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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장. 반격. (791/1,284)

794장. 반격.

- 할아버님, 방금 압수수색이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주혁아.”

- 네. 할아버님.

“기회가 왔을 때는 벌떼처럼 공격해야만 한다. 네 아버지처럼 작은 정에 흔들리면 대의를 놓치는 수가 있어.”

-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넌 똑똑한 아이니까 잘할 게야.”

-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고?”

- 아직은 없습니다.

“장태산이는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곧 거센 반격이 시작될 게다. 준비하거라.”

- 할아버님처럼 저 또한 지금까지 패배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손자 손주혁의 당당한 대답.

“그래야지. 넌…… 손씨 가문의 장손이다.”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손국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소스를 던져주자 손자는 철석같이 알아듣고 맹렬히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밀하고 조심성 많은 아들 손대균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젊음이 가진 패기와 함께 지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공격.

당황해할 장태산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 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균이와 며늘아기가 들으면…… 서운하겠다.”

- 손씨 가문은 할아버님 덕분에 일어섰습니다. 전…… 그 가업을 더욱 더 발전시켜 제 아이들에게 물려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하하하하.”

손국중이 오랜만에 흡족한 마음으로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아들과 달리 손자와의 대화는 언제나 호탕하고 시원시원해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을 쏙 빼닮은 손주혁이 최고였다.

- 일이 끝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알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이 할애비에게 바로 연락하는 거 잊지 말고.”

- 넵!

“끊는다.”

- 쉬십시오.

통화를 끝내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 손국중.

“손주님을 많이 사랑하시나 봅니다.”

“나만 그렇습니까. 반영조 회장도 나 못지않았어요.”

“선친께서도…… 유별나셨죠.”

손국중의 서재.

조국일보 반종현 회장이 찾아와 있었다.

손국중의 직통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온 반종현 회장.

잘나가는 언론사의 현 회장이지만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초대였다.

평소 허물없이 소통하던 손대균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

천하에 두려울 것 없는 반종현도 손국중 앞에서는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선친과 함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던 큰 어른.

“영훈 형님 몸은 괜찮나요?”

“작은아버님은 요양원에 계십니다. 기력이 갈수록 쇠해지고 계십니다.”

“이런……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손국중은 자신과 함께 세상을 휘저었던 반씨 형제를 떠올렸다.

한때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대한민국의 주인처럼 살았다.

그러나 무심히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그 모든 게 무의미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인사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생존해 있어도 몸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반드시 장태산을 정리해야 한다.’

손국중은 진심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장태산은 알면 알수록 원인 모를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아들 손대균이 있어 그동안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눈을 감은 채 살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되자마자, 급하게나마 쓸 수 있는 손을 썼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공격을 늦출 생각은 없었다.

“회장님께서 정정하셔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나도 많이 늙었어요.”

인자한 얼굴로 빙그레 웃는 손국중.

“반 회장.”

손국중은 조용히 반종현을 부르며 그를 바라봤다.

“네. 회장님.”

“뿌리 하나 뽑읍시다.”

“네?”

반종현도 제법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손국중이 말하는 의도를 바로 캐치하지 못했다.

과거부터 귀계에 능하기로 따를 자가 없었던 손국중 회장.

뭔가를 새롭게 획책하는 듯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였다.

“아카시아 나무 같은 놈이 있어요.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엄청 성가신 나무거든요. 한눈 판 사이 뿌리를 깊게 박으면…… 뽑아내기가 정말 골치 아파요.”

‘장태산!’

손대균이 해외로 떠난 뒤 반종현도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손국중 회장과 손대균 사이에 벌어진 트러블이 장태산 때문이었음을 파악했다.

방금 전 손자와의 통화 내용을 듣도록 허락한 이유 역시, 모두 장태산 때문이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처리하자는 말은 진작 나왔었다.

장태산과 트러블이 있었던 기업인들 상당수가 일송회와 깊이 연관 있었다.

