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회귀의 전설
244장. 임준형 (3)
“장태산이 오빠와 만났다고?”
“지금 용인에서 골프 회동 중입니다.”
“오빠가 무슨 일이래? 먼저 다 움직이고?”
회사에 출근해 일을 보고 있던 임아현은 올라오는 보고에 놀랐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 못했습니다.”
‘오빠가 먼저 움직였다는 말은……. 생각보다 가치가 있다는 건데…….’
장태산을 파악하느라 생각이 많아졌다.
한번 만나고 싶었다.
순종적이던 막내가 대차게 변할 정도로 매력이 넘치나 궁금했다.
그런데 오빠가 선수를 쳤다.
남들은 귀공자라 칭하지만 임아현은 오빠 임준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아버지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경영능력은 인정할 만하다.
한국대에 실력으로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고 끈기도 있었다.
다른 재벌 집 망나니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런 오빠는 한참 집안에서 주가를 달리다 요즘 주춤해졌다.
올케 언니와의 관계가 편하지 않아서다.
처음에는 뜨거웠지만 성격차이가 났다.
둘 다 그렇게 시시콜콜 말을 내보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적을수록 한 집에 있는 게 불편했다.
결혼 생활에 큰 불만이 없는 임아현은 잘 알았다.
오빠가 바람이 난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혼 얘기까지 흘러나왔지만 임아현은 애써 못들은 척 무시했다.
언니가 유난했다.
재벌집 자식들 중에 밖에서 여자 안 보는 사내가 없었다.
사장이나 회장 명함을 달면 세컨드는 당연하게 만들었다.
그걸 관리하는 것도 재벌집 안주인이 짊어져야 할 숙제다.
아빠도 그랬다.
엄마도 참고 인내했고 잘 관리했다.
그래서 아빠에게 다른 핏줄이 없었다.
임아현도 그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재벌가에게 상속 문제는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
형제간의 의리 따위도 다 부질없었다.
재벌가의 상속은 일반 가정 상속과는 차원이 달랐다.
줄을 선 임원들과 직원들도 목숨을 걸었다.
그런 점에서 오빠는 한 발자국 물러서 있었다.
집안에 단 하나뿐인 장남이다.
아빠와 비서실장이 아름답게 상속을 포장했다.
묵시적으로 중요 계열사는 오빠 몫이 됐다.
그게 화가 났지만 임아현은 대놓고 드러내지 못했다.
오빠는 무서웠다.
순둥이처럼 보이지만 오빠는 한 번 화나면 물불을 안 가렸다.
고집이 세서 아빠도 가끔 밀렸다.
‘장태산이 오빠의 그런 성격 알라나 몰라?’
한 번 수틀리면 사람 하나 보내는 거 일도 아니다.
오정은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그럴 힘이 있었다.
현직 대통령도 이번에 오정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이것저것 소송비부터 시작해 선거자금으로도 꽤 많은 돈이 지불됐다.
고위 관료들 몇 명은 오정에 의해 꽂아졌다.
대부분의 상류층들은 알거나 짐작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언론도 재갈을 충분히 물렸다.
야당 성향 진보 언론지조차 오정에서 관리를 받았다.
그런 오정의 차기 주인으로 내정된 임준형은 자존심이 셌다.
‘장태산도 성격이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보고서에 올라온 장태산의 성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 온유한 것 같지만 냉정하고, 자상한 것 같으면서도 치밀한 성격. 보이지 않는 자존심이 강해 대화 시 유의 요망.
***
왜 웃어?
임윤아 오빠라고 해서 많이 양보한 거다.
일반인에게 갑질 안 부린다.
하지만 태생이 평민이라 재벌인 척하는 이들에게는 성격이 나빠진다.
겨우 승리하면 임윤아 옆에 있도록 해준다고?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패배해도 ‘조용히 살아주십쇼’ 라고 부탁해야 정상이다.
오정이 대한민국에 왕으로 군림하지만 중소 왕국일 뿐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더 빠르고 엄청난 덩치로 진화한다.
승자독식의 최종 보스가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오정의 후계자 안목이 짧다.
임성철 회장이 쓰러진 후 오정의 후계자는 전국의 주목을 받는다.
9년 동안 수없이 벌였던 과거의 업들이 발목을 잡았다.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존심이 만들어낸 위기였다.
국민들은 개돼지가 아니었다.
개인 소득이 증대하고 다들 배울 만큼 배운 시대가 도래한다.
