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
회귀의 전설
398장. 땅 장사란 이런 것이다. (4)
“총리께서 이곳에 와 계신다고?”
“방금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니…. 언제 오신 거야!”
사하 공화국 대통령 뱌체슬라프 보리스프는 긴장한 채 목소리를 떨었다.
첩과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질펀하게 놀다가 총리 신변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추운 겨울이기에 소식 없이 움직일 일이 없었다.
전국토가 대부분 얼어붙어 전기나 식수, 연료 관리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땅덩어리는 러시아 영토의 5분의1 정도 되지만 모두 다 쓸모없었다.
원유와 가스, 귀금속 같은 광물이 수입의 전부였다.
인구의 반절을 차지하는 야쿠르인은 체첸인과 달리 유순했다.
워낙 땅이 넓고 추워서 반란을 벌이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반란을 꾀하려다 얼어 죽기 딱 좋은 지역이었다.
“오늘 아침 온 것 같습니다.”
“총리! 당신 목이 몇 개야? 그 분께서 오시면 바로 알려왔어야지!”
“…급하게 일을 처리할 게 있어서….”
대통령 밑의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오후가 되면 보드카에 절었다.
적당히 알아서 굴러가는 자치 공화국.
요즘 개발되는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인해 공화국에 돈이 더 풀렸다.
욕심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라 알아서 돌아갔다.
그러나 푸틴 총리 방문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일 년에 몇 번 찾아오지 않았다.
100만도 안 되는 인구는 유권자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총리께서 어디에 계시다는 거야?”
“루흐스 사냥터에 계십니다.”
“루흐스? 이 추위에?”
루흐스 지역은 영하 20도였다.
북극에 접한 지역보다는 시원했지만 그래도 추웠다.
“급히 대통령 각하와 저를 찾고 있습니다.”
“무슨 일로?”
“그건 저도 잘….”
“난 그 분만 만나면 심장이 떨려. 죄를 짓지 않고도 떨리는 기분 알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빨리 헬기 띄워!”
차로 이동하기에는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인구 100만의 사하 공화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눈 밖에 나면 어느 날 바닥으로 추락할지 몰랐다.
아직 그들은 차르에게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했다.
***
“좋지?”
“네? 네에….”
“저기 숲이 보이지? 그곳에 아주 죽여주는 녀석들이 살아. 멧돼지 고기가 맛있어.”
“그, 그렇죠. 고기는 멧돼지 고기죠. 하하하.”
젠장! 친구가 그냥 되는 게 아니었다.
술 마시다 갑자기 헬기 타고 이곳으로 날아왔다.
날씨가 기똥차게 추웠다.
영하 20도는 가볍게 찍었다.
저 상남자 아저씨는 가죽점퍼에 방한화를 착용하고 창밖을 봤다.
손에 들린 저격총.
자기는 친구와 사냥을 즐긴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이계에 초청하고 싶었다.
총도 없이 도끼나 창으로 오크를 잡아봐야 진정한 사냥꾼인 것이다.
사실 친구가 됐다는 의미로 좋은 곳에 갈 줄 알았다.
주로 미녀를 사랑한다 알려진 푸틴이었다.
길가에 널렸다는 러시아 미녀들과 조용한 곳에서 오붓하게 한 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슈트가 벗겨지고 그 위에 털옷을 입었다.
“한 잔 마셔.”
한잔이 벌써 몇 병이 됐다.
보드카가 물도 아니고 참 즐겨 마셨다.
거기에 밀폐된 헬기에서 굵은 시가라니!
이 상남자 아재는 자기 멋에 세상을 살았다.
트럼프가 차라리 품격이 넘쳤다.
“크으.”
“중독될 것 같지 않나?”
“이미 중독 됐습니다.”
“크크크. 자네는 진짜 좋은 친구야.”
푸틴 아재 웃는 게 귀엽다.
저 우직한 얼굴로 사람들 머리통을 날렸을 것이다.
“목표물 발견!”
망을 보고 있던 부조종사가 목표물 발견을 알려왔다.
