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
회귀의 전설
394장. 지옥의 환영식 (2)
“죽여 버리겠어…. X자식!”
최대식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친구 놈들은 장태산이 빠져나간 직후 소리도 없이 다 내뺐다.
장태산이 타고 떠난 에스턴 마린과 한국대 법대생이라는 말에 쫄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해 확인한 결과 진짜라고 했다.
있는 대로 자존심이 상한 최대식은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도하게 흐르는 장주강을 바라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느닷없이 맞은 위기였다.
스윽.
최대식이 핸드폰을 들었다.
“장태산…. 다시는 장주시에 못 오게 만들어 주마!”
번호를 누르며 최대식은 흉포함을 감추지 않았다.
- 어~ 대식아~
“경태야 잘 지내냐.”
- 흐흐. 두말하면 잔소리지. 요즘 큰형님 덕분에 어깨 펴고 다닌다.
장주 산업고 씨름부 출신인 신경태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었다.
얼마 전 새로 결성된 신장주파의 행동대장이 됐다.
점점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장주시에 새로운 형태로 기생할 기생충들이 등장한 셈이다.
몇 년 전 살벌하게 휘몰아쳤던 조직폭력배 소탕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
요즘 각종 개발로 이권사업이 많아지면서 폭력 조직의 금고도 두둑해졌다.
“그래? 다행이네.”
- 왜? 술 한 잔 살래?
“그럴까?”
- 대식이가 사준다면 이 몸이 몹시 바쁘지만 시간을 내야지~.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엮이게 된 인연이었다.
서로 돕고 도움을 주는 사이가 됐다.
“부탁이 하나 있다.”
- 무슨 일 있어? 친구 일인데 이 형아가 도와줄 일 있으면 말만 해라.
“동창 놈 하나 발목 하나만 좀 분질러 줘라.”
- 흐흐. 어떤 간 큰 놈이 우리 대식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까.
“이 새끼가 물정 모르고 나를 지옥으로 보낸다고 헛소리를 지껄인다.”
- 그래? 간 크네~. 누군지 궁금한데~.
“주소 찍어줄게. 조용히 손 좀 봐줘. 이 동네에서 다시는 얼굴 못 내밀게 말이야.”
- 걱정 말아라. 오줌 질질 싸는 장면 찍어서 보내주마.
“그거 좋다! 그럼 거하게 한 잔 사마.”
- 좋아. 기대하마. 그런데 그 새끼 이름이 뭔데?
“나이는 우리하고 같고 이름은 장태산.”
- …뭐, 자, 장태산…?
신경태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
“왜 아는 놈이야?”
- 설마 장주고 출신 아니지?
“맞을 거야. …맞는 것 같은데.”
- …….
갑자기 이어지는 침묵.
“왜 그래? 뭔데?”
-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나 죽이려고 작정했냐? 뒈지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누구를 끌어들여! 썅!
거친 욕설과 폭언이 핸드폰 너머에서 쏟아졌다.
“왜, 왜 그래….”
갑작스런 신경태의 태도 돌변에 최대식은 불길함을 느꼈다.
- 미친 새끼야! 혁찬이 골로 보낸 새끼가 그 자식이야! 그런데 어쩌라고? 너 한 번만 더 연락하면 죽여 버린다! 시내에서도 아는 체 말아라. 이 X놈의 새끼야!
뚝.
할 말만 하고 끊긴 신경태와의 통화만큼이나 방금 들렸던 말들은 더 충격적이었다.
“설마…. 그때 그 놈이 장태산?”
장주시를 들었다 놨다 했던 장주 조폭 일망타진 사건.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최대식도 소문을 들었다.
워낙 전국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건이었고 장주시는 한참 동안 들썩였다.
당시 학교에서 일진 놀이하던 최대식도 그 사건으로 숨을 죽였다.
“진짜…. 무슨 일 나는 거 아니겠지?”
피부 깊숙이 파고드는 공포에 파랗게 질려가는 최대식.
