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
회귀의 전설
315장. Dog Fighting! (1)
“오빠가 바로 원하는 대로 마셔 줄게! 오바마!!!”
차앙!
폭탄주가 담긴 유리잔이 맑게 부딪쳤다.
꿀꺽 꿀꺽.
사방에서 시원하게 술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캬아~ 끝내주네~.”
“오바마가 대통령 되니 바로 건배사가 만들어졌네~”
“흐흐. 얘들 폭탄주 기가 막히게 만드네~. 어디서 배웠냐~ 이쁜이들아~.”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더니 어쩜 이렇게 내 맘에 쏙 드냐~ 크크크.”
술을 거하게 한 잔 나눈 네 명의 사내들이 거침없이 옆에 앉은 여성들의 맨살을 더듬었다.
“아잉~ 여기서는~ 안 되용~.”
“오빠……. 힝!”
술시중을 들고 있던 여성들이 앙탈을 부렸다.
섹시함과 요염함이 남자들의 피를 금방 자극했다.
여성들은 타고난 요부처럼 굴었다.
“조 사장. 애들 교육 잘 시켜놨어.”
모임의 주도자인 스포츠 조국 대표 반종오가 옆에 있던 한 여성을 품에 안고 칭찬을 날렸다.
“다 여러 대표님들 덕분입니다! 충성!”
“파라다이스 엔터 우리가 잘 키워줄게~”
“캬아~ 장 피디님이 헛말 하는 남자가 아닌데~ 조 사장 땡잡았어.”
반종오가 분위기를 거들었다.
“다음 주에 인터뷰 스케줄 비워놔. 기자 보내줄게.”
그리고 인심도 썼다.
“아이고!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럼 나도……. 광고 하나줄까?”
아시아스타 항공의 오너가인 금구의 차세대 경영인으로 낙점된 재벌 3세 장세찬이었다.
그도 흐름을 타고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상무님만 믿겠습니다!”
파라다이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조용구의 고개가 테이블에 박힐 정도로 숙여졌다.
항공사 관련 광고를 따면 애들 뜨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계열사 광고라도 얻게 되면 감지덕지였다.
금구는 운송과 타이어, 콘도 사업을 취급하는 중대형 그룹이었다.
10대 그룹에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준 독점적인 항공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런 금구 그룹의 3세인 장세찬은 이른 나이에 상무 직함을 달았다.
곧 계열사 사장으로 영전할 거라는 얘기는 이미 알려진 바였다.
‘오늘 제대로 접대해야 한다!’
조용구는 눈앞의 남자들을 승승장구할 동아줄처럼 바라보며 의지를 다졌다.
아주 어렵게 섭외한 자리였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연예계.
최근 다크호스로 떠오른 M.T.S의 합류로 3강 체제가 됐다.
그 밑에 기획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을 쳤다.
조용구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3년 차 걸그룹이지만 1집 활동밖에 못 한 자사 걸 그룹 애플소녀들을 띄울 기회를 잡았다.
스포츠 조국의 대표인 반종오, 국민방송 KBC의 국장급 대우 피디, 금구 그룹의 후계자가 모였다.
이런 자리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기획사들도 한번 모시고자 혈안이지만 기회는 아무에게나 가는 게 아니다.
오가는 어둠 속의 비즈니스였고 또 다른 세계였다.
이곳에 오기 전 그룹 멤버들에게 몇 번이나 주지시켰다.
무조건 시키는 거 다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3년 동안 뜨지 못한 무명의 멤버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픔이 뭔지 잘 알기에 독해졌다.
평소 없던 애교와 끼도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 앞에 저절로 발산됐다.
그런 소녀들의 몸을 거침없이 만지작거리며 음흉한 손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이들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술기운까지 더해지자 룸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반 대표님 M.T.S 그냥 놔둘 겁니까?”
장광훈 피디가 술을 마시다 말고 M.T.S를 언급했다.
