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8화 (417/1,284)

 # 418

회귀의 전설

418장. 꺼져 (1)

“알라 후 아크바!”

“알라 후 아크바!!!”

햇빛도 들지 않는 밴쿠버의 빈민가.

이민자와 불법 체류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경찰도 접근을 꺼려하는 장소가 됐다.

수시로 각종 범죄가 일어나는 마의 거리.

그곳에 자리한 낡은 아파트 10층의 어느 한 집에서는 몇 명의 사내들이 “알라 후 아크바”를 외치고 있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고 암막 커튼이 빛을 차단했다.

방 안의 전등도 희미했다.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아랍계.

그들은 약을 한 듯이 충혈된 눈으로 한 남자를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명령이 내려왔다.”

중앙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는 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신의 뜻을 따르옵니다!”

사내들이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툭.

탁자 위로 사진들이 던져졌다.

잘생긴 동양인 남자를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이름은 장태산. 한국 스키 대표 선수다.”

남자의 설명을 들으며 다들 장태산의 얼굴을 머릿속에 각인했다.

“놈이 선수촌에 곧 들어갈 것이다. 하심, 청소부로 등록되었나?”

“알라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끝났습니다.”

“너희들은?”

“진행 요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수고했다.”

“인 샬라.”

사내들이 성호를 그으며 고개를 숙였다.

흡족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명령자.

“너희들은 위대한 신의 전사들이다. 성전이 끝나면 환희의 천사들이 너희들을 영접해 알라께 인도할 것을 믿어 의심치 말라!”

뜨거운 목소리로 사내들의 의식을 지배했다.

“알라 후 아크바!”

9.11 사건으로 위축되었던 급격 이슬람원리주의자 세력 중 하나인 텔레반 조직의 하위소속 테러리스트들이 모의하는 자리였다.

일찍부터 학업을 이유로 캐나다에 들어와 정보 당국의 의심을 피했다.

개중에 캐나다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에서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모멸을 받았던 자들을 포섭하고 세뇌시켰다.

“신의 선물은 일주일 후에 제공될 것이다……. 그때까지 의심을 사지 말고 행동하라. 앞으로 지령은 암호 문자로 대체하겠다.”

“알라 후 아크바!”

그렇게 시작된 음모.

다른 곳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속삭임은 더욱 더 은밀해졌고 음험해 드러나질 않을 뿐이었다.

피까지 독으로 무장한 악마의 종들이 한 남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다가 올 동계 올림픽을 기회로 삼기 위한 끔찍한 음모.

그 와중에도 밴쿠버로 전 세계 동계 올림픽 선수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

콰다당.

“유나야!”

“……으으으. 엉덩이야.”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아침부터 컨디션이 바닥이던 김유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괜찮아?”

“으응~. 이 정도는 끄떡없어! 으흐흐.”

씩씩하게 빙판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한 번 쓱 만지고 다시 스트레칭을 하는 김유나.

금세 엄마를 향해 하트를 날렸다.

“메달 따면 은퇴하자.”

김유나가 다가오자 엄마 예민정은 딸에게 생각지 않은 말을 건넸다.

어릴 적부터 봐왔던 어린 딸의 고난과 같았던 행군.

지켜보는 엄마 가슴이 안쓰럽다 못해 찢어졌다.

다른 아이들처럼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을 시간도 없었다.

학교에 다녔지만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불가능했다.

어느 순간부터 엄청난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각종 대회 준비로 바빠 학교 생활은 엄두도 못 냈다.

발은 평생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기형이 된 지 오래.

자신의 발을 두고 훈장이라며 농담처럼 말하지만 어여쁜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은 달랐다.

딸이 좋아 시작한 운동이지만 진작 말렸어야 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10대가 통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본분을 책임지며 딸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농담이지?”

“……진담 같은 농담.”

