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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장. 빅딜의 계절(2) (648/1,284)

651장. 빅딜의 계절(2)

“반도체라…… 배터리에 이어 반도체 분야에 투자한다 이거지.”

엘자그룹 회장실.

고자룡 회장은 장태산에 관한 보고를 받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은 장태산.

배터리 사업에 집중하는 것 같더니 또 다시 엉뚱한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그것도 러시아에.

“도대체 뭘 믿고 그런 사업에 그 큰 자금을 투입하는 거야?”

고자룡 회장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태산이 확실히 주도권을 갖고 있는 TS그룹이 최근 부쩍 여러 반도체 소재 사업 기업과 접촉했다.

대부분 엘자그룹과도 연관 있는 사업체들.

장태산의 투자 회사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룹 정보망을 풀가동해 놓아 수시로 그에 관련한 정보가 들어왔다.

“임성철 회장과 뭔가 빅딜을 추진한 거야?”

장태산이 홍천각에서 임성칠 회장과 독대한 일도 이미 알고 있다.

엘자가 반도체 부분은 다른 기업에 내주고 말았지만 디스플레이 쪽은 강세였다.

오정도 마찬가지.

그런 와중에 장태산과 임성철 회장이 만났다.

동시에 장태산은 반도체 소재 기업들과 접촉 중이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하는 족족 대박을 터트리는 장태산의 행보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확정적인 소문은 새나오지 않았다.

직접 증거가 부족했다.

연관된 기업들의 우두머리 회장으로 통했지만 대내외적으로 변호사 신분인 장태산.

놈은 무섭도록 거침없는 설계자였다.

시간이 갈수록 피부에 실질적으로 와 닿았다.

안아와 천일, 삼룡에 이어 동룡까지 작업해 무너뜨렸다.

그들 기업을 합치면 10대 그룹 안쪽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빈틈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해외 투자자 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구도.

짐작만 할 뿐 근거를 제시해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하기 어려운 장태산.

“휴우.”

고자룡은 한숨만 내쉬었다.

중국에 건설되는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사업에 그룹 에너지가 막대하게 소모됐다.

반드시 미래를 위해 들어가야 하지만 찝찝했다.

중국이라는 국가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식인 집단과 같았다.

공산당과 권력자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어제까지 쌓은 영광을 잃을 수 있었다.

꽌시도 한계가 존재했다.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도 없었다.

10억 인구가 주는 매력은 독을 품은 꽃처럼 치명적 향기를 풍겼다.

삐이잇.

[회장님 고광문 전무님 오셨습니다.]

“들여 보네.”

회사인 만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임에도 분명하게 직급대로 행동했다.

스르릇.

회장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는 깔끔한 스트라이프 블루 슈트 차림의 남자가 당당하게 들어왔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앉아라.”

“넵!”

고자룡 회장의 장남이자 미래 엘자그룹의 회장으로 낙점된 고광문 전무.

나이는 아직 삼십대 초반이지만 여러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였다.

직원들과 식당에서 매일 밥을 함께 먹을 정도로 소탈했다.

임원직으로 직급은 높았지만 젊은 만큼 꼰대 기질은 전혀 없었다.

외국 유학 경험에서 쌓았던 특유의 밝은 화법으로 붙임성까지 좋았다.

“밥은?”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네 덕분에 요즘 식당 밥이 맛있다고 소문났더라.”

“아버지 덕분 아니겠습니까.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고자룡 회장은 아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엄하지만은 않았다.

딸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에서는 통했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은 따뜻하고 신뢰가 담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고민 있으십니까?”

“그렇게 보이냐?”

“요즘 잠도 잘 못 주무시지 않습니까.”

“미래에 네가 겪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벌써 탈모가 온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유전이다.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다른 좋은 것도 많이 물려받았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아들의 모습을 고자룡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추진하던 사업도 잘 처리했다.

여타 기업 후계자들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주변에 자기 사람이 많았다.