손대균의 적극적인 방해와 회유가 없었다면 벌써 결판이 났을 일.

‘장태산…… 이번에는 제대로 역린을 건드렸구나.’

아직까지 반씨 집안과 크게 얽힌 일은 없지만 장태산이 그간 걸어온 행보로 보아 결이 다른 자임은 이미 확인됐다.

그만큼 제거해야 할 적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손국중의 전략은 과감했다.

검사인 손자를 이용해 장태산의 부모 쪽을 먼저 쳤다.

감히 생각지 못했던 과감한 행동.

이제 남은 건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싸워 이기는 것뿐.

“검찰 쪽에 말해놨으니…… 흘려주는 증거들을 적극 활용해 주세요.”

과거부터 적극 활용해 왔던 수법.

검찰이 모르는 척 흘린 수사 기밀들을 검찰청 기자들이 받아 적당한 스토리로 각색했다.

그런 까닭에 검찰청 출입 기자들은 과거부터 친분이 남달랐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처럼 유지되는 공존.

대부분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사건들로 제법 큰 건의 특종이 많았다.

“데스크에 지시해 놓겠습니다.”

“부탁드려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저에게 넘겨준 장태산의 해외 금융자료 말이에요. 누가 줬는지 알 수 있나요?”

아무도 몰랐을 장태산의 홍콩 금융자료.

그것을 손국중에게 넘겨준 장본인이 바로 반종현이었다.

“저도 우연히 중국에 갔다가 알게 된 인연입니다. 홍콩 출신 리장창 회장이라고…… 공산당 집권 세력과 매우 돈독한 사이인 사람입니다.”

“그래요?”

솔깃 관심을 보이는 손국중.

“조만간 중국에 초청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같이 가시지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리장창도 회장님을 뵙고 싶어 했습니다.”

“알겠어요. 연락 주세요. 오랜만에 중국 여행을 가보고 싶군요.”

손국중의 입가에 사람 좋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들 손대균이 프랑스로 떠난 직후부터 일이 시원시원하게 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회장님.”

은밀히 손국중의 눈치를 살피며 그를 부르는 반종현.

아직 할 말이 남은 표정이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해 보세요.”

“VIP를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요즘 들어 VIP가 우리 쪽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적당한 권고가 필요한 시점이지 싶습니다.”

반종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영이가 고집이 좀 세죠.”

손국중이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지냈던 조근영.

지금의 조근영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손국중이 많은 힘을 썼다.

“고집을 떠나…… 소통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번 만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다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우리 조금 더 힘을 내 봅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태산아…….”

오로라 갤러리에 나가 있던 엄마가 재단으로 돌아왔다.

갤러리도 폭탄을 맞았다고 한다.

상류층 탈세용 그림 판매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그림 구매와 판매는 갤러리의 고유 업무였다.

그림을 판매할 때마다 상류층들을 상대로 탈세 여부를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는 검찰.

수법이 교묘했다.

늙은 여우 손국중이 모든 걸 조종하고 있었다.

똑똑한 손주혁도 한 몫 제대로 거들었다.

과거 손유리를 통해 몇 번 들은 적이 있는 그녀의 오빠에 대한 이야기.

그가 적이 되어 정면에서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

“괜찮아요. 사업 하다 보면 한두 번씩 이런 일 당하는 법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엄마는 납득이 안 간다. 재단 쪽 세무 문제는 로펌과 회계사무실을 통해 항상 철저하게 확인했다. 작년 정기 세무 조사 때 국세청도 감탄할 정도였는데…… 갑자기 횡령과 배임이라니…….”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엄마가 많이 놀랐다.

이 모든 정황들이 나를 노리고 벌어진 일이란 사실은 차마 알릴 수 없었다.

괜히 걱정하다 건강을 해칠 수 있었다.

“조윤태 이사님과 로펌이 나섰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에게 연락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최대한 여유 있는 모습으로 부드럽게 웃으며 엄마를 달랬다.

