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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장. 어느 여름날.(2) (693/1,284)

696장. 어느 여름날.(2)

“와아아……. 이 새끼들 겁도 없네. 오자마자 튄 거야?”

“어디에서 왔는데?”

“시리아 국적 단체 여행객들인데 오자마자 호텔에서 날랐대.”

“정말?”

“미치겠네. 가이드 말로는 진짜 여행객들 차림이었다는데…….”

“한두 번 속아. 다들 그렇게 들어오는 거지.”

“아오! 이걸 어떻게 잡아야지?”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 본부 소속 이민조사과 주무관 채경태.

그가 서류에 부착된 여권 사진을 유심히 보며 인상을 썼다.

불법 체류자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랬듯 고임금을 좇아 외국인들이 속속 국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용히 일한 만큼 돈을 벌어 가면 좋겠지만 그들 중에는 간간이 범죄자들도 섞여 있었다.

관리에 소홀해 한 번 사고가 터지면 국민들의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뒤에서 도운 거 아냐?”

“잘 모르겠어. 지하철을 타고 한꺼번에 튀어서…….”

서울의 교통 체계는 너무 좋았다.

“CCTV 돌려도 못 잡겠네.”

“단체로 움직이지 않고 둘 셋씩 나눠 움직였어. 브로커가 꼈다면……. 끝난 거지.”

채경태는 포기가 빨랐다.

하루에도 쏟아져 들어오는 신고가 10여 건이 넘었다.

신고 건수대로 모두 잡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이민단속국처럼 권한이 강력하지도 않았다.

외국인 체류자 수가 100만을 훌쩍 넘었다.

이제는 적당히 봐가며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강력하게 단속하면 자칫 인권 문제를 걸고넘어질 수 있어 그나마 합동 단속 때나 잡아들일 수 있다.

“조용히 사고만 안 치고 살아주면 좋겠네.”

“시리아 애들은 잘 안 튀던데. 특이한 케이스야.”

서류를 살피며 채경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법 체류자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출신이었다.

“데이터베이스에 올려놔.”

“그래야지.”

채경태는 서류에 기록된 이름들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기 시작했다.

“압둘 라자르……. 나이 32세…….”

타다닥.

기계적으로 불법 체류자 명단에 이름을 등록하는 채경태.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작성하는 명단의 인물들이 얼마나 위험한 자들인지.

***

“수상한 움직임요?”

“저희 쪽에서 감시하고 있던 시리아 쪽 아사신 전사가 출국했습니다.”

“몇 명입니까?”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루이스 발루아는 에두아르와 얘기를 나눴다.

기사단장인 아버지와 코린 경은 모종의 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목적지는…….”

“한국이에요.”

“한국?”

기사단장 직무 대리를 맡고 있는 루이스는 여동생 비비안 말에 크게 놀랐다.

유럽이나 인근 다른 국가가 아닌 한국.

“설마…….”

“맞아요. 그들은 한국에서 테러를 준비 중이에요.”

미래를 보는 예지력으로 어둠 속을 응시하는 비비안.

눈을 감은 채 그려지는 미래를 좇았다.

“다니엘을 노리는 거냐?”

“아니에요……. 다른 그림자를 노리고 있어요.”

비비안은 꿈속을 헤매듯 말했다.

“다른 그림자?”

띠리리릭.

그때 에두아르의 스마트폰으로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헛!”

내용을 살피던 에두아르가 신음을 터트렸다.

“에두아르 경, 무슨 일입니까?”

“……그녀입니다.”

“누구…….”

“야훼바트!”

에두아르와 비비안 입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이름.

“야훼바트……. 로리아나!”

루이스도 깜짝 놀랐다.

이스라엘에서 여호와의 신전을 수호하는 성녀 로리아나.

차일드 가문의 정통 후계자인 로리아나는 함부로 자리를 움직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급 이상으로 보호를 받는 존재였다.

기사단도 로리아나의 눈치를 봤다.

기사단 가문도 두려워할 정도인 세계 경제계의 여왕.

만약 아사신이 그녀를 노린다면…….

“젠장. 3차 세계대전 일어날 수도 있어.”

루이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한국은 중동의 화약고와 버금가는 장소였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힘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공간.

그런 곳에서 차일드 가문의 수장이 해코지라도 당한다면 그 파장이 어디로 튈지 몰랐다.

“가야 돼요.”

비비안이 눈을 뜨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기사단장이 부재인 만큼 루이스는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제가 갈 거예요.”

“안 돼! 위험해! 아사신 놈들은 진화했다. 이제는…… 우리 힘으로 벅차!”

루이스가 두려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만류했다.

아사신을 감시하던 기사들이 하나둘씩 죽임을 당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술법을 익혀 사용하는 자들.

흑마법이라는 결론이 났다.

기사단의 능력도 과거와 같지는 않았다.

검술보다는 총을 주로 사용하는 현대판 기사들.

그러나 괴이한 마법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더 가야 돼요.”

“뭐라고?”

“다니엘에게 비책이 있어요.”

“그자는…….”

“마법사에요. 그것도 엄청나게 강력한.”

