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5
회귀의 전설
485장. 아! X바 (2)
“오늘 입영한 29보충역 담당연대는 2,600명 입소 예정자 중 질병과 특이이상으로 57명이 귀가 조치되었습니다.”
“57명? 이것들이 군기가 빠져가지고……. 아무리 보충역들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냐? 여기가 당나라 군대야? 나 때만 해도 연대에 잘해 봐야 몇 명 수준이었어. 그런데 57명? 누가 보충역 아니랄까 봐……. 쯧.”
육군훈련소 소장이 주재하는 간부 회의실.
소장 용창호는 상황 설명을 듣고 혀를 찼다.
현역 사단장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인처럼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몸매였다.
훈련소의 가장 큰 어른이지만 몸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넓은 어깨 위에서 별 두 개가 반짝였다.
사단급 편제인 육군훈련소는 별 2개인 육군소장이 맡았다.
한직으로 알려져 있어 대부분 전역을 앞둔 말년 소장들이 부임해 왔다.
한 달 전 군 인사 개편 때 부임한 용창호 소장도 그런 별들 중 하나였다.
출신 성분이 좋았다.
현 대통령을 배출한 도시 출신에 지역 명문고를 거치고 육사를 졸업했다.
초급 장교 시절 하나회 멤버로 활동하다가 징계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배출한 집안 연줄로 운 좋게 살아남아 별까지 달았다.
전형적인 꼰대 기질이 넘치는 용창호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매사 마음에 안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벽에 막혔다.
돈도 뿌리며 로비도 열심히 했지만 중장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권력 연줄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다.
몇 번의 좌절은 그렇지 않아도 꼰대 기질의 성격을 더 삐딱하게 만들었다.
장교 시절부터 성격 안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용창호였다.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직속 부하들을 앞세워 떠넘겼다.
돈도 좋아했고 여성 군인들 희롱하기도 즐겼다.
이곳 논산 육군 훈련소는 그런 면에서 구미에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하는 한 마디에 팍팍 굴러가던 사단과 달리 느려터지고 눈치도 없었다.
한마디로 군기가 빠졌다.
마지막 사단장 놀이가 아쉽기만 했다.
“이번 보충역 기수부터 좀 더 빡세게 제대로 굴려.”
용창호의 특별 명령이 떨어졌다.
회의에 참석한 장교들 얼굴이 말 못할 난색으로 굳어졌다.
과거와 달리 병사들 체력이 아주 저질이었다.
자칫 무리하게 훈련을 진행하다 사고라도 나면 인사고과에 치명적이었다.
더군다나 일반병사도 아닌 보충역들이었다.
“소장님. 입영병들 기초 체력이 약합니다. 사고라도 나면…….”
참모장인 이인태 준장이 다른 장교들을 대신해 나섰다.
다른 곳과 달리 사단 참모장도 준장급이었다.
“야! 이인태!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지금 상관 명령에 불복종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보충역들은 좀 더 배려하심이…….”
“하아, 이래서 삼사 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사고라도 나면? 이인태! 여기가 막노동 건설 현장이야? 여기는 군대야 군대!”
용창호가 버럭 호통을 쳤다.
이인태 준장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용창호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삼사 출신으로 몇 년 전 별을 달았지만 승진에서 계속 누락됐다.
정권이 바뀌면서 육사 출신들이 강세를 보인 탓이었다.
특수부대를 비롯해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인사고과도 높았지만 맞닥뜨린 한계는 명확했다.
정년퇴임이 임박해 오는 이인태 준장은 군에 대해서 진작 미련을 버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사고 없이 임기를 끝내고 제대하고 싶었다.
그런 마당에 신임 소장이 시비를 걸었다.
고위 장교인 준장을 휘하 장교들 앞에서 면박을 준 것이다.
기본 예의를 모르는 용창호.
고위급 간부 회의에 참석한 장교들 얼굴이 눈에 띄게 딱딱하게 굳었다.
사단장이 저렇게 패악질을 부리면 조직 분위기가 순식간에 엉망이 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29연대장!”
“대령 조건우!”
소장의 부름에 대령이 힘차게 관등성명으로 답했다.
FM을 주장하는 소장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령들은 잘 알았다.
자신들의 인사고과를 쥐고 있는 상관이었다.
