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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장. 멤버 (3) (538/1,284)

540장. 멤버 (3)

‘뭘까? 이 느낌…….’

공수진은 자신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장태산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처음에 보였던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대로 당했다는 듯한 표정.

“…….”

삼겹살이 익어가는 공간에 침묵이 흘렀다.

공수진은 조심스럽게 신덕수와 장태산을 번갈아 봤다.

특히 장태산을 볼 때는 기분이 남달랐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심장에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전화로만 간간이 통화하던 고연지를 만났다.

엘자 그룹 회장의 막내딸이지만 공수진 같은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고연지.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었다.

대학교는 갈라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대에 입학할 성적은 됐었지만 가정형편상 연지대 법학과 4년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치열하게 살았다.

재학 중 합격을 노리고 사법시험에 매진했다.

학교의 도움으로 공부하던 공수진은 3학년에 1차, 4학년에 최종 합격했다.

상위권 성적을 얻으면서 공수진은 더 만족했다.

목표한 인생에 도달하기 위한 계획표대로 진행됐다.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대기업 산하 하청기업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와 달리 열악하기만 했던 노동 환경.

제철소 야간 근무를 하던 중 아버지는 쇳물과 함께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다.

당시 돈을 더 받겠다고 지방에서 홀로 지내며 일했던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뒤 만 하루가 되어서야 엄마에게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임신 8개월이었던 엄마는 그때 충격으로 공수진을 조산했다.

공수진을 낳고 곧바로 남편 장례식을 치러야 했던 엄마.

당시 아버지의 죽음은 개죽음이었다.

안전장치를 비롯해 2인 1조 근무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산업 재해였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물론 대기업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작업자 실수로 처리됐고 위로금 몇천을 받고 아버지 죽음에 관한 일은 마무리됐다.

산후조리도 못한 채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 일이 한이 되어 엄마는 공수진을 엄하게 교육시켰다.

배워서 남들보다 우뚝 서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세뇌시켰다.

없는 형편에도 고액 학원을 찾아 보내고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SKY 대학교와 사법시험에 합격해 아빠의 한을 풀어주기를 원했다.

공소시효와 소멸시효가 뭔지도 모르는 평범한 여인의 무서운 집념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런 이야기를 무수히 듣고 자란 공수진은 한눈을 팔 수 없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언제나 냉정한 이성을 유지했다.

대학교 시절에도 흔한 미팅이나 소개팅 자리도 가져본 일이 없다.

인물이 좋았던 부모님 유전자를 그대로 닮아 꽤 미모가 뛰어난 공수진.

그런 외모가 사회 생활하는 데 무기가 된다는 것 정도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자 선후배들이 알아서 서머리한 것부터 시작해 각종 족보를 가져다 바쳤다.

신림동에서도 잘나가는 선배들 틈에 끼어 쉽게 법과목을 정복했다.

그렇게 설계해 놓은 것들을 이뤄가던 공수진에게 변화가 생긴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고연지에게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부터 혼란을 느꼈다.

고연지가 함께 순댓국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 날이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친구 고연지가 짝사랑하는 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이끌렸다.

그 뒤로 어떻게든 정보를 모았다.

한국대 법학과 출신에 동계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해 군대를 면제 받았다고 한다.

외모 또한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번듯한 회사를 운영하는 개인 사업가기도 했다.

한국대 법대 재학 중인 고등학교 친구들을 통해 장태산이 학교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럼에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정보에 대한 갈증.

다행히 장태산은 같은 시기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42기 동기가 됐다.

3차 면접과 입소식 때부터 장태산을 몰래 지켜봤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남몰래 찾아온 감정 때문에 병이 되어 버린 가슴앓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을 만큼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토록 냉정했던 이성이 흔들렸다.

이를 악물고 참다 오늘 용기를 냈다.

그리고 우연처럼 장태산 앞에 섰다.

최근 자주 같이 다니는 산적과 약속이 있다는 걸 알았다.

급기야 지금 장태산에게 연구회 멤버 입회 제의를 본인 입으로 했다.

연수원 상위 연구회의 제안을 재고 있었는데 그 계획이 단박에 무너졌다.

상위 연구회의 멤버가 되면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는 건 수순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공수진도 어쩔 도리 없이 인생 스케줄이 꼬여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미 장태산을 향한 끌림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라면 위안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위험해.’

하지만 분명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영혼이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섣불리 빠져나갈 수 없는 소용돌이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산적이란 별명이 붙은 신덕수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두 사람에게 신경이 쓰였다.

진한 감정적 전류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정면 돌파가 답이야!’

고민할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피하지 않고 선택하는 정면 돌파 신공.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니 직접 부딪쳐 경험하는 걸 선택했다.

“왜 안 돼요?”

공수진은 머리칼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기며 장태산을 쳐다봤다.

남자들이 가장 좋아라 하는 매력적인 자세.

장태산에게 입회 거부 이유를 재차 물었다.

신덕수는 입이 쩍 벌어졌다.

신덕수와 달리 인상을 찌푸리는 장태산.

“머리 어지러우니까 꼬리 그만 흔들어요.”

“네?”

“행님요. 선녀님에게 꼬랑지가 어데 있습니까?”

‘꼬리? 내가?’

장태산 눈동자는 공수진의 눈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뒤쪽 허공을 보고 있었다.

장태산의 눈빛을 따라 고개를 돌려 뒤를 보는 공수진.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던 공수진은 괜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

와아! 이거 구전으로 내려오는 지리산 전래동화도 아니고…….

회귀 자체도 말이 안 됐지만 그런 내 인생에 이제 호러까지 겹쳤다.

신들로도 모자라 전생 인연이라는 여우까지 합세했다.

