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7화 (376/1,284)

 # 377

회귀의 전설

377장. 이상한 나라의 귀신들과 선수들 (2)

“아… 아.”

김유나는 손으로 발목을 어루만졌다.

부상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착지가 불안정해지면서 발목이 비틀렸다.

허리까지 통증으로 찌릿찌릿 전해지며 아파왔다.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빙판에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했다.

오늘 괜히 고집을 부렸다.

코치가 곁에 남아 있겠다고 했는데 극구 쉬라고 말렸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코치도 많이 지쳤다.

집에 일이 있는 눈치여서 혼자 연습해도 괜찮다고 하고 보냈다.

가볍게 연습하겠다고 말했지만 욕심에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해 보려다 사건이 터졌다.

핸드폰도 탈의실에 두고 나왔다.

엄마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이곳은 선수촌이었다.

애써 일어나 보려고 빙판을 손으로 짚었다.

“악!”

손목에도 충격이 간 듯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며 아팠다.

모든 상황이 난감했다.

오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몇 달을 요양해도 부족할 것 느낌에 김유나는 고통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국민들의 기대와 염원이 장난 아니었다.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기를 바랐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진통제를 달고서라도 올림픽에 출전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 저기 누구… 없어요….”

울다 목이 메여 힘이 빠진 작은 목소리로 김유나는 사람을 찾았다.

누가 있을 리 없었다.

12시 쯤 되어야 관리인이 점검을 하며 한 바퀴 도느라 찾아왔다.

김유나가 워낙 예민해 평소에는 자리를 비워주는 링크 관리인이었다.

김유나를 위한 배려가 오늘은 독이 됐다.

김유나는 난감했다.

일어나야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아무도 없는 아이스링크장.

이럴 때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악마의 유혹이 귓가에서 들렸다.

“싫어!”

고개를 흔드는 김유나.

‘제발… 도와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김유나는 기도했다.

언제나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존재들에게 간절히 빌었다.

촤르르륵.

그때 거짓말처럼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

소리에 이끌리듯 고개를 돌린 김유나는 깜짝 놀랐다.

빠르게 빙판 위를 가르며 다가오는 한 남자.

선수촌 국가대표 복장을 착용한 그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

어의라니! 내가 어의라니!

상궁은 분명 나를 어의라 불렀다.

화타를 통해 여러 한의학 능력을 물려받은 걸 귀신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신도 아닌 분들이 산 자들의 능력을 몹시 잘 파악했다.

문정왕후가 꿰뚫은 것 같았다.

상궁에게서 시선을 돌려 왕후를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난 어의가 됐다.

산자가 죽은 자에 의해 왕궁 어의가 되는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귀신들에 의해 명분을 얻자 몸보다 마음이 바빴다.

김유나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터텃.

가볍게 아이스링크장으로 몸을 날렸다.

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쓰러지는 김유나의 모습이 아무래도 팔목까지 부상을 당한 것 같았다.

차아아앗.

빙판 위를 빠르게 가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깜짝 놀라는 김유나.

“놀라지 마십시오.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눈빛에 수줍음이 많은 그녀였다.

놀라지 않게 신분과 이름을 곧바로 밝히고 가까이 다가갔다.

“…….”

몹시 당황하는 그녀.

부상당한 고통에도 부끄럼이 작동하는 것 같았다.

“오늘 입소해서 우연히 구경 왔다가 봤습니다. 다치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드려요?”

“네…. 잠시 저 좀….”

이 위급한 상황에도 얼굴이 분홍빛이다.

천상 소녀였다.

지난 생에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소녀 같았다.

모든 이들의 여왕으로 불리던 김유나.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잡고 어깨를 부축했다.

“아악!”

대번에 일어서며 비명을 지르는 그녀.

“많이 다쳤어요?”

“그, 그런 것 같아요.”

“넘어질 때 보니 충격이 심할 것 같았습니다.”

“……보셨어요?”

“네, 우연히.”

“…….”

여전히 고통스러울 텐데도 부끄러움을 타는 김유나.

부축하는 중에도 그녀의 향긋한 체취가 맡아졌다.

연습 중 흘린 땀 냄새도 달랐다.

고귀하다고나 할까?

같은 인간이지만 그녀는 차원이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미끌.

“윽!”

그녀가 힘을 주고 걷다가 발이 다시 미끄러지며 느껴진 통증에 신음을 토했다.

덥석 그녀의 허리를 붙들었다.

오늘부터… 당분간 손을 안 씻게 될 것 같았다.

“저에게 더 의지하십시오. 축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네….”

누가 보면 완벽하게 의심을 살 만한 장면이었다.

빙판 위에서 젊은 청춘 남녀가 허리와 어깨를 붙들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김유나가 몸을 더 의지해왔다.

제법 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새털처럼 가벼웠다.

“윽….”

걸으면서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이 대단했다.

그녀의 발목은 눈에 띄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당장 하지 않으면 상태가 심각해질 것 같았다.

아니, 지금 당장 병원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답이 없었다.

병원 치료만으로는 이 상태로 그녀가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의라 하명 받았지만 그건 귀신들과 나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

김유나가 나의 치료를 순순히 받아들일 지가 의문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국가대표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사실 의사는 아니었다.

김유나도 자신의 상태를 잘 알 것이다.

이 정도면 연습으로 인한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끼릭.

링크장 밖으로 나왔다.

선수 대기 의자에 그녀를 앉혔다.

“아… 아.”

