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장. 악마의 새끼들 (3)
“자살로 종결처리됐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역시 부장검사님이라 말이 통하십니다. 하하하.”
“그 꼴통년 때문에 지청이 난리도 아닙니다. 작은 것도 큰 걸로 만들고 자살도 타살이라고 주장하니 일 처리가 안 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 살다 보면 꼭 그렇게 답답한 종자들이 있습니다.”
“조직에서 나가라고 해도 악착같이 버티고 있습니다. 물귀신이 따로 없습니다.”
“쯧쯧.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한 잔 쭉 드십시오.”
남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위치한 고급 횟집의 별실.
하늘승리교 집행사자인 남우현이 여형조 지청 부장검사와 술잔을 나누었다.
남우현은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웃음기를 지울 수 없었다.
별궁 관리를 하고 있지만 하늘승리교 집행사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10년 이상 교에 충성을 보여야 하고 상당한 헌금을 지속적으로 내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절대 공짜는 아니었다.
교에서 파견해 주는 충성스런 일꾼들을 이용해 여성들은 술집에, 남성들은 바다 일에 투입했다.
인력관리로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익만 해도 수억이 넘었다.
종교재단 귀속 단체라 세금도 없었다.
모두 다 기부 형태를 띠었다.
다른 인력들과 달리 교주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자들이라 말썽도 거의 없었다.
앉아서 거저먹는 사업.
교에 일정 이상의 금액을 헌납하고 이렇게 교를 위해 중요 인물들을 포섭하거나 만나면 됐다.
특히 이번에는 사고가 좀 컸다.
바다 기도를 드리러 갔던 교주와 동행했던 별궁에서 교육 중이던 선녀 하나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안 봐도 뻔한 교주의 행실.
급히 사건에 관한 모든 걸 틀어막아야 했다.
요즘 들어 교에서 도망쳐 나간 배덕자들이 언론과 사회에 교의 비밀을 누설하고 있었다.
그만큼 예민한 시기.
이때 눈에 띌 만한 능력을 보여야 상급 사자나 미래에 장로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크으. 정말 속이 시원합니다.”
폭탄주 한 잔을 마신 여형조는 모든 시름을 덜어낸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상급자 명령 불이행으로 구서현을 근신처분 조치했다.
지청장까지 승낙한 건수였기에 당분간 볼일이 없었다.
검사동일체가 강하게 적용되는 검찰은 위계를 특히 중시했다.
그래서 성향이 올바르고 심지가 연약한 여자 검사들이 특히 살아남기 힘들었다.
“부장검사님, 이번 일도 마무리 잘 됐는데……. 큰판에서 한 번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여헝조의 눈이 반짝였다.
큰 곳이라 함은 지방이 아닌 중앙을 의미했다.
“도움만 주신다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부장검사까지는 대부분 그냥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줄이 필요했다.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요?”
‘넌 걸렸어!’
신실한 신도의 아들인 여형조 부장검사.
집행사자 남우현의 꾀임에 당하는 순간이었다.
이 낚싯줄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야망을 품은 사내, 특히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검사는 낚기 쉬운 먹잇감 중 하나였다.
“첫 번째는 저희 교단의 비밀 신도가 되는 겁니다.”
“신, 신도요…….”
여형조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이비 교단의 신도가 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신분은 비밀 보장 됩니다. 그리고……. 중요 정치인들과 법무부 간부가 후원자가 됩니다.”
꿀꺽.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
악마가 내민 손을 잡으면 그토록 원하던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비밀 보장 확실합니까?”
“물론입니다. 교주님을 비롯해 핵심 장로님, 그리고 저 이렇게만 알게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하늘승리교의…… 비밀 신도가 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 부장검사님도 하늘치부책에 승리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관계가 형성 됐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오늘 되도록 조용히 처리하겠지만 시끄러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깔끔하게 뒤처리를 해 주시면 됩니다.”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부장검사님이 가장 경멸하는 그 계집입니다.”
“!!!”
검사를 손보겠다는 의미.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고민은 길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직에서 축출될 이단아였다.
누군가 대신 손을 쓴다면 말릴 일은 아니었다.
“요즘은 검사들도 힘들어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실행 예정 방법까지 넌지시 알려주는 남우현 집행사자.
“안타깝게도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양심을 악마에게 판 여형조 부장검사.
어제까지 본인 휘하였던 여 검사를 마음에서 깨끗하게 정리했다.
악마가 내민 손을 잡은 이상 따라야 하는 작은 희생 따위는 눈감을 수 있었다.
이 순간부터 그 역시 악마의 은총을 구걸하는 악마 새끼들 중 한 사람이었다.
***
- 행님~. 지금 어뎁니꺼?
“나야. 한잔하는 중인데?”
- 흐흐. 그럼 이리로 쪼매 오셔야겠음니더.
“어딘데?”
