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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장. 여우굴에 가다(3). (844/1,284)

848장. 여우굴에 가다(3).

- 다니엘? 그를 왜 나한테 찾아?

“사라. 다니엘이 미국에서 사라졌어. 아는 거 없어?”

- 정말? 다니엘이 미국에 왔었어? 언제?

‘뭐야?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야훼 바트 로리아나는 사라 요한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라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 무슨 일 있어? 다니엘은 왜 연락을 안 한 거야?

도리어 사라의 목소리가 살짝 들뜨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가 미국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듯했다.

“올 여름 휴가는 사라 네가 책임지기로 했잖아.”

- 다니엘이 기다리라고 했어.

“언제 만나자는 약속은 없었고?”

- 일주일 후쯤.

“그런데 왜 나에게는 연락하지 않는 거지?”

- 로리아나. 넌 무척 바쁘잖아.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데 신의 첫 번째 가는 자식인 너라도 기도를 해야지.

놀리는 듯한 사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즐거움이 가득했다.

“사라. 나도 휴가가 필요해.”

- 어릴 때는 야훼만이 진정한 휴식처라고 노래를 불렀잖아.

“내 신앙심은 그대로야. 다만…….”

- 후훗. 됐어. 로리아나 네가 당황하니 정말 재밌다.

“하아.”

사라에게 놀림을 당한 로리아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니엘 덕분에 소원한 관계에 있던 친구를 다시 되찾았다.

대신 그 대가로 야훼바트의 권위가 많이 사라졌다.

다른 장로들이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난리가 날 정도의 농담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 다니엘이 어디로 갔을까……. 로리아나 네가 못 찾을 정도라면 꼭꼭 숨었다는 얘기잖아.

“로버트 라이언은 그대로 있지?”

- 그는 언제나 바빠. 월가의 황제가 됐잖아. 주변의 미녀들이 그를 가만 두지를 안아. 누구처럼~.

의미심장한 사라의 농담이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어디로 갔을까? 거짓말처럼 사라졌어.”

- 나타나겠지. 다니엘은 신비한 남자잖아.

“그건 맞지만…….”

- 왜? 걱정 돼?

“그와의 감응이 멀어. 마치 다른 신의 구역에 들어간 것처럼.”

- 다른 신? 누구?

사라가 살짝 놀라며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야훼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확실해.”

- 흐음.

로리아나의 다소 무거운 말에 사라의 들뜬 목소리가 가라앉고 곧 입을 다물었다.

가장 신실한 야훼의 종이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다니엘의 행방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야훼의 힘이 과거보다 강하지 않지만 아직도 세상을 다스리는 핵심 신들 중 한 분임은 분명했다.

차일드 가문의 방계들은 그 사실을 잘 알아 지금도 함부로 직계들과 척을 지지 못하고 있었다.

“사라. 그를 위해 우리 기도하자.”

- 어? 어…….

지금도 기도 형식을 빌려 뭔가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사실 사라는 로리아나만큼 신실한 야훼의 종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니엘의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기도할 수도 있었다.

“큰일은 없을 거야. 다니엘은……. 야훼께서 오른팔로 안은 자니까.”

로리아나는 여전히 야훼에 있어 확고한 믿음을 드러냈다.

- 그래. 다니엘이라면 괜찮을 거야.

그의 능력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게 몇 번이나 됐다.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동양의 남자.

“그의 행방을 알게 되면 바로 연락 줘.”

- 그래. 알았어.

띠릭.

통화가 끝났다.

“다니엘……. 어디에 있나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력을 소유했다고 할 만한 조직에서도 찾지 못하고 있는 다니엘의 흔적.

하루 이틀이 그렇게 지나 버리자 로리아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불길한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 로리아나를 괴롭혔다.

신은 특별한 신탁을 내리지는 않았다.

단순히 그가 보고 싶은 그리움과는 다른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 긴장과 불길함의 정체를 로리아나는 알지 못했다.

로리아나가 가만히 기도 숄을 머리에 둘렀다.