“예 여사 힘내. 이번에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몇 년 더 노력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그때까지 참을 거야. 어차피 사는 게 고생이라고 엄마가 말했잖아. 설마 은퇴하고 나면 이보다 더 힘들까?”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김유나는 자신의 포부와 인생관을 밝혔다.

어린 나이지만 스스로 씩씩하게 성장한 김유나.

예민정은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좀 쉬었다 할래?”

“피자 사 줄 거야.”

“노우~.”

“먹고 싶어. 달콤한 양념 치킨! 시원한 콜라! 치즈 토핑 듬뿍 들어간 피자! 두툼한 패티 몇 장 깔린 햄버거!”

“너 그러다 나는 돼지 된다.”

“엄마!”

“그것도 아니면 날아다니는 건강한 돼지?”

“흐윽……. 너무해! 엄마 혹시 계모 아냐? 나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 진짜지?”

“어머~ 이제 안 거야? 어서 네 엄마 찾아가렴~.”

“우에에에에에! 재미없어!”

“호호호호호호호~.”

예민정과 김유나는 뻔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큰 경기를 앞두고 가끔 이런 식으로 모녀는 긴장을 풀었다.

코치를 비롯해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김유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오직 가족만이 나눠줄 수 있는 행복 바이러스였다.

“유나야. 그런데 걔는 언제 오니?”

“누구?”

“네가 좋아하는 오빠~.”

“흐흐흐. 태산 오빠 엄마가 봐도 멋지지?”

“그건 인정.”

“온다는 소식은 있었는데 모르겠어. 오빠 워낙 바쁜 사람이잖아. 사업하랴 공부하랴……. 국가대표 선수 뛰랴~.”

“사실 너랑 하는 말이지만 엄마는 인간으로 안 보인다. 사람이 다방면으로 그렇게 완벽할 수는 없어. 특히……. 피겨 실력은…….”

예민정은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했다.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처럼 아이스링크 장을 휩쓸던 장태산.

피겨 팬으로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그 멋진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가 보여줄게! 엄마 나만 믿어!”

“엉덩방아 좀 그만 찧고 말해~.”

“그건 못 먹어서 그래. 치즈 듬뿍 피자 사줘봐. 내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거야~.”

“그래 알았어. 사줄게.”

“저, 정말?”

“금메달 따면~”

“와아……. 엄마 진짜 사악해. 나 방금 울 뻔했다.”

“쉬었으면 이제 달릴래? 조금 있으면…….”

사이좋은 모녀의 대화가 끝나갈 즈음 링크 장으로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들.

그들이 예민정 모녀에게 거침없이 다가왔다.

귀여운 외모의 동양 소녀와 통통한 슬라브계 백인 아줌마, 그리고 따라온 기타 등등 무리들까지 합쳐 다섯 명이었다.

코치가 잠깐 외출하면서 더욱 단출해진 김유나와 비교 됐다.

“아사다~.”

김유나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김유나의 인사에 눈빛을 반짝이는 아사다.

그러나 주변 눈치를 보고 고개만 살짝 숙였다.

“쟤도 불쌍해. 쯧쯧.”

예민정이 혀를 찼다.

아사다 마유와 동행한 이들은 코치인 러시아 전 피겨 금메달리스트인 사라소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본 빙상 연맹 관계자들이었다.

김유나의 등장으로 일본 피겨계는 난리가 났다.

엄청난 투자로 세계 남녀 피겨를 휩쓸던 일본이 뒤로 밀렸다.

자존심이 상한 일본 빙상 연맹은 대기업 협찬을 엄청나게 받아 선수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코치도 최상급에 전속 물리치료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심판들까지 매수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상당수 심판들이 러시아 코치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옛 소련 시절 동구권에서 접수했던 피겨 인맥이 그대로 남았다.

특히 아사다 마유의 코치 사라소바는 그 정점에 있었다.

코치 능력도 뛰어나지만 브로커로도 소문이 나있을 정도였다.

연봉도 파격적이었다.

찌리리릿.

사라소바가 김유나를 노려봤다.

