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회귀의 전설
313장. 신들의 전쟁 (1)
“몇 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금 흐름이 예사롭지 않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심각한가요?”
“우리가 빨아야 할 꿀이 생각보다 많이 새는 것 같습니다.”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환율과 선물에서 대략 3조 달러 정도입니다.”
“흐음……. 누군가요? 그 정도 규모라면 기사단은 아니고……. 일본은 간이 작아 엄두도 못 낼 거고……. 리처드 아저씨의 자금인가요?”
“상원의원님의 자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천지회인가요?”
“의심스러운 계좌 주인의 IP를 추적해 보니 홍콩 쪽입니다.”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고 헛소리 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힘자랑하는 건가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로버트 라이언 쪽은 잘 감시하고 있나요?”
“투자 기법이 종잡을 수 없지만 합법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총 수익이 얼마나 되나요?”
“7000억 달러 정도를 벌어들였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벌어간다는 중국 속담이 떠오르는군요.”
“예상치 못한 변수였습니다.”
지중해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야파의 고층 건물.
주변에서 단연 눈에 띌 정도로 가장 높았다.
떠오르는 지중해의 달이 바다를 환하게 비추었다.
머리에 기도 숄 탈릿을 쓰고 있는 한 여인이 창밖을 바라보며 뒤에 시립한 남자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이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탈무드의 말처럼 우리도 로버트 라이언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조금 더 감시를 철저히 하겠습니다.”
“친구로 만드세요.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투자의 천재입니다.”
“생각보다 마음의 벽이 견고합니다.”
“다니엘 장이라는 한국인을 가까이 하는 걸 보면 아닌 것 같던데. 그가 능력이 있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 친구로 만들겠습니다.”
“일을 끝까지 완결 짓지 못해도 좋습니다. 다만 일을 하다 말고 전부 포기할 생각만은 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그 일을 맡긴 사람은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답니다.”
여인의 목소리는 나긋나긋 했지만 내용은 뼈에 박혔다.
“바트의 명을 충심으로 이행하겠나이다!”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존경과 경외를 표하는 남자.
야훼의 딸이라고 불리는, 야훼 바트의 명은 지엄했다.
“야훼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선택받은 야훼의 자식들이 피땀을 흘리며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 땅을 찾기 위해 길고 긴 세월 동안 방황했던 우리 선조들의 한과 참회를 잊지 마세요. 가졌다 생각하는 순간 허명처럼 사라지는 게 야훼께서 내린 경고입니다. 목숨을 다해 야훼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의무입니다.”
“야훼와 야훼의 딸이신 바트 님의 명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기도할 시간입니다. 다음 보고는 내일 듣겠습니다.”
“야훼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남자가 조용히 물러났다.
여인은 차일드 가문의 적통 후계자였으나 여인의 몸이었다.
남성 승계를 두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차일드가문은 분열 됐다.
여인을 따르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뉘었다.
세상 부의 반절을 소유했다는 차일드 가문이었기에 후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계획적이었으나 계획적이지 않게 되어버린 2008년 금융 위기가 그 증거였다.
금융위기는 계획적이었다.
무리하게 비신용자들에게 집을 사도록 대출을 해줬다.
다른 집단들의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거품을 조장했다.
세계 곳곳에 달러가 넘쳤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집값이 치솟았다.
1998년 아시아 위기처럼 그들의 살찐 배를 가를 참이었다.
또 다른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미국발 금융위기를 진행시켰다.
완벽하게 통제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미국 은행들이 무너져야만 했다.
어차피 차일드 가문 소유의 또 다른 은행들이 흡수해서 대형 은행으로 거듭날 계획이었다.
모든 일이 예상대로 흘렀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차일드 가문의 몇 개 지부와 방계 가문이 반기를 들었다.
과거와 달리 세력이 커진 유럽과 일본, 중국, 석유 자금이 발 빠르게 대처했다.
방계의 수장인 리처드 요한슨 상원의원이 연준 의장을 이용했다.
구제금융이 생각보다 빠르게 통과됐다.
그 와중에 눈치 빠른 놈들이 차일드 가의 밀어주기에 끼어들어 넘치는 꿀을 빨아 마셨다.
정체 모를 자금이 흘러들어 제법 크게 털어갔다.
비밀스럽고 정교하게 추적했지만 흔적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의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오직……. 야훼만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지혜의 길로 인도하소서…….”
눈을 감고 기도하는 여자.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면 속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진한 전쟁.
그건 신들의 전쟁이었다.
***
“주몽이다.”
맞다 주몽!
이런 걸로 사기 칠 신 같지 않았다.
세상에 동명성왕이라 불리는 고구려 시조가 지금 낚시꾼 행색을 하고 날 불렀다.
물고기를 잡는 폼이지만 카르마 포인트 허접한 하급 신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은은히 풍겨나는 포인트 냄새.
최소 솔로몬 왕급 정도는 돼 보였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성왕이라면 주몽은 대 고구려의 첫 주인이었다.
세계적 위명은 달랐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런 그가 날 보고 웃었다.