그리고.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당신이 사랑하고 눈여겨보는 그가 어둡고 힘든 길을 갈 때 빛과 검이 되어주소서……. 사랑과 자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로리아나.

파앗.

순간 여느 때처럼 그녀의 머리 위로 신의 은총이 환하게 빛으로 임했다.

***

- 야훼가 당신에게 격려의 포인트를 애들 물총 놀이 수준으로 쏴줬습니다.

야훼가 포인트를?

당연히 로리아나가 먼저 떠올랐다.

올 여름 휴가 때 만나기로 약속한 그녀.

앉으나 서나 날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요즘 들어 잊을 만하면 들어오는 야훼의 포인트.

이것저것 뭘 그렇게 많이 떼는지 막상 들어오는 포인트는 참 박했다.

로리아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야훼에게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포스 넘치는 누님은 뭐지?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였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붉은 치파오 차림을 한 여인.

키도 크고 제대로 늘씬했다.

무공으로 단련해 단단한 몸을 가진 양소려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전형적인 중국 미인처럼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조막만한 타원형의 얼굴에 피부는 새하얗다.

과거 한국식으로 말하면 한눈에 봐도 팔자 사나워 보인다는 말이 걸 맞는 얼굴이다.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슈퍼카를 운전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큼지막한 선글라스까지.

저런 상태에서 운전을 했으니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당당히 사고를 내고 차에서 내린 여자를 보고도 누구 하나 말이 없었다.

분노하며 뛰쳐나간 양소려마저 말을 내뱉지 못하고 멈칫했다.

대단한 신분을 가진 듯한 묘령의 여인.

“설마! 그 총으로 날 쏠 건 아니지?”

여인이 양소려의 경호원에게 물었다.

“……치워.”

양소려가 의외의 명을 내렸다.

차자작.

경호원들은 순식간에 총을 치웠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무장 공안들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별장 경호는 서고 있지만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엿보였다.

누군가에게 무전으로 상황 보고를 하는 듯한 모습만 보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게 확실했다.

“소려. 오랜만이야. 더 예뻐졌네.”

여인은 자연스럽게 선글라스는 벗으며 양소려에게 아는 체를 했다.

제법 큰 추돌 사고임에도 몸은 멀쩡했다.

보아하니 묘령의 여인도 무공을 배운 듯한 기세가 풍겼다.

온몸에 흐르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강렬한 내공의 기운.

파바밧.

양소려와 묘령의 여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팍팍 튀었다.

“류미. 환영 인사가 너무 거창한 거 아냐?”

“미안하게 생각해. 차를 새로 뽑았는데 엉망이야. 달리기만 잘하는 미친 말 같아.”

세상에, 람씨를 달리기만 하는 미친 말이란다.

저런 식으로 람씨를 표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대륙의 부자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아.”

양소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총을 소지한 경호원을 둔 류미도 평범한 신분은 아닌 게 확실했다.

상무위원인 왕정과 동석할 수 있는 양소려가 한 수 뒤로 밀리는 게 보였다.

“한숨 쉬지 마. 차 한 대 사줄게. 그게 싫으면 현찰로 줄까? 별장에 몇 박스 있는데.”

몇 박스가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 박스가 맞을 것 같다.

이곳에 별장을 가졌다면 당연히 고위 공산당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 소려 남자친구? 아니면…… 정부?”

정부?

새끼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나의 정체를 물어오는 류미.

“함부로 하지 마. 장 주석께서 초청하신 손님이야.”

“정말? 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부친이 누구실까?”

양소려의 말에 류미가 나에게 급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궁금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나의 아버지 정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차마 영농회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장립은 현재 고아 신분.

“웃어?”

류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립…….”

양소려가 당황했다.

이것만 봐도 류미가 양소려보다 신분이 한참 높다는 증거였다.

“우리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궁금하실까?”

양소려의 반응은 가볍게 무시했다.

대신 류미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직시했다.

큼지막한 눈동자에 담겨 있는 오만함과 세상만사에 대한 권태로움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중국 홍색 귀족이 확실했다.

