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7장. 어느 여름날.(3)
“도대체 VIP 정체가 뭡니까?”
“자세히는 파악 못 했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 안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외국 수장의 국빈급 방문이 있었는데 정체를 모르다니요.”
“미국 백악관 요청이었습니다. VIP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미국 호위 전투기들이 이곳까지 함께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습니까?”
독사파 출신으로 전직 육군참모총장 및 국방부 장관을 지낸 현 국가안보실 실장 장관진.
상대의 추궁에 그는 담담히 대꾸했다.
‘이 자식…… 왜 이렇게 뻣뻣해!’
비서실장 공길춘이 도리어 움찔 할 정도였다.
자신과 달리 계속해서 공직에 머물렀던 장관진.
독사파라는 군대 사조직의 수장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따르는 부하들이 아주 많았다.
국방부 장관 시절에도 강직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미지 세탁을 위해 현 정부에서 국가안보실장으로 역임시켰다.
물론 보여지는 인상과 달리 그렇게 청렴하지는 않았다.
육군참모총장 시절 방산 비리 문제로 강제 예편당한 전례가 있었다.
국방부 장관 재임시절에도 각종 로비 문제로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것저것 비리를 여럿 알고 있지만 공길춘은 그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청와대 서열에서 자신이 우위이긴 했지만 크게 의미가 없었다.
장관진은 말 그대로 대통령에게 왼팔과 같았다.
군부의 지지가 없으면 이번 정권 유지가 힘들었다.
대통령 선거 부정에도 암암리에 깊숙이 개입했던 장관진.
“알겠습니다……. 다 이유가 있겠죠.”
“국정원 정보에 의하면 이스라엘 국적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성별은 여성입니다.”
분명 청주공항에 내렸지만 출국 게이트를 이용하지 않았다.
여권 검사도 패스였다.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 영토가 분명했지만 미국 입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FBI가 경호한다고 했나요?”
“경호를 FBI와 모사드가 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총리도 아니고……. 거 참.”
“여러 추측 중 하나지만…… 차일드 가문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차……일드요!”
공길춘이 크게 놀랐다.
비서실장 자리에 그냥 앉은 게 아니었다.
공길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차일드 가문의 위세.
“이스라엘에서 총리급 이상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존재는 차일드 가문 밖에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보호해야 할 신분입니다.”
장관진의 말은 차분했다.
‘차일드 가문의 고위 인물이…… 왜?’
공길춘은 아직도 현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고위 인물이 한국에 와야 할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청와대 방문 목적도 아니었다.
“장태산이라고…… 아십니까?”
“장태산요?”
“VIP 마중을 장태산이 나갔다 합니다. 그리고 현재 이동 방향이…… 장주시입니다.”
“!!!”
‘장태산……. 도대체 그놈은!’
끝도 없는 장태산의 인맥에 공길춘은 허를 찔린 듯했다.
동시에 안도의 한숨도 흘러나왔다.
멋도 모르고 주순자의 명을 받아 장태산을 공격할 뻔했다.
시도는 했었지만 다행이 중간에 멈췄다.
하늘의 보살핌이 있었다.
“주의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요. 괜히 나서지 마요. 장태산 그 친구……. 요란한 거 싫어합니다.”
“장태산을 알고 계시나 봅니다.”
“장 실장은 잘 모르나본데…….”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장태산이 훈련병 시절……. 제 아끼는 후배에게…… 치욕을 안긴 일이 있습니다.”
“그래요?”
눈에 독기가 바짝 오른 장관진.
“제가 더 알아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자도 장태산과…… 악연이로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한창 기고만장한 장관진.
자신이 현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후배들을 상대로 떠들고 다니는 걸 공길춘은 첩보를 통해 전해 듣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쳐낼 수 없었다.
장관진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입을 여는 순간 골치 아플 일이 한두 가지 발생하는 게 아니었다.
현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될 장관진.
“VIP에게 피해가 가는 일 없도록 하세요. 장태산은 …… 올챙이가 아닙니다.”
“…….”
선뜻 답하지 않는 장관진.
마른 얼굴이 표정 없이 굳어 있을 뿐이었다.
***
“아!”
성문이 열렸다.
중세시대 같은 거대한 나무문이 열리자 보이는 세상.
‘기와집…….’
