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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장. 반격.(2) (792/1,284)

795장. 반격.(2)

“하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한 호텔.

넉넉하게 지원한다고 했지만 집세로 악명 높은 프랑스에서 손유리는 겨우 방 한 칸짜리에서 지내고 있었다.

손대균은 아내와 함께 따로 호텔에서 머물렀다.

오랜만에 아내와 오붓하게 데이트하던 때 심정으로 지내고 있던 손대균.

장태산과 전화 통화를 끝내고 답답한 마음에 큰 숨을 내쉬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일이 터졌다.

자신과 달리 할아버지 손국중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 손주혁.

손국중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새 유학을 마치고 본국에 돌아올 시점이 되어 있었다.

아들의 잠재된 야심을 알기에 차라리 넓은 미국에서 터를 잡고 살기를 내심 바래왔다.

하지만 그건 손대균의 바람일 뿐.

이대로라면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리앤장을 어둠의 세력 중심으로 키워나갈 게 확실했다.

몇 번 말을 돌려 알아듣도록 충고했지만 다 큰 자식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손주혁은 머리도 좋았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 대인관계도 완벽했다.

언뜻 보아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손대균의 눈에 아들의 성격은 낱낱이 파악됐다.

모든 행동을 철두철미한 계산 뒤에 움직였다.

그런 아들 손주혁이 장태산과 맞붙게 된 상황.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지만 장태산이 직접 전화를 해 경고할 정도라면 이미 판은 벌어졌다는 의미였다.

결코 먼저 건들지 않으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 장태산이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여러 개의 시나리오.

돈독한 관계에 있는 할아버지의 지시를 받은 아들 손주혁이 검사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으로 사고를 크게 쳤을 것이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이 새벽에 주혁이 이름이 왜 나와요?”

이혜라가 통화 중 언급된 아들 이름 때문에 예민하게 나왔다.

손대균의 입에서 정확한 통화 상대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정도 편하게 통화할 수 있는 인물은 장태산뿐이었다.

통화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남편.

“답답하네.”

손대균이 침대 밖으로 나갔다.

촤르르르릇.

어둡게 쳐져 있던 암막 커튼을 열었다.

3월의 프랑스 새벽은 아직 동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여명이 희미하게 물들어 올 정도의 시간.

“주혁이가…… 태산 군하고 다투기라도 했어요?”

이혜라도 눈치가 빨랐다.

어린 시절 이미 성취욕과 고집이 남달랐던 아들 손주혁.

그 성격을 고쳐 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시아버지의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은 장남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래도 그 잘난 아들 덕분에 강남 사모들 사이에서는 어깨에 힘 좀 넣고 살았다.

가족 모두 한국대 출신의 로열패밀리.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럼요? 그런데 태산 군이 주혁이 정신 교육을 왜 시켜요?”

엄마라는 존재는 아들이 남들에게 살인자라 손가락질 받아도 어쩔 수 없이 가슴으로 품게 마련이다.

장태산에 대한 호감도 높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친아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아니었다.

더욱이 남편도 장태산과 연루된 일 때문에 사표까지 내던진 상황.

시아버지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손씨 가문에 닥친 위기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버님과 주혁이가 태산이를 공격했어.”

“공격요?”

“태산이 어머니가 운영 중인 재단을 털었다는군.”

“…….”

이혜라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장태산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 그룹 안주인들도 대부분 장태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소문들이 일파만파 퍼졌다.

안아는 물론 천일과 동룡까지도 장태산이 공중분해 시켰다는 것쯤은 소문 축에도 끼지 않았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그를 남편도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 장태산과 아들이 부딪쳤다.

스윽.

손대균은 침대 옆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다시 들었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

“여보, 뭐 하시게요?”

이혜라가 남편을 보며 물었다.

심각하게 굳은 남편의 얼굴.

띠디디디.

아내의 물음에 대꾸도 없이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손대균.

뚜루루루루루루.

신호가 갔다.

- 아버지 벌써 일어나셨어요? 프랑스는 아직 새벽 아닙니까?

넉살 좋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손주혁.

한없이 밝은 아들의 목소리 뒤에 감춰진 진실을 손대균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시간에 전화한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냉랭한 목소리로 할 말을 시작한 손대균.

- 그새를 못 참고 장태산이 고자질을 한 겁니까? ……생각보다 쫄보 새끼네요.

“손주혁!”

순식간에 바뀐 목소리로 이죽거리는 아들 손주혁.