튼튼한 러시아 공격헬기에 탔다.
러시아가 워낙 추운 곳이라 이런 영하 날씨에도 끄떡없이 운행됐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빠르게 하강했다.
이 아저씨들 진짜 겁이 없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가 타고 있건만 전쟁놀이하듯 헬기를 몰았다.
빠르게 허공에서 멈춰선 헬기.
한 대가 아니었다.
무려 다섯 대의 헬기가 따라오며 주변을 경계했다.
솨아아아아앗.
헬기 문이 열렸다.
거대 멧돼지 한 마리가 눈 덮인 설원을 질주했다.
타앙!
어깨에 총을 올린 채 겨냥하고 있던 푸틴 아재의 총구에서 불꽃이 피었다.
꾸에에에에엑!
총알에 맞고 펄쩍 뛰더니 다시 사방팔방 날뛰는 멧돼지.
“아오! 빗나갔네!”
푸틴이 입맛을 다셨다.
총이 바뀌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멧돼지 뒤를 쫒았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르륵.
그리고 연발 갈겨지는 자동 소총 탄환.
퍼버버벅.
멧돼지 등가죽에 시원하게 총알이 박혔다.
콰다다당.
도망치던 멧돼지가 바닥을 뒹굴며 쓰러졌다.
“굿!”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총만 아공간에 넣을 수 있었다면 오크 따위는 처음부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공간은 입맛이 너무 까다로웠다.
두두두두두두두.
“어? 저거 안 가져갑니까?”
“수컷이야. 냄새나서 못 먹어.”
“버려요?”
“유해동물이야. 그리고 저기 저 녀석들이 있잖아.”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설원에서 몇 마리 개들이 뛰어왔다.
늑대 무리였다.
“그럼 오늘 저녁은?”
“자네가 잡아.”
“네?”
“친구를 위해서 어떤 걸 잡아줄 텐가?”
뭐야? 이 아재 지금 나 시험하는 거야?
***
“겁이 없는 친구군.”
“지금이라도 따라갈까요?”
“놔둬.”
“알겠습니다.”
푸틴은 어이없는 시선으로 숲을 바라봤다.
눈이 내렸지만 숲이 울창해 숲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약 1시간 전에 사냥감을 잡으러 들어간 다니엘 장이라는 한국 청년.
정확한 정체가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주식으로 재산을 불린 것까지는 알아냈지만 해외 재산 규모는 정확히 몰랐다.
월가의 전설 로버트 라이언과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낸다는 걸 알아냈다.
홍콩에서 자신 목숨 값으로 10억 달러를 지불했다.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 외곽에 건설된 대형 놀이동산 투자 금액이 수십억 달러였다.
러시아 첩보국에서도 알아낼 수 없었다.
베일에 싸여있던 그가 직접 러시아에 찾아왔다.
사하 공화국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천하의 푸틴이 움직였다.
다니엘 장이라는 인물이 궁금했던 터라 시간을 냈다.
‘대단한 녀석이야….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았다.
미국 대통령도 두려워하지 않는 푸틴도 다니엘을 친구로 삼고 싶었다.
금전적 이익을 떠나 감춰진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무모한 짓을 벌였다.
겨울철 배고파 사나워진 들짐승들이 널린 숲에 들어갔다.
곰뿐만 아니라 호랑이도 서식하고 있었다.
총과 경호원 없이는 자신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 곳에 군용 대검 하나만 손에 쥐고 들어갔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그때 사하 공화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탄 헬기가 도착했다.
장작을 피우고 주전자에서 끓는 물을 부어 커피를 타마시던 푸틴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두 남자.
“각하! 오셨습니까!”
둘 다 푸틴 앞에 다가와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잘 지냈지?”
“각하의 염려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공식 석상에서는 서로 경어를 사용했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관계가 명확했다.
“한 잔 마실 텐가?”
“주시면 영광입니다!”
오는 와중에 물을 마시고 술기운을 날렸다.
하지만 꽤 진하게 마셔서 알코올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적당히 마셔. 공화국 시민들이 자네들 건강 걱정할 수도 있잖아.”
