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
회귀의 전설
312장. 하백의 외손자 (1)
“지금껏 배웠던 건축의 기본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서양 건축은 주체와 대상, 물질과 정신,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며 접근합니다. 그에 반해 동양, 특히 한국 건축은 현상과 실제는 결국 하나라는 일원론적 관점에서 시작됩니다. 사상의 근본 없는 일본 건축 기술자들이 판쳤던 일제 식민 시대를 걸쳐 서양 사상과 기술이 접목되어 예(禮)가 없는 기형학적 건축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된 겁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아파트입니다. 편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인 특유의 인정과 예의를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정신의 회복이 이번 장주시 연구 단지에 투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도대체 정체가 뭐야?’
마치 노 교수의 강의 같은 소리를 뱉는 발주처 직원을 지켜보며, 윤소진을 비롯한 설계팀 직원들 모두 상황 돌아가는 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건설 회사 대표가 발주처 직원 앞에 고개를 숙여 죄송함을 표했다.
일개 발주처 직원의 경고대로 1시간 뒤 바로 그룹 본사 감사팀이 파견되어 사무실을 싹 뒤졌다.
그리고 이틀 뒤 팀장이 뇌물 및 횡령, 근무태만으로 모가지가 잘렸다.
하청업체들 후려쳐서 받았던 뇌물이 10억대에 육박했다는 소문에 직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평소 밥이나 커피 한 잔 쏘지 않았던 팀장이었다.
직원들이 비품 커피를 하루에 몇 잔씩 마시면, 아끼라고 잔소리를 하던 짠돌이였다.
쪼잔했던 팀장의 간이 그렇게 큰 줄 모두 몰랐다.
연관되어 있던 상무와 대표까지 자리에서 쫓겨났다.
TS 그룹 격동기에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살아남았던 건설사 대표였다.
하지만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인물들에 대해 묵인 방조했던 일 때문에 함께 잘렸다.
구태의연하게 일 처리하던 임원들 상당수도 동시다발적으로 정리됐다.
2차 폭풍이 휘몰아쳤다.
고영대 인맥으로 구성되었던 건설사 대표와 임원들 대부분이 옷을 벗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뇌물을 받아 챙기며 회사에 끼친 손해가 수 백 억이 넘었다.
한 마디로 잡고 올라설 라인이 모두 사라졌다.
직원들이 동요했다.
하지만 곧장 대표 사임 하루 만에 임시 대표 이사가 파견되었다.
며칠 만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회사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대웅 건설사 출신 인재들이 들어와 조직을 점령했다.
윤소진은 과장으로 승진했다.
적체되었던 인사가 능력과 실력, 인성에 맞게 승진하거나 좌천됐다.
누가 봐도 공정했다.
그런 사건을 주도했던 남자가 바로 눈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서양에서 건축은 아름다움과 웅장함, 권위를 표상하는 예술적 오브제로 인식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한국식 건축은 건물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앞마당, 외부공간까지 모두 조화를 이룬 전체의 질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서양 건축이 나무를 보는 시각이라면 한국식 건축은 숲을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처럼 직원들은 착실하게 남자의 강의를 받아 적었다.
며칠 동안 동양 건축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팀장이라는 적폐가 사라지자 사무실 분위기는 생동감이 돌았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이 사라졌다.
제약이 사라지자 창조적인 생각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건축주나 발주처가 요구하는 바를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창작은 육체적 피로를 가져와도 정신적으로는 피곤하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 선택했던 건축의 길.
직원들 눈에 힘이 빡 들어갔다.
“한국에서 집은 내 몸의 연장입니다. 무기교의 기교, 거칠고 투박한 질박미. 그것은 서양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국만의 건축이 갖는 특징입니다. 다양한 반찬을 한꺼번에 먹는 우리만의 음식 습관처럼 독특한 건축 문화를 보이는 겁니다.”
“저기 이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발주처 이사 신분으로 알려진 장태산에게 공혜진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말씀하십시오. 혜진 씨.”