비위를 건드는 그의 태도에 손대균이 강하게 소리쳐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손주혁의 음성에서 비아냥거림과 함께 강한 적의가 느껴졌다.

마치 아버지 손국중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 아버지. 지금 제가 바쁩니다. 검사가 한가한 직업은 아니지 않습니까? 국가의 녹을 먹고 일하는 입장인 만큼 사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고 싶습니다.

손주혁의 태도는 차가우리만큼 정중했다.

그리고 몹시 건방졌다.

예의는 차리고 있었지만 평범한 집안의 부자지간 같지 않았다.

파바밧.

보이지 않는 불꽃이 스마트폰을 사이에 두고 튀었다.

“……너 그러다 다친다.”

- 제가요?

“장태산,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녀석 아니다. 네 깜냥이 아냐!!!”

버럭 큰소리를 내지르는 손대균.

- 하하하하하하하.

손주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전화기 너머에서 광소를 터트렸다.

- 아버지. 저도 만만한 놈 아닙니다. 손씨 가문 장손 손주혁. 그런 허접한 놈에게 밀릴 것 같습니까?

손주혁의 태도는 오만했다.

“난 경고했다……. 이 시간 이후로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다 네 책임이다.”

손대균은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 당연하죠. 어차피 성인이 되면 각자 인생 스스로 책임지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 일 없겠지만 장태산에게 당해도 절대 아버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손주혁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했다.

손주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손씨 가문의 힘과 권력을 믿고 나온 데서 비롯한 태도였다.

그 정도 권력이라면 대한민국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중앙지검장도 일개 검사인 자신의 지시를 따랐다.

벌써부터 권력의 꿀맛에 흠뻑 취해 있는 손주혁.

“멍청한 놈.”

띠릭.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에게 짧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종료 버튼을 눌러 버린 손대균.

“여보. 주혁이한테 너무한 거 아니에요?”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이혜라가 손대균을 원망스러워 하는 눈빛으로 쏘아봤다.

“당신도 내가 너무한다고 생각해?”

“그래요. 장태산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그렇지 주혁이는 당신 아들이에요. 그런 애를 그렇게 몰아붙이면 어떡해요. 죄가 없다면…… 주혁이가 그러겠어요? 주혁이는 검사에요.”

이혜라는 여러모로 마음이 씁쓸했다.

평생 시아버지 손국중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며 살았던 남편.

그런 남편의 삶을 이해했기에 리앤장 이사직을 버렸어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 문제는 달랐다.

아들이 욕심이 무척 많다는 걸 알지만 무고한 자를 처벌할 만큼 분별력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아…….”

아내의 아들 사랑에 손대균은 한숨을 내쉬었다.

없는 죄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검찰의 권력을 아내는 몰랐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들 상당수가 알지도 못했고,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믿지 않았다.

검찰은 법을 수호하는 보루라 인식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함께 뒹군 리앤장 이사 손대균은 검찰의 민낯을 너무 잘 알았다.

먼저 권력을 쥔 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빈틈을 보이면 계산기 두들겨 본 뒤 바로 뒤통수를 무는 비열한 정치 검사들.

대부분의 선량한 검사들 얼굴에 먹칠을 하는 자들이 알게 모르게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권력에 눈이 먼 정치 검사들 때문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검사들까지 싸잡아 욕을 먹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들 손주혁도 그 비열한 길 위에 올라선 듯했다.

‘장태산……. 내 아들을 부탁한다. 뼈에 박히도록 결코 잊히지 않도록 교육 시켜다오!’

지금 제 손에 있다 믿는 권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기를 바랐다.

그 일을 장태산이 해주길 진심으로 원했다.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도 보이는 장막에 가려진 인생의 아이러니.

손대균도 아들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장태산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인 손국중의 뒤를 밟아 삼대에 걸친 친일파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

역시 손대균은 모르고 있었다.

손국중이 뒤에서 지금 벌어진 사태의 모든 것을 조종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귀계를 뿌려 대한민국의 권력의 축을 조종해 온 늙은 괴물.

이제는 손자까지 그 수단으로 사용했다.

입맛이 꽤 쓰다.

암암리에 손대균 이사에게 받은 게 많다.

그런 만큼 손주혁에게 한 번쯤 회생 기회를 주고 싶었다.

“늙은 너구리가 문제야.”

인터넷 자료에 첨부돼 올라와 있는 손국중의 얼굴.

안경을 쓴 노회한 대법원장은 언뜻 근엄해 보였다.

