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7장. 연수원에 가다 (1) (526/1,284)

527장. 연수원에 가다 (1)

“손대균 쪽 라인이라 이거지?”

“손대균 이사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습니다.”

“……인기가 많은 놈이군.”

오승택 대법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손대균이라면 오승택 자신도 몇 수를 접고 들어가야 했다.

오승택도 손대균의 부친은 두려웠다.

까마득한 대법원장 선배인 손국중.

대한민국 법조계의 막후 실력자였다.

한국변호사회의 오래된 주인이기도 한 손국중.

일제 시대 때부터 시작된 한국변협의 출발점에서 손 씨 가문이 빠지지 않았다.

한국변협은 대법관을 비롯해 헌법재판관을 추천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다.

대법원장 끗발이 대단했지만 한국변호사회에는 한참 못 미쳤다.

모두가 다 실세 중의 실세인 손국중의 하수인이었다.

아무리 청렴한 법조계 인사들이라 해도 모두 그의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렸다.

오승택도 마찬가지였다.

대법관이 되기 전에 그를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왕에게 윤허를 받는 심정이었다.

그 후 간택을 받았고 대법관이 됐다.

그리고 대법원장에 대한 언질도 받았다.

무조건 협조하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렇다고 자존심은 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수한 지난 세월 동안 깊이 뿌리를 내린 거대 조직이었다.

하물며 대통령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

막말로 그들에게 찍히면 퇴직한 대통령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 가능했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정치계와 언론계 모두가 그들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일사불란하게 사건을 키우고 확대 재생시켜 우매한 군중들을 세뇌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대중은 내밀한 내막보다는 자극적인 키워드를 쫓아다녔다.

돈이나 스캔들 같은 걸로 몰아붙이면 끝났다.

정치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치 자금이 필수라는 걸 대중들은 낱낱이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날 정치인은 없었다.

아무리 청렴한 정치인도 혈연으로 엮인 친인척과 가족, 그들을 따르는 주변인들의 타락까지는 어쩌지 못하는 법이다.

정당도 어차피 욕망을 품은 자들이 탄생시킨 집단이었다.

“……장태산은 접겠습니다.”

고인태는 분을 삭이며 깊이 생각한 의견을 피력했다.

손대균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확실한 경고를 받았다.

장태산과 있었던 일을 절대 발설할 수 없었다.

손대균에게 찍혔다는 걸 알면 당장 오승택이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본인의 미래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상각 처리함이 오승택의 방식이었다.

“그래야지. 어차피 인재는 많아.”

오승택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건 그렇고. 연수원생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42기 반대가 예상 밖입니다.”

“그렇겠지. 가뜩이나 넘쳐나는 시장에 로스쿨생까지 가세했으니…….”

“어떻게 할까요?”

“놔둬. 어차피 한 번은 지나가야 할 홍역이야. 아쉽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

오승택도 로스쿨을 반대하지 않았다.

입맛에 맞는 법관들을 양성하기 위해는 딱 알맞았다.

법조 경력자들 중에 여러 경로를 거쳐 추천을 받아 판사를 임용했다.

기득권에 입성하기 위해 대기 중인 후보자들은 사방에 널렸다.

임용에 주관적 개입이 용이했다.

법조계도 마찬가지였다.

판사 쪽 라인은 경쟁이 치열했다.

지방에서 시작해 지방에서 저물고 싶은 판사는 없었다.

윗선에 줄을 대기 위한 경쟁이 엄청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자들을 골라 임용하면 됐다.

로펌 파워 순으로 임명할 예정이었다.

성적순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적 영향력을 보일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판사도 임명될 수밖에 없었다.

법조일원화라는 거창한 말을 내세운 명분도 다 위장이었다.

로스쿨 졸업생들 중에서 로펌 쪽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우수한 자원들이 우선 순위였다.

어차피 판사들도 퇴직하면 로펌에 입성해야 했기에 서로 인재를 주고받았다.

임용 과정이 은밀하게 이루어진다는 걸 법관들은 물론 법조계 인사들도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았다.

그래도 국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은 은밀하게 이루어진 만큼 국민들 관심 밖의 일로 치부됐다.

아니 정확히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그것보다……. 선물 좀 준비해봐.”

본격적으로 대법원장 출격을 준비하는 오승택은 넌지시 지시를 내렸다.

일송회뿐만 아니라 대통령 쪽 라인에 댈 선물이 필요했다.

자신의 손에 흔적을 남기기 싫은 오승택.

확실하게 아랫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알았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내 자네 공은 잊지 않고 있어.”

“황송합니다.”

고개를 깊이 숙이는 고인태.

장태산에게 당했던 치욕은 최대한 감췄다.

언젠가 때가 되면 휘두를 수 있는 사법부 방망이.