여러 라인이 복잡하게 얽힌 엘자그룹에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너 사람 한번 만나볼래?”

“아버지! 저 유부남입니다.”

“여자 말고.”

“네?”

아버지 스타일을 알고 있는 고광문은 퍼뜩 의외라 생각했다.

쉽게 누구를 만나라고 권하지 않는 아버지였다.

결혼도 아버지의 간섭 없이 유학 중에 연애를 한 상대와 진행했을 정도다.

생각보다 소박한 그룹 회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아버지를 고광문은 진심으로 존경했다.

다른 기업 회장들처럼 그 흔한 구설수도 없었던 아버지.

“연지가 좋아하는 그 녀석 알지?”

“장태산 말입니까?”

“그래.”

‘장태산…….’

구광문도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막내 여동생이 마음을 두고 있다는 장태산.

풍문으로 그에 관한 소문도 몇 가지 들었다.

집에 찾아와 아버지와 대작도 했던 인물이다.

분위기가 좋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그 이후 아버지가 알게 모르게 계속 신경을 많이 써온 사실도 알고 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좋게 지내봐.”

“네???”

“여러 번 만나봤지만 조심해야 할 친구다. 가까이 하면 화를 면하겠지만 멀리하면 화를 피하기가 힘들 것이다.”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른 아버지의 뼈가 담긴 말.

결단코 적으로 삼지 말라는 의미였다.

“연지를 친구처럼 생각한다. 같이 만나봐. 기업가를 떠나 우애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더 좋겠구나.”

권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명령과 같았다.

이 정도라면 그만큼 아버지 고자룡 회장이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의미.

‘만나보면 알겠지.’

고광문도 암암리에 장태산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대한민국 정재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풍운남 장태산.

내심 그와의 만남이 기대됐다.

***

“카리나?”

도도희는 회의실로 들어서는 금발의 9등신 미녀를 단박에 알아봤다.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스웨덴 미녀.

“오! 도희!”

카리나도 도도희를 알아봤다.

“…….”

나머지 인사들은 미녀의 등장에 눈만 커다랗게 뜨고 껌뻑였다.

아직 누구도 젊은 북유럽 미녀의 예고 없는 등장을 이해 못 했다.

“반가워요. 카리나.”

“보고 싶었어요. 다니엘.”

스웨덴어가 울렸다.

카리나가 하얀 이를 내보이며 활짝 웃었다.

회장실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미녀만이 펼칠 수 있는 마법.

“앉아요.”

“고마워요.”

카리나는 도도희 옆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처음부터 회의에 참석해 있던 것처럼 금세 구성원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다들 인사하십시오. 볼부 자동차 대표님의 비서…….”

“안뇽하세요. 볼부의 카리나 이사입니다.”

그때 어색하지만 정확한 한국어 발음의 인사말이 튀어나왔다.

“카리나 한글 배웠어요?”

도도희가 놀라며 물었다.

“원래 관심 있으면 금방 배워요.”

또박또박 대답을 하는 카리나.

그녀의 눈동자가 장태산을 향했다.

아직도 식지 않고 여전한 관심.

“카리나. 여기 이분은 한국의 TS그룹의 하관우 회장입니다. 이쪽 분은 천일건설의 황효관 대표, 저기 잘생긴 남자 분은 삼룡자동차의 현동영 대표입니다.”

장태산이 빠르게 자리에 동석한 인사들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카리나 이사님.”

“미인이십니다. 이사님.”

“말로만 듣던 볼부 이사님이시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중년의 세 남자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카리나가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카리나가 오늘 이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나요?”

뜨거운 분위기로 회의가 정점에 오른 참이었다. 그때 카리나가 등장한 것이다.

삼룡의 합작 회사라고는 하지만 볼부 이사는 외부인이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초청했습니다.”

장태산은 짐작하기 어려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

그의 대답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카리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현동영 대표님. 공장 확장은 잘 되고 있습니까?”

“지시한 대로 라인을 신설했습니다. 퇴직 직원들뿐만 아니라 신규 직원 채용공고도 냈습니다.”