어릴 적부터 불안하면 습관처럼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던 버릇이 나왔다.
아무리 손톱을 씹어도 쉽게 가시지 않는 불안감.
네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고 했던 장태산의 마지막 말이 주문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조 변호사님…. 동네에 쥐새끼들이 다시 창궐하고 있습니다.”
- 그래? 거참…. 정신 못 차리는 쥐새끼들 많아.
“모조리 잡아 주십시오. 다른 곳은 몰라도 제 고향땅은 깨끗했으면 합니다.”
- 걱정 마라. 확실히 청소해 주마.
“특히 최광현이라는 인물을 홀랑 벗겨 주십시오. 가족 간에 증여세 및 각종 세금 탈루 혐의가 있습니다.”
- 어디까지?
“종착역이 지옥이면 좋겠습니다.”
- 흐흐흐. 법 없이도 사는 우리 착한 장 대표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나 보군~. 그래 죄가 있다면 지옥 가야지.
조 변호사님이 나의 의중을 눈치 챘다.
“허술한 것 같으니 오늘이라도 바로 착수해 주십시오. 국세청도 동원해 주시구요.”
- 그 정도 자료는 검찰 애들이 가지고 있을 거다. 알았다. 급한 것 같으니 오늘 밤이라도 영장 치도록 만들어 보마.
“감사합니다.”
- 우리 사이에 감사는~
“조만간 술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 그래 이제 성년인데 한 잔해야지.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 장 대표.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 3차 면접 시험은 왜 안 본 거야? 2차까지 100등 안에 들었던데…. 그 정도면 충분히 판사까지 노릴 수 있어. 내가 힘쓰면 수도권도 가능하고 말이야.
“수석이 아니지 않습니까.”
- 이럴 때 헐이라고 하는 거 맞지? 동차 합격에 수석까지 노린 거야?
“네.”
- 와아아…. 징하다. 징해. 같은 한국대 법학과 출신인 나는 뭐냐?
사법고시 3차 면접에 응시하지 않았다.
교수님들과 약속한 것도 2차까지 합격하는 것이었다.
3차야 면접 보는 순간 패스하리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큰 그림을 위해서 참았다.
지금쯤 학교뿐만 아니라 선배들에게도 소문 쫙 돌았을 것이다.
“그냥 변호사님이죠.”
- 끙…. 그래. 그냥 변호사 이만 끊을란다.
통화가 끝났다.
최대식을 이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놈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쌍둥이를 다시 언급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진심으로 사과하면 지난 과거의 일이니만큼 눈을 감아주려 했다.
그리고 한 번 손을 쓰면 철저하게 밟아버리는 내가 가끔 무서울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놈은 살 길을 스스로 걷어찼다.
플라스틱에서 새순이 돋기를 바란 내가 어리석었다.
최소한의 양심과 머리는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돈이라는 약에 취해 살아가는 자에게 아랫것들의 아량과 배려가 먹힐 리 없었다.
남아 있는 법은 오직 하나.
“확실히 보여주마!”
이쯤 되면 최대식도 나름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식은 애초 나의 싸움 상대가 안 됐다.
장주시 깡패들 중에 머리에 총 맞고 제정신이 아닌 이상 나를 건들자는 없었다.
티디딕.
장주시 아파트에 돌아와 조용하게 흐르는 장주강을 바라보며 다음 통화를 이어갔다.
- 대표님~ 잘 지내십니까.
“의원님도 무탈하십니까.”
- 대표님 덕분에 아무 일 없습니다.
장주시 국회의원 양우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전 별일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 대표님께 별일이라니요? 말씀하십시오.
양우석 의원의 살짝 긴장한 목소리가 너머에서 전해졌다.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양우석 국회의원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하대하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내 손에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안효근 시장과 소속 시의원들에게 경고하십시오.”
- 네? 경고라니요.