비비안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찬성입니다. 캐나다에서 봤던 다니엘은……. 진짜 마법사였습니다.”

일찍 다니엘의 능력을 경험했던 에두아르가 동의했다.

프랑스에서 비비안이 습격받았을 때부터 홍콩과 캐나다 등지에서 보였던 그의 능력은 인간의 상상을 불허했다.

“음…….”

고민에 빠진 루이스.

사랑하는 여동생을 험지로 보내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가문의 일이에요.”

루이스 마음을 엿보고 비비안이 말을 이었다.

“알겠다. 너도 기사단원이니…… 기사단을 위해 싸워라.”

어렵게 떨어지는 승낙.

“최선을 다해 기사단의 명예를 지키겠습니다.”

비비안이 기사단의 예법으로 인사를 했다.

“에두아르. 가문 전용기를 이용하세요. 능력 있는 단원들도 데려가십시오.”

“아가씨 경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을 믿겠습니다.”

‘야훼바트……. 다니엘을 향한 마음이 그 정도였다니…….’

루이스는 로리아나의 진심을 깨달았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으로서의 행보.

앞으로 다니엘을 더 조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다.

***

부아아아아앙.

조금만 밟아도 스포츠카는 우렁찬 배기음을 토하며 쭉쭉 나갔다.

“…….”

아무 말도 없는 야훼바트 로리아나.

그녀가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차안을 가득 채웠다.

불시에 왜 방문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전에 로리아나와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자고 약속했다.

생각보다 빨라진 그녀와의 만남.

청주공항에서 바로 로리아나를 픽업했다.

차일드 가문의 주인답게 경호가 삼엄했다.

뒤를 따라오는 검은색 SUV 차량들.

바로 머리 위 상공에서는 헬기까지 따라왔다.

로리아나의 현재 위치에 대한 증거였다.

- I’m gonna make~♬

스피커에서는 감미로운 재즈풍 팝송이 흘러나왔다.

유명을 달리한 전설적 팝가수 마이클을 추모하기 위해 부른 유명 뮤지션의 헌정곡.

로리아나는 말없이 전면을 보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그녀의 옆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야훼의 딸이어서 그런지 신성한 힘이 유난히 강하게 그녀를 감쌌다.

그 누구보다 고결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로리아나.

“배 안 고파요?”

“기내에서 먹었어요.”

괜한 걱정이다.

전용기 747 비행기 안에 실력 좋은 주방장이 없다면 이상했다.

“이번 방문, 의외입니다.”

“저도 그래요.”

대화하기 쉽지 않은 여인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도저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목소리는 듣기 좋다.

“한국 어때요?”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에요.”

“그래요?”

“척박하지도 않고 사계절의 축복이 함께하는 곳이에요. 신들의 힘이…… 강해요. 사랑한다고나 할까?”

보통 사람은 느낄 수 없는 힘을 알아채는 로리아나.

“그래서 탐내는 놈들이 많습니다.”

“축복은 고난 속에서 얻어지는 값진 선물입니다.”

하긴, 아무리 힘들어도 이스라엘만 하겠나.

하나님께 무수히 시험 당했던 민족.

대한민국만큼이나 사나운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청주공항에서 장주시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무리한 부탁 받아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사실 무리한 부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전화 한 통으로 한국에 가는 중이라고 통보했던 로리아나.

벙찐 상태에서 우리 집에 가보고 싶다는 말까지 들었다.

부탁 아닌 부탁.

좋은 호텔이나 청와대 영빈관을 놔두고 그녀는 본가 시골집을 콕 찍었다.

지난여름 휴가 때 고택에 대해 몇 마디 했더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야훼께서 허락했어요.”

로리아나의 말은 의미를 찬찬히 되새기며 들어야 했다.

“휴가도 다니엘 집에…… 가도 된다고 했어요.”

“…….”

신을 모시는 로리아나.

휴가 결정권을 쥔 보스가 야훼였다.

다른 이들은 긴가민가하겠지만 난 그녀가 야훼의 종이라는 걸 안다.

“고마운 분이군요.”

- 야훼가 고마움의 대가로 포인트를 차감해 갔습니다.

“!!!”

칼만 안 들었지 순 날강도다.

고맙다고 말했더니 바로 포인트를 탈취해 갔다.

한참 상급신이라 어떻게 제지할 방법이 없다.

최대한 말조심을 하는 수밖에.

“야훼께서는 언제나 따뜻한 분이십니다. 모든 인간들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는 그분은……. 인간을 바르게 굽는 옹기장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요?”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로리아나의 순수한 믿음을 일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이 신 저 신 다 만나본 결과, 신들은 인간보다 더 계산적이고 무서운 분들이었다.

“……성이네요.”

어느새 차는 고향 마을로 접어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높고 기다란 성벽.

몇 년 동안 절치부심 추진해 온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단단하게 닫혀 있는 문 앞으로 이동했다.

스르륵.

자동인식시스템이 장착돼 있는 문.

나의 차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아!”

매력적인 음색으로 짧은 탄성을 터트리는 로리아나.

“제 왕국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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