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장. 악마의 자식들
딸깍 치이이익.
“후우우.”
담배에 불이 붙자 깊게 빨아 마시는 입술.
조명이 은은한 지하 공간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어때 좋냐?”
“흐흐……. 개꿀맛.”
“오늘부터 학교에서 푹 쉬었다 오라니 이것보다 좋은 게 없다. 케케.”
“담탱 표정 봤지? 좋아 디지더라…….”
“돼지 같은 X! 돌아가기만 해봐. 꼰대한테 1000만 원이나 받아 처먹다니…….”
“그 덕분에 편하면 됐지.”
스으으읍.
체격이 좋은 세 명의 남학생이 담배를 빨았다.
같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키가 170 중반은 훌쩍 넘어 언뜻 성인처럼 보였다.
“한 잔 마실래?”
“블루 있지?”
“그럼~.”
“빨아보자. 크크.”
과거 주점으로 사용했던 지하 공간에는 드럼과 기타, 베이스 같은 악기가 한쪽에 버려진 듯 세워져 있었다.
간이침대도 보였다.
한쪽 장식장에는 소주와 맥주를 비롯해 각종 술들이 빼곡히 차 있다.
벽면에는 욕과 영어가 난잡하게 그림들과 섞여 색색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래피티로 도배됐다.
누가 봐도 난장판.
세 명의 청소년들은 익숙하게 술을 땄다.
한 병에 수십만 원씩 하는 블루라벨 양주를 병째 입에 대고 마셨다.
“크으으으…….”
“싸구려는 개구리지만 이건 대박이야. 입에 ㅤㅊㅘㄱㅤㅊㅘㄱ 감긴다~.”
“새엄마X이 박스째 주더라.”
“빨리 마시고 뒈지라는 거지~.”
“내가 우리집 하나뿐인 아들이야. 새엄마X은 딸만 낳아서 할배 꼰대 눈 밖에 났어.”
새엄마를 향한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년 전동국.
“너네 꼰대도 적당히 하지. 새엄마 나이가 이제 스물일곱? 진짜 젊다~.”
“그럼 뭐해. 우리 꼰대 요즘 세컨드 새로 키우는 것 같더라. 집에 잘 안 들어와~. 아주 개판이야.”
“우리 꼰대도 마찬가지다. 지들은 그렇게 발정난 개처럼 살면서 우리보고 똑바로 살래. 완전 개웃긴 거지?”
“그래도 용돈은 두둑이 주잖아.”
“이렇게 아지트도 하사하고 말이야. 크크크.”
세 명의 남학생은 아직까지 부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파워 팰리스 로얄층의 거주자들이었다.
강남 명문 사립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집안은 모두 부족한 것 없이 부유했다.
아버지들이 각각 잘나가는 중앙지법 수석 판사, 여당 국회의원, 대기업 3세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잘나가는 집안 핏줄이라 웬만한 사고는 소리도 없이 무마됐다.
“크으으…….”
“X발. 뿅간다~.”
“새끼 술은 약해가지고. 그래서 나중에 큰일 하겠어?”
“할배가 내년에 유학 가라잖아. 그래서 이번에 빼준 거야.”
“판사인 우리 아빠도 한몫했지~.”
“빽은 국회의원이 최고 아니겠냐.”
“지랄. 재벌이 최고야! 대한민국은 돈이 최고지!”
“그래 돈이 최고다! 케케케케.”
담배와 술을 마시면서 어른들 흉내를 내는 소년들.
눈은 총기를 잃고 혼탁했다.
젊은 혈기는 넘치다 못해 폭발 직전이었다.
“그건 그렇고 영진이 그 새끼 불진 않겠지?”
“당연하지. 그 새끼 지 여동생이라면 끔찍하잖아.”
“병신 쪼다 새끼. 그깟 여동생이 뭐라고 쫄아~.”
“아오! 그 XXX 때문에 이번에 꼰대한테 얻어터진 거 생각하면…….”
“우리 꼰대가 그러는데 클럽 꽃뱀이란다.”
“클럽에서 잘 놀아놓고 조용히 따라왔으면 어디가 덧나? 튕기기는 왜 튕겨! 뚝배기를 더 깨버렸어야 하는데!”
“큰 걸로 1장 깨졌다고 꼰대들 심기가 불편하더라.”
“그래도 서로 아는 꼰대들이라 얼마나 다행이냐.”
“어디 가서 말조심하자. 우리도 구속 될 뻔했어.”
“우리 감방 가는 건 아니지?”
“보호처분 3호에서 4호 떨어진다던데.”
“그게 뭐야?”
“사회봉사명령하고 단기 보호관찰이라나?”
“봉사명령? 나보고? 미친……. 클클클.”