“최광현이라는 사람과 연관된 일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부로 모두 털어 내라고 말입니다. 시간은 정확하게 3시간쯤 남았습니다.
- 아, 알겠습니다.
장주시 국회의원은 소속 시의원들에게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시의원들 선발은 당 협위원장인 국회의원들의 몫이다.
“검찰과 국세청이 동시에 칠겁니다.”
- …지금 전화 돌리겠습니다.
시장 안효근은 한국자유당이지만 묵직한 협박으로 내 편이 됐다.
최대식 아버지인 최광현은 분명 한국자유당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시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자유당과 관계가 돈독하지 못하면 장주시에서 부를 키울 수 없었다.
그들도 같이 날라 갈 게 뻔했다.
그 전에 양우석 의원 쪽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수고하십시오.”
양우석 국회의원과의 통화도 끝났다.
내친 김에 날 잡아서 잡초를 제거해 보지만 잡초들의 생명력은 의외로 질겼다.
“대식아…. 돈 없는 자의 서러움이 뭔지 뼈저리게 겪어 봐라. 너한테는 그게 바로 지옥일 테니.”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이들은 삶이 고단해져도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있었다.
그러나 부를 그늘 삼아 살던 부자들은 달랐다.
망하는 순간 세상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맛본다.
최대식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장주시에서 귀족처럼 살던 놈이 처음 겪게 될 가난이라는 질병.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한다면 그게 용할 것이다.
그 정도로 철저히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생각이었다.
***
“네, 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장주시 시장 안효근은 조심스럽게 양우석 국회의원의 전화를 받았다.
모든 대화는 대포폰으로 이뤄졌다.
어차피 발목이 잡힌 마당에 최대한 양우석 국회의원의 지령을 따랐다.
반대 정당의 국회의원이었지만 장주시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적극 협조했다.
양우석 의원도 전 의원보다 장주시에 자금을 더 끌어왔다.
누가 봐도 합법적인 상황이었다.
“휴우우우. X발. 엿 될 뻔했네.”
통화를 끝내고 안효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이지만 이것저것 뇌물을 많이 받아먹지는 못했다.
따로 경고가 있었기에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암암리에 손바닥에 떨어지는 콩고물이 적지 않았다.
직간접으로 받을 수 있는 이익이 참 많았다.
특히 최근 최광현이 투자하고 있는 장주 주택단지 개발에서 이권을 얻었다.
대가는 5억.
퇴직 후에 손 빨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러 편의를 봐주라고 지시를 내렸다.
“오늘 조진다고? 걸렸으면 어쩔 뻔했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청 직통 전화를 들었다.
삐이이잇.
“나 시장이야.”
- 넵! 시장님.
시장의 오른팔인 도시개발국장이었다.
“며칠 전 내가 지시한 건 있잖아.”
- 어떤 걸 말씀이신지….
“거 있잖아. 최 사장 주택단지.”
- 아, 그렇지 않아도 다른 부서 닦달해서 오늘 결제를 올리려고 합니다.
“됐어.
- 네?
“됐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합법적일 것 같지 않아. 괜히 중앙부처 감사에 걸릴 수 있으니까 모조리 불허가 결정해.
- 아니 거의 끝나가는 일인데….
“당신 돈 먹었어?”
- 아,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사업 신청 관련 서류 모두 스톱시켜. 지금 당장!
-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국장의 대답을 듣고 전화 통화를 마무리한 안효근 시장.
“내가 이러려고 시장된 건 아닌데…. 하아.”
시장이지만 시장이 아닌 꼬봉 신세가 되어버린 껍질 시장 인생.
안효근은 시장실에 앉아 인생무상을 배웠다.
“우리 작은 광현이 수고했다. 이제 형이 너만 믿는다.”
“흐흐. 큰형님 저만 믿으십시오. 장주시는 이제 형님 것입니다!”
장주시에서 가장 큰 룸살롱에서 신장주파의 수장 기광현과 부동산 업자 최광현이 술잔을 기울였다.