- 지금 작업 시작했다 아입니꺼~. 흐흐흐.
“!!!”
천준규는 단골 룸에서 술을 마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잡고 있던 종업원의 풍만한 가슴에서 손을 뺐다.
“나가.”
“치이~. 나빴어~.”
천준규 품에 안겨 있던 여종업원이 밖으로 나갔다.
“통영이야?”
- 마~. 여기도 바람 억수로 좋습니데이~.
최도철이 능청을 떨었다.
10여 년 전 결성된 부산 신흥조직 항구파.
그 조직의 행동대원이었던 최도철은 천준규 덕분에 전무 자리까지 올랐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봤다.
깡패와 형사 신분으로 가는 길은 달랐지만 욕망의 빛깔이 같았다.
상대 조직이나 중요 단속 정보를 넘겨주고 천준규는 돈을 챙겼다.
최도철은 돈을 넘기고 천준규에게서 귀한 정보를 얻었다.
공생 관계는 척척 죽이 잘 맞았다.
천준규와 최도철은 각자의 조직에서 무난하게 승진했다.
서로가 직접 할 수 없는 간지러운 곳을 번갈아가며 긁어줬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다시 만난다.
“어딘데?”
- 순신이 행님 공원 근처 방파제라코 하데요~.
“……담갔냐?”
천준규가 조심스럽게 상황을 물었다.
아무리 조직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인 인물이지만 분명한 검사였다.
자칫 언론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대대적으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 우리 아들이 빙신핫바지도 아이고~ 걱정하지 마이소. 아직 안 담갔으요~.
“그런데 왜???”
- 이 가스나 얼굴이 반반하데요……. 담그기 전에……. 흐흐흐. 행님이 억수로 싫어하는 것 같은데…… 생각있음니꺼?
“!!!”
최도철의 끈적끈적한 목소리에 천준규는 흥분으로 피가 확 뜨거워졌다.
자신을 대놓고 쓰레기 취급하고 무시해 온 도도하기 그지없었던 구서현 검사.
회가 동하지 않으면 남자도 아니었다.
“괜찮겠냐?”
- 여그 아는 동생 창고가 있더만요~. 끝나고…… 조용히 배타고 가서 드럼통에 담가서 넣으면 끝나지라~.
최도철 손속은 과거부터 치밀하고 잔혹했다.
“…….”
생각에 빠진 천준규.
- 아따 울 행님~ 간 많이 쪼그라졌는갑소.
최도철이 약을 올렸다.
“바로 간다…….”
천준규는 치밀어 오르는 욕망에 평소의 조심성을 상실했다.
- 빨리 오이소. 우리 야들이…… 성격이 지랄 같아서리……. 크크크크.
음흉하게 웃는 최도철.
띠릭.
천준규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썅! 구서현……. 넌 뒤졌어! 흐흐흐.”
악마의 손길을 기꺼이 받아들인 또 다른 악마의 새끼 천준규.
악마가 새끼를 치고 또 새끼를 쳤다.
술을 마신 채 차를 몰아 방파제로 향했다.
***
“X발. 기분 진짜 더럽네…….”
구서현은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정신은 점점 맑아지는 걸 느꼈다.
그 대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부장검사도 뭔가 연관이 있는 게 확실했다.
직원들 앞에서 그렇게 광분할 만큼의 수준 낮은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뭔가 달랐다.
토요일이었건만 직원들과 출근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었다.
다른 때 같지 않게 맞서다 얻어맞았다.
기분이 엿 같았다.
근신처분까지 내려졌다.
동료 검사들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마치 자신을 몹쓸 전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취급했다.
누구 하나 다가오거나 위로의 말마저도 건네지 않았다.
좁디좁은 지청에서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답답함에 차를 몰고 평소 즐겨 찼던 이순신 장군 공원 쪽으로 향했다.
1차로 가까운 식당에서 소주 몇 병을 비웠다.
관광객들이 많은 다른 항구나 방파제와 달리 이곳은 공장들이 많았다.
찾아오는 이들이 드문 방파제는 홀로 상처를 치유하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소주 몇 병을 구입해 방파제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답답할 때마다 찾게 되는 술.
알코올 중독 수준은 아니었지만 많이 의지하게 됐다.
꿀꺽 꿀꺽.
소주병을 입에 대고 몇 모금 마셨다.
안주는 없었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철썩철썩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쳐 부서지며 요동쳤다.
해는 어느새 지고 저녁이 찾아왔다.
몇 시간 전 장태산과 통화를 했지만 녀석은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보란 듯이 방전이 됐다.
어제 비밀스럽게 압수수색영장을 준비하면서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휘하 직원들의 배신에 속은 쓰리고 아팠다.
그들도 윗선 눈치를 봐야 하는 검찰 하급 공무원들이기에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하다. 검사가 X도 능력이 없어서…….”
직원들도 능력 있는 검사를 만나야 조직 생활이 편했다.
