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
회귀의 전설
307장. 도끼로 흥한 자
‘저놈이!!!’
게라드는 울컥 피가 치솟아 머리를 때리는 분노를 느꼈다.
대놓고 자신을 모욕하는 베커 백작이라는 자.
자신이 뱉었던 루벡 남작가의 자랑스런 검을 조롱하듯 입에 올리며 결투를 신청했다.
이대로 등을 보인 채 되돌아갈 수 없었다.
후배 기사들과 기마병들이 눈을 뜨고 보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되돌아간다면 평생 조롱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냉정한 이성은 계속해서 위기 신호를 보냈다.
실력보다 잔머리를 이용해 수석 기사의 자리에 오른 게라드였다.
베커성 영주놈이 달리 보였다.
얼마 전 영지가 시끄러웠다.
갑작스럽게 출몰한 오크 부족으로 긴장했었다.
오크 떼가 나타나면 영지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아까운 전력이 소모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떠돌이 오크와 달리 오크 부족은 최소 천 단위 이상의 전력을 보유했다.
작은 영지에 들이닥치면 심각한 재앙이 되었다.
그런 오크 떼를 저 영주가 때려잡았다.
놈의 기세는 자신감이 넘쳤다.
“왜? 게라드 경~ 내가 두려운가? 그럼 다음에 찾아와도 돼. 무서워서 갑옷에 오줌이라도 지리면 체면이 구겨지지~.”
도끼를 성벽 위에 올리고 한껏 비웃는 베커 장 영주.
으드득!
게라드는 이를 갈았다.
게라드의 이성은 마비되고 인내심은 툭하고 끊어졌다.
살다가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영주가 아니라 싸구려 용병놈들처럼 행동하는 베커 장 백작.
게라드는 남작가의 기사였지만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검술을 수련한 뼈대 있는 기사였다.
마력도 준수한 편이었기에 루벡 남작은 기꺼이 게라드를 중용했다.
‘네놈의 모든 걸 빼앗아 주마!’
게라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크 마력석도 상당한 금액의 돈이 된다.
일대일 대결이라면 두려울 게 없었다.
게라드의 눈동자는 이성의 끊을 놓고 욕망에 사로잡혔다.
결투의 승자는 패자의 모든 걸 소유하는 법.
게라드는 영주의 오크 무기가 욕심났다.
기사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나의 주군이신 루벡 드 알포네 남작님께서 주신 명예로운 기사의 이름으로 결투를 받아들이겠다!”
스릉.
게라드는 말 위에서 기사용 장검을 뽑았다.
툭!
바닥에 떨어지는 검집.
죽어야 끝내겠다는 의사의 표시였다.
게라드는 왼손으로 방패를 잡았다.
완벽한 결투 태세를 갖췄다.
파아앗!
넘실거리는 마력이 게라드의 검에 피어났다.
“덤벼라! 네놈의 목을 꺾겠다!”
게라드는 검으로 영주의 목을 가리켰다.
이제 귀족이고 뭐고 신분의 차이는 필요 없었다.
‘가죽 갑옷과 오크 무기 따위로 나에게 덤비다니!’
게라드는 자신감이 넘쳤다.
마력을 다루는 용병들도 몇 명을 베어 봤던 경험이 있었다.
절대 패배를 염두 할 필요가 없었다.
‘이 성, 오늘 접수한다! 흐흐흐.’
게라드는 영주를 잡아 발아래 꿇리면 오늘 당장 성을 접수할 수 있음을 잘 알았다.
모든 이들의 눈빛이 영주라는 작자를 의지하고 있었다.
한 판의 승부.
게라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
딱 걸렸다!
이런 맛에 낚시질 하는 거다.
개 폼 잡고 검으로 날 가리키는 기사 게라드.
내년 이맘때가 자신의 제삿날이 될 것을 정작 그는 몰랐다.
가소로운 비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천룡신군 수제자를 우습게 봤다.
탈만을 통해 이쪽 세계의 검술은 이미 맛봤다.