‘어머~ 혜진 씨? 나에게는 과장님이라고 깍듯하게 존칭하더니!’
알 수 없는 차별에(?) 윤소진은 다소 찡한 서러움을 맛봤다.
“이사님이 말씀하신 바를 적용하면 지금 설계할 연구소는 전통 한국식이라는 건가요? 그런데 도저히 공간이 나올 수 없지 않나요? 연구소와 한국적 건축물, 자연과의 조화……. 예의까지 차리려면…… 상상하기도 벅찹니다.”
‘요즘 애들 말 따박따박 잘해~.’
윤소진은 할 말 하는 공혜진이 부러웠다.
자신도 성격에 모가 나 툭 내뱉는 경향이 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나름 소심한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장태산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단어들도 어감에 따라 같은 뜻이라도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런 의미의 변화와 시도를 요구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꽃미남에서 오징어가 된 이후 최대한 조용하게 살고 있던 곽준원 대리가 오랜만에 용기를 냈다.
“빛과 햇빛의 차이를 아십니까? 땅과 지반, 온돌과 벽난로, 툇마루와 복도, 마루와 거실, 벽과 담, 장기와 체스, 알파벳과 한자, 구성과 직조까지……. 이 차이에 대해 뭔가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
설계팀 직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가슴으로는 이해가 됐지만 머리로는 선뜻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과 완전히 달랐다.
일원론과 이원론을 다르게 표현하고 설명하고 있음은 알았다.
그러나 시원하게 관통하는 맥을 잡지 못했다.
열정에 넘쳐 설명하는 장태산만 알고 있는 내용 같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정과 환희 가득한 장태산의 눈동자.
모두 다 숨을 죽이고 천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셈이었다.
여기 직원들 누구도 이번 설계의 주도자가 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아는 지식의 범위가 달랐다.
“지금껏 학교에서 배우고 습득했던 고딕, 르네상스의 바로크, 로코코 양식, 미술 공예 운동, 파시스트 건축, 야수주의, 모더니즘과 자유, 포스트모더니즘과 고전주주의 복고 등을 모조리 유기적으로 건축 설계에 투영해야 합니다.”
대학교수보다 더 박식한 지식을 펼쳐놓는 장태산을 보며 직원들은 경외감을 품었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하룻밤 만에 뚝딱 뽑아내는 계략적 설계도에는 다들 손을 들었다.
자신들은 한 달이 걸려도 뽑아 낼 수 없는 설계도였다.
그런 고도의 설계도를 하룻밤이면 그려내는 장태산은 천재이자 괴물이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회의를 했다.
장태산이 뿜어내는 열정에 중독되면 뭔가 무에서 유가 창조되듯 머릿속에 뭔가 그려졌다.
“어떤 생각에 갇히지 마십시오. 월리엄 모리스가 말했던 ‘쓸모가 없거나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당신 집에 두지 마라’라는 말은 우리와 상관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변합니다. 눈여겨보지 않던 꽃도 어느 날 사랑스럽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여백의 미를 품는 넓은 마음이 한국적 건축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윤소진 과장님~.”
‘어머! 어떡해!’
윤소진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며 질문하는 장태산의 모습에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마, 맞아요! 이사님 말씀이 무조건 옳습니다!”
‘나 이런 여자 아닌데…….’
감히 다른 말로 대꾸할 엄두가 안 났다.
천재 앞에 선 평범한 일반 건축 디자이너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때는 세상 모든 건축물들을 우습게 봤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겸손을 배웠다.
“건축학도였던 여러분들이 대부분 존경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위대한 건축가는 자신의 시대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전 이 말에 절대 동감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위대한 건축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마음을 열어 보십시오. 장자가 《소요유》 편에서 ‘신인이란 자연과 더불어 하나 된 삶을 산다’고 말한 바를 생각하면 답이 보일 겁니다. 발주처가 생각하는 바도 이와 같습니다.”
열변을 토하는데 침도 튀기지 않는 장태산.
