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9장. 멤버 (2) (537/1,284)

539장. 멤버 (2)

“와아! 억수로 이쁩니데이! 혹시 선녀 아입니꺼?”

덕수야……. 대놓고 그러면 못써.

지리산 호랑이 눈이 황소 눈알처럼 커졌다.

“풋.”

여인이 웃는다.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덕수가 선녀라고 착각할 정도는 됐다.

나이는 이십 대 초중반 정도.

미녀들의 조건을 고루 갖춘 듯 얼굴이 조막만 했다.

수술 자국 없는 자연산 쌍꺼풀은 그녀의 눈을 돋보이게 했다.

눈동자는 큼지막했고 입술은 붉고 도톰하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피부는 우윳빛이다.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넣은 웨이브에 한쪽 어깨를 타고 흘렀다.

키도 17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공부에 매진하느라 외모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연수원생들과는 분명하게 스타일이 달랐다.

청담동 거리를 걷고 있어야 어울릴 법한 도도한 미녀였다.

“누구십니까?”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물었다.

눈에 띌 만큼 아름다웠지만 나는 미녀 면역력이 남달랐다.

예린 선배도 이 정도 수준은 됐다.

“공수진이에요.”

여인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마……. 이름도 예쁩니데이……. 흐.”

덕수는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미녀들은 남자들을 향한 치명적인 가시를 품고 있다는 걸 아직 몰랐다.

하긴 이런 얘기는 말로 백날 말해도 모른다.

뼈가 저릿할 정도로 한 번 찔려봐야 그 뾰족한 맛을 안다.

“절 아십니까?”

부드럽게 건네도 될 말이 괜히 딱딱하게 나갔다.

목적이 있어 접근한 것이 느껴졌다.

“네!”

물음에 미소 띤 얼굴로 힘차게 대답하는 공수진.

“전 초면입니다.”

“당연하죠. 대화를 나누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성격이 보기보다 당찬 듯하다.

다른 여자 연수생들은 덕수 옆으로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식사하셨는교?”

갑자기 덕수가 훅 치고 끼어들었다.

“아직요…….”

공수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순간 사방으로 공기를 타고 번지는 연하고 상큼한 향수 냄새.

아니나 다를까 덕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렸다.

“선녀님 같이 가이소. 행님이 오늘 괴기 사준다 했음니더!”

“괴기요???”

안타깝게도 공수진은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삼겹살요.”

“아! 삼겹살! 정말요???”

공수진의 큰 눈동자가 더 커졌다.

여성들은 처음 만남 자리에서 삼겹살 잘 먹지 않는다.

옷에 냄새도 배는 데다, 초면에 상추쌈을 입 버릴고 와구와구 먹는 걸 보여주길 좋아하는 여자는 없었다.

“선녀님도 괴기 좋아합니꺼?”

“네! 없어서 못 먹어요! 사실 여기 연수원 밥……. 예전 급식 생각나게 만들 정도로 끔찍해요.”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들은 급식 메뉴를 더 싫어했다.

과거 맛 없는 급식 트라우마가 생각난 듯 공수진이 몸서리를 쳤다.

내가 먹어봐도 음식 수준이 엉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이사장님을 찾아가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됐다.

암암리에 거래되는 법원과 대기업과의 유착이었다.

아직은 잠잠한 것들을 건드려 벌떼들은 자극할 때가 아니다.

“가입시더!”

덕수는 아주 신났다.

자기가 쏘는 것도 아닌데 폼 잡고 앞장섰다.

“콜!”

공수진도 보기와 달리 성격이 쿨했다.

이름만 아는 여자 연수생 공수진.

처음 만난 덕수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후훗.”

가벼운 웃음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결국 인생은 모두가 바다로 향해 흐르는 강.

굽이굽이 흐르다 마주치는 새로운 선연과 악연은 결국 전생에 쌓은 나의 업이라고 했다.

그 흐르는 길목에서 마주친 인연 공수진.

일단…….

걷는 태를 보니 뒷모습은 합격이다!

***

치이이잇.