김유나의 등장으로 무능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김유나 점프 높이가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사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었다.

외모는 둘 다 동양인 치고는 괜찮았다.

몸매가 드러나는 피겨에서 두 사람 다 다른 선수와 비교가 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결정적인 또 하나의 차이가 존재했다.

김유나는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유했다.

여자가 봐도 아름다운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선은 여왕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에 반해 아사다 마유는 귀여운 캐릭터였다.

일본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요정이나 여왕이라 불리는 피겨 판에서는 살짝 부족함이 있었다.

사라소바도 인정하지만 돈과 자신의 코치 명예가 걸려 있는 올림픽이었다.

과거와 달리 TV를 비롯해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성적을 조작할 수 없었다.

미국 피겨 선수들도 출전하는 만큼 조심스러웠다.

‘기를 꺾어야 하는데…….’

사라소바는 김유나를 보며 생각이 많았다.

올림픽은 세계 선수권 대화와 차원이 달랐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 보너스로 수십억을 받을 수 있었다.

대기업 스폰 광고도 제의가 온 상태다.

심판들 상당수를 매수해 놓았다.

아사다 마유가 실수만 하지 않고 김유나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메달은 아사다의 것이다.

그 전에 눈에 거슬리는 김유나의 신경을 자극해 놓을 생각이다.

“정말 염치가 없는 분들이군요.”

격한 영어로 사라소바가 강하게 한마디 뱉었다.

“???”

김유나와 예민정이 당황하며 놀랐다.

선수권 대회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대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코치도 없는 상황.

“무슨 일인가요?”

예민정이 침착하게 대응했다.

이런 식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싸움이 그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일본 선수를 맡은 코치들은 유나만 보면 다들 예민해졌다.

“이 링크 장 당신들 건가요?”

“아직 예약 시간이 안 끝났어요.”

“거의 끝나가잖아요. 빙판을 얼마나 난잡하게 탔으면 저 얼음 상태 보세요. 아사다가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책임질 건가요? 혹시 계획적인 건 아닌가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사라소바.

예민정과 김유나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연습이 치열했으니 빙판 얼음상태가 나쁜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엉망까지는 아니었다.

밴쿠버에는 제대로 된 빙상 경기장이 드물어 가까운 대도시인 미국 시애틀까지 왔다.

그곳 사설 빙상 경기장을 빌려 연습하고 있었지만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아직 30분이나 대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슬슬 마지막 몸 풀기를 끝내고 돌아가려던 김유나였다.

피겨도 선수의 컨디션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평소 루틴을 실행하지 못하면 탈이 났다.

김유나도 예민한 편에 속했다.

그걸 알고 자극하는 사라소바.

아사다 마유가 뒤에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김유나를 경쟁자로서 무척 좋아했다.

자신의 발전도 김유나 덕분임을 아사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코치가 말도 안 되는 일로 시비를 걸었다.

말려야 할 일본 빙상 연맹 관계자들은 당황스럽게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됐으니까 지금 당장 꺼져요. 이 시간부터 이곳은 아사다가 사용할 겁니다.”

사라소바가 특유의 덩치 큰 몸뚱이로 예민정에게 위협하듯 다가왔다.

‘흐흐. 너희들이 어쩔 건데~.’

김유나를 마크해 줄 코치도 없었다.

누가 말려줄 사람이 전혀 없는 공간.

김유나가 스트레스를 받은 듯 얼굴에 열이 오르며 붉게 변했다.

모든 게 사라소바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부터 의도한 결과였다.

“이봐요……. 당신!!”

뚜껑이 열리기 직전 예민정이 나섰다.

결코 사라소바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단단히 무장했다.

“꺼지라는 말 못 들었어? 멍청한 김치 같으니라고!”

극한 모욕을 가차 없이 가하는 사라소바.

급기야 김유나 얼굴이 폭발할 듯 달아올랐다.

“지금…….”

김유나가 더는 참지 못하고 나서려는 순간.

“당신들이 꺼져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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