로리아나도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전통 건축 방식에 사용된다는 검푸른 기와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한두 동이 아니었다.
중앙대로 양쪽으로 2층 높이 정도 되는 건축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딱딱한 도시의 멋없는 빌딩과 달랐다.
수려한 라인을 가진 처마들이 저마다 곡선의 자태를 뽐냈다.
공간과 공간이 서로 침범하지 않아 여유롭고 보는 시선이 갑갑하지 않았다.
부우웅.
차는 조용히 잘 다듬어진 중앙 도로 위를 부드럽게 달렸다.
“왕성…….”
모든 건물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우뚝 솟아 있는 높은 건물.
오연하게 주변 건물들을 압도하는 자태가 누가 봐도 왕성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아름다워요.”
“다행입니다.”
로리아나는 순수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다니엘이 이곳의 왕인가요?”
“네.”
‘왕을 꿈꾸는 자…….’
로리아나는 이곳에 오기 얼마 전 신탁을 받았다.
세상 곳곳에 왕을 꿈꾸는 자들이 나타나리라 했던 신탁.
다니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스스스슷.
이동하는 중에 로리아나는 미세하게 느끼고 있었다.
왕성을 감싸고 흐르는 섬세한 기운들.
“마법!”
야훼를 섬기는 신전에 설치된 고대 마법과 같은 기운이 이곳에서 감지됐다.
“마법은 좋은 겁니다.”
“직접 설치했나요?”
빙긋.
다니엘이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이기에.’
고대 이스라엘에도 유능한 마법사들은 많았다.
솔로몬 왕만 해도 고위 마법사였다.
모세가 바다를 가를 때도 마법이 사용됐다.
모세는 신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신성 사제 마법사였다.
도처에서 마법사들은 기적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마법사들은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세상에 없었던 일처럼 한순간에 사라진 마법.
야훼의 사랑을 받는 로리아나도 겨우 신성 마법 몇 개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시대에 다니엘은 진짜 마법을 사용했다.
좀 더 중앙으로 이동하자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마법의 기운들.
건축물들도 일정한 법칙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보였다.
“마법 흐름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동양의 오행과 구궁에 맞게 설치되었습니다. 함부로 들어왔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뿐만 아니었다.
최첨단 경비 시설도 눈에 띄었다.
백악관도 이 정도 경비 시설을 갖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뭘 하나요?”
“세상을 위한 연구요.”
“네?”
“차차 알게 될 겁니다.”
다니엘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를 따라오던 경호 차량들이 보이지 않았다.
정문에서 출입이 통제된 것 같았다.
“당신들 뭐야! 우리는…….”
“FBI와 모사드라도 안 됩니다. 이곳은 기업의 중요 연구시설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타인들은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신분을…….’
그렉과 사무엘은 단번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들뿐만 아니라 로리아나를 이스라엘부터 따라왔던 차일드 가문의 경호원들도 출입이 금지되기는 마찬가지.
따로 지시를 받은 듯 로리아나의 경호원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따라오십시오. 숙소는 이쪽입니다.”
정문이 닫히고 난 뒤 나타난 일단의 한국 경호원들.
그렉과 사무엘의 신분을 파악하고 있었다.
‘군기가…… 대단하군.’
총기 소지까지는 아니지만 방탄복을 비롯해 일체 경호 장비를 착용한 경호원들을 보고 그렉은 감탄했다.
특수 훈련을 받았던 그였기에 상대의 실력 정도는 가늠이 가능했다.
“지시입니다. 따르십시오.”
야훼바트를 섬기는 차일드 가문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런 꼴을 다 보다니……. 허어.’
그렉은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FBI가 일개 사설 경호 업체 사람들의 말을 따라야 했다.
“명이라면…… 따라야지.”
사무엘은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다.
“젠장……. 나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술이나 마시자고. 15년 전에 유럽에서 우리 즐겨 마셨잖아.”
“그때 내 술에 수면제 탄 건 기억 안 나?”
그렉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쪽도 우리 정보원을 빼돌렸잖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꾸하는 사무엘.
적과 동지 개념이 모호한 첩보의 세계.
“오늘은 믿겠네.”
“같은 목표라면…… 오늘 우리는 친구야.”
사무엘이 환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이 안에 뭐가 있는 거야?’
