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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장. 짱끼리 맞짱. (748/1,284)

751장. 짱끼리 맞짱.

“아니 어떻게…… 엘프가…….”

아린 황녀 옆에서 모습을 바꾼 근위기사는 놀랍게도 엘프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듀보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 자리에 엘프가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파아앗!

게다가 하나가 아니었다.

근위기사들 중 반절 이상이 엘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엘프가 왜!’

자라스 백작은 의문과 함께 공포에 휩싸였다.

엘프 같은 이종족들은 인간들의 전쟁에 결코 관여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특히 엘프 장로들은 모두가 8서클 마법사들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가는 엘프들은 인간 마법사들과 달리 고차원적인 마법을 다뤘다.

마나의 축복도 듬뿍 받은 탓에 강했다.

궁술과 검술 또한 인간계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황녀를 겁박하고 위협하던 입장이 반대가 됐다.

“다시 묻겠다. 무엄하다는 내 말이 아직도 우습게 들리나?”

기다란 은발이 여인의 모습처럼 허리까지 닿아 있는 엘프 남성.

인간 성인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지만 그렇게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몸의 비율.

깊은 호수보다 더 파란 눈동자에는 조금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스스스스슷.

엘프들이 발산한 마나가 마법사들을 휘감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피부에 확실히 느껴졌다.

‘마나……가 움직이지 않아!’

듀보스의 심장이 미친 듯 멋대로 뛰었다.

7서클이었지만 엘프들의 마나를 좀처럼 감지하지 못했다.

파아앗!

바닥에서 감춰져 있던 감금 마법진이 발동됐다.

이건 분명 계획된 함정.

듀보스는 머릿속으로 도망을 생각했다.

인간 기사들도 아니고 마법에 능통한 엘프들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면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무엇보다 이번 황녀 집무실 습격 작전은 완전 실패였다.

마탑주 발론이 직접 왔다고 해도 이 난관을 뚫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마나가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7서클 마법사에게 있어 인간 세상에 대적할 만한 적수는 많이 없었다.

목숨을 부지하고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방법도 몇 가지나 됐다.

그러나 그것들도 마나가 통제 당하게 되면 모두 다 소용이 없다.

감금 마법진에 품에 있는 강력한 이동 마법진 스크롤도 작동할 수 없다.

“으으.”

“마나가…….”

갈기오 마탑의 다른 장로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꽁꽁 옭아맨 마나 통제에 의해 자유로웠던 마나는 요지부동 상태가 됐다.

‘8서클 엘프 장로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눈앞의 엘프가 장로급이라는 걸 듀보스는 알아챘다.

함께 등장한 엘프들 또한 최소 7서클 이상.

듀보스는 눈앞이 캄캄했다.

검을 뽑아든 기사들의 눈빛도 이미 꺼지지 않을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엘프와 기사들의 협동.

조금 전까지 하늘을 치솟듯 당당하던 어깨가 잔뜩 위축 됐다.

“자라스 경…….”

황녀 아린이 자라스 백작의 이름을 불렀다.

“폐하…….”

공포에 질려 고개를 바짝 숙이는 자라스.

“반역은…… 사형입니다.”

“폐하! 저는 오직 제국을 위한 충정과 황녀 폐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파앗!

그 순간 아린이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커억!”

거짓말을 잘도 뱉던 자라스의 입을 뚫고 사라지는 마법 화살.

자라스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린이 용병 출신의 고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을.

쿵.

입안의 이가 모두 부서지고 입의 형체를 잃어버린 자라스 백작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뒷목을 뚫고 사라진 화살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가망성은 처음부터 없었다.

“으으으으.”

“으음.”

갈기오 마탑의 7서클 마법사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신음을 흘렸다.

고위 귀족을 간단하게 처형해 버린 황녀의 매서운 손속.

자라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진득한 핏물이 바닥을 타고 흘렀다.

과거 제국 시절 반역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모두를 참형에 처했다.