신선 할배가 됐지만 굵은 콧대와 굵은 송충이 눈썹은 연예인…….
“손일국?”
세상에 대장금 누님도 그렇더니 주몽도 잘 나가는 연예인 얼굴을 그대로 도용해 뒤집어썼다.
“괜찮냐? 작년에 이 녀석이 내 이름으로 주연을 땄더구나.”
얼굴을 차용하고도 본인 얼굴처럼 태연한 주몽 신선.
신선들 뻔뻔한 것 한두 번 본 게 아니니 대수롭지 않은 척 넘어 갔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호출한 이유는 궁금했다.
내가 원한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포인트가 아쉬운 양반도 아닌 주몽.
“앉아라. 한강 자라가 맛나다.”
“자, 자라요? 식용으로……. 그러면 안 될 텐데요?”
“왜?”
“그 자라가 부여 땅을 탈출할 때 엄리수에서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은혜도 모르고 자라를 잡아 드시면…….”
“자라가 그렇게 몸에 좋더라~.”
“…….”
주몽, 이 신선 할배도 그다지 정의와 근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만났던 신들 중에 선관도사 빼고는 다 거기서 거기인 인성을 가졌다.
고개를 돌렸다.
“한강이……. 정말 아름다웠군요.”
2008년 내가 살았던 때나 2020년과는 확연히 다른 한강의 풍경.
강가에는 능수버들이 하늘거렸고 수초와 금빛 모래톱이 도도한 강물을 감싸고 있었다.
푸르게 흘러가는 물결 위로 태양빛이 반짝였다.
깊지도 그렇다고 얕지도 않았다.
길게 늘어진 풍염한 민족의 젖줄.
가만히 한강을 보고 있자니 남모를 감회가 새로웠다.
어릴 적 부모님과 같이 놀았던 장주시 상류처럼 참 깨끗했다.
오염원 하나 없는 민족의 대동맥이 눈앞에서 유유히 흘렀다.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가…….”
주몽 신선 할배가 날 부른 이유를 들어야 했다.
궁술이 훌륭한 분이지만 그 정도는 지금 내 실력으로도 커버 가능했다.
“이곳에서 내 후손들이 피를 흘렸다. 백제와 신라 녀석들과 신나게 치고받았다.”
“박 터지게들 싸웠죠.”
“땅덩어리가 작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 클클.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니까.”
웃음을 흘리는 주몽 신선.
한강 주변으로 산성이 보이고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며 화살을 날리고, 창을 들고 돌격하는 삼국 병사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주몽 신선 말대로 좁은 땅에서 쌈박질하며 삼국은 발전했고 나중에는 통일이 됐다.
싸우면서 한 국가가 됐다.
“그러다……. 뱀 새끼들과 황제라 불렸던 공손헌원의 자식들이 이곳까지 침범했다. 참……. 심란하더구나. 이 잡것들이 들어와 분탕질 하는데 신이라는 놈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비롯해 치욕스런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까지.
모든 환란이 외세의 침범이 있었다.
“왜요?”
나도 궁금했었다.
“신들은 세속의 길을 갈 수가 없다.”
“민족의 조상이라면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있지 않았나요? 결국 자신들의 후손들 아닙니까.”
답답했던 만큼 따지듯 물었다.
“큰 길은 모든 작은 길을 품는 법이다. 강물이 거칠다 하더라도 바다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리는 법이다. 신들은 작은 길을 헛길이라고 부른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우주적 관점인 큰 신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인류는 같은 처지의 중생들일 뿐이라는 의미다.
“머리로는 이해합니다만 가슴으로는 인정하기 싫습니다.”
“나도 그렇다……. 끊었다 싶었지만 이 땅을 보면 한없이 괴롭구나. 내 후손들이 눈물로 통곡하는 모습은……. 나조차도 보기가 괴로워.”
주몽 할배의 모습에 괜히 죄스러워졌다.
낚시질 하는 신선이 한량처럼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한강에서 후손들의 세상살이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관도사도 그러했다.
신선이었지만 후손을 살려준 나에게 보답하기 위해 윤회의 굴레에 다시 뛰어 들었다.
“죄송합니다.”
“됐다……. 다 조상들과 이 민족 신들의 힘이 부족해서 그런 걸 누구를 탓하겠느냐. 치우께서 귀신을 부리는 그 잡놈만 때려 부셨어도 민족의 운명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아……. 나의 아버지께서 눈을 감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더 행복했을 것이다.”
“!!!”
생각해 보니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였다.
하백의 딸을 꼬드겨 낳은 분이 주몽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내 외할아버지인 하백은 황하의 수호신이었다. 그 말은 황제의 자식들을 더 아끼신다는 말이지.”
고뇌에 찬 주몽의 음성이 강물을 타고 흘렀다.
“신들의 족보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네…….”
“그렇다고 너희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단다.”
“???”
“네가 그 증거니라.”
“아!”
나를 회귀시켰던 꿈속 할배가 퍼뜩 생각났다.