구미호는 아닌 것 같다.

분명하게 흔들리던 꼬리가 사라졌다.

대충 후다닥 세어 봤을 때 꼬리 개수는 여덟 개.

지리산 호랑이 시절 여우하고도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행님요~. 농담 그만하이소~. 꼬랑지 안 보입니데이.”

덕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전생에 형이라고 해도 믿었던 덕수가 팔미호 여우에게 홀려 내 말을 의심하고 있었다.

“다른 연구회에서 연락 없었어요?”

외모도 뛰어났고 학벌도 좋았다.

연구회에서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기에 알맞았다.

전생에 팔미호였던 영향 덕분인지 은근한 매력이 사람을 취하게 했다.

관상에 감춰진 도화살이 가득하다.

나쁜 길로 가면 여러 남자가 공수진 때문에 죽네 사네 할 판이다.

“당연히 있었죠~.”

공수진이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그럼 거기 가세요.”

쿨내 진동하는 명쾌한 답을 줬다.

기를 확 꺾었다.

“네?”

내가 구상하는 순수 연구회는 기득권을 창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폭풍처럼 강바닥에까지 쌓인 오염물을 다 뒤집는 집단이 될 거다.

생각 많은 지리산 출신 여우는 방해밖에 안 된다.

전생 인연 운운해도 나 그 정도로 애틋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이 순간 만나고 스치는 사람들도 다음 생에는 모두 전생 인연 신분이다.

“행님요…….”

여우의 미혼술에 당한 덕수가 떼를 썼다.

“덕수야. 넌 빠져.”

“넵!”

한 마디 경고에 신덕수는 정신을 차렸다.

호랑이 집안 뼈대가 있지 여우 꼬리질에 넘어가면 안 된다.

파파바밧.

공수진과 눈빛이 부딪쳤다.

갈등하는 그녀.

그녀 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오늘의 선택으로 공수진 인생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선과 악의 기로다.

인간세상을 한바탕 휘저어 놓을 팜므파탈 여우로 살 것인지, 아니면 호랑이 밑에서 착하게(?) 살 것인지.

“자리 잡은 기존 연구회도 있는데 새로운 연구회는 왜 만드는 거죠?”

여우는 자존심을 굽힐 줄도 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마음에 안 들어서.”

호랑이의 반말이 시작됐다.

이제는 본게임이다.

예의상 쓰고 있던 거추장스런 가면을 제거했다.

“흐음……. 더 궁금하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까?”

여우도 본색을 드러냈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팔미호의 습성은 영혼 어딘가에 남아있다.

눈동자에서 스멀스멀 풍겨져 나오는 요기.

여우가 스스로 각성하고 있었다.

“왜 궁금해?”

“응~.”

씨익.

내가 웃었다.

배시시 여우도 따라 웃는다.

“그런데 왜 반말일까? 내가 1년 선배 아닌가?”

“난 고연지 친구. 너도 고연지 친구. 그래서 우린 친구.”

참 간단한 계산법이다.

“신생 연구회로 뭘 할 수 있지? 선배들 없으면 이 바닥 벅찬 거 몰라?”

“어차피 흙수저 출신들은 다 벅차지. 너처럼.”

파르르 여우 눈썹이 떨렸다.

사정 보지 않고 여우를 공격했다.

자세히 본 여우의 재복 관상은 초년에 전무했다.

보나마나 어렵게 살아왔을 전생 여우.

“돈 많아?”

여우는 돈에 관심을 보였다.

“당연하지.”

“얼마나?”

“알면 다칠 정도.”

“궁금하네. 선배들 연구회를 우습게 알 정도라면 대단한 재력가여야 하는 건데.”

여우가 머리를 굴렸다.

그래봐야 팔미호일 뿐.

“넌 왜 연구회에 들어오려는 건데?”

“……말해도 못 믿겠지만 너와 인연이 있는 것 같아. 내 모습을 날로 보여줘도 될 만큼 말이야.”

몇 개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살아왔을 공수진.

갈등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서, 선녀님…….”

가식이 제거된 공수진의 말투에 덕수가 당황했다.

여우에게 쫄다니.

아직 덜 자란 호랑이 자식 같으니라고.

고기를 좀 더 먹여야 할 것 같다.

“인연 필요 없어. 그러니까 오늘로 인연 쫑 치자.”

꿀꺽.

소주를 한 잔 더 비웠다.

쌉싸래한 맛 뒤에 달콤한 맛이 감돌았다.

오늘따라 소주 맛이 참 좋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기름기 좔좔 흐르는 겹살이를 파절이에 싸 입에 넣었다.

개꿀맛.

여우를 희롱하는 맛까지 더해졌다.

“나도 줘.”

여우가 잔을 내밀었다.

또로로록 소주를 채워줬다.

여우 머릿속이 복잡한 게 다 느껴졌다.

“나 필요할 거야. 연구회 멤버로 넣어줘.”

“왜?”

“자랑 같지만 어릴 적부터 난 주변 도움을 많이 받았어. 분명히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자기 매력을 재차 어필하는 여우.

인간을 홀리는 기술은 이생에서도 자연스럽게 발휘되고 있었다.

“바라는 게 뭐야? 솔직하게.”

호랑이 앞에서 여우는 잔대가리를 굴려봐야 소용없는 법이다.

늑대나 곰 같은 놈들에게나 통하는 수법이다.

아직 덜 자란 덕수 같은 호랑이나.

배시시시시.

여우가 진하게 웃는다.

그리고 상체를 내 쪽으로 쭉 밀려 들이댔다.

함께 훅 치고 들어오는 진한 여우의 체취.

모르면 나도 당할 만큼 여우는 매혹적이다.

“하아.”

귓가에 여우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리고…….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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