“그래……. 일이 잘 끝나면 다행이지.”

눈으로 확인한 사무실은 폭격을 당한 듯 난장판이었다.

얼마나 거칠게 쓸어 갔는지 컴퓨터 본체는 단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책상에 있던 잡다한 서류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집기들도 엉망진창이 되긴 매한가지.

놀라서 당황해 있던 직원들은 모두 귀가 조치했다.

당분간 업무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무식한 검찰 수사관들은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야수들 같았다.

없는 죄를 만들어 가며 보통 사람들을 겁박해 온 검찰.

이렇게 휘두르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 남용도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들도 2020년에는 족쇄가 채워진다.

의식적으로 깨어난 국민들이 사냥개 정치 검찰의 입에 단단한 보호구를 씌웠다.

그 전까지 절대 묶이지 않으려 발광했던 검찰.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던 자들과 한통속이었던 자들이 맞이하게 된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국민을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로 취급하는 그들의 오만한 행태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당분간 집에 가 계세요.”

“휴우. 그래야겠다. 봄이라…… 아빠 일도 바쁘고.”

심란한 표정의 엄마 얼굴에 주름이 하나 는 것처럼 보였다.

“사건 수습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지만…… 몸조심하고…….”

“넵!”

“밭에 냉이가 제철이다. 윤아 데려와 밥 한 끼 먹자.”

“윤아 씨가 좋아하겠네요.”

깔깔한 입안에 침이 확 돌았다.

처음 회귀 당시에도 가장 그리웠던 엄마가 차려주신 밥.

“수고해. 아들.”

가볍게 나를 안아주는 엄마.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야. 넌 언제나 최선을 다했어. 엄마는 다 알아. 태산이 넌……. 모든 조상님들께서 지켜주실 거야.”

어깨를 토닥이는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오늘따라 큰 위로가 됐다.

답답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나 간다.”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서는 엄마.

“…….”

그렇게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됐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엄마 표 재단 사업.

예상치 못한 일격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제법…… 아팠어.”

와드득.

무심히 사무실 안을 걷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깨진 유리병을 밟았다.

이건 압수수색이 아니다.

나를 향한 선전포고.

“내 전투력이 요즘 많이 떨어졌지.”

전투력도 근육과 같았다.

근육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근육량이 늘 듯 전투력도 그랬다.

그동안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스윽.

스마트폰을 들었다.

티디딕.

번호 하나를 선택해 영상 통화를 눌렀다.

뚜우우우우우 뚜우우우우우.

지금은 오후 1시 30분.

파리 시각은 새벽 5시 30분.

아직은 취침 중에 있을 것이다.

- 새벽부터…… 무슨 일이야?

막 잠에서 깬 듯 잔뜩 가라앉은 손대균 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님. 잘 지내시죠?”

- 나야 잘 지내지. 학생 시절을 빼면…… 처음으로 이렇게 백수가 됐는데. 몰랐는데 이게 세상 편한 직업이더라.

곤한 잠을 깨웠을 텐데 장난으로도 화를 내지 않았다.

- 그런데…… 무슨 일이야? 거기는…… 또 어디고?

화면을 반대로 전환시켰다.

“대국재단 사무실입니다.”

- 대국재단? 그런데 왜…….

“선배님.”

낮은 목소리로 손대균을 불렀다.

- 으음…….

나의 가라앉은 목소리와 화면 영상을 통해 무언가를 짐작한 듯 손대균이 희미하게 신음을 흘렸다.

- 아버지 작품이냐?

“네.”

- ……미안하다.

단박에 상황을 파악한 손대균.

“예상했던 바라 괜찮습니다.”

- 휴우……. 내가 죄인이다.

“나중에 술 한 잔 사주십시오.”

- 그래. 한국에 가면…… 거하게 대접하마.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응?

“아드님……. 정신 교육 좀 확실하게 시키겠습니다.”

“누구? 주혁이???”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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