소장과 참모장과 달리 훈련소 연대장들은 한참 더 걸어야 할 앞날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1차로 별을 단 동기들과 달리 중간 차쯤 됐다.
여기서 삐끗하면 영관으로 만기 제대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상관에 눈에 들면 이 자리에 모인 연대장들 중 하나는 별을 달고도 남았다.
특히 현 소장은 육사 라인의 핵심이었다.
팽팽하게 회의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준장까지 조져버린 사단장의 인상은 아직 펴지지 않았다.
“이번에 입영한 보충역들 제대로 교육해라. 최소 일반병사들 수준은 되어야 한다. 명심해라. 조 대령.”
“추우웅성!”
보충역을 담당하고 있는 29연대장 조건우는 경례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울고 싶었다.
회의실에 모인 연대장들 중 유일하게 육사 출신이 아니라 학군 출신이었다.
콕 찍어서 자신을 엿 먹이려는 심산인 소장 용창호.
쉽게 승진하기 어려울 거라는 건 조건우도 알아챘다.
소장의 명령을 어기는 순간 인사고과는 바닥을 기고도 남았다.
“회의 끝! 다들 나가봐. 사고치는 새끼들 없나 잘 살피고 관심병들은 확실히 걸러내서 처리해.”
“충성!”
소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장교들이 힘차게 경례를 올렸다.
허세 작렬하게 폼을 잡으며 회의실 밖으로 나가려던 용창호 소장.
“아! 맞다. 오늘 시간도 나는데 간호장교들과 허심탄회하게 회식하며 대화 좀 하려고 하니 의무대에 약속 잡아놔.”
“충성!!!”
군대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사건.
불길한 공기에도 장교들은 그저 알겠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
“야! 이거 나보다 작잖아. 누구 큰 사이즈 없어?”
“와아아……. 이거 세탁한 거 맞아? 쉰내 봐라.”
“빨리 입어. 분대장님 오시면 또 기합 받는단 말이야.”
“아니 시벌. 나이도 어린 새끼가 우리를 뭘로 보고…….”
29연대에 배속됐다.
회귀 전에는 일반병 연대에 배속됐었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작년에 건축됐다는 29연대 신 막사는 소대 단위가 아니라 분대가 생활했다.
침대는 없었지만 과거보다 개인 공간이 넓었다.
관물대 안에는 이 안에서 생활했던 선임들의 훈련복들이 들어 있었다.
4주 후면 퇴소할 보충역들이라 사복을 자기 관물대 안쪽에 짱박는 게 허락됐다.
다만 문제는 지급된 훈련복들 상태가 지랄이라는 거다.
보충역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
청춘을 바쳐 입영하는 훈련병들에게 새 옷은 주지 못할망정 닳고 기워진 자국이 고스란히 보이는 헌옷들이 지급됐다.
군납 비리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보……. 아니 형님. 옷은 맞으십니까?”
잠시 분대장인 조교가 사라지고 훈련병들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이발소에서 만났던 돼지가 살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한진웅 대표의 보스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나를 진짜 보스로 생각한 눈치였다.
“난 괜찮아.”
다행이 내 관물대에 있는 옷은 사이즈가 맞았다.
“다행입니다. 저도 겨우 하나 챙겼습니다요. 흐흐.”
딱 두 번 봤는데 돼지는 눈치도 좋게 살갑게 굴었다.
“나한테 할 말 있냐?”
“형님……. 혹시 불광동 춘식이 형님 아십니까?”
“몰라.”
“그럼. 은평 상국이 형님은…….”
“모른다고.”
“죄송하지만 주로 어디서…….”
“강남.”
“헉! 가, 강남요.”
강남이라는 말에 돼지가 바싹 얼어붙었다.
어설픈 서울 변두리 조직원들 이름을 대고 아는 체하는 놈이 귀여웠다.
좀 놀아주고 싶었다.
“너 구 회장 알아?”
“네? 구 회장요…….”
“강남하나회 구 회장 몰라?”
“!!!”
강남하나회라는 말에 돼지 얼굴은 봐주기 힘들 만큼 색이 변하며 굳었다.
깡패들의 현 최종 보스가 강남하나회 구광필이었다.
돼지가 그를 모를 리 없었다.
“얼마 전에 우리 애들이 담갔다. 자살이라고 소문났지? 그거 다 뻥이야. 일본 닌자 불러서 확실하게 보내줬다.”
