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
회귀의 전설
380장. 선수촌에서 (2)
‘웃어? 이 새끼 돈 거 아냐?’
허준원은 거칠게 뺨을 맞고도 웃는 장태산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코치 생활만 벌써 몇 년째였다.
동계 올림픽 종목 중에 크로스컨트리 스키 쪽은 코치가 부족했다.
선수층이 얇다보니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가 전무했던 20년 전 잠깐 선수 생활을 했었다.
지방대에서 체육학 박사까지 밟고 시간 강사가 됐다.
당숙이 잘나가는 여당 국회의원이었다.
가족의 힘으로 어렵다는 국가대표 코치 자리를 얻었다.
국회의원을 등에 업고 코치 자리를 꿰찬 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한국스키지도자연맹의 자문위원도 겸하고 있었다.
한국스키협회에서도 의무위원이었다.
대한체육회나 선수촌에서도 허준원을 터치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차피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메달과 거리가 먼 종목이었다.
형식적으로 올림픽위원회에서 대표 자리를 내줬다.
동유럽 국가 말고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메달을 따는 국가가 드물었다.
그야말로 허준원은 완전 꿀 빨았다.
대표팀 코치가 되면서 훈련비용만으로도 수입이 꽤 됐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었다.
국가대표 코치들 중에서도 돈 밝히고 여자 좋아하는 놈들이 있었다.
하지만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선수층이 얇아 그런 맛이 없었다.
잘나가는 다른 팀처럼 선수들에게 상납금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갑자기 운복이 터진 듯 봄부터 대기업 스폰이 들어왔다.
지도력 향상비와 지도비가 따로 지급됐다.
허준원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당숙이 힘을 써줬다고 생각했다.
세상 무서운 게 없는 마당에 재수 없는 놈이 나타났다.
한국대생이라고 소집 때 특별 면제됐다.
두 달 전에 입촌해야 했지만 녀석은 11월에 모습을 보였다.
녀석 때문에 보너스가 깎였다.
한 사람 당 지급되는 지도비가 적지 않았는데 그게 아까웠다.
허준원은 오늘 만나는 자리에서 기를 죽여 놓겠다고 마음먹었다.
개인적으로 한국대 출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어떤 곳에 가도 한국대 출신은 우대를 받았다.
“지금 때리셨습니까?”
놈이 눈을 치뜨며 물었다.
“그래! 이 새끼야! 너 같은 놈들은 좀 쳐 맞아야 정신 차리지! 여기가 취미생활 하는 스포츠센터인 줄 알아? 태릉선수촌이야! 감히 일개 선수 주제에 스승한테 개겨? 더 쳐 맞을래?”
허준원은 은근히 코치들의 힘을 믿었다.
한 달에 몇 번씩 술 마시는 코치들이 다들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이럴 때 선수들은 대부분 꼼짝 못했다.
괜히 찍히면 긴 시간 피곤하다는 걸 잘 알았다.
체육계는 생각보다 좁았다.
선수뿐만 아니라 이쪽에서 자리 잡으려면 코치들과의 친분 쌓기는 필수였다.
“스승? 당신이?”
‘뭐야?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허준원의 인상이 더 구겨졌다.
사실 오늘 아침 부탁을 받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하키팀 코치가 장태산을 강하게 눌러주라 특별히 연락해왔다.
심장 튀어나오게 훈련시켜 주면 술 한 잔 거하게 사겠다고 했다.
코치 허세와 함께 현실적 이익이 더해지자 허준원의 간이 다른 날보다 더 커졌다.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짓거리야!”
쇄애애앳.
허준원의 손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지금은 낮이지만 야간 자율훈련 때는 빠따도 등장하는 곳이 선수촌이었다.
다들 어려서부터 그렇게 맞고 배웠다.
관습적 대물림은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었다.
턱!
하지만 허준원의 손목이 허공에서 잡혔다.
“이, 이 새끼가…. 너, 너 지금….”
단단하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지만 장태산 악력이 장난 아니었다.
허준원 얼굴에 핏대가 올랐다.
“당신 새끼 아니니까 반말 그만하시죠? 한 대 처맞기 전에.”
“!!!”
장태산이 손목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옆에 있던 조영준이 놀란 얼굴로 장태산을 쳐다봤다.
조영준도 과거에 몇 번 폭행을 당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트집을 잡아 허준원이 손찌검을 했다.
