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5화 (394/1,284)

 # 395

회귀의 전설

395장. 땅 장사란 이런 것이다. (1)

- 이번 장주시에서 발생한 지역 토착비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광범위한 조직적 범행임이 밝혀졌습니다. 시청 고위 공무원과 조직폭력배, 그리고 부동산 업자의 사기 분양 및 폭력, 갈취 등을 통해 수백억대의 불법적 부를 축적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업자는 미성년자 아들 명의로 땅을 불법 증여하고 건물을 올려 수십억의 증여세 포탈과 세금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이게 나라냐?

⤷미성년자에게 수십억 재산이라니……. 도대체 국세청은 뭐하는 집단이야?

⤷ㅋㅋ 윗물이 똥물인데 아랫물이 1급수이기를 바라냐?

⤷조폭 새끼들 다시 처넣을 교육대 부활 안 하노?

⤷깡패, 사기꾼, 공무원 완벽한 삼위일체 집단이네~.

⤷그런데 또 장주시야? 전에도 거기 유명했잖아.

⤷조폭 성지임.

⤷시장은 빠졌네?

⤷이번에는 지켜봅시다! 

“이게……. 으으으.”

최대식은 해당 인터넷 뉴스와 댓글을 보면서 얼굴이 하얗게 떴다.

하루아침에 집안이 박살났다.

며칠 전 아빠와 조폭 두목이 구속되었고 오늘 아침 조사받던 엄마도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자고 났더니 저주에 걸린 듯 일상이 모두 파괴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던 친구들도 연락을 피했다.

TV를 비롯해 각종 언론에 집안 얘기가 봇물 터지듯 보도 됐다.

알 만한 사람은 물론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람마다 수군거려 얼굴을 들고 나갈 수가 없었다.

단 며칠 만에 창살 없는 감옥에 철저하게 고립됐다.

가깝고 먼 친척들도 도와달라고 입을 떼면 모두 바쁘다고 전화를 끊었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랐다.

대대적으로 검찰이 나서서 시청 공무원들과 조폭들을 쓸어갔다.

한바탕 욕을 퍼붓던 신장주파 행동대장 신경식을 비롯해 30여 명의 조직원들이 검거되는 사진이 뉴스에 나왔다.

화려했던 날들이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일망타진 됐다.

신용 카드도 어제부로 정지당했다.

부모의 그늘이 꺾이자 최대식은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돼 버렸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인맥이 다 허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 그대는 오늘 밤 나의~♬

핸드폰 벨소리가 오랜만에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 여보세요.”

평소와 달리 두려움에 질려 있는 대로 쫄며 최대식은 전화를 받았다.

- 친구~ 나다.

“누…… 구?”

친구라지만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같았다.

- 벌써 잊어버린 거야? 너 진짜 치매야?

치매라는 말에 번뜩 떠오르는 이름 하나.

“자, 장태산!”

- 어~

“야! 이 X자식아!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장태산과 이번 사태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쌓였던 불안과 공포가 한꺼번에 악으로 터졌다.

- 새끼. 지옥 갈 차비 좀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뭐라고?”

- 앞으로 잘 살아라. 힘들고 지칠 때마다 오늘을 떠올리며 반성해. 이번 생은…… 이 정도에서 끝났으니까~.

흉기를 들지 않았을 뿐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장태산! 이거 다 네가 한 짓 맞지!!!”

- 응~.

“이 새끼야! 도대체 나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 지X이야! 돌려놔! 다 돌려놓으라고!”

최대식은 사실이 확인되자 눈물을 흘리며 악을 썼다.

믿기지 않았지만 정황상 믿어야 할 상황이었다.

부모님 모두 감옥에 갈 게 뻔했다.

갑자기 덩치만 큰 고아가 된 것 같았다.

- 아프냐?

“닥쳐! 너 진짜 죽여 버린다! X새끼!”

- 과거 너한테 당했던 애들은 지금 너만큼 안 아팠을까?

“…….”

장태산의 물음에 최대식은 이를 악문 채 입을 다물었다.

장난만 좀 쳤을 뿐이었다.

고통을 주기만 해봤지 당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감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불편한 마음은 존재했다.

- 똑바로 살지 못한 네 부모와 네 업이다. 그렇게 알고……. 참회하고 살아. 네 가족에게 당했던 이들은 지금 너보다 훨씬 괴로웠을 거다.

“……X랄하지 마! X까는 소리 말라고!!!”

- 네 악쓰는 소리 들어주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다.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아~.

“장태산…….”