“의문이시죠. 아직 신차도 준비 안 됐는데 직원들을 채용하라 지시한 이유가 말입니다.”

“네…….”

아닌 게 아니라 현동영 대표는 의문이었다.

장태산 회장의 파격적인 복지와 기타 사업 추진으로 엄청난 자금이 사용 됐다.

은행 차용도 아닌 해외 투자금.

다행히 직원들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문제는 대책 없이 공장 라인을 증설했다는 것이다.

한번 뽑은 직원을 다시 정리하려고 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미래가 불안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업지역에 삼룡자동차도 갑니다.”

“네? 러시아에요???”

“반조립 형태로 진출할 생각입니다.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면 물류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할 겁니다. 러시아, 삼룡이…… 먹는 겁니다.”

“아!”

삼룡은 해외 공장이 전무했다.

미션과 엔진 같은 중요 부품도 대부분 수입품에 의존했다.

“유럽과 미국 공장도 계획 중입니다.”

“유럽과 미……국요?”

현동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유럽과 러시아까지는 어떻게 이해가 가능한 부분인데 미국은 전혀 다른 시장이었다.

“볼부와 같이 갑니다.”

“영광이에요~.”

카리나는 장태산의 말에 활짝 웃으며 반겼다.

“볼부는 고급차 라인이 될 겁니다. 삼룡은 그 아래. 팍스바겐그룹처럼 운용 될 겁니다.”

현동영은 장태산의 엄청난 계획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계 모든 자동차 메이커들의 격전장이 바로 미국이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진짜였다.

“우리 승부수는 하이브리드와 전기 자동차입니다. 자율 주행에 관한 여러 특허 회사와의 협업도 준비되었습니다.”

장태산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미래 기술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미였다.

“TS그룹에서 개발 중인 배터리를 탑재하면 승부를 볼 수 있습니다. 볼부에서 테스트 중인 능동 변속 제어 기술과 빌트인 캠 시스템, 디지털 키, 음성인식 자동 제어 등의 신기술도 준비 중입니다. 최초, 최고만이 살아남는 세상입니다. 선점하는 자만이 우위를 점하고 선두에서 호령할 수 있습니다.”

장태산 대표의 조용한 포효에 함께한 이들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더 멋있어졌어…….’

볼부의 이사 카리나는 오랜만에 마주한 장태산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저렇게 대놓고 멋있는 남자는 흔하지 않았다.

스웨덴 정부와 왕실을 협박해 자금을 끌어낸 뛰어난 투자자.

그로 인해 볼부는 미래의 희망을 점칠 수 있게 됐다.

안전하나 딱딱하고 재미도 없는 그저 그런 자동차 메이커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탈바꿈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과거 대웅처럼 패키지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모든 건설부분은 천일건설에서 맡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TS그룹이 주도합니다. 금융과 기타 문제는 도도희 대표, 자동차는 삼룡과 볼부가 주축이 되어 세상을 호령하게 될 겁니다. 그게 제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일류 선도 기업 집단! 우리가 그 주인공입니다!”

장태산 대표의 뜨거운 외침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심장과 뇌리에 각인되고 있었다.

각각이지만 하나의 그룹처럼 움직이는 장태산 사단.

“회장님을 따르겠습니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들이 중앙 상석에 앉아 있는 장태산을 향했다.

과거의 대웅이 이루지 못했던 초일류 선도 기업.

장태산이라면 반드시 실현해 낼 것 같았다.

***

“이제 계산서를 청구해 볼까…….”

열띤 회의를 마치고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다.

맛있는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다.

다시 돌아온 사무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창밖을 내다봤다.

계산서를 내밀기에 딱 좋은 시간.

스마트폰을 들었다.

타다닥.

가볍게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루루루루.

연결 신호가 갔다.

- 여보세요.

곧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

“접니다. 회장님.”

- ……기다리고 있었네.

“그럼 오늘 보는 게 좋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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