외벽이 값비싼 검은 대리석으로 건축된 한국의 고성을 닮은 건축물.
그렉도 지금까지 이런 건물이 밀집된 곳이 있었다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
“군사위성으로도 안 뚫리니까 그만 바라봐.”
사무엘이 따라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자신 있으면 그쪽이 뚫어 보시든가.”
은근히 자극하는 사무엘.
그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눈으로 보는 모든 정보가 미국 FBI 심장부에 전달되고 있었다.
동시에 한반도를 감시하는 정찰 위성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오늘 온다는 손님……. 누군지 당신 알아?”
“잘 모르겠어요. 태산이가 귀한 손님이라던데…….”
장대국은 마당을 내다보며 와이프 주설란에게 물었다.
갑작스럽게 아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매우 귀한 손님이 집에 찾아 올 거라 했다.
“설마…… 대통령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태산이가 안 좋아하잖아요.”
“그럼…… 누굴까?”
장대국은 아들이 데려온다는 손님에 대해 몹시 궁금했다.
평범했던 아들이 몇 년 전 불시에 천재가 됐다.
책을 팔아 그 자금을 종자로 상상도 못 할 자산을 일궜다.
주식과 선물 쪽 투자로 돈을 좀 벌었다고 들었을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불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장대국도 알았다.
그만큼 아들을 믿었다.
사회생활에 있어 무능하다시피한 자신과 달리 단시간에 가문을 일으켜 세운 아들 장태산.
장주 시장과 형, 동생하며 지내고 있었다.
장주시에서는 누구도 장대국을 무시하지 못했다.
무늬만 영농회장이었다.
때때로 경찰서장도 안부 전화를 걸어올 정도로 장주시 지역 유지가 됐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찾아와 막걸리 잔을 나눴다.
아들에 대한 이런저런 칭찬도 자자했다.
더욱 반가운 일은 별 볼일 없던 장주시와 마을에 엄청난 연구 시설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거금을 들여 마을 사람들을 주변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세의 열 배에 육박하는 값을 매겨 계산해 줬다.
그리고 완성된 성.
수십 개의 사유지로 나눠져 있던 뒷산도 매입했다.
그 울타리 안에서 장대국은 아내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았다.
아들과 딸이 위험한 상황에 몇 번 처하면서 아들의 의사를 따른 것이다.
아들 장태산이 짐작도 못할 큰일을 하는 게 확실했다.
농사를 짓는 자신과 다르게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아들.
오늘 갑작스럽게 본가를 방문하겠다고 알려왔다.
“오네요.”
현관에서 집 앞 주차장이 바로 보였다.
아들의 빨간 스포츠카를 주설란은 단박에 알아봤다.
“……여자?”
장대국은 아들 차에서 내리는 늘씬한 외국인 여성을 확인했다.
“이 녀석…… 이번에는 또 누구야.”
주설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태산이는 요즘 애들 말로 전생에 지구를 몇 번이나 구한 영웅일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내 아들이지만…… 부러워.”
장대국은 아들의 사생활에 관해서는 진작 포기했다.
“……며느릿감은 아니겠죠?”
“서, 설마.”
아내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장대국은 괜히 긴장했다.
아들이 말한 VIP의 의미.
그동안 봐왔던 아들과의 인연들이 장대국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모두 다 어디 가면 빠지는 신붓감들이 아니었다.
아직은 나이가 어린 아들이지만 엄연히 성인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끼릭.
그사이 아들이 갈색 머리칼 미녀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미모와 분위기.
지금까지 봐왔던 아들의 여성 손님들과 확연이 달라 보였다.
장대국과 마찬가지로 주설란도 덩달아 긴장했다.
사박사박.
걸음걸이도 차분한 외국 미녀.
조신한 모습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두 분 다 기다리고 계셨어요?”
“네가 중요한 손님 모시고 온다고 해서 기다렸다.”
“이분은 로리아나. 멀리 이스라엘에서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반가워요. 로리아나.”
장대국과 주설란이 자연스럽게 영어로 인사를 했다.
그 순간.
공손히 양손을 배에 모으는 로리아나.
“처음 뵙겠습니다.”
정확한 한국어 발음.
“어! 로리아나……. 한국어 할 줄 알아요?”
정말 놀란 듯 묻는 아들 장태산.
“아버님. 어머님. 인사 받으십시오.”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