과거 돈 몇 푼에 팔아줬던 묻지 마 투표도 사라진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지 못하면 도태 된다.
보수 단체를 암중에서 지원하며 정부를 압박하던 행태도 까발려지는 시대가 곧 온다.
그 전에 체질을 개선하고 진심으로 국민과 하나가 되어야 세계적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뭔가 어긋나 있다.
정신능력과 감성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함에도 부족함이 확 느껴졌다.
임성철 회장보다 감이 늦다.
정보를 받아왔음에도 판단이 어리숙하다.
재벌 그룹 체제의 허점이 훤히 보였다.
2세를 넘어 이제는 3세 경영 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오정도 대한민국에서 넘사벽 반도체 업체가 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건 아니다.
네포티즘(Nepotism)의 전형적인 기업이자 가문이다.
족벌정치의 장점인 단단한 결속력과 경영 안정성이 보장되지만 상속 문제로 골치 아파진다.
경영 결정의 폐쇄성은 논하기도 전에 내부가 분열되면 끝장이다.
유류분을 주장하기 전에 일찍 쪼개지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렇지 않다.
오정도 피하지 못했다.
선대 회장에 의해 대기업들 몇 개가 분할됐다.
임성철 회장도 형제들과 상속 문제로 소송까지 벌였다.
임준형도 마찬가지다.
시퍼렇게 눈을 뜬 여동생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패배하면 경영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은 큰 떡이다.
임윤아 오빠라서 많이 봐준 거다.
임준형이 어찌할 수준이 아니라는 걸 빨리 파악하기를 바랐다.
여차하면 들이받는 내 성격을 몰랐다.
알았다면 술자리에 불러 임윤아를 바닥 패로 깔고 호형호제 하자고 먼저 제안했어야 옳았다.
“내가 우습나? 아니 오정이 만만해 보여? 재산이 3조라고 했지? 많은 돈이지만 그렇다고 돈이 전부가 아닌 세상이야. 이 친구야~.”
웃음을 멈추고 임준형이 충고를 해왔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임준형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똑똑하게 경험하며 살아봤다.
하루에 컵밥 두 개도 사치로 여겼던 삶이다.
임준형에게는 없는 처절함이 내게는 있었다.
부잣집 도련님과 성장 시절이 달랐다.
밑바닥과 꼭대기 층은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난 위로 올라가는 중이지만 임준형은 위에서만 바라봤을 뿐이다.
바닥부터 기어서 오르는 인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최전선 전사와 후방 고위급 장군의 차이와 비슷했다.
그런 나에게 돈이 많아서?
일단 크게 미소 한 번 지어본다.
“웃어?”
임준형이 인상을 쓴다.
대화가 잘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인생 선배니까 충고는 잘 받겠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가 궁금해?”
“제가 왜 임준형 씨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오정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돈이 전부가 아니라면 전부인 건 뭐가 있습니까?”
“임준형 씨? 크크크.”
그럼 뭐라고 불러? 형님?
에이 그건 우리 서로 낯간지럽잖아.
오늘 처음 봤는데 많이 봐줬다.
더 이상 양보를 바라면 양심도 없는 인간이다.
웃고 있지만 서서히 내부에서 마그마가 끌어 올랐다.
“잘못 됐습니까?”
전문 돌직구 질문이 날아갔다.
“아니……. 아니지. 내가 장태산 대표에 대해서 잠시 착각한 것 같아. 그렇지?”
“맞습니다.”
파지지지직.
와우! 사이가 금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날 임윤아와 썸 타는 남자로 대우했다면 이렇게 나오지 않았다.
졸부 취급하는 저변의식이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자기만 부자야?
임준형 도움 없어도 임윤아와 마음만 맞으면 잘 지낼 수 있었다.
두려울 게 없는데 겁을 주려 했다.
그런 거에 쫄릴 존재가 아님을 몰랐다.
“그래 그럼……. 그렇게 대해줘야지. 장 대표님.”
“고맙습니다. 임준형 부사장님.”
이제 다시 원점이다.
LOR 투자 전문 회사 대표와 오정 전자의 부사장 임준형과의 만남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뒤에서 대기 중이던 경호원들이 긴장했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분들이니 신경 껐다.
“참고적으로 전 임준형 부사장님과 오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만만했다면 이곳에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뭐 그렇다고 딱히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다 같이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인간들 아닙니까. 죽으면 썩을 육신을 소유한 동등한 인간끼리 계급은 나눌 필요 없지 않습니까~.”