속삭이듯 돼지 귀에 대고 말했다.
“!!!”
눈을 부릅뜨고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벌벌대는 돼지.
“우리 애들 봤지?”
“네…… 넵.”
“전부 특수훈련 받은 애들이야. 그러니까 잘해라. 내가 경고한 거 잊지 말고.”
“크, 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돼지가 갑자기 고개를 90도로 꺾었다.
순간 분대 분위기가 싸해졌다.
조용히 오가는 대화였지만 어떻게 된 일이지 다들 눈치를 살폈다.
나를 진짜 큰 형님으로 보는 것 같았다.
쫘아악.
돼지 뒤통수를 힘껏 한 대 갈겼다.
“악!”
“여기가 군대지 깡패 소굴이냐? 조용히 살자 조용히~.”
“넵! 형님!”
“이름이 뭐냐?”
“장동구입니다.”
“동구야. 군대 왔으면 사람 돼야지. 형님 옆에서 잘 배워라.”
“넵! 형님!”
분대 분위기는 쥐죽은 듯 고요함을 달렸다.
“지금 뭣들 합니까! 여기가 유치원입니까? 다들 환복 했으면 밖으로 나오십시오!”
까칠한 분대장 조교의 호통이 들렸다.
어느새 문 앞에서 뒷짐 지고 폼을 잡고 있었다.
각 잡은 모자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이 살짝 보였다.
사람 갈구는 데 천재적인 소질을 소유한 인간 개조 전문가들이었다.
과거 상병 말호봉 때 사단 신병 훈련소 조교로 한 달간 착출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그랬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다.
첫날 군기를 바짝 잡아야 편하다는 걸 조교들은 귀신같이 알았다.
어영부영 풀어주면 군기가 빠져 사고가 나는 곳이 군대였다.
처저적.
훈련복을 입고 줄을 섰다.
“지금부터 저녁 식사 하러 갑니다. 열을 맞춥니다. 하나둘. 하나둘.”
유치원생 다루듯 조교가 분대원들을 앞장 세웠다.
“열흘 간 배식 담당하고 싶은 훈련병 나오십시오. 배식 담당이 끝나면 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습니다.”
조교가 악마처럼 미끼를 던졌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식당 앞에서 손을 드는 멍청한 중생들.
군대에서는 딱 중간만 하라는 명언이 내려온다.
그걸 모르는 훈련병들이 너도 나도 손을 들었다.
씨익 웃는 조교의 엷은 미소가 보였다.
뭣 모르는 순진한 훈련병들을 전화 한 통으로 사로잡은 인간 낚시꾼.
악마는 세상 곳곳에 인간들 사이에 섞여 존재했다.
“그럼 바로 앞치마 입고 들어가서 배식합니다. 실시.”
“실시!”
전화 한 통에 목숨을 건 이들이 용감하게 돌진했다.
가장 힘든 노동 중 하나라는 배식대에 그들은 섰다.
“나머지 훈련병들은 저녁 식사를 합니다. 잡담은 금집니다.”
열을 맞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 벽돌로 건축된 오래된 식당.
다시 보니 과거 훈련 받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차마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것들과도 재회했다.
식판에 담긴 멀건 된장국과 밥, 김치 다섯 조각, 두툼한 비계가 들어가 있는 제육볶음 두 점, 짤 게 확실한 시금치 몇 가닥이 담겼다.
아! X바!
욕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놀러 삼켰다.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훈련병 식사비를 빼돌리고 배가 부를 어느 똥별과 그 밑의 장교, 행정관들에게 저주를 뿌렸다.
이렇게 먹고 살기 싫었다.
운 좋으면 하루에 대한민국 국방비를 벌어들이는 내가 똥국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머무는 4주간은 먹을 것만큼은 동기들에게 무한히 베풀고 싶었다.
다들 수저를 들고 멍하니 국과 밥을 바라보는 훈련병들.
인정과 맛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밥알에 쉽게 숟가락을 꽂지 못했다.
그중에는 빠르게 밥을 비워내는 부류들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낯선 문화에 적응을 못했다.
2020년에도 군납 비리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했다.
군대에 다시 오니 할 일이 많이 생각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선무는 나부터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이동!”
짧은 외침.
파아앗.
나는 그대로 나만의 럭셔리 초호화 식당으로 빛과 함께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