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
회귀의 전설
333장. 화끈한 파티 (1)
“정말인가요? 그가 이탈리아에 왔다고요?”
“네……. 정보원들이 확인했습니다.”
“아…….”
비비안은 에두아르의 보고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언제나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는 다니엘 장.
그와 새언니 클라라와의 사이에 얽힌 사연을 몰랐었다.
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그를 홍콩에 초대했다가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다.
프랑스로 돌아와서야 듣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에 비비안은 몇 달을 슬퍼하며 지냈다.
보고 싶다는 마음도 죄가 됐다.
살다보면 남녀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하필 다니엘의 이별 상대가 새언니였다.
그리고 다른 집안과 달리 목숨도 쉬이 여기는 집단의 자식들이었다.
비비안은 감히 다니엘에게 다시 연락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끝내 연락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기사단장인 아버지도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아사신의 위기에서 목숨을 구해줬기에 더 이상 다니엘을 추궁하지 않았다.
긴긴 시간을 그리움으로 보내며 버텼던 비비안.
에두아르를 통해 그의 소식을 간간이 들어 왔다.
“아가씨……. 안 됩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클라라 님과 다니엘의 인연은 루이스 님께도 보고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에두아르가 선수를 쳤다.
그도 다니엘에게 호감이 있었다.
아사신을 그렇게 멋지게 처리하는 남자는 세상에 없었다.
그렇기에 홍콩에서도 신원보증을 해줬던 것이다.
“에두아르……. 나 딱 한 번만 보고 싶어요. 아직 제대로 인사를 못했어요. 다니엘이 오해할 수도 있잖아요. 그냥…… 인사만 하고 돌아오고 싶어요. 가깝잖아요. 에두아르도 같이 가요.”
비비안은 푸른 눈동자에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이탈리아라면 그렇게 멀지 않았다.
아사신의 도발이 잠잠해진 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위험은 에두아르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
‘기분이……. 안 좋은데.’
다니엘과 마주치면 꼭 큰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도 생각만으로 기분이 쌔했다.
놈은 항상 폭탄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운명 같았다.
“아가씨…….”
“에두아르. 나 이러다 죽을 것 같아요.”
홍콩에서 돌아온 이후 빛을 잃어가고 있던 비비안.
그녀의 탄력 있던 볼살은 꺼지고 눈가에는 주름이 잡혔다.
식사도 거르는 날이 많아 더없이 수척해졌다.
“코린 경에서 허락을 받아 놓겠습니다.”
“정말요? 꺄아아아!”
오랜만에 비비안이 방방 뛰며 행복해했다.
“준비를 끝낼 때까지 식사를 하십시오. 그런 모습을 다니엘에게 보여주실 생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렇죠?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요! 안나 어딨어요? 나 배가 고파요! 빨리! 안나를 불러줘요!”
식단을 책임지는 안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비비안.
빠르게 밖으로 사라졌다.
“후우.”
에두아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자신도 저렇게 사랑에 웃고 울었던 때가 있었다.
지나고 나면 하룻밤 꿈같을 시절.
그 뜨거운 용암에서 허우적거리는 비비안이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부러웠다.
‘믿을 만한 애들을 추려야겠군.’
프랑스가 아니었지만 에두아르는 총기 소지가 가능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국가 모두에서 총기 사용이 허가된 기사단 소속의 특급 전사가 바로 에두아르였다.
***
“카리나~ 어디 있어~ 내가 왔어~.”
뭐지?
성문 앞에 빨간 슈퍼카가 멈췄다.
경호원들로 보이는 자들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유유히 모습을 보인 여성.
카리나의 손님인 듯 거침없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너희들은 안 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조직원들이 그녀 뒤를 따라오려던 경호원들을 성문 앞에서 막았다.
“무슨 소리야~ 너희들에게 우리 아가씨 경호를 맡기라고?”
“우리도 못 들어가. 그러니까 멈춰. 좋은 말로 할 때~.”