사수가 무능하면 밑에 직원들도 한 몸처럼 취급되는 곳이 검찰이었다.
“……그런데 이 자식은 어디 간 거야?”
휘리리리링.
상념에 젖다보니 주변에 어둠이 내렸고 바람이 제법 불었다.
이제는 자리를 떠야 할 시간.
어떻게든 대리를 불러 집으로 가야 했다.
봉투에 빈 술병을 챙겨 담았다.
병들이 부딪치며 찰캉찰캉 소리를 냈다.
스으윽.
그때 미약한 가로등불 너머 방파제 입구 쪽에서 건장한 실루엣이 여럿 보였다.
“뭔 남자 새끼들이 청승맞게…….”
연인들은 잘 찾지 않는 방파제.
구서현은 술병을 들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살짝 비틀거리는 몸.
고개를 저으며 걸어갔다.
뚝.
그때 다가오던 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거리는 약 5미터.
“클클. 사진처럼 죽이삐네~.”
“마……. 검사라카더니 때갈이 다릅니더. 흐흐흐.”
“누님. 우리하고 건설적인 대화 좀 나눠야겄는디~.”
“!!!”
‘이…… 새끼들……. 뭐야!’
구서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사실에서 자주 마주쳤던 껄렁한 양아치 같은 조폭 새끼들 세 명이 앞을 막아섰다.
도망갈 곳은 없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공장 쪽에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니들 뭐야!”
그래도 검사의 패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비닐 봉투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들고 호통을 쳤다.
“저 가시나 뭐라캐쌌노?”
“그걸로 우리를 직이뿔라고?”
“검사님, 연장은 요런 걸 써야 하지 않겄오~.”
스릉.
앞에 있던 한 놈이 품에서 날카로운 사시미를 꺼냈다.
‘계획적이다!’
목적 없이 찾아온 놈들이 아니었다.
검사라는 걸 알면서도 사시미를 뽑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는 의미.
“누구냐? 하늘승리교냐?”
“어디라꼬요?”
“난 우리 큰행님만 믿는디~. 크크.”
“검사님, 오늘 조삐대뿟소~ 키키키.”
‘하늘승리교가 아니라면……. 설마!’
“준규냐? 그 비리 짭새 새끼가 보냈냐?”
“허매~. 겁나 눈치 좋소~.”
“!!!”
부인하지 않는 강패 새끼들.
“비켜……. 싹 깜방에 처넣기 전에!”
성추행을 당했던 과거, 이후 몸을 지키기 위해 호신술을 배워뒀던 구서현.
파자장창.
술병이 든 봉투를 바닥에 내던지고 그 안에서 꺼낸 소주병을 돌려까 날카롭게 만들었다.
“귀여븐 가스나~.”
한 놈이 바짝 다가왔다.
그 순간.
“꺼져 개새끼들아!!!”
피를 봐야 집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오늘.
구서현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깨진 병을 놈의 얼굴로 찔러갔다.
쇄애애앳.
상당히 빠른 일격.
휘이이잉.
하지만 덩치 큰 놈의 몸뚱이는 생각보다 빨랐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병.
퍼억.
그 순간 구서현의 배를 가격한 무식한 주먹.
“커억…… 컥!”
숨이 막히며 순식간에 손의 힘이 풀렸다.
동시에 무릎이 꺾이고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파장창 깨지는 병.
“넌……. 오늘 네가 밤새 담가주마~. 케케케.”
“웩…… 웩…….”
그리고 바닥에 술을 개워 내는 구서현의 귓가에 들려오는 음흉한 목소리.
“묶어삐라.”
터더덕.
순식간에 온몸이 덩치들에 의해 포박당한 구서현.
‘……태산아.’
그 순간 떠오르는 장태산의 얼굴.
자신이 있는 동안 확실하게 지켜주겠다고 말했던 장태산.
닥쳐 올 다음 순간들을 예감하며 구서현은 눈물을 흘렸다.
입안에서 혀를 이 사이에 말아 올렸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어 버려야 영혼이라도 평안할 것 같았다.
악마 새끼들이 함부로 할 노리갯감으로 육신을 던져주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아니, 지금껏 뚝심 있게 지켜온 희망이 산산이 부서진 자신의 인생이 너무 서글펐다.
꾹.
이 사이에 느껴지는 물컹한 혀의 느낌.
구서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둠에 둘러싸였지만 분명 저 너머 우주에는 변함없이 밝은 태양이 있다.
‘신이시여…… 이 악마 새끼들을 지옥으로 인도하소서!’
구서현은 죽음을 재단 삼아 간절히 신께 마지막 기도를 했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앙!
그때 귀를 파고드는 엄청난 굉음.
상향등을 밝히며 방파제 쪽으로 돌진해 오는 차 한 대.
미친 속도.
“저 미친놈은 뭐꼬???”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