최근 핫 하게 떠오른 연예 기획사다.
중소 기획사를 흡수하면서 무섭게 규모를 키워갔다.
메인 걸 그룹 FOB는 국민 걸그룹으로 우뚝 성장했다.
귀엽고 깜찍한 분위기에서 이번에는 섹시함까지 장착했다.
수많은 열성 남성팬들이 FOB 덕질에 합류했다.
군통령 순위에서 1위가 됐다.
후속으로 준비한 보이 그룹도 반응이 좋았다.
탄탄한 자금력으로 키워낸 가수와 탤런트들이 종횡무진 연예계 전반에서 활약했다.
“나도 FOB 서련 펜인데~”
금구의 장세찬이 관심을 보였다.
센터 미모 담당 서련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가수 탑으로 뽑혔다.
“애들이 고개가 너무 뻣뻣해요~ 인사도 한 번 안 오고 말이야.”
장광훈 피디가 서운함을 토했다.
“그 정돕니까?”
장세찬이 의외라는 듯 놀라 물었다.
장광훈 피디를 통하지 않고는 KBC에서 가수나 연예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의 집안 작은 아버지가 다선의 여당 의원이었다.
그 권력에 힘입어 KBC 사장도 눈치를 본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보이지 않는 손이 큰 장광훈 피디였다.
“거기 대표 황연태라는 놈이 재수가 없어요. 예전에 찍어서 버렸는데 아직 이 바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참 독한 새낍니다.”
“아! 황연태!”
장세찬도 알고 있는 과거 가수출신 인물이었다.
한때 보이스의 신성 마왕이라 불렸던 엄청나게 인기몰이를 했던 남자 가수였다.
“반 대표님에게 찍혀서 한 방에 갔죠~. 병신같이~. 흐흐.”
장 피디가 비웃음을 흘렸다.
“왜 찍혔습니까?”
“자식이 겁도 없이 반 대표님 말을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본보기로 보냈습니다~.”
“그랬어요? 전 전혀 몰랐네~.”
“내가 우리 방송국 말고도 다른 쪽도 손을 썼습니다. 지가 인기가 있어 봤자 공중파에 얼굴을 보여야 유지가 되는 건데……. 몇 달 만에 찌그러졌죠.”
과거 이야기를 꺼내며 장광훈이 반종오를 바라봤다.
그 둘에게 한 번 찍히면 살아남는 연예계 인사들이 없었다.
대형 언론사와 방송국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손을 봐놨어요~ 흐흐흐.”
반종오가 술잔을 들고 음흉하게 웃었다.
마치 탐나는 친구의 장난감을 부셔버리는 고약한 아이 같은 표정이다.
“손요?”
장광훈을 비롯해 방 안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반종오와 남자들은 옆에 있는 여성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입에 올리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 그녀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빵 하고 터졌겠네요~”
뭔가 건수를 잡은 듯 짜릿한 표정을 짓는 반종오였다.
그는 미처 몰랐다.
지금 그가 건든 게 사자의 코털이라는 사실을.
***
「한국 대표 여자 아이돌 그룹인 FXX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멤버인 S가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청순한 미모와 탁월한 가창력으로 수많은 남성 팬들을 거느린 S는 지금껏 연애 경험이 없다고 방송에서 수없이 밝혀왔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S는 같은 소속사 이사인 J와 연인 관계로 취재 결과 확인되었습니다. 추적한 기자와 제보에 의하면 이미 고등학교 시절 둘은 고향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뜨겁게 사귀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소속 기획사 관계자는 전혀 사실 무근이며 법적 대응을…….」
- 이거 FOB 서련 아닌가요?
- 서련 그렇게 안 봤는데 일찍도 까졌다. 고삐리 시절에 이사랑 눈이 맞아? 그럼 지금껏 보였던 모습이 다 가식이었어?
- 우리 서련이가 그럴 리가 없어……. 아오!!!