‘장태산!’

때를 노리기로 했다.

이렇게 당한 치욕을 몇 배로 갚아줄 날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걸 판사 고인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상류층은 합법적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장태산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

오른쪽 귀가 몹시 간지러웠다.

누가 내 욕을 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본인은 사법연수원생으로 임명됨에 있어 그 본분이 훌륭한 법조인으로서의 인격과 능력을 기르는 데 있음을 명심하여, 법령을 숙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수습에 힘쓰며, 연수생으로서 명예와 품위를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연수원생을 대표하는 선서자 목에 힘이 팍 들어갔다.

2011년 3월 2일 수요일.

난 대한민국 끝판 학교에 왔다.

총 2년 코스.

대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간은 협소했지만 품고 있는 힘은 강대했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코스 산실인 사법연수원생 신분이 된 실감이 났다.

이곳을 나서게 되면 변호사를 비롯해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었다.

동시에 팔자에 없는 나랏돈 받는 공무원 신분을 획득한다.

대법원 규칙에 의거하여 5급 별정직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 1항의 결격 사유는 없었다.

고위 공무원이 아니어서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된 재산신고 같은 것은 생략 됐다.

재산신고 조항이 있었다면 애초 사법시험에 응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법연수원장의 이름으로 2011년 제 42기 사법연수원생들의 입소를 허락합니다.”

인자하지만 깐깐해 보이는 조인수 사법연수원장님의 입소 허락이 떨어졌다.

1년 뒤면 헌법재판관이 되시는 분이다.

다른 어떤 법관들보다 강직해 보였다.

고집스러운 입매와 매부리코는 지나온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탄한 관상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영광과 오욕의 길을 더 걸어야 하는 분이다.

“…….”

앉아 있는 42기 입소자들은 모두 침묵했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날고 기었던 인재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끼리 또 경쟁해야 하는 마지막 학업 코스였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판사와 검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치열함은 더할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무거운 적막이 되어 감돌았다.

입소식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지만 기분이 새로웠다.

지난 생과 완벽하게 다른 회귀 후의 인생.

몇 년 동안 벌어졌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흩어졌다.

사건사고가 참 많았다.

지난 생의 기억을 다 가지고 다시 살게 된 축복을 얻었지만 또 다른 죽음의 위기를 몇 번이나 건넜다.

그리고 이 공간에 앉게 되었다.

분명 별것 아닌 일처럼 생각됐지만 기분만은 남달랐다.

앞으로 나는 진정 고리타분한 법조계의 일원이 될 것이다.

사법연수원 대강당 특유의 시그니처인 레드 포인트 의자와 묵직한 공기 맛이 감각에 생생하게 느껴졌다.

고전적인 법원 문화를 단편적으로나마 맛볼 수 있었다.

“연수원에 입소하는 여러분께 법조계 선배로서 간단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인수 연수원장이 훈화를 시작했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도덕 감정론’에서 도덕적 판단은 정확한 답이 정해져 있음이 아니라 여러 충돌하는 가치들의 적절한 접점을 찾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는 법적 판단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역시나 특별한 사상을 소유한 분 다웠다.

평이한 기준의 도덕적 가치관에 대해 읊지 않았다.

“법률 쟁점 상황에서 법률가는 관계된 여러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사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한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야만 합니다. 특히 법관에 임용될 분들은 헌법의 지엄한 명령을 잊지 마십시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담겨 있는 법관으로서의 내공은 쉽게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법관은 외부의 어떤 영향이나 내부적 간섭으로부터 독립해 재판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수없이 공격받은 재판의 독립은 여러분의 선배들이 지켜낸 명예입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스스로 보장되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도전이 있더라도 국민이 위임한 헌법의 수호자로서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려 혼신의 힘을…….”

타다다닥.

조인수 연수원장이 훈화 하는 사이 두 명의 신입 연수원생들이 단상 앞으로 튀어 나왔다.

촤라라랏.

그리고 펼쳐지는 현수막.

“법률 교육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법무부의 로스쿨생의 검사 입도선매 임용을 절대 반대한다!”

거침없이 터져 나온 반대 의사의 구호.

“뭐야?”

“도대체 저것들은 뭐야!”

“이런…….”

단상 위에 앉아 있던 고위 법관들과 참석자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품격 넘치는 연수원 입소식에서 벌어진 사태.

과거에 있었던 일이 그대로 재현 됐다.

로스쿨생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하자 성적 우수자들 중심으로 법무부가 검사로 임용하기로 했다.

사법연수원생들은 성적 상위권자들이라면 대부분이 판사를 희망했다.

자존심이 상한 법무부의 반격.

연수원생들이 가만히 있게 된다면 호구 인증이었다.