두툼한 흑돼지 삼겹살이 숯불 불판 위에서 맛있게 익어갔다.

육즙이 줄줄 흘렀다.

사사삭.

가볍게 굵은 소금을 뿌렸다.

가게 주인장의 맛에 대한 고집이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보통 굵은 소금이 아니었다.

몇 년 정도 간수를 뺀 달달한 맛이 혀끝에 도는 묵은 소금이다.

이런 소금은 고기의 풍미를 더했다.

삼겹살이 워낙 신선했기에 굳이 후추 같은 향신료는 첨가할 필요가 없었다.

수입산이나 맛없는 고기에는 필수적인 후추는 과하면 독이 된다.

사각사각 가위를 들고 한 입 크기로 고기를 잘랐다.

고기 좀 굽는다는 굽기 장인은 불판 위 고기를 절대 두 번 이상 뒤집지 않는 법.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가 불판 위에서 눈과 코와 입맛을 자극했다.

“짠!”

공수진이 소주잔을 들었다.

“헤에.”

지리산 호랑이는 집고양이처럼 잔을 들고 꼬리를 흔들었다.

티디딩.

소주잔이 부딪쳤다.

오늘은 소맥 대신 소주로 시작됐다.

“우리의 거국적 만남을 위하여!”

생김새는 강남 깍쟁이 미녀가 행동은 활달한 보통 여대생이었다.

“크으.”

“하아.”

덕수와 공수진은 가볍게 소주잔을 비웠다.

조용히 나도 잔을 비웠다.

조인수 원장과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많이 뺐다.

고기와 술이 고팠다.

“우아! 진짜…… 맛있어요!”

공수진은 봄에 맛이 제대로인 한재 미나리에 두툼한 삼겹살을 올려 입에 넣고 씹으며 엄지 척을 내밀었다.

“행님이 미식가 아입니꺼!”

삼겹살 세 점을 상추에 싸서 한 입에 넣고도 입안 공간이 남는 먹성 좋은 호랑이.

난 깔끔하게 콩가루에 찍어 먹었다.

“이제 셀프 소개 부탁드립니다.”

덕수처럼 미녀라고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았다.

“이름 공수진. 사법연수원 42기. 출신 대학 연지대 법학과 07학번. 태어난 곳은 서울. 현재 거주지는 사법 연수원 기숙사입니다.”

간단한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줄줄 읊는 그녀.

눈빛에 거짓말은 없었다.

관상도 좋았다.

시원한 이마와 이목구비의 조화는 평생 복 받을 관상이었다.

초년 운이 좀 힘들었지만 나머지는 무사통과.

사법 시험을 어린 나이에 합격했을 정도로 운이 넘쳤다.

“다시 묻겠습니다. 절 아십니까?”

“와아아. 친구 말대로 초면에는 엄청난 미인한테도 까칠하다더니 진짜였네요. 저 이런 대접 처음 받아 봐요~.”

친구? 누구?

“연지가 제 고등학교 동창이자 베프예요.”

“…….”

엘자 그룹 고연지의 이름이 언급됐다.

공수진을 다시 살펴봤다.

고연지 친구라면 부잣집 딸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 눈빛으로 안 봐도 돼요. 저 금수저 아니에요. 연지 동창이지만 저 강남 지하 셋방에서 살아요. 홀어머니가 제 공부를 위해 맹모삼천지교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공수진은 자신의 호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도…….”

“연지가 얼마나 태산 씨 자랑하는지 모르죠? 법학과 학생 중에 모델 안 부러운 친구가 있다고~ 사심 가득한데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봤어요.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사진이 있더라구요.”

“행님요? 메달리스틉니꺼? 와아아! 역시 행님입니다!”

인터넷에 거의 증거를 남기지 않았지만 올림픽 메달 인증 사진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걸 귀신같이 찾아내 확인한 공수진.

“그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모솔도 아니고 무조건 미인계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나를 찾아온 진짜 목적이 궁금했다.

단지 호기심에서라면 오늘 같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필요가 없었다.

누가 봐도 나와 함께 다니는 덕수의 동선을 파악해 놓았음이 확실했다.