- 고등학교 시절에 일진이었다고 하던데요?
- 그 거짓말 진실입니까?
- 담배도 피고 아주 잘나갔다고 함.
- 닥치라! 우리 서련이 그런 아가 아니다!
- 와아……. 완전 개날라리였네…….
- 대형 신문사인 스포츠 조국 일보라면 믿을 만하지~.
- 그런데 도대체 이사라는 작자는 누구야? 고삐리를 그러면 됨?
- 알아봤는데 M.T.S에 젊은 이사가 없다던데요?
“이게 다 뭡니까?”
아침이 되어 찾아온 M.T.S 이사실.
황연태 대표는 조용히 어제 저녁 긴급 속보로 뜬 스포츠 조국 일보 인터넷판 기사를 보여줬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어제 스포츠 조국 일보 연예부 기자가 특종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 달린 악플이 수만 개가 넘어갔습니다.”
황연태 대표는 도와 달라 말하던 어제와 달리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속이 시원한 표정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여러 차례 당했던 모양이었다.
“조짐이 있었습니까?”
생각보다 내 입장에서도 그렇게까지 놀랍지 않았다.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팽창하는 시절이었다.
배고픈 늑대들이 먹을 걸 찾아 사회 곳곳을 들쑤셨다.
한 번 굴러간 민주주의 수레바퀴 덕분에 과거처럼 무자비하게 뜯어 먹지 못할 뿐이었다.
그 핵심에 서 있는 언론사가 바로 조국 일보였다.
현 대통령 최병박도 조국 일보 사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할 정도였다.
친일로 지금껏 살아남아 정권과 결탁하여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대한민국 대표 적폐 언론사.
깨어 있는 지식인들 중에 반 씨 일가의 치졸함과 저열함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앞으로 9년 동안 조국 일보는 무소불위 승승장구한다.
최병박 중권 시절인 2011년 11월에 TV 조국이라는 종합편성채널을 열어 제2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누가 봐도 특혜일 수밖에 없었다.
정권 나팔수가 되어 깨어 있는 지식층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선다.
반 씨 일가의 더러운 욕망은 연예계로도 뻗쳤다.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과 지망생들이 접대 자리에 불려 나간다.
앞으로 몇 달 뒤에 희생양이 나온다.
2018년 정권이 바뀐 뒤 재조사가 진행되게 되는 엄청난 사건.
성접대를 요구 받던 여성 연예인이 자살을 한다.
그 핵심 배후에 조국 일보와 사회 유명인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너무나 당연시 되었던 연예인들의 성접대가 그 이후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정권의 개를 위해 검찰은 수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처리 한다.
소속사 대표만 잡아 들였고 반 씨 일가와 관련자들은 모조리 빠져 나왔다.
미래에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조국 일보는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사장실 6층에서 TF를 구성한다.
주필과 법무팀장, 편집장, 정치권과 가까운 고문들이 모여 수시로 대책회의를 가졌던 것이다.
반 씨 가문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권력과 힘을 동원해 언론들에 재갈을 물렸다.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도 조국 일보가 무서워 대충 수사하고 서둘러 판결하고 말았다.
정치, 경제를 위해 빨아주며 성장한 조국 일보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국운을 팔아먹고 똥을 뿌렸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언론이 기본적으로 품어야 할 양심을 팔아치운 것이다.
그야말로 희대의 쓰레기 집단이었다.
그런 조국 일보가 회귀한 나와 제대로 엮였다.
내가 죽었다 살아난 무서운 인간이라는 걸 몰랐다.
“얼마 전부터 조국 일보 부장급 연예부 기자가 자리 한 번 만들어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자리라 함은…….”
“예상하신 대로 성접대 자리입니다.”
“…….”
“아주 상습범들입니다. 조국 일보 사장이나 언론 관계자들은 여자 연예인들과 지망생들을 접대부로 취급합니다. 지금껏 그 자식들에 의해 당한 연예인들 수가 수백 명이 넘습니다!”