무슨 족장 시대도 아니고 선민의식에 절어 사는 인간들이 안타깝다.
조용한 곳에서 각자의 능력껏 즐겁게 살면 된다.
남들보다 잘난 걸 드러내려는 욕망 때문에 탈이 난다.
그래서 조만간 내가 가진 자금 싹 털어 버릴 생각이다.
돈 냄새 맡은 똥파리들이 사방에서 찾아왔다.
그들에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진리를 몸소 보여줄 것이다.
“건방진 건 아나? 장 대표님.”
임윤아도 그렇더니 이 집안 식구들은 반절만 말을 올리는 버릇이 있다.
“가끔 그런 소리 듣습니다. 부사장님 말대로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꼭 성질 건드리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전 안아 그룹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안아와 오정이 같은 수준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지?”
“설마요~. 안아와 다르게 오정은 몇 달은 더 공들여야지요. 그래도 여태 버텨온 저력이 있는데 쉽게 무너지겠습니까? 임성철 회장님과 안면도 있는데~.”
칼만 안 들었지 서로 초식 몇 번 나눈 사이가 됐다.
내 입장에서는 안아와 오정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주식회사에 계열사들끼리 순환출자로 묶여 있다.
한 곳만 공략하면 다른 곳은 우르르 한 방이다.
특히 오정은 순환출자 구조가 단순했다.
어떻게 보면 안아보다 더 쉬웠다.
어차피 해외 투자자들의 주식보유 규모도 많았다.
돈 좀 더 던져주면 팔 놈이 수두룩이다.
“미친…….”
놈이나 새끼 붙이면 오늘부터 전쟁이다.
여유롭게 임준형을 봤다.
“참고로 임윤아 양과 아직 정식 교제 중 아닙니다. 임성철 회장님이 억지로 자리를 만들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전 오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건들면 물고 뜯고 찢어버리겠다는 전투 의지를 보였다.
파바바밧.
허공에서 두 눈동자가 부딪쳤다.
아마 태어나 나 같은 미친놈 처음 만날 거다.
다들 오정의 아들이라면 고개 숙이고 꼬리 흔들기 바빴을 것이다.
“크크크……. 내가 요즘 너무 착하게 살았던 것 같아. 장 대표 같은 핏덩어리들이 들이받아도 웃고 있을 정신이 있는 거 보니 말이야.”
“저 때문이겠습니까. 가정사가 복잡하니 다 귀찮은 거죠.”
“뭐라고!”
임형준의 자존심을 확 건드렸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명언이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 가정이 평화롭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거 모르십니까?”
“너, 너! 죽고 싶어!!!”
타다다닥.
죽고 싶냐는 말에 경호원들이 뛰어왔다.
나를 향해 폭사되는 경호원들의 에너지가 거칠다.
“멈춰. 더 다가오면……. 다친다.”
내공을 담은 경고가 던져졌다.
뚝!
거짓말처럼 경호원들이 멈췄다.
기 싸움을 아는 수준은 되는 것 같다.
당황하는 경호원들 얼굴만큼 임준형 안면도 볼만했다.
활활 타오르는 적개심으로 귀공자의 피부는 붉게 달아올랐다.
톡하고 누르면 터질 것 같았다.
이쯤에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임윤아 얼굴이 떠올랐다.
“골프채 주십시오.”
경호원이 메고 있는 골프채에 손을 내밀었다.
“줘!”
임준형은 이를 갈며 허락했다.
내가 뭘 하려는지 보려는 것 같다.
가장 헤드가 큰 아이언을 들었다.
가방 주머니에서 공을 꺼냈다.
핀을 박고 그 위에 공을 올렸다.
골프를 쳐보지는 않았지만 TV로 본 적은 있었다.
휘잉.
가볍게 골프채를 휘둘렀다.
태극오행양의권의 공능은 골프에도 적응됐다.
“잘 보십시오. 임준형 부사장님과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의 차이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힘차게 풀 스윙으로 골프공을 헤드 중심이 맞췄다.
누가 봐도 프로 같은 솜씨.
콰아아아아앙!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헉!”
임준형의 놀라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뿐하게 상당한 1번 홀을 훌쩍 뛰어넘어 사라지는 공.
나는 등도 돌리지 않고 충고를 건넸다.
“이것보다 100배 더 차이 납니다. 그러니…… 잠자는 사자를 건들지 마십시오. 오정이 아니라 누구라도…… 막으면 부숴버립니다.”