철저하게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산 덕분인지 얼굴은 악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악마력 레벨이 매우 높다는 의미였다.

자신 스스로도 악인이라는 걸 감지 못할 만큼 철저하게 악에 물들어 살아야 가능한 수준이다.

“이게 다가 아닐 텐데…….”

중앙지검이 움직였다면 변죽만 올리고 끝나지 않을 것이다.

손주혁 말고도 다른 수사부서도 연이어 움직일 게 자명했다.

한 번 대상이 정해지면 사냥개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본래 다구리에 장사 없는 법.

사냥개들이 집단을 이루면 호랑이도 잡을 수 있었다.

띠리리리리리리리.

그때 날카롭게 울리는 스마트폰 벨소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장 회장.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다.

사건을 알아보기 위해 로펌으로 돌아간 조윤태 이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일입니까?”

- 이사장님하고 너하고 둘 다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저도 포함됐다는 말씀이죠?”

- 작심하고 찍었다. 중앙지검장이 내 전화를 안 받아. 손국중 입김이 제대로 들어갔어.

조윤태 이사가 잘 알고 있던 후배가 중앙지검장이었다.

얼마 전에 같이 술도 마셨다는 이가 전화를 안 받는다면 이유는 뻔했다.

나와 관련된 어떤 건수를 잡았다는 것.

차분하게 과거를 천천히 되짚었다.

이런 날을 대비해 모든 걸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진행했다.

힘을 감추고 분산시켜 진행한 만큼 나를 타깃으로 삼을 만한 게 없었다.

- 장 회장. 혹시 홍콩 돈 사용한 적 있어?

“!!!”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홍콩은행 자금이라면 초창기에 사용한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고 돈을 빌린 후 이자까지 착실하게 붙여 갚았다.

다만 대한민국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 건이 걸렸다면 외국환거래법 위반 소지가 컸다.

대한민국 국민인 나에게 자본거래와 현지금융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있게 된다.

외국환 차입에 관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일 시 보고 의무가 따랐다.

형벌 내용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말이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이 최고형.

문제는 이걸 꼬투리 잡아 나를 귀찮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 썼어?

“전에 고등학교 재학 중에 투자 자금이 필요해 국내 주식을 담보로 홍콩상행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몇 달만 사용하고 원금과 이자는 모두 갚았습니다.”

- 얼마나?

“몇 천억 안 됩니다.”

- 몇 천억……. 고등학생이?

어이가 없는 듯 다시 묻는 조윤태 이사.

“네.”

- 누가 자료를 준 것 같다.

“한국 지점에서 말입니까?”

- 아니. 홍콩 쪽에서 넘겨줬대.

리장창!!!

철저하게 대비를 한다고 했지만 빈틈이 존재했다.

그 틈을 손국중이 찾아냈다.

거기에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리장창이 합세했다.

“공소시효가 위험하군요.”

나도 변호사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 있었던 위법행위는 7년짜리 공소시효 적용을 받는다.

- 시효 계산도 문제지만…… 네 도덕성에 흠결이 갈 거야. 조국일보 쪽에서도 움직인다는 소문이 들어왔다. 장 회장을 여론 재판에 회부할 수 있어.

가장 꺼리고 경계했던 경우의 수.

내가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자금과 올림픽 메달, 사법시험 합격 같은 노력을 전부 무산시킬 수 있는 여론 재판.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썩은 곳에만 꼬이는 똥파리 떼 같은 존재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검찰과 유착한 언론들이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식구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것.

사냥개들의 하수인 같은 기레기들이 가족들까지 여론 재판에 던질 건 불을 보듯 빤한 일.

“쉽지 않겠군요.”

- 손국중 회장, 독한 양반이다. 찍혀서 지금까지 온전한 사람 없었다.

잔뜩 가라앉은 조윤태 이사 목소리.

“알겠습니다. 다른 소식 들어오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 최대한 정보를 캐고 막아볼게.

“든든합니다.”

- 어째 이 상황에서도……. 지금 사태가 농담인 줄 아는 거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사님은 처음 만난 그때부터 저의 든든한 보디가드였습니다.”

- 믿어주니까 고맙다. 나 바빠서 이만 끊는다.

물질세계를 넘어선 세상에서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손국중 회장. 그렇게 나오시면…… 후훗.”

가소로운 생각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틱틱틱.

머릿속에 저장된 번호를 하나하나 눌렀다.

띠리리리리리리.

들려오는 평범한 신호음.

- 누구야?

앙칼진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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