황연태 대표 눈동자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조국 일보만 나섰습니까?”
“……KBC 피디도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면서요?”
“애들 인사 안 시킬 거냐고…….”
이놈의 나라 진짜 개판이다.
쥐꼬리만 한 권력을 쥐고 나면 갑질 하지 못해 병이 났다.
언론이나 재벌이나 하나같이 마찬가지였다.
죽을 때 똑같이 불에 태워 화장될 인간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무식하게 쾌락을 탐했다.
죽으면 지옥사자들이 첫 번째로 끌고 간다는 걸 몰랐다.
난 요즘 들어 똑똑히 보고 배웠다.
죽고 난 뒤 펼쳐지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칙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분명 살아서 선행하고 인내하며 살았던 자들이 유명한 인물들보다 더 높은 신이 됐다.
인간계에서 이름 날렸던 이들 중에 신이 된 자들도 있었지만 포인트가 없어 빌빌거리며 연명하고 있었다.
차라리 포인트를 구걸하고 있다는 게 맞았다.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네?”
갑자기 튀어나온 앞뒤 없는 말에 황 대표가 놀라며 되물었다.
“그 피디 이름이 뭡니까?”
“장광훈입니다.”
“아! 그 장광훈!”
“아십니까?”
“알죠. 잘 압니다. 완전 개새끼죠.”
앞으로 몇 년 뒤에 KBC 사장 후보에까지 올라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스캔들이 뻥하고 터져 낙마한다.
미투 운동으로 과거 개쓰레기 같은 일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어느 날 소리도 없어 사라졌다.
유명 감독과 주연 배우들을 한 방에서 같이 성폭행했던 일이 밝혀진다.
공영방송계의 암 덩어리였다.
“이게 협박 내용이었습니까?”
인터넷 뉴스를 보며 물었다.
“네……. 접대 자리 잡지 못하면 FOB를 박살내겠다는 협박을 들었습니다.”
“벌떼처럼 달려드네요~.”
다른 언론에서 후속 기사를 쏟아냈다.
서련의 일진설뿐만 아니라 타 멤버와 초등학교 시절의 싸움까지 거론됐다.
이미 충분히 자기들 끼로 정보가 공유된 듯한 기사들이었다.
목표는 말 안 듣는 M.T.S.
서련이와 나의 관계를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기사화했지만 내용은 많이 틀렸다.
기레기들의 치졸함과 비겁함, 그리고 무서움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더 9년 동안은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놈들이 사건을 치고 말았다.
“대책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분간 언론이 신나게 물어뜯을 겁니다. 애들 광고도 끊길 거고……. 행사 요청도 없겠죠. 과거 저도 딱 이렇게 당했으니까요.”
“정말요?”
“반종오 그 쓰레기. 제가 노래 잘 부른다고 가족 파티에 와 행사비 없이 사회보고 노래하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거절했더니……. 그 사건 있고 한 달 만에 가요계에서 퇴출 됐습니다.”
“그런 일이…….”
“세월이 흘러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정말 악마 같은 새끼들입니다. 자신들만 귀족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개, 돼지 취급합니다.”
민중은 개, 돼지라고 말했던 유명한 고위 공무원의 망발이 떠올랐다.
상류 사회층이 본인들 이외의 사람들을 인식하는 기준이 개, 돼지인 셈이었다.
“제가 처리하죠.”
“대표님이요? 어떻게 말입니까?”
“애들 모든 행사 취소하고 언론 차단하세요. 신곡과 안무 드리겠습니다. 연습하고 있으면 됩니다. 기간은 한 달……. 그 안에 모두 정리 될 겁니다.”
머리에 떠오른 계획들.
잡것들 상대할 때는 그들의 수법대로 맞불을 놓는 게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개싸움에 매너는 있을 수 없는 법.
오직 Dog Fighting! 정신만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