귀족가나 마탑이 반역했을 경우는 모든 걸 부셔 평지로 만들어 버리고 그 위에 소금까지 뿌리던 제국 황실이었다.

그런 제국이 다스리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누구도 반역을 꿈꾸지 못했다.

“듀보스 장로라고 했나요?”

“네? 넵!”

벌벌 떨고 있던 갈기오 마탑 수석 장로 듀보스가 힘차게 답했다.

“나를 귀 마탑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하셨죠?”

차분하게 묻는 황녀.

“그게…… 조금 오해가…….”

식은땀을 흘리며 듀보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오해는 풀어야죠.”

아린이 부드러운 인상으로 방긋 웃었다.

“그렇죠. 하하하. 오해는 풀라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다.”

듀보스는 연신 식은땀을 닦으며 억지로 호탕하게 웃었다.

“당분간 성의 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불만이라도……?”

“아, 아닙니다! 불만은요.”

“귀 마탑의 탑주에게 전하세요. 장로들을 살리고 오해를 풀고 싶으면…… 본 황녀에게 직접 찾아오라고!”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내려지는 준엄한 명.

“……알겠습니다.”

듀보스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부했다가는 7서클 마법사라 해도 봐주지 않을 것 같았다.

‘도대체 누가 황녀를 그 따위로 평가한 거야!’

속에서 열불이 터져나오는 듀보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정중히 모시세요.”

“명을 받드옵니다!”

갈기오 마탑 마법사들에게 근위기사들이 다가왔다.

손에는 마나를 제어할 수 있는 은빛 팔찌를 들고.

***

님들이 오셨다.

새하얀 마법진을 타고 나타난 엘프 전사들.

등 뒤에 마법 장궁을 메고 손에는 미스릴 창과 기다란 검을 들고 나타난 엘프들.

그들은 등장만으로 일거에 침묵을 만들어 냈다.

누가 봐도 참 멋졌다.

훈남훈녀로 구성된 엘프 전사들.

은빛 미스릴 갑옷과 푸른 망토의 펄럭임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인간들은……. 피 냄새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공격 마법을 가볍게 무력화 시킨 엘프 장로 세르미온.

그녀는 도열한 수십만 병사들을 바라보며 뼈아픈 진실의 말을 뱉었다.

“모든 인간들이 아니라 욕망에 굶주린 몇몇 인간들이 그렇습니다.”

팰트론 왕국이 벌인 이번 전쟁.

아린이 제국을 완성하기 전까지 전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빤히 그럴 것을 알고 엘프들을 과감하게 참전시켰다.

형수님인 전직 엘프 여왕을 한껏 이용했다.

그 대가로 노바 형님은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받아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르미온이 물었다.

나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팰트론 왕국 병사들에게는 지옥의 불바다가 임할 것이다.

마법과 정령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엘프들에게 인간들 수십만 대군 정도는 개미떼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 피 보기를 원치 않았다.

저들을 죽여 봐야 악신들만 좋아라 할 것이다.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제가 마무리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르미온은 언제나 정중했다.

내 바람대로 엘프 전사들을 파견한 그녀.

호의를 남용할 수 없다.

“혹시라도 제가 패배하면 뒤를 부탁합니다.”

“그럴 리가요.”

세르미온은 뭔가 아는 듯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에, 엘프 지원군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크로얀 제국 만세!!!”

“황녀 폐하 만세!!!”

병사들이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다.

전투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걸 그들도 알았다.

제국 정도의 힘이 아니라면 일개 왕국군은 엘프 전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밤중에 몰살을 당할 뻔했던 병사들인 만큼 그들의 외침은 더할 나위 없이 절실했다.

“베커님.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세르미온의 아들 하프 엘프 아르테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잔뜩 흥분한 얼굴.

“애들은 끼는 거 아냐.”

기다렸다는 듯 초를 치는 하프 드워프 니마카라.

“애라니! 난 숲의 전사야!”

“응. 아직 어린 하프 전사.”