“고지식한 시칠리아 놈들 같으니라고!”
“뭐라고!”
“다들 조용히 있어. 우리 손님으로 온 거 몰라?”
“넵! 아가씨!”
세상에 무슨 센 아가씨들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내 언어 능력에 자동 번역되는 아가씨는 존귀한 집안의 따님을 의미했다.
“어? 당신 누구세요?”
카리나보다 더 쎈 누나가 나타났다.
그러나 표정은 화사하고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미모는… 쩔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갈색 생머리는 자연스러운 웨이브로 흘러내렸다.
카리나와 달리 뭔가 육감적이고 섹시했다.
붉은 입술에 맺힌 미소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엄마가 누구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카리나도 한 미모 하더니 친구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옛 말에 하루를 놀더라도 물 좋은 곳에서 놀라는 격언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다니엘 장이라고 합니다.”
카리나와 달리 경어를 사용해 나도 정중히 답했다.
이탈리아에 수련하러 왔을 뿐인데 예기치 않게 사건에 엮였다.
“베르타 스코티예요.”
여우털이 달린 패딩을 입고 있던 여인은 자연스럽게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목선이 참 좋다.
키도 카리나보다 살짝 더 컸다.
엄마가 최소 모델각이다.
그런데 스코티?
“헛!”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이거 모임 장소를 잘 못 골랐다.
스코티라는 성은 이탈리아에서 루치아노만큼 조심해야 할 성 중에 하나였다.
“혹시 아버님이……. 카를로?”
“맞아요. 카를로 스코티가 우리 파파예요.”
파파라고 서슴없이 말하며 활짝 웃는 베르타.
젠장, 얘도 아빠가 마피아 보스다.
미녀들만 상대한다는 마피아 보스들 딸답게 유전자가 엄청났다.
마피아 카모라.
나폴리와 캄파냐 지방을 주 활동지역으로 삼았다.
다른 조직과 비슷하게 마약, 인신매매, 모조품, 불법 쓰레기 처리 같은 악법한 짓들로 먹고 살았다.
이탈리아 마피아들 중에 가장 사치가 심하고 겉멋이 심한 족속들로 알려졌다.
조직원들 상당수가 호화 주택과 명품, 스포츠카에 환장했다.
성격도 화끈하기 그지없어 1980년대 조직이 분열될 당시 총질로 수천 명이 죽었다.
인생을 하룻밤만 산다는 카모라 마피아.
정통성은 뒤떨어졌지만 화끈함은 뒤처지지 않았다.
카리나가 주관하는 파티를 한참 잘못 생각했다.
마피아 보스 딸이니 모델들이나 유명인이 참가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 예상을 깨고 첫 등판부터 보스 딸이 입장했다.
“그런데 누구죠? 카리나 남친이예요? 그것도 아니면 결혼 상대자?”
“네?”
베르타가 훅 치고 들어왔다.
베르타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찼다.
“당신 몸매 좋아요~.”
“…….”
잊고 있었다.
대장장이 수련 중이라 상의를 탈의한 채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땀범벅 상체에 닿으며 금방금방 녹았다.
대동한 마피아 조직원들에도 나처럼 몸매가 쫙 빠진 놈들이 없었다.
“베르타…… 관심 꺼.”
그때 카리나가 나타났다.
쌍심지를 킨 채 경계모드를 작동 중이었다.
“뭐야? 진짜 애인이야? 피에트로 아저씨가 허락해줬어? 호오~.”
카리나 아버지를 아저씨라 부르는 두 번째 마피아 두목 딸.
“그게…….”
부정의 말을 뱉으려는 순간.
“그래. 내 애인이야. 그러니까 신경 꺼!”
헐……!
이 폭탄 같은 발언은 뭐지?
세상에 정신 박힌 놈이 있다면 마피아 보스 딸의 애인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대부에서도 보스가 딸에게 잘못한 사위를…….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정말?”
“하니~ 안 추워? 이제 들어가서 옷 입자.”
하, 하니?