최대식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 아~ 중요한 말 해주려다 잊어버렸다. 너…… 방 빼라.

“뭐, 뭐라고?”

- 아마 지금쯤이면 주인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방 빼고 장주시에서 꺼져. 새끼야~.

뚝.

장태산은 마지막 말을 뱉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장태산! 장태사아아아아아안!”

이미 통화음이 끊어진 핸드폰을 들고 악을 지르는 최대식.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장차차차차차창.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집에 있던 장식품들을 사방으로 내던졌다.

장태산의 경고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 집마저 빼앗기면 진짜 거지였다.

월세로 받아온 돈 모두 유흥비로 그때그때 탕진해 버렸기에 통장에 잔고도 없었다.

부모님 카드도 정지된 상태.

“으으으으…….”

한꺼번에 몰려오는 두려움에 최대식은 머리를 쥐어짜며 신음을 흘렸다.

***

“여기 찍어.”

“이, 이게 뭡니까?”

“보면 몰라? 채권 양도 각서잖아.”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최광현은 접견 신청한 변호사를 향해 버럭 호통을 쳤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자마자 장주시에서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수임을 맡을 수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다른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급히 지인을 통해 서울 쪽 대형 로펌을 수배했다.

리앤장과 요즘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삼우 로펌.

전관예우가 통하는 이쪽 지역의 차장 검사 출신이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온 로펌의 변호사가 수임 계약서 대신 여러 가지 각서와 계약서를 내밀었다.

“몰라서 묻나? 당신 업자잖아~ 이런 거 예전에 많이 해봤을 것 아냐. 그런데 진짜 몰라?”

오십대 초반의 변호사가 비아냥대듯 이죽거렸다.

반말은 기본이었다.

이런 일 한두 번 처리해 본 솜씨가 아니다.

“당신 정체가 뭐야? 누가 보냈어!”

최광현은 터져 나오는 분노를 목구멍으로 집어 삼키며 물었다.

“당신? 하아, 이 새끼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너 인마 끈 떨어진 연이야. 힘없는 시공업자하고 세입자들 등쳐먹고 언제까지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검찰이 짱 박아놨던 니 자료들 다 풀었어.”

피식 웃는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

“누구요. 날 이렇게 몰아붙이는 자가 누구냔 말이오!”

평범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돌아가는 판으로 이미 알았다.

하지만 그 상대가 도대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사기 치는 와중에도 빽 있는 놈들은 골라서 건들지 않았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엄청난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나도 잘 몰라. 다만……. 네까짓 놈은 한 방에 날릴 수도 있는 분이라는 사실만 들었다. 그러니까 도장 찍어. 네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 이 정도면 가격 후하게 쳐준 거야. 내일부터 국세청 조사도 받아야 하잖아. 동산도 이미 가압류 됐다. 이것저것 감춰 놓은 것도 다 까발려졌어. 참고로 말하자면 니 와이프도 지금 체포돼서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야. 오늘 안으로 구속영장 칠 거 같다.”

“…….”

이 정도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완벽하게 짠 그물에 당한 것이다.

와이프와 처가 쪽 명의로 차명 재산이 빼돌려져 있었다.

걸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요즘 느낌이 좋아 싼 값에 나온 부동산을 구입하느라 현찰도 다 사용했다.

이대로 털리면 모두 끝장이다.

“남겨줄 건 있습니까?”

최광현의 말투가 좀 전과 다르게 변했다.

이제는 목숨을 구걸할 때라는 걸 본능이 말해주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니까 세금징수 당하고 나면…… 몇 억은 남을 것 같은데…….”

몇 억이라는 말에 최광현은 그만 눈을 감았다.

과거 구입해 선물로 준 세컨드 아파트 값도 안 됐다.

“수임료는 싸게 해줄게. 큰 거 한 장.”

“형량은.…….”

“여론이 워낙 안 좋아. 상부에서도 별 볼일 없는 새끼 확실히 까라고 지시 내려왔단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조직이 상부 말씀을 안 들을 수 없잖아? 판사님들도 여론 신경 써서 방망이 때려야 하니까……. 3년만 살자. 그 정도도 후한 거다.”

“와이프는요.”

“와이프? 별거하는 놈이 별걸 다 신경 쓰네. 거기는 잘하면 집행유예로 빼줄게. 아들은……. 아버지가 다 뒤집어쓰면 아무 죄가 없고~.”

변호사는 아들까지 끼워 팔았다.