상무위원 중에서도 최상위 지배층에 오른 자들.

주석이나 총리급의 후손이 분명했다.

어떤 죄를 저지르더라도 면책 처분을 받는 진정한 중국의 주인들이 바로 이 홍색 귀족이었다.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류미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넌 나 알아?”

“뭐라고? 너 이름이 뭐야!!!”

성격이 볏단에 붙었다 꺼지는 불같다.

“장립.”

“……장립? 처음 들어보는……. 아!”

나의 이름을 곱씹다 류미의 표정이 놀란 듯 갑자기 바뀌었다.

그리고 나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피식.

그녀 입가에 가만히 미소가 번졌다.

“너구나. 외조부가 궁금하다고 말하던 남자가.”

들으면 들을수록 말이 참 짧다.

외조부가 누군지 짐작이 안 간다.

여태 류미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신 외조부가 누군데.”

유창한 북경식 발음이 나의 입에서 나왔다.

그 순간.

차자작.

류미의 경호원들이 나를 향해 총을 겨눴다.

여차하면 쏴 죽이겠다는 듯한 분위기다.

그것만 봐도 류미의 외조부가 상당한 위치에 있는 신분임을 알 수 있었다.

“소려. 이 남자 원래 이렇게 겁이 없어?”

“이번에 처음 초청 받은 유럽 화교야.”

양소려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경호원들이 눈치를 봤다.

나 이 정도로 쫄보 아닌데 양소려가 보호자를 자처했다.

“푸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못 배운 사람처럼 광소를 터트리는 류미.

“천하의 양소려가 남자를 보호하겠다고 막아서다니……. 네 사형들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걸.”

사형?

양소려가 무공을 습득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무맥(武脈)은 모른다.

땅은 넓고 그만큼 알아야 할 것이 넘치는 중국.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양소려도 강하게 나갔다.

“재밌네.”

류미가 양소려를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우리 외조부가 총리직에서 내려왔다지만 양소려 너 따위가 그런 태도를 보일 만한 위치는 아닌데……. 지금 우리 집안 무시하는 거니?”

총리? 설마……. 원자바오?

중화인민공화국의 6대 국무총리이자 후진타오와 콤비를 이루어 10년간 중국을 통치했던 남자.

천안문 사태를 옹호하고 총리 재직 당시에도 부패의 최고 해법은 중국식 민주주의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인민들 사이에 신망도 높았고 청렴함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중국산 운동화를 신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이며 ‘서민 총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보여진 모습과 그의 실체는 달랐다.

그가 조세피난처에 축적한 비자금이 수조 원대를 넘었다.

후진타오도 두려워했던 보시라이의 숙청도 그가 주도했을 정도다.

공청단의 핵심 권력자 중 한 명인 원자바오.

그의 외손녀가 류미라는 말이었다.

“난 총리님을 존경해. 그러니까 이쯤에서 물러나. 주석께서 초청한 손님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면 총리님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

양소려 말발 제법이다.

원자바오의 외손녀 앞에서도 꿋꿋하고 당당했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홍콩에 있는 아버지 양광만이 뒷배 역할을 하는 게 아님이 확실했다.

“쳇.”

류미가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찼다.

“장립. 이것도 인연인데 악수나 할까?”

내가 왜 저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공청단도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스윽.

먼저 손을 내미는 류미.

“그러지.”

마주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슈우우웃.

손을 타고 전해져오는 사나운 기운.

내공으로 나를 어찌해 보려는 얄팍한 수였다.

씨이익.

나의 입가에 아무렇지 않게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녀의 내기를 물리침과 동시에 나의 기운을 실었다.

“윽!”

순간 얼굴을 찌푸리며 가해진 고통을 참아내는 류미.

저벅.

손을 잡은 채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바짝 가까워진 그녀의 귓가.

은은한 샤넬 특유의 향수 냄새가 맡아졌다.

가만히 다가가 류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계속 그렇게 까불면…… 다친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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