수건을 들고 나타난 카리나가 나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아줬다.
닭살이 확 돋았다.
카리나 정신 차려! 난 당신의 꿀벌이 아니야!
그러나 부드러운 카리나 손길에 입과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굳었다.
“와아아……. 진짜 놀랄 일이야. 세상 도도한 카리나가 연애라니…… 그것도 동양인과?”
베르타가 놀라는 중에도 드러난 나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카리나와 달리 좀 놀아본 듯한 베르타였다.
그녀 눈빛이 반짝였다.
카리나와 묘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베르타.
이 누나 뭔가 큰 사건 칠 것 같았다.
“오늘 저녁은 내가 준비할게.”
“응? 요, 요리도 할 줄 알아?”
카리나에게 손바닥에서 놀아날 내가 아니다.
저녁을 준비한다는 말에 카리나가 되레 당황했다.
“기대해도 좋아. 당신을 위해…….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이탈리아산 유기농 올리브도 울고 갈 정도로 혀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수건을 들고 닦아주다 멈춘 채 떨고 있는 카리나의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한 줌 허리.
내 몸에 착 달라붙었다.
놀라는 카리나와 눈을 마주치며 윙크를 건넸다.
새하얀 피부를 붉게 물들이는 카리나.
그녀의 뜨거운 한숨과 달콤한 향기가 후각을 진하게 자극했다.
마피아 보스 딸 치고 생각보다 순진한 반응을 보였다.
“와아……. 벌써 그런 사이야?”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 베르타.
그녀의 흑갈색 눈동자가 알 수 없는 열의로 활활 불타는 게 보였다.
***
“여기가 그 유명한 토스카나 와이너리예요. 다들 보이시죠? 여기 투자하면 돈 됩니다. 앞으로 우리 식탁에 와인 오를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거 사놓으면 10년 뒤에 몇 배는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줄 서세요! 줄요!”
“빨리 빨리 투어 진행해! 우리 내일 스위스로 넘어가야 해!”
“빌어먹을 이태리놈들. 수백 위안을 받고도 달랑 와인 세 잔밖에 안 줘?”
“이거 사버릴까?”
“크크크. 내가 100만 위안 빌려줄게.”
토스카나에서도 한때 유명세를 탔던 대형 와이너리.
그 앞에 몇 대의 버스를 타고 나타난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객기를 부렸다.
“카아악! 퉤. 빌어먹게 춥네. 누구 백주 없어?”
사방에 침을 뱉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독한 중국술이 오갔다.
갑작스럽게 내린 눈과 추위에 신경질적인 욕과 허풍을 뱉어냈다.
그런 중국 단체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이탈리아 와이너리 직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세계 공장질로 돈을 벌더니 중국인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유명 관광지에서 고성을 지르고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는 일이 다반사였다.
뭐라고 제지하면 우르르 단체로 협박하거나 물건까지 때려 부쉈다.
이탈리아에 정착한 차이나타운 중국인들로 인해 치안도 험악해졌다.
마피아와 결합해 중국 조폭들이 활개 쳤다.
“오늘 이곳에 묵을 분들은 방을 배정하겠습니다!”
가이드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말로 해서 들을 민족이 아니라는 걸 중국 가이드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운 좋게 매물로 나온 와이너리를 중계하고 거래가 성사되면 소개비로 수십만 위안을 받기도 했다.
중국인들 비위를 철저하게 잘 맞췄다.
한때는 유명했지만 투자 실패와 경기 위축으로 자금이 부족해진 와이너리는 중국 단체관광객들을 상대로 먹고 살았다.
수백 유로를 호가하는 고급 와인들을 선물로 수십 병씩 구입하는 무식한 구매력에 손을 들었다.
그런 중국 단체 관광객들 사이로 일단의 무리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말수가 적었다.
오늘 이곳 와이너리에 묵기로 한 듯 방을 배정 받았다.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맨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무리.
그 수는 20여 명.
눈 내리는 구릉 정상에 자리한 작은 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