“다른 변호사 구할 생각 마. 이 바닥에 소문 쫙 났다. 10억 쏜다고 해도 나보다 형량 낮출 수 없어. 그러니까……. 빨리 사인하고 끝내자. 건물들 다 넘기고 세금 내고 얼마나 깔끔하고 좋아……. 3년 금방 간다. 흐흐.”

변호사가 아니라 악덕 사채업자나 다름없었다.

최광현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살폈다.

차명 부동산에 설정되어 있던 채권 서류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게 치밀하고 완벽했다.

바둥거릴수록 불리하다는 걸 최광현은 잘 알았다. 과거 자신이 써먹던 수법도 이와 같았다.

“인감 첨부는 됐고 사인하고 지장 찍어. 그럼 통장에 돈 바로 쏴줄 거야.”

어차피 통장에 들어가도 압류를 당해 빼도 박도 못할 돈이었다.

스윽 스윽. 꾸욱.

최광현은 사인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누군지 몰라도 제대로 항복하고 자비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케이! 성격 시원해서 좋네. 여기도 사인해. 변호사 수임 계약서야.”

결과가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짓는 변호사.

이름을 이제야 처음 봤다.

변호사 조윤태.

변호사 수임서에도 사인을 남겼다.

“착하게 살아라. 그리고 웬만하면 1심에서 끝내자. 괜히 항소해서 서로 피곤해지지 말자. 사식은 넣어 줄게.”

“변호사님도……. 그쪽 팀이요?”

“팀? 팀은 모르겠고……. 다시 세상에 기어 나와도 절대 알려고 하지 마라. 그날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다.”

톡톡 최광현의 어깨를 두들기며 일어나는 변호사 조윤태.

담당 변호사가 분명했지만 의뢰인에 대해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리고 네 아들에게도 경고해. 알바라도 해서 착실히 먹고 살라고 말이야. 과거처럼 살다가는……. 맞아 죽기 좋은 세상이잖아~. 돈도 없는데 성질만 더러우면 제명까지 못 살지~.”

시니컬하게 웃어보이 돌아서 나가는 변호사.

최광현은 이 거짓말 같은 악몽이 믿어지지 않아 그저 멍하니 눈동자를 풀고 회색 천장만 올려다봤다.

***

- 보스. 말씀하신 대로 홍콩 쪽 법인을 몇 개 인수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로버트.”

쓰레기 청소 중에도 일상은 본래의 속도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잭팟이 터졌다.

수익률은 말해 봐야 입만 아팠다.

이제는 자금으로 10년 대계를 세워야 할 때.

- 중국 쪽에 투자입니까? 아니면…….

로버트도 내가 중국에 악감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굳이 변명할 생각이 없었다.

“덫입니다.”

- 치명상이겠군요.

“언젠가는 아프겠죠.”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가장 화려할 때 추락해야 재기를 꿈꾸지 못하게 된다.

- 금융 위기로 중국 정부에서 빗장을 한 번 더 풀었습니다. 보스 지시대로 홍콩과 중국 본토 상장 주식들 중에 정부 보증이 되는 국영기업 위주로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매매가 쉬운 홍콩 상업용 건물 구입도 집중해 주십시오.”

- 대규모입니까?

홍콩 집값은 중국 본토인들의 진출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꺼지지 않는 불야성이 되어버린 홍콩.

“중요한 투자입니다. 매입 가능한 물건들은 놓치지 마십시오.”

세계적 금융 위기 여파가 홍콩에도 미쳤다.

주어진 기간은 아주 짧았다.

앞으로 쭉쭉 오를 일만 남았다.

그 기간 안에 쓸어 담을 생각이다.

- 알겠습니다.

“소문에 중국이 곧 채권시장을 개방한다고 합니다. 그 일도 준비하십시오.”

- 국채 금리 차이가 매력적인데……. 좋군요.

빌린 돈 좋아하다가 중국은 늪에 빠진다.

작년부터 시작해 중국은 앞으로 전세계 40% 이상에 해당하는 비율의 빚을 내게 된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그림자 금융까지 포함하면 빚으로 경제를 살리는 꼴이다.

성장에 어느 정도 채무는 약이 되지만 한계를 넘으면 독이 된다.

한국 IMF도 그렇게 찾아왔다.

중국에 남는 자금을 투자할 생각이다.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한 번에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 목을 물어뜯을 비장의 한수.

십 년짜리 큰 계획이었다.

“그리고 비행기도 보내주십시오. 러시아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 여행입니까?

“아니요……. 땅 사러 갑니다.”

- 네? 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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