지금도 1000명에 가까운 42기 입소생들 중에 반수 이상이 입소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검찰의 행태를 꼬집으며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입소식이 열리는 안에까지 들어와 저렇게 행동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법연수원 역사상 처음 있는 대 사건이었다.

“여러 선배님들 저희는 공정한 경쟁을 원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입도선매라니요! 이건 공정한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입니다!”

“법무부의 결정을 취소하십시오!!!”

“취소하라! 취소하라!”

연수원에 입소한 몇몇 연수원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함께 외쳤다.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는 모습이 결연했다.

단상에 정부 고위 공무원으로 참석한 법무부장관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썩어갔다.

검찰 출신으로 최고 정점을 찍은 인사로서 인생의 오점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파바바밧.

연수원 입소식 참관 허락을 받은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오늘 일은 앞으로 긴 시간 동안 대대로 회자될 것이다.

“이게 뭔 일이니……. 하아.”

오른편에 앉아 있던 예린 선배가 한숨을 내쉬었다.

“밥 그릇 싸움 치열하네~.”

내 왼편에 앉은 강아린 선배가 팝콘을 놓고 영화를 보는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맞다, 밥 그릇 싸움.

가뜩이나 엄청난 숫자로 배출되는 사법연수원생들이었다.

판사 뽑고 나면 남은 검사 자리를 놓고 경쟁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가열찼다.

그런데 그마저도 로스쿨생들에게 기회가 먼저 갔다.

눈 안 돌아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성적이 우수해 로펌에 특채되는 부류 말고는 모두 무한경쟁 시장판에 뛰어들어야 했다.

잘난 사람들의 밥그릇 싸움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차원이 달랐다.

“……무섭다.”

예린 선배 옆에 앉아 있던 강현수 얼굴은 지린 표정이 됐다.

대한민국 수재들이 합격하는 한국대 경영학과 출신이었지만 또 다른 천재들이 모인 사법연수원 분위기에 주눅이 든 것 같았다.

앞으로 코앞에 닥칠 미래가 피부에 와 닿는 걸로 보였다.

“앞으로 시끄럽겠네.”

아린 선배 표정은 별 걱정 없어 보였다.

그녀의 부모님 정체는 아직도 아는 바가 없었다.

손유리와 친구인 것으로 보아 평범한 집안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베를린에 가면 맥주 같은 음식 함부로 먹으면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베를린에 무슨 일 있어?”

양 옆에 앉아 있던 두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독일~ 수도…….”

“…….”

갑자기 급습한 시베리아 벌판 한가운데 같은 썰렁한 공기.

분위기 좀 깨려고 던진 아재 개그가 제대로 먹혔다.

“도, 독일 수도???”

예린 선배는 다시 한 번 곱씹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강아린 선배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망각한 채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

그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아린 선배에게 향했다.

구호를 외치던 자들이 잠깐 입을 닫은 사이 터진 박장대소.

절묘한 타이밍.

고요 속에 터진 웃음은 자칫 비웃음으로 들릴 수 있었다.

꾸욱.

아린 선배 옆구리를 내공을 사용해 살짝 찔렀다.

“아야!”

따끔함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지른 아린 선배의 외마디 비명.

다시 쏟아지는 시선들.

아린 선배가 나를 돌아봤다.

눈빛에 어쩔 줄 모르는 절망이 가득 담겼다.

고개를 돌렸다.

애들은 강하게 커야 이 거친 세상에서 생존하는 법이다.

그리고 난 누구보다 아린 선배를 믿었다.

인생에 한 번뿐인 사법연수원 입소식에서 기억할 만한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워, 원장님! 가슴 절절한 훈화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분위기도 이런데……. 점심 먹으면 안 될까요? 저기 뒤에서 기다리시는 연로한 부모님 당 떨어질 시간입니다!”

역시 강아린!

“…….”

정적이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바로 지금은 강아린 선배 앞날이 환하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럴까요?”

갑작스런 항의에 불편해하던 조인수 연수원장님이 웃음을 띠며 물었다.

“넵! 정의로운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밥심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아린 선배 특유의 똘기 정신은 계속 됐다.

“그럼 그렇게 하죠. 다시 한 번 42기생들의 연수원 입소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조인수 연수원장님.

짝짝짝짝짝.

일제히 박수가 터졌다.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식을 계속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밥그릇을 위해 투쟁하던 연수원생들 입장은 뻘쭘하게 변해 버렸다.

밥그릇을 위한 투쟁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법.

안타깝게도 짧은 생각에 만용을 부린 저들에게 대가가 돌아갈 것이다.

도깨비 불빛 같은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는 법원 고위관계자들.

아멘. 아미타불.

분명하게 예고되는 불운에 미리 명복을 빌어주었다.

회귀의 전설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