하급의 검술이기 했지만 용병 단장질 하는 탈만의 검술은 별 볼일 없었다.
기사라고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것도 시골 남작가의 기사가 아닌가.
마력 갑옷으로 무장하고 장비빨로 나에게 개겼다.
대가는 비오는 날 주인에게 이빨 드러냈다 몽둥이에 얻어맞는 사냥개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너의 청을 접수한다!”
콜을 외쳤다.
놈이 선수를 양보한 상태.
선빵 필수의 법칙을 놈은 몰랐다.
터엉!
10미터가 훌쩍 넘는 성벽 위에서 가볍게 몸을 날렸다.
양손으로 잡은 무식 오크 도끼에 마력을 가득 담았다.
쇄애애애애앳.
내리꽂히는 도끼.
“헛!”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보통 사람이 이렇게 높은 성벽 위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죽자고 뛰어내린 미친놈이라 욕할 것이다.
쇄애애애애애앳.
도끼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예술이었다.
“!!!”
불시에 당한 일격에 깜짝 놀라는 게라드.
놈이 말등에 앉은 채 빠르게 방패를 들었다.
멍청한 놈의 멍청한 선택이었다.
마력을 더했다.
도끼 전체에 퍼져가는 짜릿한 마력의 느낌.
도끼가 빛났다.
“엇!”
마력 광채에 놀란 게라드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도끼를 막은 방패에 가해진 어마어마한 파괴력.
놀랍게도 마력 방패는 살짝 찌그러지는 수준으로 내 공격을 받아냈다.
우두둑!
하지만 방패를 쥔 게라드의 왼팔이 탈골되는 건 어쩌지 못했다.
10미터 높이에서 내리찍은 가속력과 물리적 충격이 장난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게라드의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콰다다당.
반탄력에 게라드의 몸뚱이는 말등에서 튕겨져 땅바닥을 굴렀다.
파르르 파르르.
게거품을 물고 온 몸을 떠는 게라드.
도끼질 한 방에 왼팔이 기역자로 꺾였다.
갑옷을 입고 말 등에서 튕겨져 떨어지며 받은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선빵이 제대로 먹혔다.
“게, 게라드 경!!!”
“네 이노오오옴!”
남아 있던 기사 두 명이 놀라 황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숭고한 결투 규칙을 무시하는 건가?”
도끼를 들고 2순위 대상자들을 응시했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게라드보다 실력이 못한 기사들이었다.
자세나 체격 면에서 모두 다 수준이 떨어졌다.
“크으으…….”
팔이 꺾인 채 선빵을 맞고 널브러진 게라드가 땅에서 몸을 일으키며 괴로운 비명을 토했다.
정신력이 제법이었다.
“비, 비겁한 놈!”
입가에 피를 흘리며 분노의 시선으로 노려보는 게라드.
나가떨어지며 충격에 투구가 벗겨져 놈의 얼굴이 드러났다.
제법 준수한 외모의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금발 기사였다.
오만한 기운을 도사리는 얼굴에 자리 잡은 악독한 눈동자에서 뿜어지는 눈빛.
아직 덜 맞았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그대로 놈을 향해 직선으로 휘둘렀다.
빠르고 정확한 일격.
게라드가 이를 악물고 검으로 막았다.
하지만…….
카아아아아앙!
마력과 근력에서 내가 월등히 앞섰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치솟아 튕기며 멀리 날아가는 게라드의 검.
빈손이 된 놈의 무방비 상태의 육신.
가차 없이 게라드의 몸뚱이를 오른발로 걷어찼다.
내력이 단단히 담겨 있는 발길질이었다.
퍼어엉!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났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더 큰 비명을 토하며 몇 미터를 갑옷 입은 채로 날아가는 게라드의 몸뚱이.
촤아아아앗.
피분수가 놈의 입에서 뿜어졌다.
누가 봐도 회복하기 힘든 중상.
당분간 맛 좋은 음식 위장에 담기는 글렀다.
“으헛!”
지켜보던 기사들의 눈길이 게라드를 향했다.
