야 할 최상층 권력자의 외손녀.

대개 자녀를 한 명씩밖에 낳지 않은 이들이어서 그 존재 가치는 더할 나위 없이 컸다.

‘장립……. 당신은.’

양소려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채 웃고 있는 장립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미친개가 아니면 완전 또라이인 게 분명했다.

류미는 어이없는 듯 큰 눈을 뜨고 장립을 쳐다봤다.

그리고.

“호호호호호호호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이상한 건 류미도 마찬가지.

갑자기 류미가 미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 박장대소와 또 다른 의미의 웃음이었다.

양소려는 몹시 긴장됐다.

당장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총알이 장립의 몸을 뚫을 것이다.

장 주석이 지원해 준 양소려의 경호원들도 일체 개입하지 못했다.

원자바오라는 이름은 그만큼 충분한 무게가 있었다.

뚝.

류미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아직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

“신선하네.”

류미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눈빛에서 권태로움의 그림자가 걷히고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야말로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나도 마찬가지.”

장립의 태도는 여전했다.

‘도대체 저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억지로 엮인 인연으로 베이다이허에 초대돼 온 주제에 최고 권력자의 핏줄을 상대로 막말을 하는 장립의 배짱.

양소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밥 안 먹었지?”

“어.”

“그럼 저녁식사에 초대할게.”

“사양은 예의가 아니겠지.”

“물론이야. 나 그렇게 한가한 여자 아니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고?’

양소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진심으로 놀랐다.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대면했지만 뭔가 통하는 듯했다.

서로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류미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류미가 가려는 곳은 그녀의 아버지 별장.

각 파벌끼리 가까운 이들 중심으로 한곳에 밀집해 연결돼 있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면서 불시에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한 방도였다.

류미와 식사를 한다는 건 원자바오를 친견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양소려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한때는 동지였으나 지금은 적이 된 공청단이다.

상해방의 손님으로 온 장립이 그들과 어울리게 되는 상황이 몹시 거슬렸다.

게다가 상부의 허락도 받지 않는 상태.

“소려! 너도 올래?”

양소려의 심중을 꿰뚫은 듯한 류미의 갑작스러운 제안.

“난 됐어.”

일단 한 발 물러서며 거절했다.

눈치 없이 호의를 받아들였다가는 사건이 커질 게 빤했다.

“그럼 시간 되면 장립을 보내줘. 올 때 빈손이 아니었으면 해.”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는 말.

그것은 어른을 소개하겠다는 의중이 담겨있는 소리였다.

“……알겠어.”

양소려는 장립에 관한 제안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을 쥔 태자당을 견제하고 완벽하게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적인 공청단과 다시 손을 잡아야 할 수도 있었다.

“립. 기다릴게.”

“나도 기대하지.”

“풋.”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웃음을 터트리는 류미.

또각또각.

도도한 태도의 류미는 경호원들이 몰고 온 차 쪽으로 이동했다.

뒤를 돌아보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

“위험했어요.”

“나쁜 여자 같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류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남자는 몇 명 없을 거예요.”

“성격이 괴팍한가요?”

“성격 문제가 아니잖아요. 류미는 원자바오의 하나밖에 없는 외손녀에요. 총리가 정말 끔찍이 사랑한다구요.”

“좋은 할아버지를 뒀군요.”

“립…….”

일상적인 대화 패턴에 양소려가 내 이름을 한 번 부르더니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세상에서 원자바오만큼 괜찮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되겠는가.

감춰 놓은 재산만 해도 수조다.

중국 공산당이 망하기 전까지는 사람을 죽여도 무죄 처리될 게 확실한 집안이 아닌가.

진정한 중국 금수저가 바로 그들이었다.

“선물은 뭐가 좋을까요?”

“진짜 갈 거예요?”

“약속했습니다.”

“베이다이허에서는 약속이 수시로 바뀌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길을 잘못 찾아 들어가면 그 길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어요.”

“홍콩에서 보였던 패기는 다 어디 갔습니까?”

“립, 이곳은 베이다이허에요! 긴장을 늦추면 안 돼요.”

“그렇게 신경 쓰다가는 피부 금방 상합니다.”

“……하아.”

말이 통하지 않는 듯 한심하게 바라보며 양소려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가 류미를 반드시 만나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에 터진 알림음.

- 새로운 중국 조상신이 당신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류미는 중국의 다른 조상신의 후손이었다.

예상대로라면 류미는 신농의 후예일 가능성이 컸다.

태자당이 헌원 황제파였고, 상해방은 복희의 가호를 받는 집단이다.

복잡하게 얽힌 것 같지만 내 눈에는 그들의 노선이 명확하게 보였다.

말 그대로 삼황의 후손들이 중국을 쪼개서 통치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해 봐요.”

“뭘 말입니까?”

“베이다이허에 왜 오고 싶어 한 거죠?”

양소려는 고심한 듯 나의 참석 목적을 물어왔다.

물론 대답은.