“니……마카라!”

니마카라의 뼈 때리는 일격에 울상이 된 아르테우스.

“장로님 얼굴 굳어진다. 안 보여?”

니마카라의 충고에 아르테우스는 엄마 세르미온 눈치를 살폈다.

수백 살 먹은 어린 엘프(?)가 쫄았다.

“주군! 역시 대단하십니다. 크크크.”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탈만이 털보 웃음을 터트렸다.

“……엘프가 동맹이라니.”

아직도 믿지 못하는 카이루 후작.

“제 친구들입니다.”

“존경합니다. 공작 각하.”

카이루 후작이 완벽하게 나에게 굴복했다.

진정한 황실 수호 공작.

“탈만 경 뒤는 알지?”

“물론입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탈만이 침을 삼켰다.

남의 본진 털어내고 그곳으로 이사 가는 재미가 개꿀 맛.

저벅저벅.

양쪽 군영 중간 지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베커 공작 각하시다!”

“황실 수호 공작 만세! 만세! 만세!”

황실 병사들이 만세를 외쳤다.

“…….”

그에 반해 쥐 죽은 듯 침묵에 빠진 팰트론 왕국 병사들.

숫자는 몇 배나 더 많았지만 그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자신들을 포위한 엘프 전사들 앞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이 분위기, 참 좋다.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이계에서 양껏 받아보는 스포트라이트.

어깨에 힘을 팍 줬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흩날리는 붉은 망토.

수십만 적을 향해 걸어가는 당당한 걸음.

터억.

팰트론 왕국 병사들 코앞에 멈춰 섰다.

파바바바밧.

수십만이 쏘아 보내는 레이저가 나를 향했다.

씨익 한 번 넉넉하게 웃어줬다.

그리고.

“팰트론 왕국의 국왕은 대 크로얀 제국 아린 황녀 폐하의 명을 받들라!”

내공을 담아 힘껏 외쳤다.

시선은 전면을 향했다.

구릉 위에서 오연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가 제법이었다.

딱 봐도 그는 바이클 국왕.

왕국 병사들이 나를 따라 자신들의 국왕을 돌아봤다.

계획대로 분위기는 흘러갔다.

가장 적은 피를 대가로 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짱끼리 맞짱.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순간 들려온 오만한 광소.

바이클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더더덕.

그대로 도열한 병사들의 어깨를 밟으며 순식간에 공간을 압축해 왔다.

터억.

전면 10미터쯤에 착지한 바이클.

착지자세 10점 만점에 10점!

“그대가 바이클 국왕인가?”

“흐흐흐흐.”

대답 대신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는 국왕.

“제국 황실에 검을 겨눈 죄 가볍지 않다. 만약 잘못을 참회하고 황녀님의 검이 된다면……. 국왕의 죄를 황실 수호 공작의 이름으로 사하여 주겠다.”

황실 수호 공작의 권한은 막강했다.

반역을 저지른 일개 국왕도 처단할 수 있고, 또 죄를 사할 수도 있는 자리.

“거절한다.”

단칼에 제안을 거절하는 바이클 국왕.

차라리 고맙다.

경고 없이 불명예스럽게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면 탈이 날 것이다.

충성스런 왕국 기사들과 병사들이 날뛰기라도 하면 피곤했다.

마지막 퍼즐이 천천히 완성 되어 갔다.

“그럼 방법은 단 하나. 검으로…… 명예를 증명한다!”

화끈한 도발을 시도했다.

흉터가 일그러지도록 국왕이 비웃음을 짓는다.

“원한다면 기꺼이 응해주지.”

긴 말이 필요 없는 자다.

스릉.

그가 두툼한 기사용 중검을 뽑아들었다.

씨익.

그의 행동이 하도 반가워 나도 웃었다.

스르릉.

그리고 검을 뽑았다.

단 일검에 걸려 있는 어마무시한 판돈.

이런 판, 언제나…… 콜이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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