걱정을 가장한 푸틴의 경고.
“주, 주의하겠습니다!”
사하 공화국 대통령과 총리 모두 차렷 자세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유독 추운 것 같군.”
“저녁에는 영하 25도까지 떨어진다는 보고입니다.”
11월이지만 겨울로 접어든 사하 공화국.
아직 본격적인 겨울은 아니었지만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뱌체슬라프.”
“넵! 각하!”
공화국 대통령을 부하 대하듯 부르는 푸틴.
“땅 좀 팔아.”
“네? 따, 땅요?”
“내 친구가 여기 땅이 마음에 든다는군.”
‘땅? 무슨 소리야?’
뱌체슬라프가 총리 예고르를 돌아봤다.
총리도 눈만 껌벅거렸다.
“안 팔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떤 땅인지….”
대통령 뱌체슬라프의 말에 커피를 마시던 푸틴의 동작이 그대로 멈췄다.
“많이 컸네.”
“가, 각하.
조용한 푸틴의 목소리에 뱌체슬라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동네에서는 대통령일지 몰라도 푸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잠시 잊어버렸다.
“여기가 네 땅인가?”
“아, 아닙니다!”
“이곳은 위대한 슬라브인들의 피로 세워진 위대한 러시아연방공화국의 일부일 뿐이야. 그런데 어떤 땅?”
“죽여주십시오! 각하!”
뱌체슬라프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총살되어도 할 말이 없었다.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되거나 헬기와 함께 폭파될 수도 있었다.
‘저 바보 같은 자식! 아직 술이 덜 깬 거야?’
같이 무릎을 꿇으며 총리 예고르는 속이 탔다.
대통령이 된 것도 푸틴의 허가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곳에서 사업하는 광산업자와 러시아 마피아가 중앙 정부에 추천한 것이다.
그런데 멍청한 놈이 자신이 주인이라도 되는 양 허세를 부렸다.
당연히 떨어지는 불호령.
푸틴은 다른 것보다 영토 문제에 몹시 예민했다.
측근들에게도 옛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를 반드시 되찾겠다고 수시로 다짐했다고 들었다.
툭.
그런 그가 땅을 팔라고 말했다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 앞으로 지도 한 장이 떨어졌다.
“거기 붉은 표시가 된 땅을 내 친구에게 99년 동안 불허할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는 빠르게 지도를 살폈다.
벨류아강 상류에 위치한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장소.
규모는 상당히 넓었지만 전혀 쓸모가 없는 곳이었다.
호수와 강, 그리고 산이 전부였다.
도로도 뚫려 있지 않아 원주민들도 찾아가기를 꺼려했다.
“100억 달러 받기로 했는데…. 20억 달러 주지.”
공짜도 아니었다.
누가 와서 개발해 준다면 공짜로라도 분양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20억 달러가 비용으로 주어졌다.
“각하! 뜻대로 하십시오!”
대통령과 총리는 곧장 고개를 조아렸다.
굴러온 빵도 못 먹으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어!”
그때 경호를 서던 요원들이 놀란 신음을 터트렸다.
스윽 스윽.
어느새 어둑해지는 숲속에서 묵직한 무언가를 밧줄에 끌고 나타난 한 남자.
“그, 그 자입니다!”
경호요원이 놀라 외쳤다.
푸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빠르게 다가오는 남자.
터억.
눈 위로 제법 큰 멧돼지 한 마리를 끌고 왔다.
먹을 수 있는 암컷이었다.
“목이 마른데…. 보드카 한 잔 주시겠습니까?”
푸틴을 향해 미소 짓는 다니엘 장.
멧돼지 목에 박혀 있는 군용 대검.
쏟아진 피가 하얀 눈 위에 붉은 길을 내며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다니엘 옷자락에 붙어 있는 늑대 털.
놀랍게도 상처 하나 없이 늑대를 물리치고 멧돼지를 끌고 온 게 분명했다.
미친놈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푸틴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친구를 힘껏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