순수함을 가장한 철두철미한 계획적 행동.

씨이익 공수진이 웃었다.

“진짜 철벽이네요. 이 정도 소개면 그냥 다 넘어가던데…….”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공수진은 명함도 못 내밀 미녀들이 호시탐탐?(?) 날 노렸다.

방어체계가 자동 가동됐다.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면 결과도 탈이 나는 법이다.

덕수는 눈만 껌뻑이며 나와 공수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와중에도 결코 쉬지 않는 젓가락질.

먹성 하나는 지리산 호랑이를 뛰어넘었다.

“처음에는 궁금했어요.”

또로록.

소주를 따라 쭉 들이키며 말을 이어가는 공수진.

“연지가 잘났잖아요.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좋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대그룹 회장 딸에……. 성격도 모나지 않았거든요. 그런 연지가 상사병을 앓는 대상이 누굴까 하는 호기심이 발로였어요.”

위험한 호기심이다.

고연지의 뜨거운 관심은 나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맺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쩌다 순댓국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정도의 친구다.

“엘자 그룹 딸을 거절할 정도로 얼마나 잘난 남자일까? 우리 나이 대 여자애들이라면 당연히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말을 하는 중에도 내 얼굴을 직시했다.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는 걸 눈빛으로 증명했다.

어지간한 중소기업 대표의 포스 정도는 넘는 수준이다.

호기심을 넘어 어떤 의도가 그녀 눈빛에 담겨 있었다.

굳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름대로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멋진 거 있죠. 와아! 대한민국에 이 나이에 이런 남자가 있을까? 사람이 맞을까? 여러 의심이 들었답니다.”

또로로록.

공수진의 고백을 들으며 빈 잔에 소주를 채웠다.

“제가 보시는 것처럼 욕심이 많거든요.”

“의심과 욕심이 매치가 안 되는군요.”

“연지가 그러던데 고자룡 회장님도 태산 씨를 무서워한다고~.”

“잘못 전달된 소문입니다. 엘자 그룹 회장님이 무슨 이유로 저 같은 사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정말 그럴까요? 연지는 거짓말 못하는 친구예요.”

고연지는 재벌 집 여식들 치고는 순진했다.

그걸 간파하고 있는 공수진.

“그래서요?”

“함께하고 싶어요.”

함께? 인생을?

툭 던지는 말의 뉘앙스가 오묘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하기 쉬운 말이다.

덕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말입니까?”

“……덕수 씨 총무 선출 때 제가 손 들었어요. 뭐랄까? 영혼을 울리는 뭔가가 있었어요. 인연? 뭐 그런 거요.”

갑자기 나와 대화를 나누다 덕수를 끌고 들어왔다.

총무 선출 당시 덕수를 위해 손을 들었던 10여 명.

공수진도 그중 한 명이었다는 말이다.

“행님! 우리 맹글라카는 회에 넣어 주이소. 지금 회원 모집한다 아입니꺼!”

덕수는 몸이 달대로 달았다.

“회라면……. 연구회요? 그걸 직접 만드시게요?”

공수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그런다 아입니꺼! 우리 행님이 꿈이 크십니데이~.”

“와아아! 재밌겠다! 저도 넣어주세요!!!”

대책은 없지만 뭔가 목적이 분명해 보이는 공수진.

대놓고 연구회 멤버가 되기를 요청했다.

“들어 오이소! 격하게 환영합니데이~.”

덕수 입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러나 난 이런 식으로 영입할 수 없었다.

아직 정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공수진.

그녀가 날 보며 웃는다.

사람 여럿 홀릴 것 같은 공수진.

내 대답은…….

- 전생 지리산 인연이 이생에서도 인연 맺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인연을 맺겠습니까?

뭐, 뭐라고! 전생 지리산 인연?

갑자기 들려온 알림음에 깜짝 놀랐다.

다시 한 번 공수진을 쳐다봤다.

그 순간 환영처럼 겹쳐 보이는 여러 개의 꼬리!

설마 너! 지리산 구…… 미호???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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