윤소진이 존경하는 위대한 천재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름까지 나왔다.
자연과 건축을 추구했던 그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지금도 명작이었다.
‘인간이 저렇게 멋져도 되는 거야?’
윤소진이 어릴 적부터 꿈꾸던 백마 탄 왕자가 눈앞에 재림해 있었다.
그러나 감히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는 영원히 젊음을 간직한 신과 같았고 자신은 늙어가는 추종자에 불과했다.
‘신은 죽은 거야……. 흐윽.’
급기야 윤소진은 자신을 늙어가게 만든 신을 원망했다.
“한국적 건축을 바탕으로 하되 창조적 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직선은 인간의 것이지만 곡선은 신의 것이다’라고 말했던 안토니오 가우디도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다만 생각의 차이가 그를 바로셀로나의 성자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가 풍겨대는 카리스마와 열정, 지식과 지혜에 직원들 모두 감복했다.
질투 같은 저급한 감정은 진작 버렸다.
“건축의 신은 디테일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한국적 디테일을 찾아 스티븐 매튜가 창조한 애플 우주선을 보기 좋게 추락시켰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발주처에서는 여러분들에게 화끈한 물질적 보상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
가장 가슴에 와 닿는 화끈한 물질적 보상이라는 말.
직원들 모두 활활 전투 의지를 뿜어냈다.
스티븐 매튜와의 10억 달러짜리 내기를 펑펑 뱉어내는 장태산 이사.
그가 쪼잔하게 몇 백 던져주고 말 것 같진 않았다.
장태산 이사가 온 뒤로 구내식당 메뉴도 호텔식으로 바뀌었다.
직원들은 모두 꿈꿨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지금만 같으면 살 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었다.
***
“대표님……. 요즘 딴살림 차리셨죠?”
“따, 딴살림요?”
대략 설계도를 TS 건설 설계팀에 던져주고 본거지로 돌아왔다.
보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조용히 파견직 사원 놀이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시간도 부족했고 조직을 파먹는 암적 존재를 뒤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감사가 실시되자 그동안 눌러둔 비리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안아 건설 사장 때부터 유임됐던 사장이 동문이라는 이유로 임원들과 고위급 직원들을 감싸고돌았다.
밝혀진 비리만 200억 원대.
조용히 사직서를 받고 끝내는 선에서 처리했다.
TS로 사명이 바뀐 뒤에도 내부적으로 바뀌지 않았던 건설 사업.
내 책임도 있었다.
이번에는 죄질이 불량한 놈들은 돈을 토해 내게 만들었다.
퇴직금을 비롯해 일체 혜택을 회수했다.
일벌백계의 좋은 기회가 됐다.
하관우 회장에게 경고했다.
결코 대웅맨들이라고 봐주지 말고 그룹에 손해를 가한 직원들은 엄단하라고 지시했다.
2차 사정이 시작됐다.
안심하고 있던 안아 그룹의 암중 적폐들이 퇴출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성서의 말이 옳았다.
인지상정으로 봐주다가 회사 일이 꼬였다.
사업가는 냉정한 집행자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배웠다.
그 사이 설계도는 틀을 잡아갔다.
대략적인 설계는 내가 잡았다.
나머지 부분은 직원들에게 맡겼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아이디어 회의를 가졌다.
어차피 봄이 되어야 공사는 다시 착공할 수 있었다.
스티븐 매튜를 감복시킬 그런 녀석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건축 신들의 스킬을 티가 안 나게 잘게 잘게 쪼개 가르쳤다.
앞으로 그룹과 한국 건축 설계 시장의 중축이 될 인재들을 키워내는 중이었다.
월급과 보너스도 넉넉하게 지불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생각을 펼쳐놓기도 했다.
여러 사람 머리가 모이자 더 견고하고 완벽해져 갔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힘이 보이는 조직만의 매력을 통감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대표님……. 커피 타주는 다른 여직원 있는 거죠?”
도도희의 질문에 이어 유세라 팀장이 슬픈 사슴 눈빛을 보였다.