“법관인 우리 꼰대가 뭐라는 줄 아냐?”
“뭐?”
“청소년 시절은 질풍노도의 시기니 이해한단다.”
“질풍노도? 뭔 개소리야~. 우리는 그냥 씨가 그런 거야~. 잘나고 돈에 권력도 넘치는데 좀 즐기면 안 돼? 어차피 부모들 늙어 뒈지면 다 우리 거잖아. 우리 형도 대마 피우는데 대학교 잘 다니잖아~.”
“맞아. 젊어서 좀 즐긴다는데 뭐가 문제야? 좌우지간 꼰대들은 세상을 X도 몰라~.”
“그 덕에 우리가 질풍노도 착한 청소년이잖아. 흐흐흐.”
“선량한 청소년을 위하여!”
“위하여!”
“낄낄낄…… 키.”
“푸하하하하하.”
다다다 쏟아지는 세 사람의 대화와 터지는 웃음.
띠띠디딕.
그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딸각.
문이 열리고 세 명의 여학생들이 들어왔다.
진한 립스틱에 색조 화장, 짧게 올라간 치마, 헤어스타일은 깻잎머리칼.
“오빠들 벌써 왔어? 학교는?”
“오늘부터 쉰다~”
“와아 완전 개부럽!”
“학교 끝났어?”
“이제 끝나고 용돈 좀 걷어 왔어~. 저녁에 맛있는 거 사줄게.”
“삥 좀 뜯지 마. 오빠들이 준다니까~”
“자력갱생해야지. 그리고 애들에게는 이게 참교육이야. 아니면 우리를 개XX로 보거든~.”
살살 웃으며 욕을 뱉는 여학생들.
자연스럽게 남학생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한나 아직도 그대로냐?”
그룹에서 가장 리더인 전동국이 옆의 여학생에게 물었다.
“걔가 칠룡 마을 살지만 전체 탑이잖아. 선생님들도 보호가 심해……. 같이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아.”
“전화해.”
“지금?”
“입 아프니까 두말하게 하지 마라.”
“……응.”
제법 생긴 얼굴과 달리 폭력성이 가장 강한 전동국.
재벌가 핏줄을 타고난 금수저 4세였다.
“오~ 우리 동국이 한나에게 뻑 갔네~.”
“크크. 한나가 얼굴이나 몸매나 죽이지.”
친구들이 비릿하게 웃었다.
- 여보세요.
“나 소현이야.”
- 왜......?
“기다려. 아는 오빠가 바꿔주래.”
소현은 전동국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안녕 이한나.”
- 누구…… 세요?
“네가 사랑하는 영진이 오빠 친구 전동국.”
- 아!
전동국이라는 이름에 이한나는 놀람의 신음을 흘렸다.
“네 오빠 보고 싶지 않아?”
- ……너, 너 때문에 우리 오빠가……. 흐윽.
이한나는 금방 울음을 터트렸다.
“워~ 울지 마. 오빠가 그럼 마음이 아프잖아.”
- 나쁜 놈아! 우리 오빠가 너 때문에…….
“오빠 만나고 싶지? 그럼 오빠 말 잘 들을래?”
- 그게 무슨…….
“오빠가 힘 좀 쓰면 영진이가 빨리 나올 수 있는데 말이야…….”
- ……그럼 도와줘. 우리 오빠 아무 죄도 없잖아!
“그건 검사님하고 판사님이 알아서 할 거고……. 넌 네가 할 일만 하면 돼.”
전동국은 표정에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이 이한나를 향해 미끼를 던졌다.
- 뭔데……. 그게 뭐냐고!
“오늘은 늦었고 내일 학교 끝나고 소현이하고 나 있는 곳으로 와. 나랑 상담하자. 그럼 너희 오빠를 위해서 거하게 힘써 줄게~. 흐흐흐.”
딸깍.
대답을 듣지 않고 통화를 끝내는 전동국.
“오오! 마지막 쩔었어.”
“연기 지린다~.”
친구 마형곤과 차성철이 엄지를 내밀며 칭찬했다.
“우리 술 마셔도 돼?”
눈치를 보던 여학생들이 끼어들었다.
집에 들어가 봤자 반겨줄 식구가 없는 여학생들.
밤이슬을 피하고 마음대로 술과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이 아지트가 좋았다.
어차피 밖에 나가봐야 더 사나운 늑대들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 공주님들 마음껏 마셔~. 어차피 밤은 길잖아~. 흐흐흐.”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흡수한 여섯 명 청소년.
진한 담배 연기가 지하 공간을 몽롱하게 지배해 갔다.
***
“형님……. 이거 냄새가 심한데요.”
“그렇지? 덕수 네가 봐도 그렇지?”