“돈 벌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아쉬울 만큼 자금이 부족하지는 않잖아요.”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불행의 씨앗이기도 하죠.”

“그건 어설프게 돈을 벌어서 그런 겁니다.”

“네?”

돈이 넘쳐봐라! 불행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써도써도 마르지 않을 돈.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맞바꿀 게 많은 물질 중 최고의 도구다.

“선물은 뭐가 좋겠습니까?”

다시 한 번 물었다.

“베이다이허의 선물은 정해져 있어요. 초대 받은 이들은 모두 다 마오타이를 지참해야 합니다.”

“빌려줄 수 있죠?”

“창고에 수천 병도 넘게 있어요.”

“많군요.”

중국에서 명주로 이름을 날리는 마오타이주.

정품은 가격이 상당했다.

“회의가 끝날 때쯤이면 바닥을 드러내요.”

“…….”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이 없어졌다.

술을 마시며 나눠먹는 중국의 권력.

나도 오늘 그 자리에 첫 선을 보러 간다.

“주의할 점은 뭡니까.”

“……안 가는 게 최선이죠. 하지만 류미가 보고했을 거예요. 거절하면…… 무시한다고 여길 거예요.”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양소려.

“동행은 왜 거절했습니까?”

“그게 예의에요.”

“네?”

“베이다이허는 술과 눈치로 시작해서 술과 눈치로 끝나요.”

뭐 눈치게임도 아니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 모양이다.

창밖을 내다봤다.

대부분 2층으로 이루어진 별장 건물들.

그래도 내부는 수백 평에 달하는 큰 규모였다.

실내 수영장은 덤처럼 딸려 있다.

층층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바다가 보이는 곳이 많았다.

지금 머물고 있는 양광의 별장도 그런 별장 중 한 곳.

곳곳에 무장한 경호원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바로 총알이 날아올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위험한 여우굴에 입성했다.

곳곳에서 열리고 있을 여우들의 회의.

중국몽이고 나발이고 다 개소리에 불과했다.

오로지 공산당 정권과 관련자들의 영달만을 위해 논의되고 있을 권력 협작질.

“이곳이 두렵지 않으세요?”

양소려가 조용히 물었다.

“후훗.”

웃음이 절로 나오는 질문이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울 수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은 물론 마을, 대규모 집단 안에서 만들어지는 권력은 그 흐름이 같을 수밖에 없다.

넓게 세상을 보면 베이다이허도 한 집안에서 형제들이 부모님 재산을 놓고 싸우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공겁 이전에 한 물건이 있으니 푸른 하늘과 넓은 땅이 나의 집이네.”

창밖의 보해만을 바라보며 시 한 소절을 읊었다.

참 듣기 좋은 음색으로 낭랑하게 퍼지는 나의 목소리.

“누구를 막론하고 함부로 내일의 일을 묻지 말라. 내일은 오고 간 적이 없으니 나 또한 내일을 어찌 알리오.”

양소려에게 똑똑히 전해질 나의 마음.

“…….”

역시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찾아온 잠깐의 침묵.

나와 양소려는 밤에 찾아 올 미래를 생각하며 각자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

저벅저벅.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양소려가 차로 배웅해 줬다.

상해방이 머물고 있는 별장에서 차로 5분 거리.

가로등은 여기저기 환하게 켜져 있는데 인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9시.

손에 8병의 마오타이주를 들었다.

숫자 8을 엄청 좋아하는 중국 민족.

처갓집에 인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양손이 꽤 무거웠다.

“누구십니까?”

별장 경호원이 앞을 막았다.

고수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류미 소저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장립 선생님 되십니까?”

“네.”

“들어오십시오.”

끼릭.

별장의 철문이 열렸다.

경호는 예상대로 삼엄했다.

마당 역시 곳곳에 10여 명의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눈빛이 야행성 맹금류 수리부엉이처럼 날카로웠다.

저벅저벅.

마당을 가로 질렀다.

예상보다 마당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곧 다다른 현관 입구.

경호원들의 매서운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섰다.

그리고.

철컥.

문이 열렸다.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류미.

“왔네. 겁도 없이.”

류미가 혀를 살짝 내밀며 놀리듯 말했다.

“당신이 초대하지 않았습니까?”

편안한 푸른색 치파오를 입고 있는 그녀.

철권 게임에 나오는 중국 무술 소녀처럼 빨간 리본이 달린 머리망을 두르고 있었다.

“초대하면 지옥도 갈 건가?”

아직도 나에 대한 호기심이 꺼지지 않았다.

“당신 같은 미인이 초대한다면 기꺼이.”

“……핏.”

싫지 않은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핏’ 소리를 내는 류미.

미인이란 말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손님을 밖에 세우면 안 되지.”

그때 류미의 뒤로 한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온화한 얼굴을 한 중년 남자.

인상이 눈에 익었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하네.”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환영하는 남자, 그 순간 퍼뜩 스친 기억.

놀랍게도 그는 중국의 10대 부호에 올라 있는 대련 상경그룹의 주인 ‘류평’ 총재였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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