권예림도 여자라고 봐주지 않았다.
기분 좋지 않는 날이면 그 폭행 정도가 심해졌다.
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팀이 코치나 선배들에게 수시로 폭력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상부에 하소연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후속 조치는 없었다.
대신 나약한 놈들이라고 낙인만 찍혔다.
“어!”
“저, 저게 뭐야?”
“저 자식 미친 거 아냐?”
사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코치들이 놀라워했다.
하극상.
선수촌에서 가끔 맞고 선수들이 이탈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훈련시간에 저렇게 대놓고 반항하는 선수는 처음이었다.
“놔! 이 손 안 놔!”
허준원은 다른 코치들을 믿고 더 악을 썼다.
‘너 이 새끼! 선수 생활 끝난 줄 알아!’
허준원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 정도면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선수촌 퇴소거리가 될 수 있었다.
“니가 먼저 때렸잖아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도리어 피식 웃는 장태산.
휘이익.
그리고 허준원의 손을 던지듯 밀었다.
“윽!”
허준원의 손목이 저릿저릿 쑤셔왔다.
“너 뭐야? 뭐하는 새끼가 스승에게 손찌검이야!”
“네가 장태산이냐? 그 잘난 한국대생?”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디서 코치 손을 잡아!”
거친 행동에 주변에 있던 코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다들 폭력의 기운을 스멀스멀 피웠다.
하지만 코치들도 긴장했다.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
오늘 이 일로 다른 선수들이 코치들에게 반항할까 봐 더 다그쳤다.
“집단폭행이라도 하려고요? 아이고 무서워라~.”
장태산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이 자식 또라이 아냐?”
“허 참나….”
처음 맞닥뜨린 선수의 이죽거림에 코치들 얼굴이 썩어갔다.
이런 개념 없고 미친놈은 처음이었다.
당연하게 행해지는 폭력에 이렇게 반항하는 놈은 없었다.
성적만 좋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게 이쪽 세계였다.
아직도 선수들은 적당히 맞아야 잠재된 실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는 코치들이 상당수였다.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시죠. 바쁘신 것 같은데~.”
장태산이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허 코치 뭐합니까! 선수징벌위원회 바로 소집해요!”
“요즘 것들은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니까….”
코치들이 씩씩거리며 허준원 코치를 자극했다.
“너 따라와!”
허준원이 칼을 빼들었다.
선수징벌위원회 위원들은 상당수가 코치들이었다.
지금껏 선수들이 맞아도 꼼짝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신고하고 언론에 알려져도 한 두 달이면 없었던 일처럼 조용해졌다.
도리어 선수들이 피해를 봤다.
“네~ 갑니다요.”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허준원 코치 뒤를 장난스럽게 따라가는 장태산.
“……빌어.”
조영준이 그런 장태산 옆에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저녁에 치킨 쏘마.”
“???”
장태산이 농담처럼 상황을 받아들이자 조영준은 깜짝 놀랐다.
선수위원회가 소집되면 대부분 선수들은 자격이 박탈당했다.
그런데도 여유를 부리는 장태산.
역시 아쉬울 것 없는 한국대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본부장님, 선수촌에서 긴급 징벌위원회 소집됐다고 합니다.”
“징벌위원회? 누가 또 도망갔어?”
대한체육회 소속 훈련본부장 고승표는 직원의 보고에 고개를 들었다.
2월에 있었던 동계 체전 대회운영부 본부장이었던 고승표는 승진을 했다.
특별보직이 아닌 일반 보직으로 변경이 됐다.
대한체육회에서 서열이 급상승했다.
회장 아래에 위치한 선수촌장과 부촌장 바로 아래 직함이 바로 훈련본부장이었다.
체육회 본관에서도 자리가 있었다.
태릉선수촌을 비롯해 선수촌관리부를 합한 네 개 부서의 수장이 됐다.
TS 그룹 지원을 이끌어낸 게 결정적이었다.
자다가 떡을 얻어먹은 셈이었다.
지금까지 지원금만 수십억이 넘었다.
한국스키협회는 입이 찢어졌다.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승진한 고승표.
지난겨울에 만났던 무당이 봄에 귀인을 만날 거라 했던 말이 실현 됐다.
“그게 아니라…. 선수 한 명이 코치와 마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찰?”
“코치에게 반말로 대들어 코치가 뺨을 때린 것 같습니다.”