발목에 힘을 주는 일도 자리에 앉는 일도 힘든 상태였다.

교통사고로 치면 전치 4주 이상이었다.

- 뭐하느냐. 어의는 어서 이 처자를 치료 하거라.

상궁이 슬며시~ 다가와 나를 다그쳤다.

난감했다.

김유나에게 ‘사실 내가 어의다’라고 말하면 무슨 말을 듣겠는가.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았다.

- 이 처자는 마마님께서 특별히 아끼는 선수다. 대장부 못지않은 기개를 품고 있는 대 조선의 딸이다.

상궁마마 저도 잘 알거든요.

그런데 세상은 당신네 귀신들과 달리 상식적 생각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그 범위 안에 세상일은 돌아가야 하는 법이거든요!

“저…. 핸드폰이… 탈의실에 있는데…. 핸드폰 좀 빌려주실…. 윽.”

말을 하는 도중에도 밀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쓰는 김유나.

- 어허! 빨리 치료치 않고 무엇 하느냐!

상궁의 재촉이 없었어도 이쯤 내가 나설 타이밍이다.

“저기…. 유나 씨.”

“???”

그녀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전생에 그녀는 나의 여왕이었다.

아니, 모든 국민들의 여왕이었다.

고결하고 순결하여 감히 곁에 가까이 가기도 벅찬 그런 여왕.

“이런 말 하면 미친 놈 같겠지만….”

김유나가 동그란 눈으로 말을 하는 나를 바라봤다.

뭔 개소린지 몰라도 빨리 읊어보라는 눈빛이랄까.

“오빠, 한 번 믿어볼래?”

“네? 뭐, 뭘요?”

***

‘이 남자…. 뭐야?’

김유나는 도움의 손길을 건넨 남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다른 선수라면 이 시간 이 곳은 출입 금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피겨 스케이팅 후배들도 이 시간에는 아이스링크장을 비워줬다.

그런데 오늘 처음 입촌했다는 남자가 이곳에 나타났다.

부상으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 띄게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국가대표라는 말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도 국가대표에게만 지급되는 복장이었다.

이름은 장태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 국가대표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축을 받는 중에 남자 키가 꽤 크다는 걸 깨달았다.

부상당한 고통 속에서도 쑥스러웠다.

지금껏 남자라는 생명체는 가족과 코치 말고는 가까이 해 본 적이 없던 김유나였다.

엄마가 항상 남자 조심하라고 교육했다.

뜻을 이루기 전에 연애를 하면 기가 분산되고 목표의식이 꺾인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갑자기 오빠 한 번 믿어보라고 말했다.

“이상한 소리 같겠지만 유나 상태가 지금 심각해. 발목은 심하게 삐었고 허리까지 충격이 가면서 내근육이 상했어. 응급조치 못하면…. 올림픽에 못 나가.”

오빠 어쩌고 하더니 바로 하대하는 장태산.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다 해도 남자가 치료할 부상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김유나도 알았다.

“괘… 괜찮….”

“오빠가 안 괜찮아. 네 팬들이 지금 난리다.”

“네?”

이상한 소리를 뱉는 장태산.

아이스링크장에는 지금 단 두 사람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려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미친 놈?’

김유나는 경계심이 바짝 일었다.

“미친 놈 아니니까. 걱정 마.”

“!!!”

독심술이라도 배운 듯 김유나 마음을 알아채는 장태산.

“침을 놓을 거야. 그러면 한결 편해질 건데…. 치료 받을래?”

“침요? 여기서요?”

김유나는 믿지 못할 말을 뱉는 남자에게 다시 물었다.

“응. 여기서. 지금.”

“침은….”

“오빠. 한국대 법대생이야. 어려서 기이한 스승님을 만나 침술을 배웠다.”

“한국대요? ……아!”

김유나는 그 순간 생각이 났다.

여자 기숙사에도 소문이 났었다.

한국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 스키 국가 대표가 됐다는 얘기였다.

동계 체전에서 얼굴을 봤는데 몸매는 모델에 얼굴은 손준기보다 더 잘생겼다고 했다.

“유나야. 진짜 오빠 한 번 믿어 볼래?”

재차 물어보는 장태산.

김유나는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어릴 적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김유나.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김유나.

천천히 고개를….

***

툭! 

“윽!”

“조금만 참아. 붓기가 심해.”

나도 미친놈이지만 김유나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언제 봤다고 순순히 치료를 허락하는 김유나.

아공간에서 침통을 꺼냈다.

이런 때를 대비해 침을 저장해 놨다.

특별히 손으로 직접 침을 제조하는, 마지막 남은 침구 장인에게서 전통 침을 구입했다.

김유나의 발에서 스케이트를 벗겨냈다.

왼쪽 발이 퉁퉁 부어 잘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스케이트를 벗겨내고 드러난 김유나의 발.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아름다운 몸을 가꾸고 싶은 게 여자의 본능일 텐데 그녀의 발은 심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스케이팅을 해서 그런지 발가락들이 기형적으로 휘어 자랐다.

상처가 그 위를 덮어 딱딱한 굳은살도 많았다.

부끄러운 듯 유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아름답고 고귀한 발에 침을 꽂았다.

하지만 이걸로 치료가 끝날 상태가 아니었다.

내공을 사용해 그녀의 발과 발목, 무릎과 허리를 주물러야만 했다.

난감한 상황.

김유나에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 어의는 무엇을 망설이는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준엄한 목소리.

상황이 상황인지라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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