평범한 신분은 아니었던 게 확실했다.
다른 신들도 감히 그 할배 이름을 언급하지 못했다.
“그 분은 너희들을 지극히 사랑하신다……. 이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입에도 강인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분과 지리산 산왕모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다시 등장한 꿈속 할배와 지리산 산왕모의 얘기.
아직도 더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다.
“쥐를 잡지 않는다고 신들을 원망하였더냐?”
“네? 네에…….”
오대강을 파서 나라를 절단 내려는 사기꾼을 지옥으로 데려가지 않는다고 신들을 탓했었다.
“인간과 신들의 계산법은 다르다. 100년도 꼬박 살기 벅찬 인간들은 인생이 영원한 줄 착각하며 죄를 짓고 살지. 그러나 그 뒤에 찾아올 암흑의 고통은 실로 엄청나다. 그래서 현자들은 살아서 자신을 단속하고 나아가 가족과 이웃을 깨우치는 데 헌신한단다.”
“그래도 답답합니다. 누가 봐도 불의한 자들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힘없는 백성들을 탄압하고 총칼로 죽였습니다. 그러고도 뻔뻔하게 전 재산이 30만원밖에 없다고 헛소리 하며 거만하게 삽니다! 사기로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일본에서 태어난 친일파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 땅의 신들이 진정 살아 계시다면……. 당장 저들에게 벼락을 때려야 합니다!”
억눌렀던 분노가 고개를 들었다.
누가 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인간을 추종하는 자들에 대한 복합적인 분노였다.
신들한테 죄가 없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풀길 없는 이 화를 대신 해결해 주기를 원했다.
“과거에는 벼락으로 그리 처리하기도 했느니라……. 하지만 그런 자가 죽으면 똑같은 인간들이 또 다시 그 짓을 하게 되더구나. 너도 알고 않느냐. 인간의 욕망을…….”
“아!”
인간의 욕망을 우습게 봤다.
한국 부동산 30퍼센트를 단지 상위 1퍼센트의 인간이 점유하고 굴리는 세상이다.
나머지 99퍼센트가 70퍼센트의 땅을 갖기 위해 박 터지게 싸우며 그 거대 바퀴 아래서 쓰러져 간다.
그래도 누가 나서서 1퍼센트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자신들도 그 1퍼센트가 되겠다는 욕망.
그 욕망을 희망으로 포장해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었다.
가장 밑바닥 층이 상위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타락한 보수에게 표를 주는 이유와 같았다.
깨어나지 못하고 세뇌 당한 어리석은 백성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신을 원망할 자력도 원망할 수도 없는 명백한 이유였다.
“이제 알겠느냐?”
더없이 자애로운 미소로 빙그레 웃는 주몽 신선.
내 생각을 읽어냈다.
오늘은 나를 낚기 위해 강가에 나온 것 같았다.
“악한 자를 왕의로 선택한 자들의 욕심을 우습게보지 말라. 그들 또한 내 후손들이다……. 신들은 단지 인간들이 원하는 것들을 들어 줄 뿐이다.”
그렇다면 신을 탓하기보다 같이 숨 쉬며 살고 있는 동시대 인간들을 원망해야 정상이었다.
부동산이 폭등하면 떼돈 번다는 생각에 빠진 이들이 최병박을 밀었다.
누군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돈을 잃어야 한다.
그 제로섬 게임에서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 찍어 올린 자가 왕이 됐다.
하긴 그 후에도 각성하지 못하고 닭을 왕으로 뽑는 무지한 선택을 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배울 만큼 배웠으나 깨우치지 못한 자들의 욕망이 그래서 더 무서운 법이었다.
“그래도 희망을 품거라……. 어둠이 짙으면 새벽은 더 밝게 오는 법이다. 넌 보고 왔지 않느냐……. 촛불로 깨어날 내 자식들의 똑똑함을…….”
그랬다.
감동에 벅찼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 연로한 어른들까지 촛불을 들었었다.
세뇌당한 닭과 악의 적폐들을 몰아내기 위해 손에 촛불을 들고 또 들었던 그 장관들.
“이제는 답이 됐느냐?”
“네, 어르신…….”
주몽이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들들아……. 힘 내거라. 너희들로 인해 다시 밝아 올 이 땅의 100년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황제와 뱀의 자식들을 추종하는, 영혼이 더럽게 오염된 자들을 몰아내거라……. 그들은 한민족의 자식들이 아니다. 이 땅은 그들이 죽어서도 품지 않을 것이다. 영혼은 어둠만 가득한 방에 갇힐 것이며 수천 년을 통곡하다 지치고 쓰러질 때가 돼서야 용서를 받을 것이다. 신들의 계산은 정확한 법! 절대 의심하지 말고 네 길을 가거라……. 너희들을…… 이 땅의 신들이 뒤에서 응원할 것이다. 사랑하는 수고하는 모든 내 아들들아……. 너희들의 수고로 네 아이들은 풍요로운 땅에서 살아갈 것이니라……. 결코 흔들리지 말고 앞만 보고 걷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