“그러게……. 딴 여자 얼굴이 보이네……. 같이 밥도 먹을 것 같은데?”
요즘 능력이 월등히 개발되고 있는 김한별이 미래를 봤다.
내일 설계팀과 회식이 잡혀 있었다.
“하, 하하……. 요즘 제가 바빠서……. 그럼.”
유세라 팀장이 뽑아 준 커피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사랑이 식었어…….”
“우리를 사랑하기는 했던 거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미녀들의 수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맞이하는, 뿔난 장성한 딸들 같았다.
“곧 겨울이 오겠네.”
따뜻한 커피 잔을 들고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11월도 어느새 중반을 넘어섰다.가을은 절정을 넘어 이제 겨울에 자리를 내주려고 하고 있었다.
띠릭.
리모컨으로 사무실 TV 전원을 켰다.
바쁘게 살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무심했다.
[수자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5대강을 개발해 물 부족 국가로 지정된 미래를 대비함이 현명합니다. 혹자들이 주장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대통령께서 지난 6월 철회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치수와 담수량 확보에 중점을 두고 진행 중입니다.]
[거짓말 마세요! 치수와 담수량 확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깊이 5미터를 파면 강바닥이 모두 뒤집어 집니다. 물길이 강해지면 강의 자연치유력이 사라지고 보 안에 갇힌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그런 물을 국민들이 식수로 사용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강의 생태계에 교란이 생기면서 강은 죽고 생태계는 파괴되고 말 겁니다!]
[교수님. 근시안적 안목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넓은 안목을 보여주십시오. 물 부족 국가입니다! 그런데 장마철에 국지성 호우가 내리면 그 물이 다 사라집니다. 봄 가뭄에는 그 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근시안적이라니요! 최병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장성효 대표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있지도 않은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라는 거짓 단체를 설립한다고 당신들의 치졸한 음모가 감춰질 것 같습니까! 반드시 탈이 날 겁니다! 한반도에서 나고 죽은, 우리의 조상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TV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최병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전직 서울시 공무원인, 장성효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 대표라는 작자가 뻔뻔하게 아가리를 놀렸다.
모든 게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이며, 저들이 그 당사자 놈들임을 알고 깨어 있는 지식인들도 있었다.
그래도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하게 부정하는 장성효 대표.
주인인 쥐새끼 대마왕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쓰레기였다.
그에 반해 얼굴이 익숙한 대운하 반대 토론자 교수는 열변을 토했다.
이 토론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뒤에 학교에서 잘리고 정권의 감시를 받게 되는 지식인이다.
정말 치졸하고 저열한 최병박과 그 일당이 아닐 수 없었다.
수 십 조가 들어간 사업에서 최소 몇 조는 커미션으로 받아 챙겼을 것이다.
대통령직을 국민을 위한 봉사가 아닌 희대의 사업으로 생각했던 최병박.
인간에게 해로움을 주는 쥐에게는 대통령의 기회를 줘서는 안 됐었다.
“신들은 뭐하는지 몰라……. 저런 쥐새끼 안 잡아가고…….”
커피를 마시며 혀를 찼다.
그때…….
파아아앗.
갑자기 빛과 함께 주변 풍물이 확 바뀌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두둥실 떠가는 강물이 앞에 보였다.
아무리 봐도 한강 같았다.
다만 내가 알던 지금의 한강이 아니었다.
금빛 모래가 넘실거리는 인적이 전혀 없는 한강.
“뭐, 뭐야?”
바라지도 않았는데 뭔가 일이 터졌다.
“왔으면 앉거라.”
“???”
발 아래쪽에서 들리는 구수한 목소리.
나무갓을 쓰고 도포를 걸친 노인, 아니 신선이 분명한 분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누, 누구십니까?”
초정하지도 않았고 하물며 원하지 않았는데 나를 소환한 신이었다.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갓을 살짝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고 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신선.
“나는……. 하백의 외손자다.”
“네? 하백의 외손자…… 라면……. 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