둘 다 우연찮게 이름이 광현이었다.
성만 달랐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죽이 잘 맞았다.
과거부터 알던 사이인데다 장주시에서 조폭들이 크게 쓸려나가면서 서울에서 조직 생활을 하던 기광현이 돌아왔다.
최광현의 돈으로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숫자는 얼마 안 되지만 신장주파는 알짜배기를 차지했다.
“내가 잘 되면 네 것도 되는 거다. 형, 그렇게 쪼잔한 놈 아니다.”
“형님 통 큰 건 제가 더 잘 알고 있습죠.”
기광현은 최광현에게 깍듯했다.
시의원과 시청뿐만 아니라 경찰서까지 다방면에 최광현의 힘이 미쳤다.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이 많았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존 관계였다.
“이번에 주택 단지 개발되면…. 한 채 챙겨 주마.”
“감사합니다! 형님!”
수억 짜리가 공짜는 아니었다.
최광현 수법은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큼 더러웠다.
바지 사장을 내세워 공사를 하다가 날려 버리는 수법을 썼다.
외상으로 공사하던 하청 업자들이 난리를 치다 결국 유치권을 행사한다.
그때 기광현이 나서서 싹 처리하고 최광현은 경매로 헐값에 물건을 받아버린다.
그렇게 번 돈이 수백억이 넘었다.
미리 싼값에 들어오려던 세입자들의 돈까지 착복했다.
세상 가장 더러운 쓰레기들 중 하나가 최광현이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그때 최광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 안 국장. 퇴근 안 했어? 6시 넘었는데 퇴근하고 한잔해야지. 오늘 수고한 거까지 내가 크게 보답할게~.”
장주시 도시개발국장과 형 동생 하는 최광현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건넸다.
- 최 사장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 무슨 소리야?”- 그 동안 주셨던 용돈은 방금 사모님께 전달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말해 봐. 뭐야?”
최광현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급한 대로 안 국장을 추궁했다.
- 시장님이 역정을 내시고 허가 중단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전 이만 끊겠습니다.
띠이잇.
안 국장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 동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야? 시장이 지금 나 엿 먹인 거야?”
선금은 안 갔지만 얼마 전 식사를 하며 대략적 선물 금액이 오갔다.
알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던 시장이 쌩을 깠다.
“형님 무슨 일 있습니까?”
기광현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안효근이가 미쳤다. 형 일에 초를 쳤어.”
“효근이가요? 이 새끼가 약을 쳐 먹었나.”
띠리리 띠리릿 띠리리리♪.
그때 다시 기광현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형님 전화 좀 받겠습니다.”
최광현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광현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혀, 형님! 큰일 났습니다!
부두목 종덕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반대 세력도 없는 장주시였다.
큰일이라고 해봐야….
콰아아아앙!
그때 룸싸롱 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차박차박.
그리고 인상 험한 강력계 형사들과 슈트를 착용한 젊은 남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 당신들 뭐야!”
먼저 본 최광현이 버럭 호통을 질렀다.
“뭐긴, 뭐야. 더러운 새끼들 때려잡는 검사지~. 반갑다. 최광현과 기광현. 장주지검에 며칠 전 부임한 검사 노종환이다.”
검사라는 말에 최광현과 기광현의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증여세와 세금 포탈 및 폭력 교사. 그리고 사기,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최광현 당신에게 체포영장을 집행한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는 거 알지?”
“아니, 그게 무슨….”
“기광현! 조직폭력배조직 구성 혐의와 폭행, 공갈, 협박 및 사기 혐의로 너도 이 시간부로 체포한다~”
서슬 퍼런 검사의 외침에 최광현과 기광현 두 사람 모두 멍하니 눈만 껌벅였다.
대응할 수 없을 만큼 갑자기 닥친 불행.
도대체 오늘 뭐가 벌어지고 있는 건지 짐작도 안 갔다.
“뭣들 합니까. 저 버러지 새끼들 수갑 채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