“경찰조서와 검찰조서가 다릅니다. 특히 경찰조서는 문장 구조가 틀리는 걸로 보아 수사 중에 담당 형사가 바뀐 것 같습니다.”
덕수 많이 똑똑해졌다.
열람 등사해 온 사건 자료를 빠르게 파악했다.
그런 덕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사람이 달라져도 완벽하게 달라졌다.
과거에 다치고 난 후 금제됐던 머리의 사기를 제대로 뽑아냈다.
천재가 됐다.
사투리도 완전히 사라졌다.
‘행님’이라는 정감 넘치는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해 아쉬웠지만 대신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연수원 성적도 바닥부터 시작해 상위권에 안착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체격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장착했다.
여름용 슈트를 통해 근육질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구입해 준 사륜 구동 지프차도 덕수와 잘 어울렸다.
눈빛은 총기가 넘쳤고 따르는 여자 연수생들도 제법 많아졌다.
상남자 덕수.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건 관계 기록을 살폈다.
“흐음……. 검사 쪽에서 뭔가 빨리 일을 처리하려는 느낌이네. 이 정도 사건이면 초범이니까 보호처분 9호 사건을 넘지 않는 게 관례인데…….”
팔미호도 거들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매력이 역시 예사롭지 않다.
지난 2년 동안의 연수원 생활 기간 중에 팔미호에게 대시했다가 까인 남자 연수생들이 한 트럭이 넘었다.
도도한 팔미호 공수진.
오른손으로 자연스럽게 머리칼을 넘기며 사건 기록에 몰두했다.
“판사는 그마나 괜찮은데 황준혁이라는 공판검사가 꼴통이야. 분명 윗선에서 뭔가 지시를 받았어…….”
감이라는 게 있다.
검찰 쪽 라인으로 압력을 받고 사건이 진행 중인 게 분명했다.
“동부지검 공판검사라고 했지? 내가 한 번 알아봐?”
셋이 있을 때는 편하게 말을 놓는 팔미호.
많이 컸다.
“지금 중앙지검에서 실무수습 중이라고 했지?”
“차장검사가 나 콕 찍어서 데려갔잖아. 아저씨가 보는 눈이 있더라고~.”
배시시 웃는 팔미호.
아는 나도 떨리는데 보통 남자들 심정은 어떻겠나.
검사 지망생인 팔미호는 자신의 스펙을 스스로 관리했다.
검찰 쪽으로 인맥을 쌓았다.
스폰 관계는 철저하게 지켜졌다.
결코 티 나게 도와주지 않았다.
투자 정보를 제공해 가며 그녀의 재산을 불렸다.
그사이 재산은 30억대.
어디 가서 돈으로 꿀릴 상황은 아니었다.
“이영진이라는 학생은 주범이 아닙니다.”
“어떻게 알아?”
“눈빛이 과거의 저와 같습니다. 분노할 줄 알지만 참고 있습니다…….”
첨부된 사진을 보며 덕수는 이영진에게 호감을 보였다.
“문제는 공동정범들인 거 같은데……. 주소가 전부 파워 팰리스네. 그것도 로얄층~. 그에 반해 이영진 학생은 칠룡 마을……. 누가 뒤집어씌운 게 확실해.”
팔미호도 촉을 발휘했다.
“본인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그런데 진범을 지목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야.”
“사건 기록이나 조서를 보면 허점이 많습니다. 자백도 없는 상황에서 증인들만 많아요. 그것도 공범들로 말입니다.”
“피해자 여성의 지목이 결정타네요. 이건 빼박이에요.”
일산의 오피스텔 사무실.
연수원 2년차 실습 기간이라 이용하는 연구회 회원은 여기 두 사람이 전부였다.
전부 실무실습 장소가 가까운 곳들이 아니었다.
그들과 사건을 추리해갔다.
조 변호사님이나 손 대균 이사를 동하면 상황 파악이 빠르겠지만 내 손으로 처리하고 싶었다.
지난 2년 동안 조용히 숨을 죽이며 살았다.
투자는 계속 진행됐다.
수련의 깊이는 더해져 갔다.
틈틈이 이계도 몇 번 다녀왔다.
유일한 제국 황실로 인정을 받은 아린 곁으로 영주들과 기사들이 몰려들었다.
그 사이 몇몇 대귀족들이 왕국을 선포하고 본격적으로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될 것이다.
포인트를 축적해 가며 이계에서도 황실 수호 공작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황실 직속 기사단을 창설한 게 가장 최근의 성과였다.
정병을 육성하고 군사학 공부를 통해 병법을 만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가까워지고 있는 전운.
쉬고 있지만 절대 쉬지 못했다.
스으으으읏.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진한 한기.
“???”
“어? 이건 뭐죠?”
각성이 덜된 지리산 호랑이 동생과 팔미호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오싹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