“그래? 맞을 짓 했네.”
고승표도 고지식한 옛날 사람이었다.
어리고 혈기 넘치는 선수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폭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대표들이 미국선수들처럼 난잡하게 생활할 것 같았다.
외국 대회에 출전하면 국내 선수들은 암암리에 좋지 않은 물이 들었다.
국가대표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저녁에 술 마시고 이성 친구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의 국가대표들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개인행동이 금지됐다.
국내에 알려진 순간 여론의 포화를 맞아 선수촌은 침몰하고 말 것이다.
“메달 종목이야?”
“아닙니다.”
“그럼 가야지. 싹이 노란 놈은 솎아내!”
고승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가끔 긴급으로 징벌위원회가 열렸다.
코치들의 요청으로 소집되는 징벌위원회.
선수촌 규모가 크지 않아 청춘들의 폭력 행위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코치와 연관된 일은 거의 없었다.
힘든 스케줄과 코치들의 강압에 일부 선수들이 탈주하는 일이 일어나지만 금방 끝났다.
언론 쪽으로만 흘러들어가지 않으면 굳이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비 메달 종목에서 하극상이 벌어지면 일벌백계 의미로 엄격하게 처리 됐다.
이것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었지만 모두 순순히 받아들였다.
금메달만 따면 쏠쏠하게 떨어지는 특별 격려금이 장난 아니었다.
국위선양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돈이었다.
“어떤 놈인지 쌍판이나 한번 구경할까~.”
올림픽 회관에서 태릉까지는 30분이면 가는 거리.
전용 임원 자가용을 지급받은 고승표는 기분 좋게 출발했다.
***
“흐흐. 너 이 새끼 오늘 넌 끝났어!”
진짜 야비한 놈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먼저 시비 걸고 팬 놈이 나중에 더 성화였다.
단지 코치라는 신분이나 또는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고작 신분이 좀 낫다고 갑질하는 전형적인 소인배가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히죽 웃었다.
그런데 놈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내가 갑질 전문가 교육 담당관이라는 사실 말이다.
“좋아요?”
실없는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래, 새꺄! 능력도 안 되는 새끼가 어디서 신성한 스포츠 판을 더럽혀! 너 같은 놈들은 스포츠 세계에 발을 들인 것부터가 죄악이야!”
적의를 넘어 살기까지 뿌리는 허준원 코치.
지금은 나를 한 방에 보낼 걸 상상하며 웃고 있지만 잠시 뒤면 알게 될 것이다.
곧 썩은 얼굴로 바뀔 웃는 얼굴에 미리 묵념했다.
“점심도 안 주고 이거 너무 하네~.”
“넌 밥 처먹을 자격도 없어!”
아침에 사건이 터졌다.
선수촌 관리부로 날 끌고 간 허준원은 있는 말 없는 말 다 붙여 고자질했다.
모두 다 거짓말이었다.
허준원의 거짓 고자질에 의하면 내가 먼저 시비를 걸고 삐딱한 자세로 나왔다고 했다.
선수촌 관리부는 그 말을 또 곧이곧대로 믿었다.
도리어 나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소리치며 훈계까지 했다.
그리고 곧장 긴급 징벌위원회에 통보했다.
와! 우리나라 행정이 이렇게 빨리 처리되는 거 처음 봤다.
이것저것 뭔가를 기록하더니 휙휙.
점심도 안 주고 오후 2시 통보를 알렸다.
방에 들어가 나도 필요한 곳에 핸드폰으로 몇 통화 날렸다.
변호사 대동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금방 썩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직원과 코치.
그렇게 선수촌 회의실 앞에 다시 모였다.
“어린놈아. 앞으로 똑바로 살아라. 세상 무서운 것도 잘 배우고~ 흐흐흐.”
허준원 이 사람은 반드시 손 봐 줄 것이다.
쓰레기 청소는 항상 내 주변부터!
“허준원 코치님 그리고… 그 쪽도 들어가요. 곧 징벌위원회 시작합니다.”
“넵!”
직원의 말에 허 코치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남자 직원은 내 이름 대신 그쪽이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왜 사적 감정이 느껴지지?
아무래도 저 남자도 김유나의 왕 팬인 것 같다.
스르릇.
천천히 열리는 운명의 문.
건들거리며 들어가는 허준원 뒤를 따라 당당하게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