바닥에 꽂혀 있던 창을 왼손으로 뽑아 들었다.
그리고 기사들 중 한 놈에게 던졌다.
까아앙!
창이 굳어 있는 기사의 몸뚱이를 가격했다.
“컥!”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기사가 말 등에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충격에 기사가 짧은 비명을 토했다.
멈추지 않았다.
도끼를 다시 고쳐 잡고 자리를 박찼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한 놈.
몸을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시현한 도끼 풀 스윙!
콰아아아앙!
소름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마지막 남아 있던 기사 놈의 심장 부근을 가격했다.
“커억!”
비명을 토하며 말 등에서 가볍게 떨어지는 기사.
히이이이이잉.
놀란 말이 길게 울음을 토하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죽엇!!!”
창에 맞아 떨어졌던 기사가 어느새 몸을 일으켜 검을 찔러왔다.
대처가 제법 빨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재빨리 바람처럼 몸을 움직여 검을 피했다.
기사의 움직임은 내 눈에 느리게만 보였다.
“!!!”
놈의 눈동자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슬로우 액션이나 진배없는 상황에서 조롱 섞인 미소를 한방 날렸다.
그리고…….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는 기사의 뒷목을 오른손으로 힘껏 가격했다.
퍼엉!
내력이 담겨 있어 벼락처럼 느껴졌을 일격.
“켁!”
기사는 검을 든 채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오크들의 시체가 묻혀 있는 딱 그 자리.
기사들은 명예나 체면도 챙기지 못하고 땅바닥에 처박혀 몸을 떨었다.
“!!!”
기사들과 함께 왔던 루벡 남작가의 기마병들은 석상처럼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반격을 해오기에는 이미 기가 꺾여버린 상황.
내 눈치를 보며 상황 파악에 여념 없는 기마병들의 동태.
그들에게 명을 내릴 기사들은 땅바닥에 처박힌 채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판이 다 깔렸다.
“…….”
절로 찾아 온 미세한 침묵.
기사들을 모두 때려눕힌 이 순간, 저들 눈에 나는 마수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성벽 위에서 함성이 터졌다.
“여, 영주님이 이겼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영주님이 이겼다! 베커 영주님 만세! 만세!”
승리의 함성이 서라운드로 울렸다.
성벽 위의 병사들과 용병들의 함성은 기마병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이제는 마무리 할 시간.
도끼에 마력을 아끼지 않고 불어 넣었다.
찌이이이이이잉.
마력 도끼가 우윳빛 광채를 줄줄이 토했다.
기마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끼에 집중됐다.
“본 영주 허락 없이 영지를 침탈한 너희들의 죄를 묻겠노라!!!”
내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더 쩌렁쩌렁 울렸다.
기마병들의 당혹한 눈빛이 두려움에 물든 채 나에게 향했다.
이럴 때일수록 길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됐다.
“꿇어라! 목숨만은 살려주겠노라!”
자비롭고 준엄한 명령.
처저저적!
눈치 빠른 탈만과 용병들이 성벽 위에서 활을 겨누며 보조 출연자 몫을 다했다.
그리고…….
털썩 털썩 소리와 함께 기마병들이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무릎을 꿇었다.
- 높은 레벨을 소유한 악명 높은 기사를 일격에 제압했습니다. 엄청난 마나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기사 세 명을 무릎 꿇렸습니다. 보너스 마나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최초로 기사가 포함된 기마병들을 항복시켰습니다. 보너스 마나 포인트 지급됩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영지민들과 병사들의 충성심이 올랐습니다.
- 루벡 남작과 적대관계가 생성되었습니다. 영지전을 준비하십시오. 그는 베커 영지 영주를 향해 신께 저주를 요청할 것입니다.
- 호칭이 ‘도끼로 흥한 자’로 변경되었습니다.
영지전? 그래! 뭐 그깟 영지전! 한 판 뜨자! 어차피 못 먹어도 고다!
평화로운 시절은 다 끝났다.
이 게임 세상 같은 이계 생활.
강한 자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자만 영웅이 되는 세상.
기필코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